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나를 위한 당신의 자그마한 선물

AI미스틱 2021-04-12 0





 1년이 돌고, 1년이 돌고.
 매 1년이 돌 때마다 돌아오는 4월 12일마다, 항상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했다.
 그 날, 내가 목메이듯 계속 매달리지 않았다면.
 그 날, 내가 더 빨리 포기했다면.
 내 인생은 조금 더 나아졌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땐, 스스로 답을 떠올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란다.”

 아직도 가끔, 아빠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가듯 내게 조언을 준다.
 그 한마디에 나는 계속 한 발자국 멈춰서서, 그 날의 선택이 내게 정말 정답이었을지.
 그 날의 선택이, 내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일이었을지.
 고민해보곤 했다.
 하지만 꼭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 뿐이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더 빨리 포기했을 때, 그 미래에 황금빛의 세상이 기다린다 해도.
 더 빨리 포기했을 때, 내게 꽃으로 가득 찬 길이 내어준다 해도.
 그 세상이 내게 빛이 내리쬐진 않았을 것이고.
 그 꽃길이 내게 있어 화창한 꽃길로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슬픔으로 가득 찬 빛에서.
 시들어버린 꽃길 한가운데서.
 내가 바라고 싶어했던 것은 결국 아빠와 함께 있는 것 하나 뿐일테니까.

 “아, 여기 계셨습니까!”
 “…아저씨… 여긴 왜 왔어요?”

 허름한 카페. 이제는 운영조차 잘 하지 않는 이곳은, 한때 내가 자주 들렀던 곳이었다.
 더 큰 곳으로 이사한다며 떠나갔지만, 결국 이 집은 차원종으로 인해 주인 없는 땅이 되어버렸고, 이렇게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위상능력자이기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차원종이 나타난 이곳에 맨몸으로 들어온 한기남이야말로, 더 제정신이라 보기엔 어려운 쪽이겠지.
 의문을 한껏 담아 묻자, 그는 한 손에 카테이프를 들어올리더니 말했다.

 “고쳤습니다. 물론 적지않게 힘들었지만요.”
 “…카테이프도 고칠 수 있는거였어요?”
 “물론이죠! 이 한기남의 손에만 걸리면 다…는 몰라도 능력이 된다면 대부분 고친답니다! …물론, 재료는 별개의 이야기지만요.”

 내밀어진 카테이프를 붙잡은 나는, 언제인가 ‘STAR-GALAXY’라고 적혀있었지만 이제는 다 헤져서, 글자조차 채 보이지 않는 그것을 몇 번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 카테이프를 보며 한기남이 말했다.

 “물론 내용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구시대 카테이프라니… 어느 분의 것이었죠?”
 “…….”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카테이프라고 한다면 이미 이 세상에서는 거의 사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그 이전에 이 카테이프는 내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받았을 적부터 이미 망가져 있던 카테이프는 이젠 구시대의 것이라 고치는 사람도 몇 없었기에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건만, 이렇게나마 들을 수 있다면….

 “소중한 사람이, 준 건가요?”

 한기남이 질문하자, 한참동안이나 대답하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사람….

 “…너무 사적인걸 물었나요? 죄송….”
 “…네.”

 정말로, 정말로 소중한 사람.
 이 가슴에 기억을 사진으로 못박아, 두 번 다시 잊고싶지 않은 사람.
 무심코 가슴팍에 손을 얹었더니, 그 모습을 보던 한기남은 그 선글라스 너머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방에서 카오디오를 꺼내더니 한때 카운터로 사용되던 곳에 올려놓더니 말했다.

 “나중에 오겠습니다. …최근 차원종은 오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그러시던가요.”

 마치 배려해주듯 말한 한기남은 서둘러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그가 남긴 카오디오에 다가가, 몇 번 만지작거리던 나는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벌린 카세트오디오에 카세트테이프를 넣고서는, 이내 재생을 눌렀다.
 찰칵, 하는 버튼의 소리와 함께 울리는 앞선 치지직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천천히 새어나왔다.

 “아… 아, 아…. 이거 녹음되고 있는 것 맞겠지?”

 그리운 목소리. 무심코 울컥 눈물이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지만,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무슨 조정이 끝난 것인지, 목소리가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걸 듣고 있다는건… 그곳에 내가 없다는 이야기겠지…?”

 억지로라도 망가트려 들을 일은 없게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듣게 되었으니, 그저 아쉽기 그지없다며 말을 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걸 고쳐준 사람이 있다는 건… 적어도 아직까진 잘 나아가고 있는 모양이구나, 우리 공주님.”
 “…아빠….”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명하게 울려퍼진다.
 소리의 진동에 먼지가 내려앉으니, 고요한 이곳에서 그 한마디는 너무나도 생생해서, 마치 옆에 진짜 아버지가 앉아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래도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은하야.”

 이 목소리가 울릴 때 즈음이 언제일지는 몰라도,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너는 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아픈 동안 걱정 많았지? …걱정하지 마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일어날테니….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카세트오디오의 입이 벌어졌다.
 재생되던 오디오가 끊겼으니,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자 그 반동으로 일시적인 재생 중지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뭐가, 걱정하지 마렴, 이야….”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아무것도 괜찮아지지 않았는데, 뭐가 괜찮다는 거야.
 거짓말쟁이!

 “아빠는… 거짓말쟁이….”

 마음이 지쳐서 움직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지쳐서 의자에 앉아버리고, 그제서야 진정해서, 다시금 오디오를 틀 수 있었다.
 오디오에서 다시금 새어나온 아빠의 목소리에 꾸욱, 가슴을 움켜쥐고 고개를 드었다.

 “우리 은하… 그래도 잘 커줘서 정말 고맙다.”

 이젠 아빠한테 의존하지 않아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아빠는 정말, 은하를 믿고있단다.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래도, 세상 살아가는데 마냥 편한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 아직 모를수도 있지만, 살아가다보면 언제나 한 번씩,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단다.
 그럴땐 말이지… 한 번 멈춰서서, 쉬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사람이 항상 뛰어날 수도 없고, 사람이 항상 건강할 수도 없겠지?
 그러니… 가끔 멈춰서서, 하고싶은 일이 있다면 한번씩 해보기도 하고 하렴.

 단지 카세트 오디오에서 흘러나올 뿐인 목소리일 터였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목소리는 아빠처럼 보이기 시작해서.
 곁에 아빠가 정말로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억지로 들어 앉아있는 그 모습을 보니, 어째 웃고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공주님….’

 쓰담.
 고개가 숙여질 정도로 강하게 쓰다듬던 아빠가 떠올랐다.
 한 차례 쓰다듬고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온기가 다정하게 남아, 아직도 아빠가 옆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전부 다 괜찮아 질거야.”

 늘 그렇게 말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주 오래된 카테이프에서 새어나오는 그 목소리는 가슴을 울리며 스며들었다.
 한참이 지나, 바깥의 빗소리가 가득 들릴 때 즈음에서야 치이익 소리와 함께 오디오가 카테이프가 끝나고,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노이즈 소리에 떠밀리듯 카페의 문에 발을 내디뎠다.
 냄새가 나고 있었다. …세상을 담은 냄새가. 언제인가 잃어버린 채, 되찾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옛 된 냄새가. 손을 아주 살짝 뻗어, 그 너머에 새겨져 있을 무언가를 보고자 하였으나.
 터억, 문은 문일 뿐, 몸은 통과하지 못했으니.
 손잡이에 손바닥을 대어보고, 이마를 가져다 댄 채, 우울하게 내리는 비 속에서 눈물을 흘리자니.

 “다 괜찮아질거야, 우리 공주님.”

 토옥, 머리를 감싸는 따뜻한 손길과 함께, 귀를 스쳐지나가는 목소리 한 마디에, 고개를 들었다.

 “…아빠….”

 꾸욱, 문에 가져다 댄 손이, 문을 긁으며 주먹을 쥔다.
 다 괜찮아질거야… 다 괜찮아질거야….
 한참이나 되뇌어봐도, 지쳐버릴 정도의 한마디 말 속에서, 손잡이마저 놓아버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 내리는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니.

 끼익….
 조용한 카페에 새겨질 정도로 강한 쇠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늦였죠?”
 “…아저씨….”

 함박 웃는 얼굴로 나타난 한기남은, 카세트오디오와 은하를 번갈아보며 보더니, 이윽고 우산을 기울이면서 내밀더니 말했다.

 “가시죠. 비맞으면서 가면 감기걸립니다.”
 “…….”

 한 가지 묻고싶은 것이 있었다.
 아저씨는 그렇게 빚에, 질기도록 쫓겨다녔으면서… 어떻게 금방 괜찮다는 듯이 웃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그런 질문도 무의미하게, 싱긋 웃어보인 한기남이 말했다.

 “다 괜찮아 질겁니다. 자, 가시죠!”

 …다, 괜찮아질거야.

 그 한마디에, 무심코 피식 웃어버린 나는, 고개를 들어 마주봤다.

 “그래요, 가요….”

 ─그래, 다 괜찮아 질거다. 늘 그래왔듯이…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다 괜찮아 질거야.

 은하라는 마지막 손님을 떠나보낸 허름한 카페에는 이제 카오디오라는, 끝내 나가지 않을 손님만 남았다.
 치이익거리는 노이즈 끝의 단 한 마디가, 그제서야 봄을 기다린 꽃마냥 소리내었다.

 “힘들어도 언젠가 이해해줄 사람이, 반드시 올테니까.”



 4월 12일, 은하의 생일이니 한 편 써보았습니다.
 나를 위한 당신의 자그마한 선물.
2024-10-24 23:36: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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