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3장 10화, 천둥

AI미스틱 2022-03-02 0

 처음 그 소식─유주가 마스테마에 잠식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하얀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한참동안이나 가만히 있던 그녀는, 단아의 말이 끝난 다음엔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큰 충격을 받았겠지. 어제까지의 친구가, 오늘 적이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단아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비쳤다.
 놀람과 슬픔, 그리고 후회. 그 다음에 비친 결의.
 그것은,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만약….”

 그런 가운데, 리르가 입을 열었다.
 침울해보이는 표정 너머로,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만약, 유주 요원님이 적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지.”
 “트레이너 씨.”
 “물론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있소. 하지만… 그런 거대한 전력을 적으로 두는 것보단, 처음 만났을 때 모든 걸 끝내는게 가장 이상적이겠지.”

 확실히, 트레이너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가 하는 말만큼 가장 이상적인 일은 없겠지. …하지만, 누가 그걸 달가워하겠는가.

 “그렇다 해도, 죽이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그가 적으로 돌아선 이상, 이건 포획이나 체포가 아니게 된다.”

 차원종, 어비스, 인간.
 약간의 흐트러짐으로 인해 균형이 무너져버리는 세력의 밸런스에서 중요한 중추 하나가 빠져버린 것이나 다름 없고, 하물며 어비스는 일본을 등에 업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잊고있었군.”

 ─아직도 유니온 상층부에서, 어비스와의 동맹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렇게 해오는 걸 보니 동맹은커녕 생각도 없는 것 같지만.
 유니온에서 적극적으로 나오면 이 부산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어떻게든 가라앉힐 수 있다. 가능하다면 총장의 체포까지 갔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바랄 수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이미 무언가가 크게 어긋났음을 알아야만 했다.


◈     ◈     ◈



 유니온 본부의 최상층, 모든 이들이 심사숙고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비스의 제안, 차원종을 적대하는 이들끼리의 동맹.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동맹이고 같은 목적이라 해도 확실히 해야할 것은 해야만 했다.

 “귀공은 누구신지.”

 한 간부의 질문에, 온통 검은 빛으로 물들어있는 무언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위대하신 그분의 종, 이름은 아지다하카….”

 제 1주인, 아지다하카.
 여지껏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으나, 그 크기는 중국 하늘을 뒤덮을정도로 거대한 재해가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침을 삼켰다.
 만약 이곳으로 넘어온 정보가 확실하다면… 지금 그들은 중국을 하루도 채 걸리지 않게 멸망시킬 수 있는 천재지변을 본부에 들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강한 클로저로 무장하고 둘러싸도,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대항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마당에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내 아우를 죽인 건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겠다….”
 “…아우라면?”
 “너희 인간들이 부르는 헤카톤 케일…. 허나 지금은 목적이 아니니 미뤄두지.”

 당당하게 자신이 ‘용’임을 밝힌 아지다하카는 쓰레기를 내려다보듯 간부들을 한참 둘러보더니, 이내 벽면에서 재생되고 있는, 인식명 ‘라파엘’의 동맹 제안을 보고선 말했다.

 “동맹을 머무르는 이유는 한 가지… 너희에게 주어지는 어드밴티지는 있으나, 우리 어비스의 이후 행보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겠지.”
 “…본인들의 신뢰에 대해 잘 알고 있군.”
 “불쾌하군. 인간따위에게 신뢰를 요구받다니…. …그래, 뭘 원하기에 이토록 답이 없던 거지? 내가 직접 온 것에 대한 보람이 없다면… 이 대륙을 멸망시키고 갈 뿐이다.”

 대답 하나에 대륙 하나.
 농담조차 채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침묵했다. 허투루 말했다간 목숨은커녕, 유니온의 존재조차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말해야했기에, 스스로 총대를 멘 채 누군가 말했다.

 “차원종을 몰아낸 이후… 그대들의 우리 차원에 대한, 침공 등의 적대 행위가 일체 없음을 약속해주게.”
 “필요 없다, 네놈들의 차원 따위…. 필요했다면 오래 전에, 네놈들의 차원같은 건 손에 넣었을 터… 이만치 확고한 증거인데도 믿지 않겠다니.”
 “우선의 적을 처리하고, 이전의 동맹을 처리하는 건 인류사에선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건가?”

 간부의 질문에, 아지다하카는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었다.
 뭐라 대답을 해보라는 말을 하려던 순간, 커다란 소음이 났다.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리. 그래,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벽이 아주 일순에 충격을 받아 무너져버리면, 그건 아마 폭음과도 같은 소리를 내겠지.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막혀있을 사방에 위화감을 느끼고, 오싹함이 몸을 끊어낼 것만 같은 상황에서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재고의 가치가 없다. 네놈들의 존폐 여부는 이쪽이 결정하고… 네놈들은 지금 당장 죽을 건지, 아니면… 조금 더 나중에 죽을지 결정당할 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뿐이다. 두 번의 용서는 없을 거다.”

 원하는 것을 말하라. 아지다하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원하는가? …얼마나 위대한 주인에게 의미가 있고, 이득이 되며, 어떤 식으로 헌상하는지,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아지다하카에게 있어서 ‘필요함’의 가치는 그런 것이다.
 고작해봐야 결정당하는 쪽 주제에, 감히 결정권을 두고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나 다름이 없었다.
 아지다하카의 괴랄한 일격에 화면을 포함한 전방의 벽이 뚫려버렸으니,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한 이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분쟁도 얼마 가지 않아 끊어졌다.

 “…역시, 네놈들에게 뭔가를 기대한 잘못이라는 건가.”
 “아…아지다하카 공, 부디 시간을….”
 “시간이 얼마나 주어졌는지 잊어버린 건가? 이곳에서 정해라.”

 동맹을 결심하고 죽을지, 아니면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인지.
 냉혹하다 못해 최악이기 그지없는 제안에, 한 간부가 손을 들었다.

 “…우리 유니온이 할 수 있는 총력을 기울여, 그대들을 돕겠네. 부디 이 정도로 넘어가줄 수는 없는가?”
 “총력… 클로저인가.”

 분명 헤카톤 케일을 쓰러트린 것도, 용이 됐던 그 뒤의 멍청이들을 죽인 것도 그 ‘클로저’라는 존재였을 터. 충분히 호기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호기심에 이 썩은 고기들을 살려둘 필요성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지다하카는 결정을 내렸다.

 “…좋다.”

 여기서 이것들을 치워버리는 건 쉽지만, 신뢰의 문제가 남았다. 유니온 자체가 적으로 돌아설 터. 아무리 머리를 잃었다지만 인간은 복구가 빠르다. 차원종을 쓸어버리는 것도 일인데 인간이 적이 되면 귀찮아진다.
 대륙 몇 개 쓸어버리는 거야 큰 일이 아니라지만, 용을 쓰러트린 인간들이 있는 이상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겠지.
 아지다하카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다행이라는 듯 한숨이 나오는 장소에서 뻥 뚫려버린 허공으로 향한 아지다하카가 안심하는 인간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우리와 적대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죄를 묻지는 않겠다만… 네놈들의 손 아래 있는 것들이 우리를 방해한다면, 동맹 파기의 의사로 보고, 이 차원으로의 침략을 검토해볼 가치가 생기겠지. 유예는 이틀이다.”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소. 암….”

 얼떨결에 인류 존망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그들은 아지다하카가 날아서 유유히 사라지자마자 각 지부에 서둘러 연락을 시작했다.
 최악도 차악도 인류 멸망이라면, 최선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아지다하카는 용의 영지나 부산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것이라면 지금쯤 미국이였던가 하는 곳 근처에서 세력을 불리고 있을 테니, 이쪽과의 동맹 소식을 알려주지 않으면 세 번째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지성도 없어보이는 괴물, 바다와 동질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괴물. 아지다하카가 인정하는 괴물이자, 지브릴과는 달리 그분이 만든 것이 아닌, 그분의 부산물과 같은 것.
 무언가의 집약체이면서 무언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정하게 지칭하는 인식명은 어디에도 없다.

 “역시.”

 대해가 검게 물들었다. 이미 두 번째 태동이 마친 상황이었으니, 일렁이는 무언가가 수면 너머로 창을 치켜들고, 세 번째 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태동을 맞이할 것처럼, 하늘마저 넘볼 만큼 솟아오른 방호벽과 그 위에 있는 수많은 인간은 집을 지키는 벌레를 연상케 했다.
 이대로 가면 이쪽에 있는 인간은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릴 수 있겠지. 이변이 없다면.
 내려갈 준비를 하자니, 바다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아지다하카를 인간이 가진 모종의 병기로 착각한 듯 싶어, 한 차례 바다를 내리쳤다.

 “정신 차려라. 이곳에서의 네 역할은 끝났다. …돌아가서 다음을 기다려라.”
 “…아지다하카. 나… 돌아간다….”

 아지다하카의 방대한 위상력을 알아챈건지, 곧장 돌아갈 채비를 갖춘 그것은 미련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아이스크림처럼.
 라파엘은 알아서 약속을 지킬 터, 이쪽의 신뢰는 지켜졌으니 남은건 저쪽이 얼마나 약속을 지키느냐일 뿐이다.


◈     ◈     ◈


 “이해할 수 없어요, 어째서 그런…!”
 “이쪽도 불가항력의 입장이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 사사로운 감정을 접어두고 일에 임하라, 김유정 임시지부장.”

 이 시간부로 종족명 어비스에 대한 적대행위를 완전히 금지한다.
 상부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꼬라지가, 지금까지 실컷 적대행위를 해온 어비스와의 동맹.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후 곧장 내려오는 상부에서의 지침서, 제 1주인 아지다하카와의 대화, 일본의 라파엘 사건 등, 여러모로 납득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쏟아져나오니 인정할 수 없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저쪽에서도 적대행위는 일단 하지 않을 거에요. 지금 상대는 어디까지나 차원종…인 모양이니까요.”
 “동맹은 아무래도 좋은데… 그럼 총장과는 어떻게 되는 거지?”

 김유정의 설명에 제이가 반문했다.
 총장은 이 상황까지 오기 전에 이미 차원종과 어비스, 둘 모두의 협조를 얻고 있다. 이 경우 총장에 대한 적대행위도 금지되는 건가?

 “그럴 리가.”

 갑자기 끼어드는 생소한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 주변이 온통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그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형체였다.
 길다, 짧다. 크다, 작다. 날카롭다, 무디다. 그런 요소로는 절대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새까만 검은 로브가 없었다면 아무리 클로저라 해도, 뇌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보게 될 적이자 아군. 든든하지만, 마냥 든든하지만은 않은 괴물.

 “…지브릴….”
 “아버지의 육신은 아직 온전하지 못하니, 앞으로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은 내가 될 겁니다. 하지만, 변변찮은 짓거리를 한다면 이곳에서 당신들의 목숨을 장담하지는 못하겠군요.”

 힘의 덩어리. 유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면, 트레이너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다.
 이곳 거점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어떤 존재가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트레이너가 정면에 나선다 해도, 패배를 장담할 수 있을 만큼 그것은 강하다.

 “총장이라는 인간과는 동맹같이 거창한 것이 아닌 단순한 협력관계… 놈의 안전을 ‘보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지금부터 총장에 대한 보호 행위는 없어지는 건가?”
 “보호행위? …하찮은…. 한 번도 그런 행위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육신을 지켰을 뿐. 놈들이 어딘가에 처박혀 구더기를 씹어먹던, 그건 나와 관계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동맹이라 해도 당신들이 아버지의 육신에 해가 갈만한 짓을 한다면… …기억하시죠. 주도권은 이쪽에, 선택은 그쪽이 하는 겁니다.”

 선택권을 쥐었으나,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사실상 폭탄을 주고 리모컨을 뺏긴 꼴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총장과는 단순 협력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럼, 유주는.”
 “그 남자는… 글쎄요. 그건 결과가 지어지기 이전의 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입니다.”

 정치인같은 철판을 얼굴에 두른 채 말을 해도, 그 면상에 주먹을 후려갈길 힘이 없었기에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분을 삭히고 있자니 장미숙이 말했다.

 “그 아는 다른 문제고, 지금 해야할 일은 총장 아재를 잡는거 아이가. 언터처블 그 드러븐 자슥 면상 좀 봐야되는디.”
 “…확실히, 유주 요원님을 찾는 건 중대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총장입니다. 그를 부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게 우선이에요.”
 “…알았어.”

 그들은 총장의 부조리한 행위, 그걸 단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쪽과는 애초에 목적 자체가 달랐던 이들이다.
 하지만, 지브릴이 말하는 ‘아버지의 육신’, 그것과 총장에 대한 협력이 어떤 관계가 있다면… 그리고, 2분대 아이들을 데려간 것에도 관련된 이유가 있다면, 총장을 찾아내는 것이 하은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부산은 지금 두 개의 유니온 파에 의해서 갈려있는 상황. 제 3개 세력이 나타나 부산을 헤집어놓는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지.

 “그럼, 일단 언터처블부터 잡는 걸 우선으로 하고… 가능하다면 호프만 역시 붙잡는 걸 목표로 하죠. 다들 이견은 없으신가요?”

 암묵적인 동의 속에 김유정이 몰려드는 방대한 공포를 무릎쓴 채, 피어에게 말했다.

 “지브릴 씨. …아니, 인식명으로 부르는 건 당신에게 실례일 수 있겠죠. 혹시, 인간이 발음할 수 있는 구조론 뭐라고 부르죠?”
 “피어(Fear).”
 “그래요, 피어 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력을 해줄 테니… 당신도 우리를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협력까지 바라진 않는다. 그것은 저쪽이 원하는 것과 상충되니까. 단지… 총장의 체포에 방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
 김유정의 제안에 피어는 그 흉흉한 붉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언제든 바뀔 상황이지만… 지금 당장은 당신들에게서 손을 떼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은… 당신이 ‘아버지’라 부르는 존재의 뜻에 따라 이 동맹이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는 건가?”
 “이 동맹은 언래 그런 겁니다. …당신들은 복종하는 쪽, 우리는 결정하는 쪽. 계속해서 말했을텐데, 또 말하게 만들지 마시죠.”

 동시에 피어가 사라졌다. 대기를 짓누르는 프레셔가 사라지고, 나름 강심장일 터였던 김유정마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말을 섞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곤죽이 된다. 생각이 엉키고, 사고가 무너진다. 신경이 엉킨 듯, 시간대를 고정시킬 수 없고, 눈앞의 현실을 현재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건, 의외로 큰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럼, 언터처블을 잡기 위한 계획을 준비하지.”

 트레이너는 자신이 입으로 말한 것임에도, 모순이 있음을 알았다.
 모습을 감추고 바꾸며, 언제든 농락한다. 선택의 폭은 저쪽에, 주도권조차 없다. 잡기 위한 계획이 아닌, 언터처블의 마음대로 이끌리지 않기 위한 노력일텐데.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령, 이 부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클로저다.
 사람을 지키기 위한 클로저.

 그로부터 며칠간, 부산은 어쩌면 평화로웠다.
 세 팀이 집합해 있던 이곳에, 일본팀까지 합세했으니 의외로 한국어에 능통한 그들은 통역이 없음에도 유유히 이 부산을 활보할 수 있었다. 비록 적이었지만, 어비스와의 동맹이 체결되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어비스에 관계된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 대가로 이곳에 머무를 수 있게 된 듯 싶었다.
 부산에는 그 며칠동안 어비스도 차원종도 나타나지 않았고, 계속해서 이어지던 언터처블의 압박이 약간이나마 완화된 듯 싶었다.
 허나, 그것은 언터처블이 어비스의 철수 선언에 일시적으로 물러난 것일 뿐, 결코 항복의 의미는 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조금의 휴식기일 뿐이다. 저쪽이 더 준비할, 그런 시간.
 예상했던 것이 맞았는지,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그의 행동은 시작되었다.
 밤낮없이 쏟아져 나오는, 폭우같은 재해.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실낱같은 정보를 붙잡았다.

 “놈이 대교에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이번에야 말로 이 악몽을 끝낼 기회다.”

 언터처블을 생포할 것. 그것이 전부다.
 그 외의 모든 방식에 대해서는 현장에서의 긴급 대처를 요구하며, 최악의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설령 언터처블을 놓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전원 생존을 목표로 후퇴할 것.

 “이상이다.”
 “후퇴? 그 썩을 녀석의 머리를 두쪽으로 갈라버려도 모자랄 판에?”
 “진정해라 나타.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이다. …녀석을 놓쳐야만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물론 전력을 다하는 이 상황에서 놓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일본팀과 하늘새 1팀도 있었지만, 유일하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유주. 그가 적으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면, 그 방대한 출력을 상대로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남자가 나타난다면, 우리 ‘이자나미’ 팀이 전력을 다해서 막아보도록 하죠.”
 “나도. …유주가 나타난다면, 그건 아마도 나와 관련된 일일 테니까. …아니, 나타난다면이 아니라… 나타날거야. 정말로.”

 현 S급의 팀, 그리고 하얀.
 반드시 나타날거라고 믿는 하얀의 감을 믿는다. 그들은 대교와는 다른 곳에서 전투를 벌일 예정이었으니, 유주가 전력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폐건물 마천루에서 상대하게 만들 요량이었다. 그곳이라면 아무리 유주라 해도 큰 전력차가 나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단아는 대교로 향해서 언터처블의 체포에 힘쓴다.

 “좋다, 그럼 이제 출동하도록.”

 그가 움직이기 전에 서둘러 체포해**다. 놓치게 된다면, 다음은 없다.
 트레이너의 출동 명령에 모든 클로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이 어떻게 될지, 이 싸움에서 모든 것이 갈리겠지.
 승자가 되거나, 아니면 상처입은 맹수가 되거나.
 어느쪽이건 총장에게 좋지 못하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건가. …유감일 뿐이다.

 대교로 향하는 중, 나타가 단아에게 물었다.

 “너, 사람을 죽일 수나 있겠냐?”
 “…사람을, 죽여? 굳이?”

 살인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단아는 그저 의문일 뿐이었다.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다. 겨우 변신하는 클로저 하나를 상대하겠다고 누군가를 죽이기에는 이 능력은 너무나도 강하고, 위험했으니까.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 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죽이려는 상대를 두고, 죽일 각오 없이 싸우겠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거.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언젠가 나를 지탱해온 모든 것이 무너져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버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떨어져, 누구의 곁에도 남지 못한 채 혼자가 되는 것보다는 실패하는 게 나아.”
 “너와는 정말 맞지 않겠어, 이세하 녀석처럼.”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까.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일이 오게 된다면, 그 남자는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만뒀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는 나. …둘을 동일 선상에 둘 수는 없었다. 힘의 차이도, 능력의 차이도 있다. 그리고, 그는 어떤 상대를 만나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게도 그런 힘이, 자신이 있다면 좋을텐데.

 “도착한다, 정신차려.”
 “알아.”

 나타가 지면에 착지하는 것과는 달리, 단아는 공중에서 멈췄다. 일그러진 허공은 그가 어떤 힘도 받지 않게 공중에서 받아내었다.
 바닥에 착지한 단아는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것이 인간이 아닌 벌레같은 차원종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식상했지만, 자신이 해야할 일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클로저들이 자리잡을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 그러기 위해 해야하는 것.

 “다이스 월드.”

 접힌다.
 모든 것이 차단되듯, 그것만큼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알 수 있었다. 지면으로부터 벗겨져나오는 제 2의 종잇장. 얄팍한 그것은 투명해서 건너편까지 보이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이해하기엔 너무 동떨어져있고, 알기에는 너무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걸.
 직육면체. 다리 위를 가득 메운 그것은 인간이 없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비극의 1장.
 육면체가 좁아진다. 마치 제 형태를 찾아가듯 하나의 작은 주사위가 될 때까지 압축된 그것은, 이미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는 단단한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의 형체가 남아있는 것도 잠시. 턱없는 질량을 가진 압축체는 단아의 일격에 세상에서 소멸했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군.”

 엔트로피의 법칙. 현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이 ‘엔트로피’라는 요소를 줄일 수 없다.
 어떤 방식을 가해도 엔트로피는 늘어난다. 어떤 에너지가 열에너지가 되는 순간, 열에너지는 다시 이전의 에너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 당연한 법칙을 간단하게 씹어 뭉갠다.
 기적이 벌어져도 불가능한 일을 발휘한다. 완전히 소멸된 에너지와 질량체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을 늘리지도, 유지하지도 못한 채 마이너스로 치환됐으니…….

 타닥, 다리 위에 착지한 클로저들은, 접혀 사라진 차원종이 그리 많음에도 차고 넘치는 괴물들을 바라보며 몸을 내밀었다.

 인간을 위해서.



 대략.. 7개월만에 돌아오는군요.
 옆동네가 그렇게 재밌어서 하다보니 서클도 잘리고, 클저에서 손뗀만큼 작품도 느려지고.
 이게 무슨 꼴인지 정말 ㅎ;;

 일단 마지막까지 달리기로 했으니, 마지막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남자가 돼서 한 번 말했는데, 지키지 못하면 조금 창피하잖아요?

 그럼, 오랜만에 돌아온 어비스의 주인 3장 10화, 천둥.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 시기, 여러분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며.
 다음에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4-10-24 23:36:4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