[시궁쥐 검은손 날조] Dies Irae
요우쇼우 2022-09-30 4
※ 먼저 올렸던 글의 김철수 시점 느낌
“김철수.”
하늘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속삭이는 듯한 그 목소리는, 자칫 이 주변 일대를 스쳐지나가는 가벼운 산들바람의 속살거리는 소리처럼 들릴 뻔도 하였다.
하지만 이 목소리에 곧잘 반응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정확히 목소리가 들려오는 하늘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미래.”
자신을 김철수라고 부르는 여자를 향해, 남자는 그녀를 미래라고 불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벌한 눈빛으로 여럿을 순식간에 압도하며 보스의 명이라며, 그들을 총살을 집행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온순해지자, 직전까지 계속해서 남자에게 털리고 있던 사람들이 되러 놀란 기색이 되었다.
중력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듯, 천천히 내려오는 여자를 남자가 살며시 받아냈다. 그리고 그녀를 아주 소중하게 땅바닥에 내려주었다. 커다란 보름달이 만들어낸 희미한 빛을 받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모습은 가히 천사라고 견주어도 되었지만, 그러기엔 여자의 옷 곳곳에도 한 사람의 분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피가 너저분하게 묻혀 있었다. 심지어 여자의 고운 얼굴에도 핏자국이 튀어 있었다.
그런 여자의 얼굴이 신경 쓰였는지 남자가 슬쩍 손을 올려 그 핏자국을 닦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가죽 재질의 장갑으로 이미 수십 분이 지난 핏자국이 말끔하게 닦일 리가. 오히려 더 이상한 무늬만 남기면서 더 기괴한 모습이 되었다.
남자가 여자의 안색을 소중하게 살피는 것과 달리 여자는 이런 자신들을 보면서 벌벌 떨고 있는 어느 무리의 사람들을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살아있는 자와 죽어있는 자가 섞여 있는 기묘한 조합이다. 그리고 곧잘 여자는 저 무리가 자신이 남자에게 처리하라고 지시한 무리임을 깨달았다.
자신이 다른 쪽의 일을 처리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이 남아있다는 건 남자가 일을 덜 끝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아직 정리가 덜 되었구나.”
“면목이 없군.”
“괜찮아. 내가 너무 빨리 온 탓이야.”
“걱정하지 마라. 금방 끝내도록 하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금방 끝난다고 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나? 미래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김철수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과거 교단의 처형인으로 살아왔고, 현재에는 자신의 패밀리의 살수(殺手)로 살아가는 김철수라면. 오죽 악명이 잦으면 살수(殺獸), 즉 사람이 아닌 짐승이 사람의 형상으로 둔갑하게 틀림없다는 소문이 가끔 들려오곤 했다. 그만큼 지금의 김철수에게 자비는 없었고, 당사자조차 모르는 심판만을 할 뿐이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짐승과도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김철수는 자신의 보스, 미래를 위해서라고 하였다. 김철수가 유일하게 충성을 바치고,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는 존재.
구세주. 김철수는 어느 새 미래를 그렇게 우러러 보고 있었다.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구세주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신이 살아있게끔 만드는 존재. 오로지 김철수만을 위한 구세주였다.
금방 끝낸다고 해놓고 약간 머뭇거리는 김철수의 행동에, 미래는 눈을 감고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그러면 저쪽에서 기다릴게.”
미래는 턱으로 골목 – 현재 이들이 위치해 있는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일명 뒷세계로 갈 수 있는 길목의 중간 지점이었다 - 입구 부분을 가리켰다.
김철수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처형하는 모습을 미래가 보고 싶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미래는 이것이 쭉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김철수는 미래가 처형하는 모습의 대부분을 지켜보았다. 미래에게 알맞은, 그리고 올바른 처형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라면서. 그런데 정작 자신의 모습은 잘 견학시켜주려고 하지 않았다. 한번은 크게 반발한 적이 있는데, 변명이라는 게 정서상으로 안 좋을 거라나 뭐라나.
나, 이미 성인은 되었거든? 미래의 대답에 김철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결국 피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은하에게 상의하자, 은하는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렸다.
-아저씨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김철수 말이야?
-쓸데없이 자상하고, 우리를 신경 쓰고 있으니까.
이런 평판, 아마 제3자가 들었다면 어처구니없었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자신과 같은 ‘인간’이 우리에게 이렇게 잔혹하고 잔인하게 굴 거라는 현실을 믿지 못해 짐승이라고 애써 자신들과 경계선을 그어둔 사람을 말이다.
-아니면 그게 유일하게 아저씨의 약점일지도 모르고.
-약점?
-어쩌면 교단 시절의 자신으로 잠깐이지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지도.
그야, 우리는 교단과 철천지원수였으니까. 그리고 그 교단을 무너뜨리는 데 가장 앞장 선 것은 한때 교단 출신이었던 김철수였다.
과거에는 교단의 명을 따르는 처형인. 지금은 어느 커다랗지만 겉으로 드러날 수 없는 조직의 배신자 및 적대 무리를 소탕하는 살수. 현재 김철수가 사용하는 방식은 교단 시절의 흐릿한 기억에서 따온 것이 적지는 않았다.
교단 시절의 김철수는 얼마나 잔혹했던 걸까. 그 시절을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루시는 은하의 저런 주장에 동의했다. 자신을 제외하고 김철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두 명이 저렇게 말해주니 그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골목 바깥쪽에서 기다리겠다는 미래를 향해 김철수가 쓰게 웃었다.
“...미안하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미래는 가끔 가다가 김철수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게 되었다.
아무튼 미래가 그 자리에서 떠나자마자, 김철수의 손이 급해졌다. 자신이 일을 신속히 처리하지 못한 탓에 미래를 기다리게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는 것에 대해 김철수는 필요 이상으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미래는 골목 바깥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의 벽에 기대어 김철수를 기다렸다.
곧잘 총탄이 서너발 울렸다. 그 소리에 미래는 눈을 다시 질끈 감았다.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 선명한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괜히 심장이 크게 뛰는 탓이었다.
잠시 후, 미래와 달리 말끔한 모습으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타났다.
“많이 기다렸나, 미래?”
“많이 안 기다렸어, 김철수.”
“미안하군...”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는데, 김철수는 재차 미래에게 사과했다. 이에 미래는 왜 자꾸 사과만 하냐고 김철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김철수는 요상한 말을 꺼내었다.
“너의 시간은 소중하다. 절대로 나를 위해 허비될 것은 아니다.”
“그 정도 기다린 것까지야.”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기다려준 것은 사실이지 않나.”
“응. 하지만 그게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할 건 아니잖아.”
애초에 오늘 김철수가 할당받은 몫은 나보다도 훨씬 많았으니까. 미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금 전 자신과 같이 살아있던 사람들을 그렇게 지칭하였다.
예전의 김철수라면 그러한 미래에게서 기묘함을 – 김철수가 처음 만났던 미래는 늘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으니까 - 느꼈을 테지만, 지금의 김철수는 그러지 못하였다. 아니, 이상함을 감지하여 이에 대해 반박을 하려고 해도, 차마 미래의 앞에서 그 말을 직접 하지 못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말을 꺼내려는 시도를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감히 너 따위가 보스, 그것도 구세주에게 반박 내지 말대답을?!’이라는 알 수 없는 자괴감에 사로잡히곤 했기에 늘 불발되었다. 교단을 몰살시킨 이후의 자신에게 새로운 삶이자 사명을 쥐어준 존재에게 감히 대들 수 있을 리가.
김철수에게 미래는 그러한 존재였다.
김철수보다 앞장서서 가볍게 뜀박질을 하며 본부로 돌아가는 미래의 뒷모습을 보며, 김철수는 문득 이런 충동에 사로잡혔다.
미래가 언제까지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자들은 즉, 미래에게 대드는 것들은 전부 다 자신이 숙청하겠노라고.
교단이 끝장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제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교단의 잔재는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그렇기에 김철수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가져다댔다.
-...
하지만 총이 발사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방아쇠가 이상할 정도로...당겨지지 않았다. 방아쇠가 뻑뻑할 리는 없다. 늘 총기의 관리는 최상급으로 유지하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감촉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기 그지없었기에.
그렇다는 건 자신이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걸 망설이고 있다는 결론이라는 건데.
...그럴 리가. 김철수는 헛웃음을 삼켰다.
자신이 과거에 어떠한 존재였는지,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항상 되뇌면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속죄는 자신이 당연하게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결론이 이렇게 밝혀져 버리다니.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건 당연하나, 그것이 무차별적으로 아무 생명을 짓밟아온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이 우스웠다.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그때 때마침 미래가 나타나 자신보고 죽지 말아달라고 매달리지만 않았으면 김철수는 다른 의미에서 죽어버린 거나 다름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김철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래에게 물었다.
-미래...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미래는 총을 들고 있는 김철수의 팔을 어떻게든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김철수가 다시 물었다.
-너는 내가 아직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
미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최상의 답이라는 건 없다. 미래는 그 동안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았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 시점에서부터 점점 전자인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는 와중이기는 했지만, 역시 자신과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눈앞에서 죽으려고 하는 꼴은 도저히 못 봐줄 것만 같았다.
이걸 이기적이다고 비난해도 상관없었다. 더 옳은 길로만 가려던 자신은, 이미 편법에 빠지고 검게 물들기까지 한 형국인데, 거기에 오물 하나가 덧씌워진다고 그게 표가 확연히 드러날까.
결과론적으로 김철수는 죽지 않았다. 다만 거기서 새로운 약속을 하나 했다.
-그런 거라면 내 남은 삶을 온전히 너에게 쏟도록 하겠다.
-...
-너의 검은손으로써 살아가겠다고, 다시금 맹세하겠다.
그 때부터 김철수에게는 미래를 향한 기묘한 신앙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것이 이제 김철수라고 하는 이름 모를 교단 소속이었던 처형인이 살아가야 하는 유일무이한 이유.
김철수의 이러한 기대가 어쩌면 점점 미래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미래는 상냥했던 아이였기에, 이런 걸 면전에서 대놓고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교단 출신자마저도 도저히 내칠 수 없었기에 교단이 사라져서 목표가 완수되었음에도 계속 점점 패밀리의 군세를 넓힌 것일 테지.
그리고 만약에, 언젠가 그를 지탱하고 있는 신앙심이 ‘어떠한 이유’로든 사라진다고 한다면...김철수가 취해야 할 가장 적합한 행동은 무엇일까?
...그 어느 때가 언제일까? 아니, 그 때가 과연 오기나 할까?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던 미래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말끔히 사라질 때?
그것보다 조금 더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싶다면, ‘우리의 보스’가 자신들이 가는 길이 ‘잘못됨’을 인지하고 반성할 때?
그리고 김철수가 막연히 생각하던 그 날은 기어코 오고 말았다.
-김철수, 이러지 마...
미래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미래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하지만 어디선가 분명하게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김철수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가 미래의 탈을 뒤집어 쓴 가짜임을 직감했다. 김철수가 기억하는 미래의 얼굴은 대개 고요했다. 그리고 그 차분한 얼굴에 희로애락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미래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때가 있었던 거 같은데.
분명하게.
김철수는 재빠르게 자신의 머릿속을 빠르게 뒤적였다.
...너무 잡생각이 많았던 탓일까.
교전 중에 틈을 보이고 말아 그만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대단한 솜씨, 로군.”
아무리 자신이 방심 같은 걸 했다고 해도 이렇게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급소를 찌르다니.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치명상을 입은 건 김철수인데 도리어 눈앞에 있는 미래가 더 아픈 표정을 지었다.
그 미래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여태까지는 자신이 미래에게 훨씬 더 많이 미안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니, 애초에 이게 미안할 일일까? 이건 어찌 보면 정정당당한 살육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부상을 입고 허덕이는 까닭은 자신이 다 나약했기 때문...
...아, 그제야 김철수는 기억해냈다.
까마득한 예전의 미래는 저런 얼굴을 자주 하곤 하는, 무척 상냥한 아이였다는 걸.
김철수는 깨달았다.
“그렇군...네가 ‘진짜’ 미래였어.”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조우하게 된 ‘진짜’ 미래와 대화를 몇 마디 나누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 것이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과다출혈로 죽게 되겠지.
...하지만 그런 모습을 눈앞에 있는 미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다짐도 한 적이 있었지.
김철수는 미래가 행복해지기를 그 누구보다도 바래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방해물들은 전부 다 자신이 처리하기로.
그러면 지금 이 상황에서 미래에게 있어 최대의 걸림돌은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했다. 미래를 이 지경까지 내몰도록 한 자신의 부추김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이를 깨닫자마자 김철수는 망설임 없이 총을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댔다. 미래가 당황하면서 그 때와 마찬가지로 말리고 있는 모습이 희미한 시선으로도 잘 보였다.
하지만 일절 후회는 없다. 김철수는 비로소 늘 속으로만 묵혀두고 있던 자신의 본심을 겨우 미래에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해져라, 미래.”
내 남은 소원은 오직 그뿐이니까.
방아쇠는 그 때와 달리 아주 부드럽게 작동하였다.
이윽고 총성이 한 발 크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