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윈체스터의 흉몽
요우쇼우 2022-07-17 6
※ 파이 결전요원 스토리 내용 포함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 및 날조 존재
※ 먼저 있었던 「파이 윈체스터의 흉몽 上」 통합해서 올림
파이 윈체스터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 파이의 앞에 보인 풍경은, 눈을 감기 직전까지 있었던 거점의 풍경이 아니라, 온통 휘황찬란한 금색으로 도배된 어느 ‘극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 환상과도 같은 극장을, 굳이 따지자면 파이는 알기도 하였지만 모르기도 하였다. 이 말에는 얼핏 어폐가 있어 보였지만, 이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소가 바로 이 ‘극장’이었다.
꿈속에서의 파이는 이 극장의 구조 같은 것을 어느 정도는 알았지만, 꿈에서 깨어난 파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그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파이가 이 ‘극’을 상영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만들어진 극장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이유였다.
아무튼 파이는 – 여기가 꿈속이라는 것을 파이는 인지하였다. 흡사 자각몽과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 익숙하게 축음기로 보이는 것에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을 이 극장으로 불렀을 ‘지배인’을 불렀다.
“무슨 용무인가, D백작.”
-아, 파이 윈체스터 양이군.
이윽고 파이의 물음에 답하듯, 나팔 모양의 관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이는 역시나 그 목소리가 나올 것을 예상하고 질문을 한 것이었다.
일명 인간들의 열렬한 팬. 그렇기에 순수한 팬의 마음으로, 인간을 돕고 싶다고 주장하는 존재. 허나 그 속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이러한 팬심(?)이 결코 순수한 의도로만 존재하고 있지 않음을, 굳이 당사자인 인간들의 앞에서 숨기지는 않는 존재.
그는 자신을 이렇게 부르라고 하였다. D백작, 이라고.
어쨌든 파이가 이 연무극장에 찾아오게 된 것은 백작의 초대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나타난 파이 – D백작의 초대가 없었을 경우를 가정하였을 때 - 가 자신에게 태연하게 말을 건다면 이 정도로 태평하게 파이에게 대꾸를 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D백작의 반응에 파이는 여느 때와 같이 어느 정도의 경계 태세를 갖추며 마저 심문하였다.
“이번에도 무슨 꿍꿍이인 셈이냐?”
-일단 기나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차라도 한 잔 마시는 게 어떻겠나?
백작이 이렇게 상대방에게 차(茶)를 권하는 일은 가끔씩 있는 일이었다. 막 특이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파이는 어쩐지 백작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백작은 인간들, 특히 클로저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클로저들을 초대할 일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많은 인원을 들여오려고 한다. 헌데 지금 이 연무극장에 존재하는 클로저는 파이 한 명뿐이었다. 처음 극장에 왔을 때는 파이 혼자였다고 치더라도, 이후로도 몇 번 이 극장을 방문했을 때에는 여럿 클로저들과 같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이 혼자만을 이렇게 은밀하게 부른 게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파이는 그걸 여과 없이 백작에게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보군.”
-이런, 내 얼굴에 다 쓰여 있었나 보군.
“얼굴을 볼 수 없지만 말이다.”
애초에 축음기는 소리를 흘러주는 곳. 현대 문명의 영상 통화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에 파이가 백작의 얼굴을 ** 못하는 건 당연하였다. 그럼에도 백작은 이런 파이의 농담 – 백작의 입장에서는 농담이지, 파이 입장에서는 정말 진지한 대꾸였다 – 이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울러 이제야 좀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풀 수 있게 되었다는 상황이 된 것처럼 느꼈는지, 백작은 특유의 웃음소리를 축음기를 통해 내뱉었다.
-푸하하하하하!!!!! 그렇군, 이거 실례했군.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있지 않은 상태인데, 나 원...나도 상당히 조급한 모양이군.
“고작 너의 조급함 하나가, 나를 혼자 이곳으로 부른 이유라도 되나?”
-오, 그렇게 화를 낼 것은 없네, 파이 양. 내가 자네만을 이 극장에 부른 이유는 말일세, 자네하고도 관련이 없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우선 차부터 내오도록 하겠네.
어디서 손가락이 팅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파이와 축음기 사이로 차가 이미 그득하게 따라져 있는 찻잔 두 잔과 스콘이 한 가득 쌓아올려진 접시가 나타났다. 자신 앞에 내 찻잔을 만지는데, 도자기를 타고 올라오는 뜨끈한 차의 온도를 통해, 파이는 이게 막 끓여진 홍차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고 보니 늘 이런 일을 도그라나 마그라가 하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 둘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았다. 애초에 파이가 이 연무극장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도그라와 마그라를 볼 수 없었다.
파이가 재차 질문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도그라 씨와 마그라 씨는 어디를 간 거지?”
-아, 그 친구들이라면 내가 휴가를 보냈네.
“휴가라고?”
-그래, 그 아이들도 늘상 일만 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적절한 휴식은 일의 능률을 올리는 데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니까!
“꼭 말하는 것이 선배 같군, 백작.”
볼프강을 언급하면서 파이의 말이 미묘하게 더 딱딱해졌다. 파이는 차를 한 모금 홀짝이며 백작이 굳이 본인의 입으로는 말하려고 하지 않는 사실을 직접 입 밖으로 꺼냈다.
“그 말은 곧, 지금 이 극장에서 나와 네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파이의 이런 추론에 백작은 아주 놀랍다는 듯이, 마치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과장을 보태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군. 정말 그렇군! 이거 참, ‘비밀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제격이지 않은가!
“그 ‘비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너의 본래의 목적이 아닌가?”
-이 정도까지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다니...참으로 기쁘군!
“이해하려고 한 적은 없다. 그만큼 백작, 네 불순한 목적이 빤히 보였다는 뜻이다.”
파이의 촌철살인에 백작은 웃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번 연무극장에서 보였던 가장 공손한 태도로 파이에게 사과하였다.
-불순한 목적으로 보였다면, 내 진실로 사과하지, 파이 윈체스터 양.
“...”
-그만큼 나조차도, 이 D백작조차도! 전혀 상정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버렸기에 내가 보기 드문 ‘당황’을 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알아두게.
“당황이라고?”
D백작이 당황을 했다는 말에 오히려 파이가 더 당황했다. 그런 파이의 의중은 안중에도 없는지 백작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겠네. 앞선 장황하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했기에 아주 간결하게 말하겠네.
“무엇이지?”
-지금, 파이 윈체스터 양의 최악의 미래가 제멋대로 공연을 시작했네.
“...뭐라고?”
...앞서 장황하게 별의별 말을 했던 것과는 달리 D백작의 부탁은 간결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앞뒤 맥락이 다소 뜬금이 없어서 오히려 이건 D백작이 파이에게 할 부탁을 너무 간추린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이것부터 파이는 백작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최악의...미래라고?”
그러한 미래를 자신이 여러 번 그려보았기에, 도대체 D백작이 어떤 것을 꼽아서 설명해주고 있는 건지 파이는 알 수 없었다.
허나 백작은 이것과 관련해서는 답을 바로 주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계속 하였다.
-인간들은 불안정한 미래를 두고,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하지. 그 미래가 항상 달콤한 것만은 있지는 않네만, 특히 파이 양이 그리는 자신의 미래는 유독 씁쓸한 경우가 많더군.
“...”
-아, 오해는 하지 말게. ‘우연히’ 알게 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백작은 파이가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했다.
아무튼,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티끌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백작이 그 ‘미래’에게 어떠한 승인을 하지 않는 한, 절대 단독으로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특히 그 가능성이 최악의 최악을 향하는 것일수록 말이다. 백작은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에게 웬만해서는 좋은 것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작 본인이 흉몽을 싫어하는 것도 있었지만.
상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승인되지 않은 극 하나가 무대에 올라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극이 무대에 오르면 이를 제지하는 것도 극장의 주인의 역할. 백작은 그 무대를 서둘러 막을 내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대는 시작을 하지는 않았으나, 동시에 막을 내리지도 않았다. 제멋대로 시작하려고 하는 만큼, 중간에 어설프게 끝내는 것도 싫다는 남다른 배짱을 가진 녀석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에서 백작은 우연히 커튼 사이로 깜짝 무대라고 불릴만한 극의 내용의 일부를 훔쳐보았는데, 그 무대의 주인공은 백작도 익히 아는 클로저였다. 냉기를 뿜어내는 사검을 사용하는 눈동자 색이 서로 다른 어느 클로저였다.
정리하자면 파이 윈체스터의 여러 미래 중 최악의 최악이라고 불릴만한 것, 즉 ‘흉몽’ 하나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이 몽환 극장에 침범했다, 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흉몽을 잠재울만한 인물은 그 흉몽의 기원인 파이 윈체스터밖에 없었다. 백작이 온갖 술책을 다 써 보았음에도 무대가 제시한 답은 파이 윈체스터를 데려오라는 것, 그거 딱 하나였다.
물론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런 식으로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흉몽을 이겨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도 되었으나 – 흉몽이 파이 윈체스터 혼자 오라는 제시안은 하지 않았다 - D백작은 그러지 않았다. 그 파이 윈체스터의 흉몽이라는 게, 파이가 가장 마음속에 담아내고 있는 자신의 ‘최후’가 그대로 본떠져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파이에게만 연무극장의 초대장을 보낸 것이 D백작의 파이를 향한 나름의 배려라고 볼 수 있다.
D백작은 이러한 상황에 당황은 하면서도, 동시에 신기해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기는 하나, 그 비좁은 틈새를 헤집고 나와서,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서 하나밖에 없는 메인 무대까지 장악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래서 당황을 했다는 건가?”
-그렇다네.
“...아무튼 이 임무, 승낙은 하겠다. 어쩌면 좋은 훈련이 될지도 모르니까.”
파이의 의미심장한 말에 – 마치 백작이 아리송하게 설명해준 ‘흉몽’이 어떤 내용인지 벌써 알아차린 듯 - 백작은 억누르는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려는 파이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였다.
-혹시 최근에 심경의 변화라도 생기게 있나?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지?”
-나는 파이 양이 이 연무극장에 들러줄 때마다, 파이 양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미래의 양상을 얼핏 보기는 했었네. 그리고 지금 나는 파이 양에게 이번에 올라가야 할 ‘무대’에 대한 내용을 일절 말해주지 않았네. 그런데도 파이 양은 지금 그 무대의 시나리오를 얼추 예상을 한 것처럼 굴어서 말일세.
“...”
파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에 백작은 아예 대놓고 물었다.
-파이 윈체스터 양.
“...”
-혹시, ‘그 친구’를 만난 건가?
“...!”
이미, 백작은 확신하고 있었다.
* * *
최근 D백작이 슬럼프 같은 것을 겪고 있는 것처럼 파이에게도 심정의 변화 같은 것은 생겼다.
차원종들이 극권의 군주라 칭송하는 존재와 만남.
과연 그것을 만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기는 했을까.
일방적인 방향성을 가진 폭력이었다. 피해자는 파이 쪽. 그래도 어떻게든 극권의 군주와 마무리는 잘 지었고, 공생 관계는 한동안 이어지는 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그러한 초월자에 가까운 존재의 의지가 깃든 사검으로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 파이의 내면에서는 어떠한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그 작은 변화는 저 자신을 향한 의심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절망으로 바뀌어 가리라.
파이의 설명을 대충 다 들은 백작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럼 흉몽이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은 파이 양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게 무슨 소리지?”
-앞서 설명했듯이, 인간들은 무수한 미래를 그려나간다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자신이 집착하고 갈망하고 이끌리는 미래가 있지. 그리고 그러한 미래를 계속 그려나가게 되면, 그 미래 외의 나머지 것들은 희미해지기 마련이지.
“백작, 네 말은 내가 그러한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되뇌었기에 네 극장이 엉망이 되어버린 사단이 났다는 건가?”
-아니, 나는 그런 말로 한 것이 아니라...
백작의 당황하며 정정하려는 목소리가 축음기 안에서 들려왔다.
이번 케이스는 어디까지나 특별한 케이스였다. 파이의 영향이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겨우 그 정도의 희끄무레한 변수가 이 연무극장을 마구잡이로 휘어잡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것은 파이의 의지보다는, 파이의 이러한 의지와 잘 맞닿아서 이용해 먹은 존재가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인 의심...
“...틀린 말도 아니지.”
-...?
파이의 순순히 체념하고 인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를 읊어내는 파이의 표정은 뜻밖에도 고요했다.
“이 사검의 주인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 아마 선배 쪽보다는 내 쪽이 먼저 무기에게 휘둘려 자멸하고 말겠지...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번으로 끝내지를 못했다. 아마 몇 십번은 상상했을 것이다.”
-...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볼프강 선배 대신 내가 이런 역할을 떠안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라고.
이걸 그저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거대해진 태풍과도 같은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자니 파이는 깨달았다.
“그렇군...나의 그런 나약한 마음이 이 정도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던 거였군.”
-파이 양, 미리 말해두겠네. 내가 자네를 이 극장에 불러드리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할 엄두가 안 나면 마차를 타고 극장을 떠나도 좋네.
“사람을 제멋대로 초대했으면서, 또 제멋대로 문전박대를 하려고 하는 고약한 주인장이로군.”
파이는 백작을 미묘하게 흉을 보았다. 어차피 파이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이유는 별 거는 없었다.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다.”
백작, 네가 만든 꿈은 언제나 생생하고 현실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 말은, 꿈이라는 영역 하에 뭉개지는 것을 ‘실감나는 미래의 재현’이라는 명목 하에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파이가 좋은 훈련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한 번 겪는 최악보다는 두 번째에 겪는 최악이 그나마 덜 충격일 테니까.
결국 파이는 처음 D백작이 의도한 대로 저 무대를 잠재우려고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시궁쥐의 검은손 흉몽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삼엄하고, ‘누군가’의 개입이 느껴지는 가운데 D백작은 이 말만을 파이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건투를 빌겠네, 클로저 제군.
“...”
무대 위의 닫힌 커튼까지 도달한 파이는 조금 긴장이 되었는지 괜히 마른 침을 삼켰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그리고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은 일.
파이는 닫혀있던 커튼을 힘껏 열어젖혔다.
(~2022.03.16)
커튼을 열어젖히자 살을 에는 찬바람이 파이의 얼굴 이곳저곳과 부딪혔다. 그 추위를 통해 파이는 지금 무대가 일어나고 있는 곳이 무척 추운 곳임을 어렴풋하게 알아챘다. 조심히 한 발짝을 디디자 얼굴에 잠깐 맞이한 추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온몸이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찬 공기가 파이 주변을 에워쌌다.
‘이곳은...’
추운 곳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토록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의 한가운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파이가 완전히 무대 안으로 들어가자, 파이가 열어젖힌 – 어쩌면 이 장소와 그 극장을 갈라놓고 있던 유일한 경계선일지도 모른다 - 커튼은 금방 눈보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 커튼 사이로나마 보이던 연무극장의 풍경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끊임없이 몰아치는 눈보라뿐.
산 속 깊은 곳에서 살아왔던 파이에게 눈으로만 덮여있는 이 광경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산 중턱에라도 이런 고원 지대는 얼마든지 있을 법 했으니까. 그리고 파이가 살았던 동네는 겨울에는 무척이나 추워서 눈이 수북이 쌓이는 일도 흔하게 있었다. 실제로 파이는 어렸을 때, 그런 고원 지대에 눈이 오고 나면 슈에를 비롯한 자신의 또래 아이들과 같이 눈싸움 따위를 하곤 했다.
하지만 파이가 익히 아는 그 풍경과 다른 점도 눈에 띄었다. 눈의 폭풍이 이토록 무참히 쏟아지는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빌딩들은 파이가 익숙히 아는 고향 근처의 설원의 풍경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말인 즉은 지금 파이가 서 있는 ‘무대’가 내부차원에서는 어느 커다란 도시거나, 혹은 도시였던 곳이라는 말인데...
파이는 문득 생각을 멈추고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아주 짧은 시간 고작, 조금 찬바람에 노출되었다고 몸이 금방 차가워진 탓이었다.
‘이렇게 온몸으로 추위를 느껴본 건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롭...’
생각을 하다 말고 파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자신이 추위를 느끼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것, 즉 지금의 자신이 추위를 느끼고 있다는 부분에서였다.
파이는 당혹스러웠다.
‘내가...추위를 느낀다고?’
이것은 대단히 이상한 지점이었다.
보통 사람이 추위를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나, 파이만큼은 아니었다. 파이가 지니고 있는 사검은 냉기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이는 여름에는 남들보다 시원하게, 겨울에는 남들보다는 따스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파이는 자신이 아까 전부터 계속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손에는 사검이 들려 있는데도 말이었다.
그 말은 즉, 사검이 이 무대에 들어오게 된 이후로 제대로 된 작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치 지금 사검에게 깃든 ‘의지’가 파이가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갑갑한 사검보다도 더 적절한 몸뚱아리를 찾아 들어간 것처럼.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찰나에 파이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정신 차리세요, 파이 선생님!”
‘루나...양?’
줄곧 눈 폭풍만 휘몰아치던 파이의 눈앞에 갑자기 어떠한 장면이 나타났다. 그 장면 속의 인물 중 하나는 파이에게도 무척 익숙한 얼굴이었다.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인 루나였다. 다만 파이가 알고 있는 루나의 모습보다는 조금 성숙해보였다. 추측컨대, 루나는 지금 이 맹렬한 추위 속에서도 누군가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꽤 대치 상황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그 증거로 루나가 들고 있는 아이기스의 표면에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이 무대 위에 휘몰아치는 ‘냉기’를 고스란히 받았다는 증거로, 상당수의 성에가 끼어 있었다.
“저희의 목소리가 들리시면 제발 멈춰주세요!”
루나의 목소리는 처음 파이의 귀에 들렸을 때보다 더 쉬어 있었다. 아무리 방한 작용이 되는 요원복을 입었어도, 일반인에 비해 강한 위상능력자의 몸이라고 해도 계속되는 추위로 인해 무뎌지는 몸의 감각은 어찌할 수 없던 모양이었다.
“루나!”
그리고 루나의 옆에서 또 파이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도 곧장 눈보라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직속 선배인 볼프강 슈나이더였다. 언뜻 성숙해 보이는 루나와 달리 볼프강의 얼굴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루나 양에다가, 선배까지 나서다니...?’
파이는 저 둘이 붙어 있는 지금 저 상황이 무척 신선하였다. 자신이 사냥터지기의 교사로 배정받은 이후로 저렇게 볼프강 혼자만 2분대의 아이들과 어느 작전 구역에 가는 경우가 드물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오기 전에 교사가 1명 – 그러니까 볼프강 슈나이더 혼자 – 이었던 시절에는 저런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고도 하나, 파이는 그것을 듣기만 했을 뿐이지 그러한 광경을 파이 본인의 눈으로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볼프강은 자신의 옆에 있는 루나에게 소리쳤다.
“루나! 이쯤에서 너는 그만 물러 가!”
“싫어요!”
또 볼프강의 출처 모를 의협심이라도 발동된 모양이다. 아이들만은 어떻게든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고 싶지 않는 점 말이다. 이 무대가 과연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를 상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시점에서의 볼프강은 아직도 자신의 제자들의 안전 우선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 시점에서의 세트와 소마, 그리고 자신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루나의 입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끔찍한 사실이 선고되었다.
“소마랑 세트는 더는 싸울 수 없다고요. 이런 상황에서 저마저 빠진다면...”
아마 이번 상황 대치에 사냥터지기 팀 전원이 투입이 된 모양이다. 그러다 적과의 몇 번의 대치가 있었고, 그러던 과정에서 소마와 세트는 리타이어가 된 모양이다.
자신을 걱정하는 루나에게 볼프강은 오히려 루나의 머리 위로 손을 툭- 가볍게 얹었다. 안심하라는 뜻이었다. 저걸 파이도 몇 번 당해봐서 볼프강이 저런 행동을 하고 나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다 예측이 되었다.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제가 걱정을 안 하게 생겼어요!?”
그걸 이 시점에서의 루나도 파이와 같이 알고는 있었는지, 되러 악에 바쳐 선생님에게 소리를 질렀다.
“볼프강 선생님 혼자 어떻게 파이 선생님을 상대하시려고요?!”
‘방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순간 파이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루나의 악에 선선히, 담담하게 대답하는 볼프강의 대답은 오히려 파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그래야만 하는 거야. 내가, 파트너를 막아야 해.”
‘...’
볼프강의 다짐은 확실한 것으로 보였다.
“파트너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그 ‘파트너’와 약속했다는 이유, 고작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볼프강이 ‘파트너’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금도 그렇지만, 아마 저 시점에서도 딱 한 명일 것이다. 파이는 여기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러고 보니 D백작이 그러했다. 이번 무대는 파이와 관련된 ‘흉몽’이 의지를 가지게 된 일이라고.
그럼 D백작이 말했던 자신의 흉몽이란...
“하지만 볼프강 선생님...!”
“...!!”
마저 볼프강의 고집을 꺾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루나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땅에서 갑자기 치솟은 얼음 기둥에 루나는 볼프강에게 따지려고 하던 모습 그대로 얼음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얼어버린 제자의 앞에 홀로 서 있는 볼프강에게로, 누군가가 눈보라를 해치면서 걸어왔다. 유독 그 작자의 걸음걸이만큼은 또각또각- 일목요연하게 들려왔다.
‘그’는 이 눈보라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매서운 바람에 몸을 가끔가다가 휘청거리는 볼프강과 달리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만큼은 평온하였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척 시끄러운 생명체에요.”
“...!”
볼프강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에게 눈을 홉떴다.
‘그’가 저기서 일컫는 시끄러운 생명체란 루나를 의미하였다. 볼프강은 이를 악물었다. 감히 자신의 제자를 그런 식의 표현을 써서 사용하다니...
“-떽떽거리기나 하고...조금 심기에 거슬렀습니다.”
“그래서 이딴 짓거리를 한 건가!?”
“-소란스러운 것은 별로이기에.”
“그래서 그딴 짓을 한 거냐고...!!”
“-...”
상대방의 헛웃음만 나오는 변명에 볼프강은 잔뜩 경악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리고 그 분노가 아직도 채 가라앉지 않은 듯이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경고하기를,
“그리고 너야말로 입 좀 다물어줄래?! 파트너의 목소리로 그런 말 듣는 거, 많이 역겨우니까.”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파이 주변에 휘몰아치고 있던 눈보라가 완전히 걷혀지고, 이 무대의 모든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는 인영이 모습을 완연히 드러냈다. 볼프강의 앞에 서 있는 이 사태의 모든 원흉은 바로 파이였다.
정확히는 ‘파이의 모습’을 빌리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볼프강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읊었다.
“-볼프강 슈나이더, 검은 책의 사서...”
“내 이름도 부르지 마라.”
“-철저하게 무시하겠습니다. 내가 당신의 명령을 들어야 할 이유도, 맹약도, 하물며 복종을 해야 하는 가치마저도 지금의 당신에게는 없으니까요.”
파이의 얼굴을 빌린 ‘그’는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파이는 왜 사검에 깃들어있던 ‘의지’가 이 무대에서 몸을 옮겨 탔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파이가 생각해왔던 흉몽임과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는 최악의 미래였다. 그리고 거기서 주체가 되는 쪽은 차원종들이 극권의 군주라고 칭송하는 자였다.
“-인간의 언어 기관은 정말이지 어렵군요. 하물며 서로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다른 모양새라니.”
“...”
“-이러니 항상 심기가 거슬렸던 거예요.”
소란스러우니까.
‘파이’가 그런 말을 하는 동시에 어느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얼음 기둥에 갇혀 있는 소마와 세트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파이의 몸을 빌린 ‘그’와 대치하기 위해 먼저 사냥터지기 팀이 나섰다가 차례차례...저렇게 얼음 속에 갇히는 형태로 처리가 된 모양이었다.
“-이 말을 이해하겠습니까?”
“...”
“-당신도 바로 처리하고 싶다는 소리입니다, 볼프강 슈나이더.”
그러면 좀 더 나은 고요함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극권의 군주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걸 볼프강도 눈치를 못 챈 건 아니었다.
“그러면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날 얼음에 가두면 되잖아. 왜 네가 하기도 싫다고 주장하는 ‘대화’ 같은 걸 나 따위와 하고 있는 거지?”
“-...”
볼프강의 반박에 ‘파이’가 눈을 치켜올렸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 표정이었다. 말마따나 바로 볼프강을 지금이라도 얼려버릴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있었다. 이에 볼프강이 도발하길,
“나름 차원종의 기준에서 자비라도 베풀어주는 건가?”
“-‘자비’보다는 ‘배려’라고 해주는 게 좋으련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파이’는 파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정확하게 돌렸다. 파이와 ‘파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마주침에 파이는 움찔거렸지만 ‘파이’의 얼굴에는 여상히 표정이라고 표현할 만한 건덕지가 보이지도 않았다.
이에 ‘파이’의 시선을 따라 볼프강도 똑같이 파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이’와 달리 볼프강은 파이를 못 본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뭐, 봐줄 것도 없겠군요. 어차피 이것은 그 친구의 ‘꿈’에 불과하니까.”
이 말을 끝으로 볼프강도 ‘파이’에 의해 파이의 눈앞에서 얼음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제 방해꾼은 다 사라졌다는 듯이 눈을 느릿하게 한 번 감았다고 뜨는 ‘파이’는 제대로 파이를 보고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또 보게 되는 군요, 파이 윈체스터.”
“...!”
“-물론 그 친구의 ‘꿈’이라고 하는 불쾌한 형태이지만 말이지요.”
그게 지금 이 순간의 유일한 불만인 듯, ‘파이’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졌다.
* * *
“허억!”
파이는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파이가 들어갔던 무대라고 함은 파이가 예상하고 있는 최악의 미래가 현실처럼 일어난 것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지독했다.
-괜찮나, 파이 양?
“백작...”
백작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축음기를 보며 파이는 중얼거렸다. 다시...무대 안이 무대 밖의 극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파이는 팔로 얼굴을 가리며 방금 전 그 일이 꿈이었음을 계속 되뇌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군.
그런 파이에게 백작이 심심하게 위로를 보냈다. 그러자 파이는 방금 전의 피로감 때문인지 술술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 백작 – 근본적으로 차원종이라고 경계하던 – 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얕보고 있었던 탓이다.”
-호오...파이 윈체스터가 답지 않게 자만을 했다는 소리인가? 이것 참 흥미로운...
“백작, 당신이 그랬지? 이번에 들어갈 무대는 그저 내가 꾸는 악몽에 불과할 거라고.”
파이가 백작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파이의 질문에 백작은 자신이 방금 전 파이에게 무시당했다는 것은 잠시 잊은 채,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렇네만. 거기서 근본적인 것은 크게 변하질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도 지독한 꿈이었다.”
D백작은 이런 정황만으로도 감히 추측을 넘어선 예지를 할 수 있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파이 윈체스터의 흉몽이 ‘의지’를 가지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 것은 ‘어느 사건’에서 자초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백작의 추측은 이번에도 정확했다.
-그 친구가 온 건가?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파이는 그에게서 의미 모를 불쾌함만 잔뜩 느꼈다.
파이가 상정하는 자신에게 있어 최악의 미래는 자신이 그에게 조종을 당해 결국 볼프강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검을 겨누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파이의 상상 속에서는 항상 볼프강이 자신을 막아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렇게 약속하였으니까.
그렇기에 백작이 길이길이 날뛰는 무대를 잠재워야 한다고 했을 때도 파이는 조금 우습게 보고 있었다. 볼프강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상상이야 꿈이 아니더라도 맨 정신에서라도 몇 번 생각해본 적이 있었으니까.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한 번쯤은 보는 건 오히려 이런 정신 단련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그러니까 극권의 군주가 난입하면서 상황은 갑작스럽게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볼프강과 파이가 한 이러한 약조를 비웃었다.
그는 정확하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그 약속이 지켜지리라는 보장이 만에 하나라도 없다고 생각한 적이 정말 단 한 번도 없습니까?
그 첫 번째 이유로 최고의 검으로 벼려진 파이를 사용하는 자신이 너무도 강한 탓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것 말고도 여러 이유가 더 있지만, 파이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예의’를 거들먹거리면서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이유 하나만으로도 파이가 생각하는 최악의 미래와 진짜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미래가 결이 다른 것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았다.
“내가...안일했어.”
파이는 이렇게 자신이 간과하지 못한 상황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볼프강에게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볼프강과 파이 모두가 살아가는 상황만을 상정하고 있는 볼프강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현실은 늘, 상상이나 꿈보다도 최악으로 흘러갈 수 있기 마련이니까.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