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그레이스] 지나 그레이스는 어느 날,
Forgetter 2021-05-10 11
※ IF설정의 무언가
지나 그레이스는 어느 날, 뜻밖의 인물과 만나게 되었다.
그건 지나 그레이스가 살아생전 – 클론으로 거짓된 두 번째 삶을 부여받기 전의 일이다 – 전쟁에 참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 때 그녀가 속했던 팀의 이름은 <울프팩>. 지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참조하여 이 팀을 설명하자면, 팀원들 전원이 화려한 능력을 가졌고, 그렇기에 독보적인 실적을 쌓고 있던 그야말로 인류를 대표하는 희망이었다.
그런 팀 중에서 지나는 가속 능력자였다. 사실 그 속도를 경험하게 되는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건 감히 가속(加速)이라고 뭉그러뜨릴 능력은 아니라고 하였다. ‘신속(迅速)’이라고 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들 하였다. 아무튼 지나는 일단은 가속 능력자라고 알려졌다. 이렇게 발이 빠르면 이런 전시 상황에 무슨 점이 좋았냐면 적의 기지 같은 곳을 염탐하기도 좋았고, 정보를 캐는 것뿐만 아니라 그 빠른 발로 암살을 신속하게도 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대부분 찌르기가 위주인 지나의 창술이 그나마 빛을 발휘하게 된 것도 지나의 가속 능력 덕분이었다.
아무튼 빨리 달리는 재능도 갖추어져 있기도 했고, 그에 알맞게 달리는 것도 나름 좋아했던 지나는 가끔씩 휴식을 취할 때면 베이스캠프에서 조금 먼 곳까지 기분전환을 하러 가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나의 팀원 중 한 명 – 지나가 무척이나 귀여워하던 팀 내의 막내였다 - 은 지나가 무척이나 자유로운 바람과도 같다는 비유를 하곤 했다. 지나는 그러한 막내의 비유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른 팀원들에 비해 너무 빨라서 곧장 잊혀지곤 한다며 자조적인 발언을 심심치 않게 하는 지나의 반응치고 나름 평범한 축이었다.
오늘도 그렇게 지나는 임무를 치른 후의 숨을 고를 겸, <울프팩>의 베이스캠프에서 아주 조금 – 물론 지나의 관점이다 – 멀리 떨어진 호숫가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발견한 호숫가의 주변에는 사람 1명이 앉기에 충분한 넓적한 바위가 있었다. 지나는 그 바위 위에 앉았다. 바위 위에 앉으니 바로 호수의 전경이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최적의 전망대였다.
지나는 만일을 대비해 항상 멀리 나갈 때마다 들고 다니는 창을 자신의 바로 옆에 꽂아두었다. 아니, 사실은 꽂아두기 직전까지는 갔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몸의 긴장을 풀려던 찰나, 지나는 자신의 바로 뒤에서 다가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지나는 곁눈질로 소리가 나는 부근을 흘겨보았다. 아직 그러한 곁눈질로는 사람의 대강을 판단하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지나는 생각했다.
‘나이트...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막내, 일명 지나가 ‘나이트’라고 부르는 아이였다. 막내는 지나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가장 먼저 찾아내는 신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지나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떠오를 인물에 적합했다.
나이트라고 생각한 지나는 창을 그러쥐려는 행동을 포기하고 살짝 웃으며 상대방이 있을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나이트?”
“네?!”
상대방의 당황 섞인 대답이 나오자마자 지나는 재빠르게 자신의 옆에 있던 창을 솜씨 좋게 상대방에게 겨누었다. 한순간에 날붙이가 바로 자기 목에 겨누어진 상대방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일단은 항복의 신호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지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이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여기에서 그저 끝내서는 안 되었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바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뒤탈이 없이 끝내야 했다.
지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넌...나이트가 아니구나.”
“...”
“차원종...인가?”
차원종이냐는 질문에 상대방은 난색을 표하며 무언가 설명을 하려고 하는 듯 했다.
“...아, 저기...”
“...그러고 보니 말이야.”
물론 자기만의 생각과 결론을 지으려는 지나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퀸이 그랬어. 차원종들 중에는 우리의 모습과 똑같이 베낄 수 있는 형상복제의 능력이 있다고.”
“아, 그건 아니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
“너는...적인 거야?”
“이, 이러지 마세요...!!”
“...?”
이러지 말라는 상대방에게 지나는 금방이라도 찌를 것 같은 살기를 거두었다. 그 직후에 지나의 눈동자에서는 빛이 하나 스쳐지나갔다. 상대방은 지나의 태도가 약간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지나의 창은 자신의 목을 향해 정확히 겨누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지나는 상대방에게 겨누던 창을 내려놓고 한껏, 아니 많이 누그러진 태도로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결론을 내놓았다.
“그래, 형상복제의 능력자는 아닌 거 같네.”
“...네?”
갑자기 지극히 정상적인 결론을 내놓은 지나의 모습에 이번에는 오히려 더 상대방이 당황한 듯 하였다. 지나는 막내를 닮은 듯한 상대방에게 자신의 추리를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형상복제의 능력이라면 넌 완벽하게 ‘나이트’의 모습을 베끼고 왔을 거야. 하지만 넌 지금의 나이트와는 모습이 완전히 똑같지 않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트와 닮은 외모를 가진 ‘어떤 사람’인 것 같다고 할까?”
“...와.”
“내 말...맞아?”
일정 지분 이상의 확신이 들어서 이런 말을 하기는 했지만 지나는 여전히 자신의 직감이 미심쩍은 듯 하였다. 그래서 상대방의 답변을 기다렸다.
상대방이 말하였다.
“정답이에요, 지나 그레이스 씨.”
“내 이름...알아?”
정답이라는 것보다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에 더 놀란 지나였다. 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지나는 이 막내를 닮은 사람이 막내의 친형제 같은 사람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에서 뜻밖의 단어 하나가 튀어나왔다.
“알다마다요. 아빠가 지나 씨의 이야기를 해주셨으니까요.”
“아빠?”
나이트가...아빠? 아무리 보아도 이 눈앞에 있는 청년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기만 하는데...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아빠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자 이제는 상대방이 열심히 변론을 할 차례였다. 상대방은 머리를 긁적였다.
“못 믿으실 수도 있지만, 전 미래에서 왔어요.”
“...타임머신 같은 거 타고?”
차원문이 열린지 얼마 안 된 시점의 이 시대의 사람인 지나가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사고였다. 보통 미래에서 왔다고 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는 생각을 할 게 뻔했다.
“뭐, 비슷하긴 해요. 사실은 차원문에 빨려들었는데,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도 어그러지는 차원문이었는지 과거에 떨어져 버렸네요.”
그렇단다. 상대방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쩐지 지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당사자가 설명을 곧장 해주었다.
“...이번에는 지나 씨가 제 말을 안 믿으시려나요?”
지나는 잔뜩 곤란해 하는 청년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믿을게.”
“저, 정말이요? 제가 거짓말 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거짓말한다는 느낌은 안 들어.”
그리고 차원을 넘을 수 있는 문이 있다면, 시간을 넘을 수 있는 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도 있었다. 다른 차원이라는 건, 다른 시간대로 넘어간다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고 지나는 처음 차원문의 설명을 들었을 때 그렇게 자기 나름대로 이해했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지나는 상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입술에 호선까지 희미하게 그리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는 나이트와 눈이 무척이나 닮았는걸.”
“아.”
“그 아이는 슬픈 눈을 하고 있지만, 너는 참으로 행복한 눈을 하고 있구나.”
지나는 그 직후 눈매도 호선으로 같이 그렸다.
“나이트가 그런 얼굴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너한테서 보게 되는 것 같구나.”
“...”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년이 회상하는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란, 지나가 말하는 것처럼 마냥 행복해보이지만도 않았다. 특히 지나의 이야기를 아주 가끔씩 꺼낼 때의 아버지의 옆얼굴은...
...이건 굳이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말하지 말도록 하자. 자칫하다가는 지나가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미래를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죽음만이 있을 미래를 기다리는 건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이 뭐니?”
지나 쪽에서 먼저 통성명을 청했다.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청년의 이름을 가만히 듣던 지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이트와는 성(姓)이 다르네?”
“아, 전 어머니 쪽 성(姓)이에요. 아버지 왈, 아빠보다는 엄마 유명세가 더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그래...그렇구나...”
지나는 턱을 손가락으로 괴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모습이 진지하고 슬퍼 보이기도 해서 청년은 혹시라도 자신이 방금 실언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100%로 회고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예? 무슨 문제라도...”
“아니야, 그냥 내 혼잣말이야.”
지나는 괜찮다며 바로 미소를 지었지만, 수심이 깊었던 얼굴인지라 그 미소가 상당히 슬퍼보였다.
지나는 답지 않게 말을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이 특별한 만남이 다시는 없을 절호의 기회라도 되는 것 마냥.
“그보다도 신기하다. 나이트와 많이 닮은 것 같지만 미묘하게 달라. 미묘하게 다른 부분은 어머니 쪽 유전자니?”
“아, 그런 소리 많이들 하세요. 지나 씨도 아시겠지만 아빠 인상이 살짝 날카로운 편이잖아요. 전 그에 비해 동글동글해요.”
“그러네. 하지만 나이트도 그렇게 부드럽게 웃을 때가 있어.”
특히 나를 보며 말이야. 지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앞에 있는 막내를 닮은 청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뚫어지게 보더니 지나는 무언가를 확신했다.
“응, 역시 그렇구나.”
“무슨...”
“그리고 한 가지 또 알게 되었어. 너의 얼굴은 나와 닮은 얼굴은 절대로 아니라는 걸.”
“네...?”
지나의 답변은 너무도 엉뚱하고 또 담담해서 오히려 상대방이 더 당황해버렸다. 뒤이어 지나는 자신이 이러한 결론에 다다랐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대강 알 것 같아. 미래의 나이트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그리고 미래의 나는 아마 그러한 나이트의 곁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지나 씨...”
“정답인가 보네.”
보통 이러한 결론 – 자신이 조만간 죽을 수도 있다 – 을 알게 된다면 모두들 절망을 하는 것이 대부분일 텐데 지나는 태평했다. 오히려 이걸 본의 아니게 지나에게 확신시켜준 당사자가 더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상대방을 전혀 나무라지 않는 지나.
“너무 그렇게 죄책감 갖지 마. 나, 어느 정도 예견은 하고 있었어. 지나 그레이스는 어느 날, 사람들을 지키다 죽을 것이다.”
경지가 극에 달한 무인들 중 가끔 그런 예감이 든다고 하잖아. 난 그런 무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지나의 이 예감은, 앞선 대화를 통해 확신이자 사실이 되어버렸다.
결국 상대방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늘 자신보다 먼저 간 어떤 전우(戰友)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나마 전달하게 되었다.
“아빠가 늘 말했어요. 지나 씨는 아빠의 생명의 은인이라고요.”
“생명의 은인이라니...좀 표현이 과하네. 난 당연한 일을 했던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또 지나는 거기서 한 수 앞을 또 보았다.
“그래, 그렇구나. 나는 나이트를 지키기 위해 죽는구나.”
“...괜찮으세요?”
“안 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은 드네. 마지막까지 지나 그레이스답다, 라고.”
그거면 충분할 것 같다. 지나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생각한 가장 자신답게, 행동을 했다는 것이 말이다.
그래도 지나도 아예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이트의 행복한 눈빛을 보고 싶었는데, 그건 너를 통해서 보았으니 상관없을 것 같아.”
“...저도 이 말을 지나 씨에게 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말?”
그는 지나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지나 그레이스 씨.”
“...”
“다분히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를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지나 씨는 아버지 말대로 아버지와, 저의 생명의 은인이에요.”
지나는 깨달았다. 아, 나이트가 살아주었기에 이 아이가 먼 훗날에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지나는 그런 청년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건 그저 지나 그레이스가 당연하게 했을 행동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쩐지 이 고맙다는 말은 지나도 이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야말로 고마워, 그리고...”
“...”
“...‘잘 지내’, 라는 인사정도는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사이도 없이 가버렸네.”
지나는 방금 전까지 앞에 있었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차원문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한 사람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또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걸까?
찰나의 만남이었지만 강렬한 폭풍우 같았다. 이렇게 지나는 어쩌다보니 자신의 미래, 그것도 머지않은 미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자신이 예상했던 자신의 마지막과 거의 동일했다.
...무섭지 않으냐고? 이미 한 번 죽었던 터라, 이제는 담력이 많이 강해졌나보다. 두렵지는 않다. 다만 자신이 ‘그 아이가 겪었던 미래’에서처럼 해내지 못할까, 그건 두려웠다.
그래서 괜찮았다. 어떻게든 될 것이었다. 다만...
“...그렇지만 너무 아쉽다.”
하지만 한 가지 작은 미련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자신을 기억하는 나이트의 고통이 제3자를 통해 전해 들었는데도, 절절하게 애가 끓는다는 것이었다.
“각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이트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면 더 좋았을지도.”
차라리, 이번 딱 한 번만 다른 마음을 먹을까? 지나답지 않은 반항이었다.
...그래도 잠시 다시 생각하니, 나이트의 옆에 있어줄 ‘누군가(퀸)’의 존재. 그 존재가 어느 날에는 꼭 당도해 나이트의 옆에 있어줄 것이라는 확신도 받았다는 것을 지나는 깨달았다. 그래, 그랬으니까 나이트와 꼭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그 아이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것이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지나는 기지개를 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흘러오는 햇빛을 손으로 막으며 지나는 의연히 다짐했다.
“그래, 힘내야지.”
그랬다. 그렇게 어느 날...
지나 그레이스는 어느 날,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감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