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쥐 검은손 날조] 행복해져라, 미래
요우쇼우 2022-09-21 5
※ 미래, 김철수 검은손 스토리 스포일러 有(개인적인 설정 날조 또한 有)
※ 아직도 검은손에서의 미래와 철수 관계성에 감탄 중인 필자.
-그래...네가 진짜 ‘미래’였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내 눈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김철수를 황망히 내려다보았다. 김철수의 복부에는 한눈에 봐도 치명상이 확실한 상처가 있었다. 낫에 의해 깊이 찔린 상처...패밀리를 비롯한 여러 조직들의 일원들 중에서 낫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하필 내 손에 들린 낫의 끝에는 방금 묻힌 것 같은 피가 묻어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정황상 내가 김철수를 찌른 상황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이었다.
바로, 배신자를 처단할 때.
하지만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바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김철수가 나를 배신하다니. 나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나의 검은손이 되겠다고 맹세를 했던 김철수가 감히 나를 배신했다니.
그냥 저절로 코웃음이 쳐지는 농담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나를 다시 올려다보는 김철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보였다.
-까마득한 예전의 미래는...그런 얼굴이었지.
얼굴?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걸까? 아니면 내가 지금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김철수의 그 때의 시점에서 보인 내 얼굴이 어때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내 몸이기는 했지만, 내 멋대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꿈이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것은 내가 과거, 몇 년 전에 실제로 겪은 일이었다. 그 때의 현실에서도 나는 꿈속에서의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김철수가 나한테 하는 말인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쿨럭. 김철수의 목울대가 크게 경련을 한 번 하였다. 기침과 동시에 자기 몸에서 나온 핏덩어리를 무심히 내려다보던 김철수가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렇게 말했다.
-...갈 시간이, 된 것 같군.
-...
-하지만 네 손을 더럽히진 않겠다.
그러면서 김철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총을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안 돼...!”
실제로 이런 말을 나는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김철수의 저런 행동도 저지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해내지 못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마저도, 김철수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행복해져라, 미래. 내 남은 소원은 오직 그뿐이다.
단 한 발의 총성 소리가 울리고 나자, 내 몸은 마치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마냥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역시 충격이 만병특효약이라도 되는 걸까? 방금 전의, 눈앞에서 벌여진 끔찍한 일에 내 몸이 겨우 ‘내 의지’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마치 방금 전의 총성으로 인해 내 몸에 ‘빙의’되어 있던 ‘어떠한 의지’가 이제 제 할 일은 다 끝냈다는 듯이, 무책임하게 홀연히 사라진 것처럼.
나는 김철수의 마지막 말을 되뇌었다.
-행복해지라니.
난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랐다. 애초에 행복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본인의 행복도 아닌, 살아남을 타인인 나의 행복이라니.
아...김철수에게 있어서, 나는 ‘타인’이 아닌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걸까? 가족의 행복을 빌어주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만약 그랬던 거라면, 네가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되었어, 김철수.
그건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야. 게다가 어떻게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있던 틀을 깨트려서 너와 나를 ‘타인’으로 만든 것도 다 네가 먼저 한 일이라고, 김철수.
그렇기에 그 날 네가 나한테 했던 건 소원이 아니라 저주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이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시간 참...빠르기도 하지.
그 때 당시 김철수보다 훨씬 어렸던 나는, 현재 그 때 당시의 김철수 나이에 근접하고 있었다.
* * *
“미래 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검은 정장의 남자였다. 남자의 양복에는 패밀리를 상징하는 비상하는 새 모양의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슨 일이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차에서 깜빡 잠들기 전에 어떤 장소를 향해 운전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런 뒤숭숭한 꿈을 꾸었나 했더니, 역시 지금 도착한 장소와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오늘은 김철수의 기일이었다. 그에 맞추어서 나는 괜한 마음 때문에 김철수를 보러 온 것이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내 품에서 빠져나와버린 바람에, 괘씸한 느낌에 첫 기일에는 김철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 고집도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그 다음 해 기일에, 나는 김철수를 찾아가게 되었다. 꼭 기일이 아닐 때여도 툭하면 찾아가곤 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러라고 시켰다.
나는 차에서 내리면서 내 뒤를 따라온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대기하고 있어.”
“예.”
내 뒤로 십 수 명의 사람들이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즉답했다. 그 후로 홀로 언덕을 올라가는 내 뒤를 따라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패밀리의 군세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를 따르는 가족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매해 이곳에 올 때마다 저 언덕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는 것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공허함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김철수, 나 왔어.”
그리고 그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가 쳐질 때면 나는 이곳 묘비를 찾아왔다.
내가 바로 앞에 멈춘 비석에는 김철수의 이름이 아닌 영 엉뚱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김철수가 나의 오른손으로써 너무도 유명한 탓에, 사후에도 이용당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해둔 조치였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는 나의 질문에 은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너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달게 받을 위인이라고. 어차피 자신에게는 그런 비석에 새겨질 ‘진짜 이름’은 없었을 거라고.
그렇게 김철수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나는 괜히 비석을 한 번 쓸어보았다.
“김철수...”
그 이름을 부른다고 대꾸해줄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만이라도 이 이름만큼은 김철수에게 불러줘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우리 간의 의리, 규칙 같은 거라서.
“아주 오랜만에 네가 나오는 꿈을 꾸었어.”
“...”
“맞아...네가 죽던 날의 꿈을 꾸었어.”
이상할 정도로 나는 이곳에서만큼은 말이 많아졌다.
“...그 날 이후로 줄곧 생각해봤어.”
그야, 그것이 네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숙제 같은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늘 내려지는 결론은 이것이었다.
“네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나한테 했는지 모르겠어.”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마음을 죽이고 상대를 처형하는 방법, 뒷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등등...아마 그 ‘행복해져라’라는 말 또한 네가 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무언가였으리라.
그렇지만 김철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나 하였다.
“너는 내가 왜 행복해져야 하는지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고 그렇게 떠나버렸어.”
“...”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라고 치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때에도 그렇고, 지금에서도 그렇고 나에게 그런 심정의 변화 따위가 있을 리가. 나는 지금 우리 패밀리가 좋았다. 우리 패밀리의 배신자는 철저히 능멸할 정도로.
하지만 김철수는 어떤 순간의 나에게서 분명한 ‘변화’를 본 사람마냥 그런 행동을 단박에 해내었다. 마치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의 최대 걸림돌이 본인이 되는 것처럼 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행복해지라니.”
웃기지도 않지. 그 행적들은 필시 나를 골리기 위해 작당한 사람이었다.
“그거 알아, 김철수? 나 사실 지금도 김철수, 너한테 화가 많이 나 있어.”
“...”
“그런데도 어떻게든 찾아오게 되기는 하네.”
그냥 조금...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자꾸 사무치는 바람에. 최근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정말 내 가슴 한 쪽에 물리적으로 구멍이 뚫려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상상도 할 지경이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작별 인사를 김철수에게 했다.
“또 찾아올게, 김철수.”
내가 다음 너의 기일까지도 살아있다면 말이야.
이 말만큼은 귀찮기도 했고, 내 입으로 직접 털어놓고 싶은 사실은 아니라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패밀리들이 나의 명령대로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순간, 무언가 섬뜩한 예감에 나는 내가 내려온 길목을 힐끔 뒤돌아보았다. 나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행동에 부하 한 명이 나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보스?”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아주 찰나였지만, 누가 굉장히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그림자를 얇게 펼쳐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수상한 존재는 감지되지 않았다.
아까 김철수에게 하려고 했던 말에서 드러난 것처럼, 최근 점점 우리 패밀리를 적대하는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그 특유의 섬짓한 시선이 마치 나를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와 비슷하여서 순간적으로 너무도 큰 과민반응을 부하들에게 보이고 말았다.
나를 중심으로 뭉친 패밀리는 내가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순식간에 무너질 모래성과도 같은 조직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겉으로는 멀쩡하게 아니, 지독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어떠한 약점조차 없는 철옹성처럼 보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동요 따위 할 수 없었다. 표정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지켜야 할 게 점점 많아질수록 나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보여야만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상황에 조금 지쳐가고 있는 것도 같았다.
아니, 이런 얄팍한 생각은 해서는 안 되었다. 어떻게 지켜낸 패밀리인데. 김철수의 행복해지라는 답을 나름 내 방식대로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 이 패밀리의 존속인데 약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단순한 착각이겠지, 아까 전의 그 수상한 시선은.
괜하게 생각을 많이 할 필요는 없겠지. 늘 이곳을 왔다 가면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지니까.
그렇다, 그냥 기분 탓일 것이다.
* * *
“흐음...”
D백작은 살짝 난감해졌다. 백작은 지금 미래의 부탁으로 시궁쥐 팀의 최악의 미래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미래가 이겨낸 ‘흉몽’ 이후 시점으로, 그쪽의 미래 자신이 – 눈앞에서 김철수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후의 이야기 -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궁금하다고 하여, 조금 틀어진 시간대를 계속해서 관찰 중이었다.
-그쪽의 김철수는 나에게 행복해지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 말은 내가 아니라, 분명 그 시간에서 살고 있는 미래가 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렇게 조금 떨떠름하게 어떻게든 관찰 중이었는데 그쪽 시간대의 미래가 자신의 시선을 느끼고 행동하였을 때는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역시 자신의 극장에 초대받은 인간이라서 그런지 가장 최악의 선택에서도 그 예리한 감은 결코 무뎌지지 않은 것일까.
백작에게 부탁을 하면서 미래는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어떻게든 행복해지는 방향을 얼추 알았지만, 그 미래에서의 나도 행복해졌으면 좋겠거든.
백작은 그 시점에서 관찰을 그만두기로 하였다. 이 이후로 벌어지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 날 아주 조금의 동요를 보인 여왕에게 부하들은 신뢰를 점차 잃어갔다. 패밀리 내에서 점점 배신자가 많아져만 갔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을 적으로 돌린 자신의 최후 – 지금의 미래가 결코 도달하지 않을 미래이기는 하지만 - 가 어떨지, 백작은 당사자에게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아졌다.
대신 미래가 했던 말을 백작은 다시 되뇌었다.
그쪽의 나 또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니.
참, 어쩜 이리도 상냥하고 잔혹한 바램인지.
역시 ‘가족’이기에 지독히도 외로운 싸움을 해갈 여왕을 향해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 미래 검은손 스토리에서 나온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불의의 사고(검은손 시점의 미래한테는)로 인해 김철수가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검은손의 여왕 미래의 if스토리가 보고 싶어져서 썼습니다.
※ D백작의 무대에 올라가면 일단 그 시간대의 미래에게 ‘현재의 미래’가 빙의를 하여 사건을 일으키고, 사건 종료 후 ‘그 시간대의 미래’에게는 그것이 자기가 한 일이 아닌 것마냥 꿈결같이 느껴지는 설정입니다.(한 몸에 두 개의 인격이 있었다가 사라진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 무언가 약간 뒤틀린 캐릭터 시점을 쓸 때가 가장 재밌습니다. 반항기가 뒤늦게 세게 오는 세하라든가, 범죄 조직의 수장이 된 미래라든가, 극권의 군주에게 결국 몸의 통제권을 빼앗기는 파이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