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가 세하에게 사과하는 이야기

내작렬맛좀봐라 2022-06-01 2

철컥.

탄창을 갈아끼우고 총기를 점검하는 소리, 저격 소총을 과녘에 겨눈채로 자세를 잡은 누군가가 있었다.

겉모습은 전형적인 소녀처럼 보이지만 그 정체는 8년간 전장에서 굴러다닌 베테랑 전사다.

오늘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훈련을 이어가려고 했지.

그래야 했어.

그래야만 했는데...

"..."

총기를 잡은 그녀의 눈빛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어.

냉철하고 망설임 없는 모습이 아닌, 괴로워하고 착잡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

묻어두려고 해도 묻을 수 없는 기억들이 그녀의 마음을 휘젓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원인은 아니나 다를까 이세하였다.

그녀가 우려한 것과는 달리 그 소년은 삐뚤어지지 않았다.

독일에 갔을 땐 닥터 호프만에게 심한 말을 듣고도 개인 감정보다도 클로저의 의무를 내세웠다고 들었다.

그것도 자신의 가족이 심한 꼴을 당했는데도 말이다. 가슴이 아팠겠지.

어머니를 모욕한 사람을 두고도 그저 체포 밖에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착잡했겠지.

나타와의 불화 때문에 위로를 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소년이 실종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타앙!

"앗.."

사격이 빗나가고 말았다.

대부분 정중앙만을 노리고 있었던 내가 실수를 한 순간이었다.

뭐지, 이 갈 곳 없는 잡념은?

"... 잠시 머리를 식혀야겠군.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나아지겠지."

그러나 눈을 붙인 것은 오히려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올지니.

그리고 그것은 또다른 시련으로 찾아올지니.

"여기는 어디지...? 이 상황은... 꿈이라고 인식하면 되는 걸까?"

철컥.

"이건... 멋대로 몸이 저격 자세를...? 조준경으로 눈이...? 누굴 저격하려는 거지...? 큭... 저기 있는 건, 이세하?!"

"클로저가 하기 싫다고? 그건 네 자유다. 그런데, 한가지 충고하지. 네가 테러리스트로 전락한다면... 내가 너를 처리하겠다. 이세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아니야...! 나는 더이상 그 시절의 내가 아니야!"

철컥. 철컥.

"하지만 너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일테니 언제가 되든 일을 그르치겠지. 나를 원망하지마라. 내 데이터는 틀린 적이 없으니까."

"그만둬라! 이이상 소년에게 몹쓸 짓을 하지마라...! 저 자는 나와 같은 동료다! 같은 동료를 죽일 수는...!"

타아앙!

......

"크윽?!"

꿈을 꾼 것인가?

백야의 요새에서 꾸었던 악몽과 흡사하면서도 익숙한 꿈이었다.

이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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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했다.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이세하, 밖에 나와줄 수 있겠나? 잠깐이면 된다."

시간은 새벽 1시.

게임기를 만지느라 아직 깨어있던 소년에겐 별로 당황스러운 시간대는 아니였다.

단지 자신에게 연락을 한 것이 의아했을 뿐이었다.

"저.. 티나 씨? 이 시간에 무슨 일로..."

그러고는 말을 끝낼 틈도 주지 않고 소년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와앗?! 뭐하시는 거에요?"

"이세하. 그동안 너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훌륭하게 컸구나. 넌 적들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가짐을 끝까지 밀어붙였지. 그렇기에 테러리스트로 타락할 일도 없이 클로저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거지. 내가 왜 이 얘기를 꺼낸 건지 아나? ... 지난 일은 미안했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길지도 않았는데도 멋대로 착각이나 했지. 위로는 못할 지언정 협박이나 하고 말았지. ... 지난 일에 대해서는 미안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올리며 소년을 그윽하게 바라보았어.

그 눈빛에는 슬픔만이 가득했지.

"... 있잖아요. 한때는 나타와 티나 씨가 속한 늑대개 팀이야말로 테러리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어요."

"으윽...!"

소년이 한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꽃혔지만 사실이었고, 본인의 업보가 있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 어떤 독설도 감당하려고 왔으니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다 옛날 얘기잖아요? 그건 가슴에 묻어뒀으니까요."

"그, 그렇지만.."

"사과를 했다는 것은 티나 씨가 저에게 미안해한다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니까요. 그러니 이걸로 잘 된 거죠. 그건 티나 씨가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어가는 증거니까요. 그러니까.. 이걸로 잘 된 거에요."

"그런가... 그런 것인가... 내가 완벽하지 않았기에 너와 너희 검은양 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군. 이타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너라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엔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네? 제가 감사받을 일을 했던가요?"

"그래. 독일에서의 일을 기억하나? 너, 전력을 다하지 않았더군? 그것도 내가 1등을 유지하게 하려고 힘 조절해가면서 말이다."

"그, 그거야.. 저 대충하는 스타일인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발뺌해도 소용 없다. 파이에게서 다 전해들었지. 누구나 지키고 싶은 뿌듯함이라는 게 있다고. 네가 나의 랭킹을 유지하기 위해 15명씩이나 기다렸다는 것 까지 말이다."

"으.. 무조건 비밀 지켜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문이 막힌 건지 소년은 눈을 돌리려고 했으나 억지로 볼을 붙잡아 내 쪽으로 돌렸다.

"이쪽을 봐라, 이세하. 아무리 정식 결투가 아니더라도 일부러 나에게 양보한 이유가 뭐지? 그것도 나에게 그런 말 까지 들었는데도?"

"지.. 진정하세요! 이것 좀 놓고...!"

"아니, 화가 나서가 아니다. 그저 기특하게 보였을 뿐이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과소평가한 모양이구나. 넌 클로저뿐 아니라 이세하라는 한명의 아이로서도 훌륭한 인간이 되었다. 이렇게까지 빚을 지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저도 고마워요. 그저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니까요. 클로저 일처럼 말이죠."

"여전히 말을 설득력있게 하는 군. 그럼 이세하, 잠시만 눈을 감아줄 수 있겠나?"

"갑자기요? 뭐, 좋아요."

그러고는 그대로 목을 감싸 끌어당기고는-

쪼옥.

"...?! 어.. 어...?!"

"그대로 돌려주지. 나도 하고 싶어서 한 행동이니까 말이다. 그게 뭔지 알고 싶나? 좋아한다. 이세하."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눈빛엔 웃음만이 가득했다.

그녀가 인간을 닮아가고 있던 것일까?

어쩔 줄 모르는 소년의 모습이 마음에 든 걸까?

"어.. 저.. 그게..."

"그리고 하나 더. 아무리 정식 결투는 아니였다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은 그 근성은 조금 손 볼 필요가 있겠군."

그러고는 소년이 절대로 도망가지 못하게 팔을 붙잡아 강제로 껴앉고는 말했다.

"그러니 나와 훈련을 하도록 하지. 내 방으로 오거라. 재도전을 할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나를 이겨보도록.🖤"

그녀의 마음속에는 더이상 그 시절의 티나는 없다.

그 마음속에는 인간을 닮아가려는 이타심만이 있을지니. 

소년과 소녀의 갈등도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으니.

둘의 인생에 꽃길만이 이어지기를.







추신: 오트슨이 티나도 그렇고 스토리를 망친 게 화가 나서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으로 캐릭터성을 각색해봤어요. 다행히도 티나가 스토리 작가가 바뀐 뒤로는 베테랑 전사 기믹도 잘 부각되고 속죄하는 모습도 나와서 호감형 캐릭이 되었기에 다시 마음에 들어졌죠. 저기 파이 운운하는 장면은 사냥꾼의 밤에서 호프만 결전 프로그램에서의 대화를 인용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클저 스토리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2024-10-24 23:36:4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