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2 신서울 11화 희망은 닫히고, 절망은 열렸으니
DianBurned 2021-07-25 0
24년 개정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걸까?
그 순간이, 그 익숙한 맛을 먹을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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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는.... 이미 죽어 있었어!"
일순 모든 감각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슬픔만이 가득한 이 잔혹한 현실을 도피라도 하고 싶은 걸지도.
그럼에도 파르르 떨다가 살며시 웃으며 물었다.
"하.....하하. 반금련 씨, 농담이 지나치잖아요. 수술이 성공해서 안정되기 시작했다는 애를 상대로 그런 농담은 너무 심하잖아요."
좀 지나친 농담이였으면. 짠~ 농담이였어. 미안해, 미안해. 라고 말하면.... 지금이라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다고.
제발.....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요...!
"야! ....하. 차라리 나도 이게 농담이였으면 좋겠어! 하지만 진짜야! 희망이는 이미 죽어있다고!!"
그러나 반금련은 목소리를 높이며 한 말은 내가 가졌던 일말의 희망을 무참히 무너트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희망이가, 희망이가 죽어 있다뇨...?"
"집중치료실 안에... 희망이의 시체가 있었어...! 죽은 지 며칠은 된 것 같았고."
"문제는 간호사들도 의사들도 이 사실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거야. 내가 그들한테 캐물으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환자의 죽음을 인지했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최면? .......설마!"
"그 섬의 관리자... 정신간섭 계통의 위상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 그 녀석이 뭔가 수작을 부린게 분명해.....!"
"그, 그럴리가....하...하하. 지금 저 놀리는 거죠? 제발...제발 평소처럼 놀리는 거라고,"
"농담하는 거라고 말해줘요....말하라고요."
"당장!!!!!!"
반금련의 어깨를 강하게 붙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반금련은 눈을 꼭 감은 채 침묵했다. 모든 게 현실이라는 듯,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실이예요."
힘 없는 한 마디가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을 깨트렸다. 정도연 박사였다. 희망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말한, 그 장본인조차 착잡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다, 당신! 설명해봐요! 수술이 성공했다고 한 건 당신이잖아!"
반금련은 정도연의 얼굴을 보곤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따지듯 물어보았다.
"죄송해요. 정말.....죄송하단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하지만....지금은 더 급한 사항을 전달드려야 해요."
"병원에 입원해 있던, 섬 출신의 아이들 몇 명이 행방불명 됐어요..! CCTV를 확인한 결과, 그 전우치라는 자가 아이들을 데려가는 모습이 확인되었어요. 오세린 요원이 있는 쪽에 직접 연락을 해서 도발까지 한 모양이고요."
"그는...아이들을 데리고 구로로 향한 모양이예요. 부탁이예요. 당신도 나가서 아이들을 찾아주세요....!"
"당신 말을 믿을 거 같아?! 당신이 수술했다던 희망이가 시체로 발견됐다고! 야! 저 여자 말은 무시해! 또 우릴 속이는 게 분명해!"
"이번엔 그렇지 않아요. 이전에 여러분을 속인 것도 제 의지가 아니였어요. 모든 건......그 전우치라는 자 때문이에요. 그가 제 정신을 조종한 거예요....!"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에 와서 그의 영향력이 풀렸으리란 보장도 없는 거잖아? 안 그래?"
반금련이 격앙하면서 질타했다. 살렸다던 아이가 실제론 죽었는데, 그게 자의가 아니고 조종당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지금도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와중,
"보장이라면 제가 해드릴께요."
정도연의 옆에 있었던 비둘기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비둘기에 통신이? 당신, 분명 유니온의 요원이었지?"
화면에 비친 여성을 금새 알아보았다.
"감찰관 오세린이에요. 사정이 급하니 자세한 자기소개는 나중에 하기로 할게요."
클로저, 오세린 요원은 간략히 자기 소개만 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정신 감응능력을 가진 클로저예요. 제 능력으로 정도연 요원님을 들여다본 결과, 그의 영향력은 사라진 상태였어요."
"그의 능력에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해요. 아이들을 조종해서 데리고 나간 시점에서 정도연 요원님을 계속 통제하기는 어려웠겠죠. 제가 보장할 수 있어요."
"거기 계신 정도연 요원님은 지금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고 계세요. 또.....전우치라는 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구로로 갔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자온 씨라고 하셨죠? 충격을 많이 받으셨겠지만 지금은 저흴 믿고 도와주셨으면 해요! 이미 저희 측의 임시 클로저들도 나가서 수색을 진행 중이세요! 당신도 구로 일대를 수색해 주셨으면 해요!"
"...."
".....자온 씨?"
"야, 너 괜찮아?"
"....."
대답이 없자 반금련이 다시 되물어 보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말을 잃은 자온의 눈빛은 흐릿한 채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결국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침식의 심도를 높였을 때 들려오던 환청이 짙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힘이 생기니 대단해진 줄 알았지?]
[모든 걸 잃지 않겠다며 죽어라 고생했는데 결과는 이렇게 되었잖아?]
[어리석게도 또 그들을 믿었다니.]
[어리석게도. 키득키득키득]
일그러진 형체의 검은 무언가들이 속삭여 왔다.
[타인 따윈 믿지 마. 그 어떤 때에도, 널 지탱한 건 힘 뿐이였으니까.]
[자, 우리가 도와줄게. 힘을 더 줄테니까,]
[무능한 모든 것들에게 광기를, 보여주자.]
검은 이형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집어삼켰다.
들려오는 것은 나를 뒤흔드는 웃음 소리 뿐.
그 웃음 소리가 애써 눌러왔던 검은 불꽃을 자극했다.
아이들을, 희망이를 지켜주기 위해 힘겹게, 어린 나의 눈물을 달래주며 억눌렀는데.
아..... 이제는 상관 없나?
지켜줄 이들은, 이미 없는데.
키득키득키득키끼기히힛키득꺄하하키득캬핫하하하꺄하하키득캬핫키득키득
하키득캬핫하하하키끼기히힛키득꺄하하키득캬핫하하꺄하하키득캬핫하하하
내 마음은, 그 웃음소리 밑에 깔려 잠식되어 가버렸다.
"...하.. 하하.]
"야, 너 왜 그래...?"
투툭
"뭐야, 이거? 야, 너 괜찮아!?"
고개를 숙인 채 갑자기 ** 듯이 웃는 자온의 몸에서, 갑피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당신들을 믿은 내 잘못이지. 망할 유니온 놈들.]
[너희를 믿었던,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한 나를 증오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너희를 증오해.]
[그 분과 그 아일 죽게 만든 그들을 증오해.]
[그러니.....이젠 모두 필요 없어.]
부정적인 말을 내뱉으며 점차 차원종으로 변해가는 자온은, 어째서인지 웃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주어 하늘께 바라니... 저들을 무너뜨릴 힘을 내게로.]
"우읏....!"
"뭐야, 이거!? 대체 뭔데?"
차원종으로 변해갈수록, 그에게서 흉흉한 위상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악의가 담긴 위상력이 주위의 사람들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차원종으로 변해가는 [그것]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침식 가동, 무장오.....
그만. 그 아이에게서 떨어지거라.
갑자기 [그것]의 머리 둘레에 잿빛의 헤일로가 생겨나더니, 차원종화를 강제로 해제시키기 시작했다.
[커걱....아악...!"
[그것]은 고통에 비명을 잠시 지르더니, 이내 잠잠해지곤 머리를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 미안하다. 하지만 이런 결말은, 결코 용납하지 못 하겠단다."
"누, 누구신가요, 당신은? 통신 너머지만 느껴져요....! 그 힘과 분위기....그 분을 어떻게 하신 거죠?"
[그것]에 잠식당한 자온을 원래대로 되돌린 뷜란트는 비둘기에 비친 오세린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입 다물거라."
"우읏.....!!"
자온의 몸을 제어하기 시작한 뷜란트는 압도적인 위압을 내뿜어 그 자리의 모두를 짓누르다가,
"...딱히 너흴 질타할 생각은 없더만.... 지금 아가의 마음이 많이 약해진 상태이니 말을 골라서 하거라."
이내 위압을 풀었다.
"자, 잠깐. 너, 그 녀석이랑 계약했다던 차원종 맞지?"
위압으로 짓눌러진 영향이 남았는지 반금련이 살짝 휘청거리며 간신히 질문했다.
"아아, 맞아. 반금련...아니 짠돌이라고 불러주는 게 더 익숙한가? 뷜란트라고 불러주면 좋겠구나."
"왜 갑자기 끼어든거야? 방금 그거 도대체 뭐였던 건데?"
"뭐... 자세한 건 노코멘트지만 아가에게도, 너희에게도 좋은 건 아니라서 말이다. 일단 사라진 섬 아가들이 우선이니 찾으러 가도록 하마."
"너희는 아가가 돌아올 때까지 희망 아가가 죽어야만 했던 더 좋은 변명을 준비해 두거라. 아니면 섬 아가들을 먼저 찾아두거라. 그럼 아가도 좀 더 진정할테니."
아이들을 찾으러 나서려던 중,
"머, 멈추세요! 자온 씨의 몸은 돌려놓으셔야죠...!"
위압에 짓눌린 영향으로 목소리가 흔들리면서도, 오세린은 뷜란트를 향해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항하였다.
"하하... 착각이 지나치구나. 아가와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가족이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관계이지."
어이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은 뷜란트는 이어 말했다.
"거기에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건 아주 잠시 뿐. 곧 이 아이로 돌아올 것이니 괜한 걱정 말거라."
뷜란트는 비둘기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아이들을 찾아 통제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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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현수막과 로고가 휘날리는 구로의 어느 폐건물 위.
"........영감, 내 의견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시간이 지나 몸의 주체를 되찾은 자온은 멈춰 서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랬지."
"자포자기의 심정이라도 존중해주겠다며. 어떤 선택이라도 내가 그것을 쓰겠다 해도....막지 않겠다며."
"....."
당시에 자기 자신이 아닌 감각을 들었지만, 모두를 원망하며 마음대로 힘을 휘두르려 했던 마음은 진짜였었다.
"약속하셨잖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겠다고 각오를 한 저를 그런 방식으로 막은 것은..."
그럼에도 막혔다.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겠다던, 가족의 손에 의해서.
"제겐 너무나도 잔인했습니다."
"....."
허나, 더 이상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단은 아이들을 찾겠습니다. 당신 말대로 그 이상 잃어서 후회하기는 싫으니까요."
씁쓸한 듯 눈을 꼭 감았다가, 아이들을 찾기 위해 구로를 이 잡듯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
"알지. 너무나 잘 알지. 내가 한 약속이였으니."
본체가 있는 공간에서 쓸쓸히 남겨져 있던 뷜란트는 자온과의 연락을 끊은 채 홀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막은 것 아니겠느냐. 희망을 잊고 절망에 잠겨버린 아이들의 의지가, 너의 의지를 침식해 대행하려 했으니."
[키, 키킥. 신님. 당신이 개입하셨으니, 문은 더 열려버렸답니다.]
홀로 중얼거리는 뷜란트의 귓가에서, 자온에게만 들려왔던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치거라. 아가는.... 너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일어나서... 밝게 빛날 것이니까.....!"
[노력해보시죠. 종래엔 결국... 우리가 될 겁니다.]
[광기의 신이 되어, 세상을 집어삼켰던 그 언제가의 가능성처럼.]
[키득키득키기기킥]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고 간 자리엔, 고요한 침묵만이 공간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