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3장 9화, 몽상

AI미스틱 2021-07-20 0




 “나… 장미숙이다, 붉은 전갈의 장미숙이라고!”

 쿠웅….

 해안가에서 터지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속력이 갈수록 빨라지는 걸 보면 아무리 장미숙이라 해도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의미겠지.
 거기에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전투에 들어가면 666시리즈가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가동하게 된다면 평범하게 살려서 전투를 끝낼 수는 없게 된다.

 “최대한 빠르게 부수고 도망치는 건가.”
 “그게 주된 목적이 될 거에요.”

 영상을 보는 유주의 혼잣말을 들은 것인지 긍정을 표한 김도윤 사원은, 현재 출격한 요원들이 부순 장비들의 목록을 보여주고서는 말했다.

 “요원님이 맡으실 것은 모듈 쪽이에요. …모듈인 만큼 위상력 출력이 강하니 조심해주세요.”
 “…그러지.”

 666시리즈까진 아니지만, 특수 장비를 사용하는 이들은 꽤 많이 상대해봤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만 하면… 666이기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대응할 수는 있겠지.
 전투 데이터를 보며 장미숙 요원의 스타일을 분석하던 유주에게, 어느덧 차례가 돌아왔다.

 “조심해주세요. 마지막 모듈이라고는 해도 미숙이는 강한 데다가… 언제 또 언터처블이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그럴 여유가 있다면.”

 장미숙같은 베테랑 요원을 상대로, 아무리 풀컨디션이 아니라고는 하나 간단하게 싸울 수는 없겠지.
 그리고 언터처블을 감지해야하는 것도 사실상 그쪽에서 스텔스를 해제하던가, 아니면 유주가 물리감지형 전기망을 펼치는 것 외에는 대응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물리감지형 유지를 위해서는 상당히 신경써야하고.

 ‘…신형 마스테마, 그리고 언터처블….’

 왜 이런 시기에 형편 좋게 그런 마스테마가 탄생한 거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마스테마…라.
 마치 얼른 오라고 부추기는 모습이었기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으나, 어찌 되었건 가기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유주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단아야.”
 “네!”

 기세 좋게 튀어 나가는 두 사람.
 공간을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힘을 가진 단아가 있다면 아무리 괴물같은 힘이라 해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고, 혼자서는 장미숙을 안전하게 제압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원래 2인 1조로 결정했었으니까.

 “모듈은?”
 “찾았어요.”

 어느 정도 공방을 주고받으니, 그새 모듈을 찾아낸 단아의 브리핑에 따라 유주가 움직였다.

 ─콰과과광!

 쏘아진 흉성은 터무니없게도 장미숙의 쇠파이프에 가로막혔으나, 그 사각을 뚫고 지나간 단아의 공간 압축은 모듈을 완전히 관통했다.

 “모듈 다운 확인했습니다.”
 “좋아, 그럼….”

 언터처블의 존재가 있으면 곤란했기에 물리탐지형 라이트닝 필드를 펼치려던 순간.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기분나쁜 감촉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언젠가 느껴본 적 있던 그것은, 분명히 끝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몸이 꿰뚫리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틈새로 들어오는 어떤 무언가는 꾸물거리며 근육 세포를 갈라내며 천천히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완성된 물리탐지형 결계에 잡히는 하나의 미확인 개체는 분명.

 “유주 형!”
 “그만! …오지마.”

 단아의 움직임을 막은 유주는 곧장 등을 돌려 그 차가운 금속의 갑옷을 붙잡았다.
 마스테마 주입용으로 만들어진 특수 기구는 주사기라 하기에는 투박했고, 단검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얇았다. 그런 것으로 몸이 꿰뚫렸으니 조금이라도 비틀거릴만 한데, 그런 비틀거림조차 없이 곧장 갑옷을 잡아낸 유주가 말했다.

 “…기다린건가? 장미숙 요원의 폭주 저지를 위해 우리가 오는 것을….”
 “그래…?!”

 까앙!
 장미숙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듯,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려던 언터처블은 그 순간 날아온 쇠파이프에 헬멧을 거세게 얻어맞았고, 목이 부러져도 할 말없을 정도의 타격임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는 정도에서 몸을 추스렸다.

 “크윽….”
 “너… 이자슥아… 내가 니 맘대로 될거라 생각했나? 내가… 누군지 알고….”
 “파손율이 무슨… **, 여전하군… <STELTH>….”

 분명 마스테마의 주입이 끝났지만, 장미숙의 공격에 위기를 느낀 듯 곧장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언터처블이 갈 곳을 알고 있다는 건지 고개를 돌린 단아였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기에 봉을 내쏘지는 못하고 그저 휘둘러 자리를 벗어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유주는.

 “…폐가 되고싶지는 않으니까.”

 라는 말과 함께, 온 전신에 번개를 감싼 후 어디론가 날아갔다.
 마지막에 남아있는 것은 장미숙 한 명뿐이었으니, 바뀐 것이라고는 유주가 적…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낭보를 들고 돌아간 단아였지만, 유주가 어디로 갔는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기에 666시리즈를 모두 파괴한 장미숙 요원에 대한 임무는 여전히 이어졌다.

 반면, 치료실에서 거주하다시피 한 마나는 신형 마스테마(가칭)을 연구하던 중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아머드 특경대의 몸에서… ‘빼낸’ 그것은 여타 마스테마와는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마나같이 특수한 위상능력자의 손이 아니면 적출해낼 수 없는 마스테마.

 “재리! 이쪽으로 와주세요!”

 자신과 함께 신형 마스테마를 연구하던 재리를 서둘러 부른 마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른 아머드 특경대의 몸 안에 잠든 신형 마스테마를 적출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신형 마스테마는… 마스테마 따위가 아닌 변이종. 그것도 인위적인 변이종이라는 것을.

 곧장 마스테마의 표본을 들고 도망치듯 뛰쳐나간 마나는 곧장 거점지역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모듈을 전부 처리하고 장미숙까지 진정시킨 채 모두가 모여있었고, 그들에게 신형 마스테마에 대해 말할 것이 있다고 말하자 곧장 모든 요원을 호출했다.
 얼마 가지 않아 재리도 도착했으니, 그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마나가 입을 열었다.

 “…신형 마스테마의 적출법을 알아냈어요.”
 “신형 마스테마의 ‘적출’법? 제거법이 아니라?”
 “…네.”

 적출법. 그것은 체내에 있는 어떠한 요소를 뽑아낸다는 이야기로, 제거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일단 인간의 체내에서 뽑아낸 다음이라면 기생당한 상대는 확실히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니 마스테마가 죽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잠시 감정을 가라앉힌 마나는, 자신이 알아낸 신형 마스테마의 적출법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일정량의 위상력의 지속적인 흡입, 그리고 인간의 체온─약 36.5도에서 +-0.5도 내의 온도에서 안정되고, 이 상태에서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유일하게 ‘적출’해낼 수 있는 조건을 가져요. …이 마스테마는, 위상력을 빨아먹는 변이종이라는 거에요.”
 “그런 거라면 위상능력자에겐 통용되지 않는 것 아닌가?”
 “그것과는 달라요.”

 위상능력자의 체내에는 불규칙적인 양의 위상력이 흐른다.
 반드시 일정량의 위상력을 지속적으로 지급해야만 마스테마는 안정적인 형태를 취하며, 동시에 물리적 접촉 요소를 갖추어야만 적출 가능한 요소를 지닌다. 즉, 위상능력자 체내에 있다고 해서 마스테마가 반드시 안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안정되지 않은 마스테마는 설령 그 기생 상대가 위상능력자라 하더라도 활동을 시작하니, 위상능력자에게도 확실하게 통용되는 그런 변이종이었다.

 “즉, 이 마스테마를 적출하기 위해서는 위상능력자 본인의 위상력 흐름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외부에서 일정량의 위상력을 주입하면서 동시에 적출하는 것이 방법이라는 거에요.”
 “외부에서 무리를 주지 않고 죽이는 방법은?”
 “…안타깝지만, 현재로써는 방법이 달리….”

 이슬비의 도움을 받아보았으나 전기 쪽의 영향은 받지 않았었다.
 그녀의 출력이 부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유주가 없는 이상 그 이상의 출력을 인간 내부에 흘리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외부에서 마스테마를 처리하는 방법이라면 단아에게 있었다.

 “공간을 덧씌우면 아무리 단단해진 거라 해도 반드시 소멸시킬 수 있어요.”

 물론 그 공간을 덧씌우는데 필요한 시간이 조금 길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적출해낸 마스테마는 언젠가 안정적인 형태에서 금세 벗어날 것이고, 그걸 처리하려면 단아의 힘이 필요했다.
 적출 외엔 딱히 방법도 없으니….

 “…그런데 유주 요원님은 어디로 가신거죠?”

 항상 이런 때에는 빠지지 않았던 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니, 갑작스레 조용해진 거점에서 단아가 입을 열었다.

 “유주 형은….”


‡   ‡   ‡


 부산 어딘가.
 신형일지도 모르는 마스테마와 자신의 폭주를 막기 위해 어떻게든 장소를 벗어난 유주는, 그곳이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임을 그제야 알았다.
 아바돈 침공 이후, 완벽히 버려진 채 풍화되어 스러져가는 거리를 짓밟고 있자면 없던 씁쓸함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이상하군.”

 그러나 감상은 저 멀리 버려두더라도.
 기생종이 들어온 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폭주의 기미는 커녕 어떠한 징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가짜를 박아넣은 걸까 싶었으나 싸우고 있는 상대에게 목숨을 걸고 가짜를 들이박을 정도로 언터처블은 한심하지 않을 터. 설마하니 이 기생종에게 어떠한 특수 처리가 되어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 있을 때 즈음.

 “어서와, 유 주.”

 귓가를 어른거리는 익숙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이제는 꽤 지난 이야기긴 하나, 한 번 놓쳤던 그 목소리.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바라왔던 사람.

 “…네가 왜 여기에….”

 ─어비스의 주인, 우리엘.
 ‘천사’라고 불리는 인류의 재앙이자 재해. 세계를 위협하는 커다란 힘의 덩어리 ‘주인’.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쯤은 이미 한 번 만나보았기에 알고 있었으나, ‘날개’를 잡아뜯은 이후로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네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어서.”

 천천히 지상에 내려앉은 우리엘은 유주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말을 걸었다.
 허나.

 “듣지 않아.”

 철컥.
 우리엘을 겨누는 괴수의 입을 닮은 듯한 총구를 가진 총.
 ─완전위상탄을 발현시키는, 인류 최고의 기술력의 결집체, 사용자에 따라 ‘천재天災’라 불리기도 하는 괴물, 이명은 ‘검은 상어’ 그 이름은 “메갈로돈”.
 아무리 우리엘이라고는 하나 날개의 도움 없이 유주의 전력이 담긴 완전위상탄을 아무런 상처 없이 막기는 무리가 있을 터. 입 안에 맺히는 탄환과 커다란 뇌음에 대지가 진동하며 남아있던 유리마저 공명현상에 깨져나가지만, 그 앞에서 여유롭게 미소짓는 우리엘이 명령했다.

 “멈춰, 유주.”

 움찔, 몸이 흔들리며 총이 내려가고, 동시에 위상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분명 재해를 일으킬 터인 ‘메갈로돈’의 총구는 그대로 홀스터에 들어가버리고, 몸을 휘감던 푸른 번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천히 사라져 이젠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이내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보린 유주에게 천천히 다가간 우리엘이 말했다.

 “네게 넣은 신형 마스테마.”
 “…너…?”

 스윽, 그대로 손을 뻗어 유주의 머리를 끌어안은 우리엘이 말했다.

 “드디어 너를 이 품에 안을 수 있어, 유주.”

 저항 없는 인형을 끌어안 듯, 아무런 거부 반응 없는 유주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은 우리엘은, 잠시 멈추더니 이윽고 나지막히 말했다.

 “네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부탁?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겠지….”

 꽈아악…. 온 팔에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듯, 부들거리는 팔과 부러질 것처럼 악문 이빨. 그 속에서 새어나온 목소리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우리엘의 부탁을 일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며 유주를 품에서 떼어낸 우리엘은, 그 어깨를 두 손으로 잡은 채 얼굴을 마주보고선 말했다.

 “명령이 아니야. 이건… 정말로 부탁인거야.”

 이내 그 귓가에 속삭였다.

 “하얀을 데려와 줘.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야.”
 “도대체… 왜…?”
 “…….”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유주가 이유를 묻자 우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라도 더 온기를 느끼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감정이 들어있던 건지. 다시금 유주를 끌어안은 우리엘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가워.’

 차갑게 얼어버린 몸.
 심장은 멈추고 혈액은 활동은 멈추었으며, 근육은 괴사하고, 세포는 썩었으니, 움직이지 못해야 정상일 터인 그 몸은 저 높은 하늘의 태양 아래서 몇 년을 움직이고, 몇 년을 살아있었으니, 죽어도 죽지 않고, 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
 마음속 깊이 그녀의 모습을 동정하고 있으니, 우리엘이 말했다.

 “알고 있기 때문이야. …이 세계는, 인류는… 어비스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꽤나 확신하는 것 같네.”
 “확신하는 거야.”

 우리엘은 알고 있었다.
 어비스의 주인이 된 이후, 별의 주인이라는 존재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그리고 그 크기는 한없이 거대했으니, 주인이라던가 군단장 따위가 범접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 세계는 끝나. 인류는 가축이 될 거고 세계는 짓밟힐 거야.”

 우리엘은 말한다.
 이런 쓰레기 같은 세계와, 짐승 같은 인류를 보호해야 할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다고.
 의무라던가 임무라던가, 도덕이라던가… 그런 하찮은 요소들로는 이 세계에 만연한 불합리를 지울 수도 감출 수도 없으니, 그 불합리를 몸으로 겪어본 우리엘은 알고 있다.

 “유니온은 이제 무의미한 기관이고, 세계 각국은 치부를 감추기 급급. …이런 세상이 인간을 보호해줄 수 있을 리가 없어.”

 그저 클로저만 죽어 나갈 뿐.
 누가 죽건 그저 클로저만 원망할 뿐.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폭풍전야에서, 전쟁을 억압하는 것은 그저 클로저의 존재도 차원종도, 어비스조차 아닌 인류 최악의 살상 병기인 핵탄두의 존재.

 “하지만….”
 “유주, 나를 봐.”

 이제는 혼탁해져 버린 눈동자 속에서는 잡아먹을 것 같이 으르렁거리는 맹수가 있었다.
 놓지 않겠다는 듯 꽉 물어낸 이빨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날카로운 발톱은 인간의 몸따위 쉽게 찢어버리겠지.

  “이 세상이 너에게 뭘 해줬지? 잘 생각해 봐. 우리에게 빼앗아 간 것. 그리고… 우리에게 되돌려준 것.”

 살아갈 곳을 주었다, 해야할 일을 알려주었다.
 이런 식의, 네가 쟁취한 것이 아닌 그들이 모든 걸 잃어버린 너희에게 준 위로는, 도대체 뭐였지?

 “생명을, 삶을 모두 무너트리고, 죽은 다음에야 내게 말해준 힘없는 한 마디. 그저 미안하다는 말. …이런 세상이 정말 옳다고, 정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은 필요하다면 어린 아이마저 전쟁터에 내보내고,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그들은 안전한 시설 속에서 머리를 감싸안으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 모두 악하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게 정의도 아니었다. 단지,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편을 가르기만 할 뿐.

 “그만두자. 이런 일…. 사람을 살리는 게, 그저 옳기만 한 게 아니야. 저 너머의 이들을 봤잖아. 단지 과거의 일에 얽매여, 아직도 클로저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사라지길 바라는 이들이. 그런 인간들에게 뭘 바라고 있는 거야?”
 “뭘 바라는 건데, 너는.”

 차마 더 들을 수 없었던 건지, 이빨을 꽉 깨문 유주가 그녀의 목적에 대해 묻자, 우리엘은 알아도 상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냥, 다 내려놓자. 의무도, 책임도. 전부 내려놓으면 조금은… 더 편해질 수 있어.”

 누구도 아프지 않아도 된다.
 누구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갈 수 있다면, 우리만의 이상향을 꿈꿀 수 있게 된다.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고, 그 누구도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이건 도망치는게 아냐, 유주. …네가 가져야 했던 걸, 가지려고 하는 것 뿐이야. 당연한 거야. …행복을 추구하는 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니까.”

 우리엘의 말에, 유주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삶을. 인간으로서의 권리조차 빼앗긴 그녀에겐, 그만한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대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는 걸까.
 방관, 힘없는 자들의 방관. 두려움, 약한 자들의 두려움. 공포, ‘주인’에 대한 공포.

 그리고, 증오. 사람을 죽인 그녀에 대한… 그런 중오까지.
 어느 한 쪽도 잘못된 것이 없었다.

 반면, 고민하는 유주를 두고 우리엘 역시 고민하고 있었다.
 이전 지구에서 원하는 이를 몇 추려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녀처럼, 우리엘 역시 그럴 권한이 주어진다면. 그녀에게도 ‘주인’으로서의 권한이 인정된다면.

 “난 그저… 너희와 함께 가고 싶어.”

 이 마스테마로 그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만 인증할 수 있다면 그들도 인정해주겠지. 그러기 위한 마스테마의 개량종이며, 그러기 위해 직접 힘을 써가면서 더러운 벌레들을 개량해낸 것이니까.

 “이런 세계 따위… 이제 멸망해도 아무래도 좋잖아.”

 이딴 세계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잖아.
 우리를 갈라놓은 유니온과, 나를 죽여버린 그들을 용납하고 모른 척 고개를 돌리는 강대국들. 인간으로서의 인권을 사정없이 짓밟은 연구원과, 사람을 산 채로 해부하는 만행을 저지른 그들과 협력하는 과학자들. 그들을 칭찬하는 유니온과, 그런 유니온조차 지원해주는 어리석은 국제 사회.

 “그런 세상을 버리고, 함께 가자.”

 이쪽으로 넘어온다면, 그런 불합리를 이제 안 봐도 된다.
 불합리가 없는 저쪽 차원에서 함께 살고, 함께 지내며.

 “옛날처럼, 같이 웃는 그 때로 돌아가자, 유주.”

 ─인류를 위해 헌신한 너희와,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희생당한 내게는….

 “그럴만한 권리가 있어.”

 그러니까.

 “하얀을 데려와 줘.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옛날처럼.
 그저 웃으며 지냈던 고아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거야.
 온 마음을 다해, 이 감정이 전해지기를 기원하며 유주를 품에 안은 우리엘은, 부디 그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다.
 이 불합리한 세상. 누군가가 희생당하기를 요구하고, 그걸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이 세상에 저항하고자 하는 그라면 분명, 이 마음이 닿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여겼다.

 “하은….”

 하지만.
 그의 움직이지 않았던 팔은, 한쪽이나마 힙겹게 들어올려져 가슴팍을 살며시 밀어내었고, 순간 마음 속 어딘가 절망해버린 우리엘의 팔에는 힘이 풀려, 그가 원하는 대로 천천히 떨어져나갔다.
 감싸 안아지지 않고, 감정은 이제 전해지지 않고.
 그저 유주라는 인간과 우리엘이라는 어비스만 남은 공간에서 유주는 어렵사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돼, 그런 건….”

 인간으로서 태어나, 인류를 저버리고 괴물이 되기를 택한다.
 억지로 죽임을 당해, 억지로 되살아나고. 가녀린 마음을 가진 하은이라면… 선택지가 주어져도 선택했겠지만….

 “너무 멀리 와버렸어.”

 그녀는 너무 멀리 가버렸고, 유주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서로 상충하는 의지만 남은 상태에서 합의점을 찾고, 공통점으로 엮어 저쪽 길로 데려가려고 하는 그녀의 의지에 끌려갈 정도로 유주는 약하지 않았다.

 “유주….”

 믿고 있었던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배신당한다.
 제멋대로 기대한 마음에 제멋대로 배신당한다.
 큰 충격으로 다가온 그것은 욱신거리며 심장부근을 찔러대고, 죽어버린 자신의 차가운 몸에 뜨거운 혈액이 흐르는 것처럼, 속이 깊게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분노? …아니, 이건 혐오감이었다.


 “가지 마.”

 꽈악.
 붙잡힌 팔에 새겨지는 악력이 심상치 않았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몸은 멈춰버렸고 팔은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위상능력자의 팔을 단순 악력으로 부러트릴 정도로 강대한 힘에 무심코 몸을 떨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도대체.

 “가지 마. …갈 수 없어. 내가… 널 보내지 않을 거야….”
 “…아니, 끝이야.”

 하은이, 우리엘이 인간을 증오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증오는 증오로 되풀이되기만 할 뿐… 끊어지지 않는 연쇄 속에서 유주는 버틸 자신이 더 이상 없었다.
 증오 속에 살아왔고, 분노 속에 몸을 맡기고, 풍파에 몸이 헤져서 이제는 너덜너덜했으니까.
 그렇게 돌아가려는 유주의 등에 대고, 우리엘이 외쳤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무엇이?”
 “사람들이 너를 보는 시선도, 그들이 너를 보는 시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나를 봤던 그들처럼, 인간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그래서? …네 인생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알아, 하은. 하지만… 네가 보았던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 그 사람들은 결코 바뀌지 않더라도, 바뀔 수 있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있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게 할거야.”

 ─난, 괴물이 되지 않아.

 그 말만을 끝으로 유주가 마지막으로 돌아서니, 그런 그에게 하은이 명령했다.

 “마스테마 작동….”
 “너….”
 “미안해, 유주. 하지만….”

 지킬 것도, 동료라는 것도 모두 사라진다면.

 “이 증오스러운 세계와 너희를 떨어트릴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가져야 할 것을 가져와야만 했다.

 “하얀을 데려와. …마스테마를 써도 좋고, 어떤 방식으로라도.”




 네, AI미스틱입니다.
 실로 몇 달만에 돌아오는 3장 9화, ‘몽상’입니다.

 얼마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이 꽤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뭐 간담회라던가 게임이 폭삭 망했다던가 하는 것들이 말이죠.
 하지만 제게 있어서 가장 괴로운 일은 이번에 해킹을 당했다는 겁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팔릴뻔한 고가의 코스튬 몇 개는 되찾았습니다만, 파이 레압 세트, 암흑의 광휘 서클렛과 치명적인 위상력 2줄의 눈동자, 유니크 무기 하나 등, 여러모로 안좋은 일이 잔뜩 일어났습니다.
 클로저스에서 복구해준다면 굉장히 감사하겠습니다만, 시간이 걸릴 것같아 얼마나 오래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결과적으로 종전은 120만 피해로 큰 건 아니지만요.

 어쨋튼, 이번 3장 9화에서는 우리엘의 목표가 밝혀졌습니다.
 유주와 하얀을 데려오는 것, 그리고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어하는 그 증오심.
 사실 이쯤 되면 망령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증오로 움직이는 망령이죠.

 행복을 추구하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
 말은 좋습니다만, 과연 그 권리가 정말 인간을 멸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추구해야 할 정도로 올바른 길일까요?
 피와 시체로 얼룩진 행복을 밟고싶은 사람은 아마도 없겠죠.
 그럼에도 우리엘은 그런 붉은 행복조차 밟고싶어합니다.
 일생에 주어진 단 한 줌의 행복도, 어린 시절의 기억 뿐이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니온이 잘못되었다 해도, 우리엘의 방식은 확실히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우리엘이 고통받은 만큼 그만한 대가를 유니온과 세계정부도 치러**다고 보나요?
 어느 쪽이건,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서로가 맞을 뿐입니다.
 그저 우리는 글을 읽고 있기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겠지만요.
 그럼에도 최소한의 선택을 해**다면, 아마 인간에 가까운 유니온과 세계정부를 편들겠죠.

 그럼, 3장 9화 몽상… 마치겠습니다.

 코로나 1천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델타 변이도 위험하지만, 새 변이인 람다 변이는 백신 항체마저 무시한다고 합니다.
 아직 국내 람다 변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부디 항상 조심하시길 바라며,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AI미스틱
2024-10-24 23:36:3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