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2 신서울 10화
DianBurned 2021-07-09 0
24년 개정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여러분, 오셨군요."
한기남은 비에 젖어 돌아온 세 사람에게 수건을 나눠주며 말했다.
"견습 도사를 막는데 성공하셨군요. 비록 그 신도는 구할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제가 좀 더 잘 지켰어야 했는데...."
"아저씨 탓이 아니예요. 근데 그보다도요."
"너무 맥이 빠지는 결말이예요. 이렇게 간단히 끝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젖은 머리를 가볍게 털며 은하가 말했다.
"사실 저도 그 점이 신경 쓰이긴 하네요. 모든 게 너무..... 어이 없을 정도로 쉽게 해결됐어요. 어쨌든 주요 관계자인 견습 도사를 쓰러트린 건 분명합니다. 체포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면 좋았겠지만..."
"하지만 역시 찜찜해.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기분이란 말이죠."
"견습 도사도 말했었죠. 전우치라는 사람을..."
도사 전우치를 연상한 모두의 표정이 굳어갔다.
"저는 그 광신도 놈 좀 찾아볼 겸 해서 주변 좀 둘러보고 올게요. 경계라도 좀 해야 찜찜한 기분도 날아갈 거 같거든요."
빌린 수건을 다시 돌려주면서 말했다.
"저, 잠시만요. 그 전에 모두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 조금 있다가 가시는 게..."
루시는 무언가 우물쭈물 거리며 말했다.
불안한 듯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면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우물쭈물 거리는 걸 보아 아마 자신의 정체에 대해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하긴. 쉽게 믿을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할만한 얘기도 아니지. 4000년 전 악룡에게 맞선 봉인된 왕녀와, 그녀의 분신의 이야기를 간파의 눈으로 본 나도 쉽사리 믿기 힘들었으니.
그럼에도 이제와 얘기하는 건.... 아까 우리가 무심코 한 그말 때문이겠지.
인간의 위상력을 필요로 하는 자신과 인간의 생명을 흡수해 힘으로 삼았던 견습도사. 그 둘을 동시에 지칭할 수 있던 그 단어, 흡혈귀.
머리를 긁으며 무심히 그 단어를 말한 걸 후회했다. 조금은 신경 써 줄걸.
"두 사람한테만 말해. 네 본체에 관한 이야기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거든."
다가가 조용히 속삭이자, 눈이 동그랗게 커진 루시는 조용히 되물었다.
".....섬에서 저를 알아보셨던 그때군요. 얼마나.... 자온 씨는 저에 관해서 얼마나 꿰뚫어 보신 건가요?"
"...4000년 전 사악한 용에게 맞서기 위해 기도했고, 종래엔 저주 받아 스스로를 봉인한 고독한 왕녀님. 그리고 오랜 시간을 넘어 다시 용에게 맞선 왕녀님의 분신이란 거."
"네가 섬에 왔던 계기랑 인간의 위상력도 필요한 건 나중에 알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네가 스스로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조용히 있었지."
"할 얘기 있다 더니 왜 둘이서 수근거리고 있어?"
"별 거 아냐. 루시, 저 두 사람은 네 일면을 알게 되더라도 널 피하거나 밀어내지 않을 거야. 저 두 사람은, 나처럼 쓸데없이 정이 많을테니까. 감이지만."
자온이 자신을 흘겨 보며 실실 웃는 모습을 보이자, 은하가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좀 짜증 나는데, 찔러도 돼요?"
"하지 마. 그럼.... 얘기들 나누고 있어요."
홀로 떨어져 나온 자온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
"무작정 돌아다녀도 정보가 적으니 찾을 수가 없네."
전우치의 수색에 진전이 없자 돌아온 자온은 병원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좀 쉴까...."
"자온 오빠, 와 있었네."
"아라구나."
쉴려는 찰나에, 때마침 다가온 아라가 말을 걸어왔다.
"아, 아라야. 혹시 그 도사 놈 또 온 적 있어?"
"도사님은 나쁜 분이 아니신데.... 일단 도사님은 그 때 물어본 이 후로는 안 오셨어."
다행히 저쪽의 심부름꾼이라는 사람들이 경호를 잘 해주고 있는 모양이네.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랬구나. 후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따가 나도 한 번 더 둘러봐야겠네."
"그 녀석은 정말로 나쁜 사람이니까 너희한테 해를 끼칠까 봐 걱정이거든."
내 말에 아라는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정신 간섭을 난감하기 짝이 없단 말이지.
전우치의 능력에 성가셔 하며 혀를 내두르던 와중,
"그러고보니 아라야, 다 치료 받고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거 있어?"
불현듯 치료 받고 난 이후의 일을 물어보았다. 나 자신도 알 수 없고 뜬금없었지만, 묻고 싶었다.
"전에 TV에서 나오던, 그 언니들 같은 아이돌이 되고 싶어?"
"음....."
아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응. 춤추고 노래하는 그 언니들이 예뻤기도 했는데 돈도 많~이 벌 수 있대!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아이들이랑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싶어."
이내 대답하며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기특하네, 아라는. 나랑은 다르게 말이야."
"자온 오빠가 왜?"
"나는 영웅이 되고 싶었거든. 내 형이 존경했던 분같이, 자랑스럽고 존경할만한 그런 영웅이. 지금의 난 그런 영웅과는 거리가 멀거든."
"영웅? TV에서 나오는 히어로라고 하는 거 말이지? 자온 오빠도 이미 충분히 히어로야. 우리를 거기서 데려와 주고 치료도 받을 수 있게 도와줬잖아."
"아니야. 난 그저.... 너희처럼 어린 아이들이 그런 가혹한 세상을 살다가 사그라 드는 걸 보기 싫었으니까 도와준 것 뿐인 걸. 히어로 같은 그런 거창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아라는 잠시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빠가 우리랑 희망 오빠를 구해줬으니까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걸. 우리를 도와준 은하 언니도, 루시도, 자온 오빠도 우리의 히어로야."
"모두를 대신해서 말해줄게. 고마워, 우리의 히어로!"
고맙다는 말에 감격의 감정이 흘러 들어오면서도, 히어로라는 말에 낯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놓고 칭찬 받으면.... 꽤나 부끄러운 거였구나.
"차, 참나. 너무 띄워주면 좀 창피한데 말이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후. 화끈거려 죽겠네. 아, 아라야. 너희 여기 와서 단 과자들 거의 못 먹어봤지? 사 가지고 올 테니까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응. 자온 오빠."
도망치듯 자리에서 벗어나려던 와중, 아라가 인사를 건넸다.
"잘 가, 안녕."
"이따가 보자, 아라야."
주변의 가게 중 하나에 들어가 아이들을 위한 과자를 고르는 와중,
"......뭐지. 이 엄청나게 찝찝한 기분은. 이 느낌, 옛날에도 느껴본 적 있는 거 같은데.....기분 탓인가."
평범했을 아라의 인사에 무언가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쇼핑을 이어갔다.
*******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되려나? 그나저나 과자들이 꽤나 비싸네. 낭비했다고 한소리 하겠는 걸."
양손 무겁게 한아름 구매한 과자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돈 조금 줄게요. 낭비하지 말아요.]
[고마워요, 은하 씨! 용돈 받은 기분이네요!]
[쓸 일 없을거 같은데.]
[쓰기만 해봐라. 콱....]
신서울에 막 도착했을 때 구시렁 거리며 은하에게 받은 돈. 낭비 했다고 잔소리 할 것 같은 은하의 얼굴을 떠올리며 과자 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 하나 꺼내들었다.
"돌아왔으니 약과가 먹고 싶었단 말이지. 어디..... 어우, 너무 단데?"
생각보다 단 약과에 얼굴이 순간 쭈그러 들었다. 설탕 먹는 것도 아니고 너무 단데?
그래도 일단 먹던 것인지라 조금씩 갉아 먹으면서 병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중,
"아! 너 여기 있었구나!"
저편 길목에서 반금련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반금련씨? 뭐 급한 일 있어요? 자, 일단 이거라도 드시면서 천천히 말ㅎ...."
"지금 그런 거 먹을 때가 아니야! 들어!"
소리를 지르며 말을 끊었다.
칼이 목에 들어와도 여유를 보였는데 평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이 사색이 된 얼굴에,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내가 희망이한테 물어 볼게 있어서 면회를 신청했는데,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면회 허가가 나오지 않았어....!"
심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술이 성공했다고 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말이야. 뭔가....안 좋은 예감이 들더라고."
심장이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그 날과 똑같은 감각이 들어서.
"그래서 몰래 희망이가 입원해 있는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봤는데....!"
제발.... 제발 그 날과 같은 일이라고 하지 말아줘. 형님이 죽었던 그 때의 감각이 아니여 줘....!
"놀라지 말고 들어...!"
"희망이는... 이미 죽어 있었어!"
야속하게도 현실은 형님을 잃은 그날처럼, 내가 품었던 희망을 무너트렸다.
제 10화
무너진 희망
한기남은 비에 젖어 돌아온 세 사람에게 수건을 나눠주며 말했다.
"견습 도사를 막는데 성공하셨군요. 비록 그 신도는 구할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제가 좀 더 잘 지켰어야 했는데...."
"아저씨 탓이 아니예요. 근데 그보다도요."
"너무 맥이 빠지는 결말이예요. 이렇게 간단히 끝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젖은 머리를 가볍게 털며 은하가 말했다.
"사실 저도 그 점이 신경 쓰이긴 하네요. 모든 게 너무..... 어이 없을 정도로 쉽게 해결됐어요. 어쨌든 주요 관계자인 견습 도사를 쓰러트린 건 분명합니다. 체포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면 좋았겠지만..."
"하지만 역시 찜찜해.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기분이란 말이죠."
"견습 도사도 말했었죠. 전우치라는 사람을..."
도사 전우치를 연상한 모두의 표정이 굳어갔다.
"저는 그 광신도 놈 좀 찾아볼 겸 해서 주변 좀 둘러보고 올게요. 경계라도 좀 해야 찜찜한 기분도 날아갈 거 같거든요."
빌린 수건을 다시 돌려주면서 말했다.
"저, 잠시만요. 그 전에 모두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 조금 있다가 가시는 게..."
루시는 무언가 우물쭈물 거리며 말했다.
불안한 듯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면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우물쭈물 거리는 걸 보아 아마 자신의 정체에 대해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하긴. 쉽게 믿을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할만한 얘기도 아니지. 4000년 전 악룡에게 맞선 봉인된 왕녀와, 그녀의 분신의 이야기를 간파의 눈으로 본 나도 쉽사리 믿기 힘들었으니.
그럼에도 이제와 얘기하는 건.... 아까 우리가 무심코 한 그말 때문이겠지.
인간의 위상력을 필요로 하는 자신과 인간의 생명을 흡수해 힘으로 삼았던 견습도사. 그 둘을 동시에 지칭할 수 있던 그 단어, 흡혈귀.
머리를 긁으며 무심히 그 단어를 말한 걸 후회했다. 조금은 신경 써 줄걸.
"두 사람한테만 말해. 네 본체에 관한 이야기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거든."
다가가 조용히 속삭이자, 눈이 동그랗게 커진 루시는 조용히 되물었다.
".....섬에서 저를 알아보셨던 그때군요. 얼마나.... 자온 씨는 저에 관해서 얼마나 꿰뚫어 보신 건가요?"
"...4000년 전 사악한 용에게 맞서기 위해 기도했고, 종래엔 저주 받아 스스로를 봉인한 고독한 왕녀님. 그리고 오랜 시간을 넘어 다시 용에게 맞선 왕녀님의 분신이란 거."
"네가 섬에 왔던 계기랑 인간의 위상력도 필요한 건 나중에 알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네가 스스로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조용히 있었지."
"할 얘기 있다 더니 왜 둘이서 수근거리고 있어?"
"별 거 아냐. 루시, 저 두 사람은 네 일면을 알게 되더라도 널 피하거나 밀어내지 않을 거야. 저 두 사람은, 나처럼 쓸데없이 정이 많을테니까. 감이지만."
자온이 자신을 흘겨 보며 실실 웃는 모습을 보이자, 은하가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좀 짜증 나는데, 찔러도 돼요?"
"하지 마. 그럼.... 얘기들 나누고 있어요."
홀로 떨어져 나온 자온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
"무작정 돌아다녀도 정보가 적으니 찾을 수가 없네."
전우치의 수색에 진전이 없자 돌아온 자온은 병원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좀 쉴까...."
"자온 오빠, 와 있었네."
"아라구나."
쉴려는 찰나에, 때마침 다가온 아라가 말을 걸어왔다.
"아, 아라야. 혹시 그 도사 놈 또 온 적 있어?"
"도사님은 나쁜 분이 아니신데.... 일단 도사님은 그 때 물어본 이 후로는 안 오셨어."
다행히 저쪽의 심부름꾼이라는 사람들이 경호를 잘 해주고 있는 모양이네.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랬구나. 후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따가 나도 한 번 더 둘러봐야겠네."
"그 녀석은 정말로 나쁜 사람이니까 너희한테 해를 끼칠까 봐 걱정이거든."
내 말에 아라는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정신 간섭을 난감하기 짝이 없단 말이지.
전우치의 능력에 성가셔 하며 혀를 내두르던 와중,
"그러고보니 아라야, 다 치료 받고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거 있어?"
불현듯 치료 받고 난 이후의 일을 물어보았다. 나 자신도 알 수 없고 뜬금없었지만, 묻고 싶었다.
"전에 TV에서 나오던, 그 언니들 같은 아이돌이 되고 싶어?"
"음....."
아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응. 춤추고 노래하는 그 언니들이 예뻤기도 했는데 돈도 많~이 벌 수 있대!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아이들이랑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싶어."
이내 대답하며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기특하네, 아라는. 나랑은 다르게 말이야."
"자온 오빠가 왜?"
"나는 영웅이 되고 싶었거든. 내 형이 존경했던 분같이, 자랑스럽고 존경할만한 그런 영웅이. 지금의 난 그런 영웅과는 거리가 멀거든."
"영웅? TV에서 나오는 히어로라고 하는 거 말이지? 자온 오빠도 이미 충분히 히어로야. 우리를 거기서 데려와 주고 치료도 받을 수 있게 도와줬잖아."
"아니야. 난 그저.... 너희처럼 어린 아이들이 그런 가혹한 세상을 살다가 사그라 드는 걸 보기 싫었으니까 도와준 것 뿐인 걸. 히어로 같은 그런 거창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아라는 잠시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빠가 우리랑 희망 오빠를 구해줬으니까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걸. 우리를 도와준 은하 언니도, 루시도, 자온 오빠도 우리의 히어로야."
"모두를 대신해서 말해줄게. 고마워, 우리의 히어로!"
고맙다는 말에 감격의 감정이 흘러 들어오면서도, 히어로라는 말에 낯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놓고 칭찬 받으면.... 꽤나 부끄러운 거였구나.
"차, 참나. 너무 띄워주면 좀 창피한데 말이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후. 화끈거려 죽겠네. 아, 아라야. 너희 여기 와서 단 과자들 거의 못 먹어봤지? 사 가지고 올 테니까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응. 자온 오빠."
도망치듯 자리에서 벗어나려던 와중, 아라가 인사를 건넸다.
"잘 가, 안녕."
"이따가 보자, 아라야."
주변의 가게 중 하나에 들어가 아이들을 위한 과자를 고르는 와중,
"......뭐지. 이 엄청나게 찝찝한 기분은. 이 느낌, 옛날에도 느껴본 적 있는 거 같은데.....기분 탓인가."
평범했을 아라의 인사에 무언가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쇼핑을 이어갔다.
*******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되려나? 그나저나 과자들이 꽤나 비싸네. 낭비했다고 한소리 하겠는 걸."
양손 무겁게 한아름 구매한 과자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돈 조금 줄게요. 낭비하지 말아요.]
[고마워요, 은하 씨! 용돈 받은 기분이네요!]
[쓸 일 없을거 같은데.]
[쓰기만 해봐라. 콱....]
신서울에 막 도착했을 때 구시렁 거리며 은하에게 받은 돈. 낭비 했다고 잔소리 할 것 같은 은하의 얼굴을 떠올리며 과자 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 하나 꺼내들었다.
"돌아왔으니 약과가 먹고 싶었단 말이지. 어디..... 어우, 너무 단데?"
생각보다 단 약과에 얼굴이 순간 쭈그러 들었다. 설탕 먹는 것도 아니고 너무 단데?
그래도 일단 먹던 것인지라 조금씩 갉아 먹으면서 병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중,
"아! 너 여기 있었구나!"
저편 길목에서 반금련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반금련씨? 뭐 급한 일 있어요? 자, 일단 이거라도 드시면서 천천히 말ㅎ...."
"지금 그런 거 먹을 때가 아니야! 들어!"
소리를 지르며 말을 끊었다.
칼이 목에 들어와도 여유를 보였는데 평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이 사색이 된 얼굴에,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내가 희망이한테 물어 볼게 있어서 면회를 신청했는데,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면회 허가가 나오지 않았어....!"
심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술이 성공했다고 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말이야. 뭔가....안 좋은 예감이 들더라고."
심장이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그 날과 똑같은 감각이 들어서.
"그래서 몰래 희망이가 입원해 있는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봤는데....!"
제발.... 제발 그 날과 같은 일이라고 하지 말아줘. 형님이 죽었던 그 때의 감각이 아니여 줘....!
"놀라지 말고 들어...!"
"희망이는... 이미 죽어 있었어!"
야속하게도 현실은 형님을 잃은 그날처럼, 내가 품었던 희망을 무너트렸다.
제 10화
무너진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