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3 국제공항 3화 만남-2

Heleneker 2021-12-11 0

[그럼 내가 괜찮다고 보증시키면 되려나?]
    
능글맞은 그 목소리가 실제로 울렸다면 긴장감이 팍 풀려버렸을지라. 전음으로 혼자서만 뷜란트의 말을 들은 자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전음을 보냈다.
    
[....되겠냐. 애초에 영감이 끼어들었던게 이 상황의 원인이잖아. 뭐, 애초에 쉽게 흘러갈 거라고 기대도 안 했었지만.]
     
[글쎄. 너한테도 원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그건 제쳐두더라도, 어쨌든 얘기해보기 전엔 모르잖겠느냐? 의외로 내가 나서면 쉽게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무슨 자신감이래...]

[후후. 늙은이의 감이란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나, 아가씨?]
    
[뭐라는 거야, 영감. 지금 너 누구한테 말하는ㄱ...]
    
낙관적인 말에 어이 없어 하던 자온이 이상함에 질문하던 중,
    
[이, 이건 대체....? 뭘 하신 거죠? 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들리는 거죠?]

[!?]

서로의 대화만 오고가야할 터인데, 갑자기 오세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감, 뭐 했어!?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 대화에 들어 온 거야?]

[우리가 대화하는 방식은 감응에 가깝지. 마침 저 아가씨 능력이 정신 감응이니 우리가 대화하는 파장을 아가씨의 정신에 맞춰서 서로를 일시적으로 연결한 거란다. 다행히 잘 연결 되었구나.]
    
[이런 걸 할 거면 할 거라고 말이라도 좀 해....]

태연하게 일을 저지르곤 대답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죠? 이런 방식으로 개입하는 대화가 가능하다니...]
    
[이 녀석과 계약한 차원종이라고 하면 될까? 뷜란트나 뷜이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아가씨.]

목소리가 어째 즐기는 거 같아서 더 짜쯩나고 골치아프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가씨.]

너무나 자유로운 뷜란트의 행보에 골머리를 앓던 중, 그의 목소리가 진중해지더니 오세린에게 질문했다.

[내가 아가한테 무해한 존재이고, 아가도 너희한테 위험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면 너희와 함께 해도 되는 건가?]
    
[....증명하실 방법이 있으신 건가요?]
    
냉정을 찾았는지 오세린도 차분하게 되물어 보았다.
    
[증명이라...]

뷜란트는 한참 고민하더니, 결심한듯 대답했다.

[그래, 내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이제 곧 한계. 그러니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증명으로 아가씨에게 기대를 걸어볼까.]


[영감...? 그게 무슨 얘기야?]


[아가씨, 아가씨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맡기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그대의 선한 마음이라면... 아가를 구해줄 수 있겠지.]


[잠깐, 영감.... 뷜란트....!]

명백하게 이상함을 느끼고 영감을 불러보았지만,
    
[아가. 미안하지만 잠시 차단 좀 해 놓으마. 네가 알면 안 되는 것이거든.]
    
[뭐? 야, 잠ㄲ....]
    
뷜란트는 자온의 정신을 일시적으로 차단시켜버렸다. 재빠르게 다시 연결하고 항의하려 했지만,
    
[아가, 잘 해보거라. 얘기는 다 끝났으니, 이제 난 쉬러 가야겠다.]
    
[영감, 대체 뭐 했는데!? 이....]
    
이미 할 일을 마친 뷜란트는 연결을 빠르게 끊어버리며, 자온의 불평의 침묵시켰다.
    
"하... 이봐요, 영감이 이상한 거 뭐 안 했.....?"
    
염화가 일방적으로 끊기자, 자온이 한숨을 내쉬며 오세린에게 말을 걸다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게, 오세린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으니까.
    
"어, 어어? 어, 저기요? 왜 울어요?"
    
우는 모습에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다가, 급한대로 소매를 끌어다 눈물을 닦아주었다.

"....모르겠어요.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한 누군가를 보았는데.... 홀로 슬픔과 후회, 죄를 감내해야 누군가를 보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오세린은 목에 메인 목소리로 말하며 눈물을 마저 훔쳤다.

"그래도... 뷜란트 씨가 전해준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건 기억했어요. 원망과 분노, 하지만 그보다 컸던 슬픔과 그리움... 눈물로 바래졌던 당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곤, 당신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어요."
    
"....영감이 마음에 들긴 했나 보네요. 가벼운 언동을 자주하는 편이지만 그런 쪽은 말은 창피하다고 안 하는 편인데."
    
"그, 그런가요? 기억 속의 당신을 그립다는 듯이 즐겁개 얘기하시던데..."

되게 위엄있고 아련하게 얘기했나 보네.
나도 몇 년 동안은, 위엄있던 영감을 동경하고 그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능글맞아만 가서 이젠 그런 기분도 별로 안 드는데. 

"이미지 메이킹 하고 있네, 영감..."

못내, 속마음을 중얼거려버렸다.
    
"일단 달그림자 팀에 관한 건 제가 조사해 볼게요. 그러니 자온 씨는 저희와 함께 행동하면서 교단을 같이 쫓아 주셨으면 해요."
    
"...그러죠. 뭐부터 하면 되죠?"

"그 전에 이제부터 자온 씨는 저희와 같이 행동하실 텐데요, 관리의 편의상 합류 시기가 이른 분들은 1분대로, 늦게 합류한 은하 씨와 루시 양, 그리고 자온 씨는 2분대로 분류하겠어요."
"나서시기 전에 따로 소개드리고 싶은 분이 계세요.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오세린을 뒤따라가자, 그곳엔 목에 방독면을 걸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저수지 씨, 소개시켜 드릴께요. 오늘부터 저희 팀의 2분대 멤버로 합류하신 자온 씨에요."
    
저수지라고 불린 소녀가 자온을 보며 말했다.
    
"아, 너도 아라가 이야기하던 사람 중 한 명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저수지라고 해."
"나도 그 쓰레기섬 출신이야. 아라나 희망 오빠처럼. 너도 뒤에서 아라와 희망 오빠를 도와줬다면서? 일단 고맙다는 말은 해둘게. 우릴 도와줘서 고마워."
    
고맙다라는 말을 들으니,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이 죄여왔다. 
    
"고맙다라... 그럴 자격이나 있을지 모르겠네."

못내, 허탈이 중얼거려버렸다.
    
"뭐야? 너도 김철수 아저씨랑 아까 만난 은하라는 얘처럼 자학하는 성격이야? 자학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넌 열심히 일했잖아? 수고한 사람은 수고한 만큼의 보수와 감사를 받아야 해. 그건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마찬가지야. 어때? 내 말 틀렸어?"

"...할 말이 없게 만드네. 그래도 감사는 나중에 받을게. 그 망할 섬의 관리자를 잡은 다음에 말이지."
    
"너도 참 꼬인 성격이구나."
    
"꼬인 인생을 살아서 말이지."

피식 웃으며 대답하다가, 저수지를 잠시 훑어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인 것 같은데 이런 곳에 같이 있어도 괜찮겠어요?"
    
"물론 저수지 씨는 민간인이 맞아요. 민수현 학생과는 달리 교육도 받지 못하셨죠. 하지만 이분의 존재는, 다른 1분대 요원들의 심리상태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작전에 함께 해주시고 계신거죠."
    
"1분대 쪽의 정신적 지주라는 거군요. 확실하게 지켜야 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 알겠네요."

그녀의 역할을 인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얘기했던 1분대 멤버들이라던가 먼저 왔었던 은하랑 루시는 어디 있어요?"

얘기를 하다보니 먼저 들어갔던 은하와 루시가 기억나 물어보았다.
    
"그분들은 이 일대의 조사를 요청드렸어요. 주변에 혼란스러운 기척이 감지되어서요."
    
"그러고 보니 이상할 정도로 감지되는 게 많았지.... 아직 뭔지는 확인 안 된 건가요?"
    
"네. 그래서 2분대 여러분에게도 조사를 요청 드려서 막 나서기는 하셨어요. 자온 씨에게도 요청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상관은 없지만, 우리가 나가면 거점이 위험해지지 않나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위험한 기척이 있으면 제가 먼저 눈치를 챌 거고, 그때 모두를 호출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감응 능력의 응용 편이군요. 일단 제 능력으로도 주변에 특별히 감지되는 것도 없으니까 갔다 오도록 하죠."

"네, 주변 조사 잘 부탁드려요."
    

오세린의 요청에 주변을 탐색과 먼저 나간 일행을 찾으러 나선다.
    


******



같은 시각, 뷜란트가 유폐된 공간.

"끅..... 크아아아....아악...."

뷜란트는 심장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스스로 문을 활짝 열어주시고선 이렇게 막으려 드시다니.]

[어차피 소용 없을 것을. 이번 당신의 행동으로, 그 아이가 우리가 되는 것을 가속시켰습니다. 키득, 키득.]

"....두고 봐야지 않겠느냐. 어쩌면 그 아가씨가 너희를 막을, 역전의 한수일지도 모르지."

[그렇군요. 두고 보죠. 그러니 일단, 저희를 열심히 막아보시길.]

[키득  키득 득 ]

"으윽...... 아...아아아아아악!!!!!!"

누군가들의 비웃음과 함께, 뷜란트의 고통 어린 비명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지다, 가라앉아 버렸다.

2024-10-24 23:36:3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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