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요새 스토리 포함] 1n년 후

요우쇼우 2022-02-18 8

※ 백야의 요새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















꿈을 꾸었다.

 

그 때와 똑같은 꿈을.

 

그러나 다른 점도 분명이 존재하였다.

 

그 때에 꾸었던 꿈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약속의 아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른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 때는 차분하게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면, 지금은 시간 하나하나 허투루 쓰기가 아쉬운 것처럼 다급하게 세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부르짖음은 그 누가 듣더라도 이름이 세하가 아닌 사람이 듣더라도 당장에라도 저 사람을 구하러 달려가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를 뒤로 한 채로 세하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서류 뭉치와 잉크가 터진 듯한 만년필인 것을 필두로, 세하는 자신이 서류 작업 따위를 하다가 몰려오는 피로감에 저도 모르게 잠에 빠졌던 것을 깨달았다.

 

세하는 책상 위로 90도 방향으로 꺾어져 있던 목을 다시 정 위치로 되돌렸다. 그러자 원래대로 되돌아가려는 것뿐인데도 어색하게만 움직여지는 목덜미.

 

....”

 

푹신한 잠자리가 아닌 책상 위에서 설핏 잠을 잔 지라 몸을 조금만 움직였음에도 삐걱거리는 근육에 세하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세하는 목을 제자리로 다시 돌리면서 아파오는 부위를 엄지로 꾹꾹- 눌러 마사지를 했다.

 

이상하게도 귀 언저리 부분도 아파왔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른 것마냥 멍하기도 하였다.

 

“...”

 

애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다시 현실에 돌아왔지만 역시나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이것을 역시 불편한 자세로 잠에 들면 꾸었던 꿈이 뒤숭숭할 수밖에 없지, 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앞서 살짝 언급했지만 세하는 그 때와 똑같은 꿈을 16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꾸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세하는 어느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 때, 예상치 못한 인물과의 대화는 세하에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그 대화에서 세하의 상대방이 말한 것들을 16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세하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은 제멋대로인 존재로 표현했고, 자신은 제멋대로이기에 좀 더 세하가 자신의 생()을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세하의 의사는 일절 반영되지 않은 채로 세하는 수호자가 되기 전의 유예 시간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 때 그 자가 말했던 말이 있다. 세하가 수호자가 되는 지점 유예 기간이 끝날 즈음 - , 세하가 인간의 삶을 다 했을 때라고.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고작 30대였다. 어림잡아 절반 정도 되는 인생이 남아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수호자로서의 삶을 자각하라는 듯이 자신을 부른다는 것은, 역시 그가 제멋대로이기 때문일까.

 

세하는 한숨을 쉬었다.

 

“...말이 틀리잖아요.”

 

푸념은 지금 순간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지금 굳이 입 밖으로 꺼내기로 했다.

 

푸념은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의 고집 때문이라는 걸 세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그 때 마저도 순리(順理)를 따르자면서 세하의 선택을 존중했더라면, 세하가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신서울의 어느 가정집의 서재에서 제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쪽잠을 자게 되었을 리도 없었다.

 

여기에서 간과해야 할 사실은, 세하는 자신의 이 운명을 순응하고 있는 쪽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푸념밖에 안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하에게는 언제나 그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마음 한켠에 당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막연하게 먼 일이라면서 차원전쟁 이후로 줄어든 인류의 수명은 최근에서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조금 그에 대한 대비를 느긋하게 하고 싶었다.

 

준비는 빠를수록, 그리고 철저히 할수록 좋은 거라고 하지만 세하는 이번 일만큼은 늦장을 최대한 부리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무너지는 건 그쪽들이 아닌 자신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차기 수호자로서의 사명까지 져버릴 것 같아서. 포기할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세하는 마른세수를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신의 삶의 종지부를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니. 자신이 살았던 기록 따위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이별의 순간과 그 이후에 맛보게 될 여러 감정들을 어떻게든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단단함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

 

...어쩌면 전자인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해킹 기술 같은 것만 후딱 배우면 되는 거였으니까. 최근에는 왜인지 모르게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뇌리를 스쳐가곤 했다.

 

머리를 쓸어내린 세하는 이제는 아예 이러한생각에까지 접어들었다. 딴 생각을 하는 세하의 한 쪽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차라리 다 관둘까?’

 

최근의 세하는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슬슬 가족과 주변 지인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길 때마다 - , 세하의 안에서 내려지는 결론은 점점 변질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한 모습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다 보니 한편으로는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역리(逆理)를 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번 경우에서도 이런 생각에까지 접어들기 직전에, 딱 알맞게도 서재의 방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노크 소리는 참으로 알맞았다. 세하의 내면 밖에서 들려온 그 노크 소리는 세하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발칙하고, 이기적인지 충분히 깨우쳐줄만한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택에 세하는 모든 것을 다 관둘까, 라고 하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던 생각을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러는 동시에 자신을 어떻게든 올바르게 만들어준 노크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세하는 문을 향해 대답했다.

 

들어오렴.”

“...”

 

문이 살짝 열리고 그 틈으로 사람의 얼굴이 하나 보였다.

 

그 얼굴을 보고 세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늦은 시각에 노크를 한 사람은 세하가 예상한 인물이 맞았다. 세하가 이런 욕망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면서, 그러는 동시에 세하가 어떻게든 자신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계를 지탱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의 제공자였다.

 

처음 자신의 품에서 이 아이의 얼굴을 보았을 때, 왜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세하에게도 저 아이는 기적이었다. 그래서 꼭 지켜주고 싶으나, 한편으로는 계속 옆에 있고 싶은 그런 모순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 꼭 자신이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하는 한편, 이상하게 그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은 욕망도 같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최근의 세하는 부쩍 자신의 아버지의 고뇌를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를 절절하게 할 수 있게 된 만큼, 그 뒤로 따라오는 깊은 고뇌는 역시 덤이었다.











Comment : 원래 뒤에 쓸 부분이 2/3 정도 더 있으나 백야의요새 나온 직후 쓴 걸 이제 발견한 거라 언제 다시 이을지 몰라요. 여기서 끝낼 수도 있고, 정말 저 소재로 아예 다른 거 써올 수도 있고.

2024-10-24 23:36:4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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