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3장 5화, 불합리

AI미스틱 2021-03-25 0

 ─절망이라 불리는 존재가 세계를 찢고 가라앉은지 1주일이나 지났다.
 부산은 이 혼돈 속에서도 간신히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으니, 유니온 총장 미하엘 폰 키스케와 광기 서린 과학자 하버트 웨스트 호프만의 출현.
 그리고 ‘언터처블’….

 “왜 하나같이 소중한 우리의 부산에서…!”

 새벽의 요정에게 한풀이를 하듯,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자괴하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왜, 부산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이 얼마나 커다란 불합리.

 “…아니….”

 눈물이 새어나왔다.
 생각해보면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20년도 더 된 그 날.
 그 날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된 부산 시민들은.
 그 날부터, 이미 이 일은 예건되었던 것이다.

 ─그래, 자그마한 소녀의 괴로움을 당연한 일이라며 눈감아 넘겼던 그 때부터….


‡     ‡     ‡


 언터처블을 쫓아가기를 벌써 며칠 째 이어나가고 있는걸까.
 거점에서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우주를 배경삼아 밤낮없이 튀어나오는 차원종들을 베고, 불태우고, 찢어내며 나아가지만, 그 앞에 있는 것은 더 많은 차원종과, 더 강한 차원종들.
 많고, 많고, 많다. 단지 많음 뿐이었으나, 그 많다라는 기준 하나만으로도 비정상적인 공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정신이,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불어나는 숫자에 버티지 못할 정도로 정밀성이 어긋난다.
 핑핑 도는 세상. 그러나, 그런 세상 속에서도, 그들은 싸운다.
 클로저이기에.
 그러나, 그런 그들의 싸움을 당연하다며, 당연히 해**다면서 부산 사람들은 바라본다.
 그것이 클로저니까.
 서로가 인식하고 있는 클로저로서의 인식이 엇갈려있었다.
 당연한 것과, 해야할 것은 틀리니까.
 허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차원종뿐만이 아니었다.

 까앙!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나타가 튕겨져 나왔으니, 무기를 회수한 나타가 비틀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뭐야? 넌….”

 붉은 짐승의 눈동자를 한 기이한 인간. 땅에 발을 대고 있는것도 아니면서, 팔과 허리힘만으로 나타의 전력을 튕겨내는 말도 안되는 괴력. 그리고 두 자루의 검 중 짧은 쪽을 꺼내든 모습.
 한 번도 본 적 없는 듯한 그 모습에 나타가 물으니, 은빛의 칼날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빛을 반사한 그녀가 답했다.

 “‘적’.”

 그어져내린다. 그 하나만 이해한 순간 몸을 던지자, 바닥이 살짝 녹아내릴 정도의 고열과 함께 작은 빛이 새어나왔다.
 불길이 아주 약한 빛을 얻은 채 내쏘아진 참격. 검의 궤도에만 의존해야하는 싸움의 앞에서 나타가 드디어 썰어버릴만한 적이 나타났다며 좋아하고 있노라니, 연락망을 통해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퇴해라, 나타. 네가 감당할 상대가 아니다.”
 “…알겠어, 알겠다고 꼰대! 쳇… 다음에 만날 땐 반드시 썰어주마!”

 그러자 그런 나타의 부르짖음에 의미 없다는 듯, 잔잔한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할 수 있다면.”

 지어진 웃음을 비웃음이라 생각한걸까, 순간 발끈한 나타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으나, 그보다 빠르게 하늘로 날아 사라진 여우는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승산 없는 싸움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해도 좋은 상황에서 돌아온 나타는 오히려 트레이너에게 역정을 냈다.

 “도대체 왜 날 말린건데, 꼰대!”
 “진정해라, 나타. 상대는 스스로를 ‘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정보를 방금 알게 된 이상 이 전장도 순탄치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뭐?”
 “마침 검은양 팀도 오고있군. …다들 불러와라, 나타.”
 “왜 나냐고, 썩을….”

 얼떨결에 가장 가까이서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 때문에 심부름꾼이 되어버린 나타가 신경질을 내며 10명의 팀원과 엘리스까지 데려왔으니, 트레이너는 지금부터 상대하게 될 ‘새로운 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곳에 오기 1주일 전, 이곳에 먼저 도착한 클로저 팀이 하나 있었다. 유니온의 징계위원회 산하에서 운영되는 하늘새 팀이었지.”
 “하늘새?”
 “그래. 녀석들은 ‘어비스’라는 새로운 개체를 쫓아서 이곳까지 왔지만 1주일 전의 사건 이후, 이곳 부산 어딘가에 있는 것은 확실하나 중상인지, 혹은 사망인지조차 모르는 채 지금까지 행방이 불명이라는군. 그리고 그들이 만난… 어비스와는 다른 새로운 세력이 있었다.”
 “어비스도, 차원종도 아닌 새로운 세력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인간’이지.”

 팀 ‘이자나미’.
 일본 최강의 클로저 중 한 명인 S급 클로저 ‘나즈키 유키호’ 및 4명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팀은 A급이 두 명이나 속해있는 팀으로, 현재 전력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아까와 같은 여자. 발을 공중에 띄우고있는 적 ‘나즈키 유키호’를 만나게 된다면 퇴각하도록.”
 “그 사람들도 총장과 같은 편인가요?”
 “총장과 같은 편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본쪽의 소식을 우연찮게 접했었다. …일본에 나타난 특S급의 어비스 개체 두명. 그 둘의 출현으로 인해 일본은 사실상 괴멸 위기라더군.”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어진 선택지가 둘.
 일본 국민 1억과 함께 융해되거나 산화할 것인지, 아니면 어비스와 협력하여 국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대신 다른 클로저들과 적대할 것인지.

 “이러한 사안은 현재 유니온 상부까지 올라가 제안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리는 모른다만… 확실한건 지금 이곳, ‘13번째 주인’이라 불리는 개체 ‘우리엘’이 나타난 곳에 일본에서는 ‘이자나미’ 팀을 파견했다는 것이지. 앞으로 그들과의 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압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저들도 인간일 뿐이야. S급 클로저라 해도 크게 다를 건 없겠지.”
 “너는 옛날과 달라진게 크게 없군.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는 저들을 상대할 수 없다.”

 제이의 제안에 트레이너는 20여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바알’ 사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일본 쪽에서는 부산의 알파나이트와 비슷한 영웅의 취급을 받고 있지.”
 “…대단하군… 군단장 하나를 완전히 격퇴하다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그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 중에도 네가 있지만. …어쨋튼, 상대는 군단장급 개체와 견줄 정도의 강자다. 만약 마주하게 된다면 퇴각해라. 퇴각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를 불러라. 알겠나?”

 ─아마 무승부가 될진 몰라도,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니, 무언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던 듯 이슬비가 물었다.

 “…그럼 하늘새 팀은 어떻게 된 걸까요? 살아있다면 모습을 비추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텐데….”
 “그런 그들의 행적을 쫓는 것도 임무의 일환이라 생각하면 좋겠지. 물론, 살아있다면 말이다.”

 이정도로 활동이 없다면 거의 죽은거나 다름없다고 단언하는 트레이너의 말에 혹시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출격하는 검은양과는 다르게, 늑대개는 그저 해야할 일을 할 뿐이라는 식으로 출격할 뿐이었다.
 당연히, 하늘새의 자취를 찾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이상하다.”
 “뭐가? 깡통.”

 어느 지점에 이르러선가 티나가 무언가 이상하다 발언하자 그것에 대해 신경질을 내며 나타가 반응했다.
 또 시원찮은 말이겠지, 하면서 넘기려던 와중.

 “차원종이 보이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부산 전역에서 발생하는 차원종. 이곳에서도 발생했다는 이야기에 출동한 것인데, 기이하게도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다 들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깨끗하고 풍화가 없다. 무엇보다 차원종이 나타났다기엔 마치 새것같군.”
 “…깡통이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같긴 한데….”

 나타의 눈으로 보기에도 비정상적으로 깨끗한 이곳에서, 헛바람에 굴러들어온 돌멩이에 혀를 찬 나타는 쿠크리를 휘두르며 물었다.

 “그래서, 돌아가자고?”
 “…아니….”

 그러나, 이미 둘 다 직감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비이상적인 상황에서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통신은 끊겼으며, 돌아가는 길마저 완전히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티나가 허수공간에서 냉장고를 떨어트리더니 나타를 집어넣고, 그 뒤에 숨었다.
 ─꽈앙!
 커다란 쇠음과 함께 냉장고가 붕 떠올랐으니, 준비해두었던 총으로 목표를 겨눈 티나가 물었다.

 “누구냐.”
 “…너희는, 누구지? 이곳은… 아직 출입 금지인데….”
 “물어보기 위해 그런 위협을 가한건가?”
 “평범한 사람도 화상으로 끝날 정도야. 위상능력자라면 할 말도 없겠지.”

 대화 속에서 뭔가 위화감을 잡은 듯, 총구를 천천히 내린 티나가 물었다.

 “…무기를 들고있지 않군.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야, 깡통! 그걸 니가 판단….”
 “싸울 생각은 없어. 하지만…돌아가는게 좋아. 여긴 아직 힘싸움 중이니까….”
 “힘싸움?”
 “…글쎄. 하지만 이곳은 아직 오지 말아줘. 우리같이 근시간에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의 법칙에 의해 망가질지도 모르니까. 돌아가야할 이유가 있잖아?”
 “이곳의 법칙….”
 “그러니 지금은 돌아가. …이것과 함께.”

 무언가를 던져주었으니, 그것을 받아든 티나는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그것이 하나의 데이터 파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미 선제공격을 받은 이상 물러날 생각은 없었는지, 쿠크리를 빙글 돌리며 앞으로 나선 나타가 말했다.

 “방해하지 마, 깡통… 난 되갚아줄 뿐이야!”

 동시에.

 “시간이야, 잘가.”

 ─솨아아… 빗소리와 함께 마치 환각에서 깨어난 듯 싶었다. 깨끗했던 거리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망가지고 일그러져 있었으며, 차원종들은 반으로 잘려나간 채 지면에 널브러져 있었다.
 단면에서 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손끝 감지 센서로 인지한 티나는, 이정도면 충분한 수확이라며 돌아가기를 요청했고, 그럼에도 전의를 사그러트리지 못한 나타는 괜히 발길질을 하며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짜증을 내며 나타가 먼저 돌아갔고, 그런 그의 뒤를 따라 티나가 따라나섰다.
 이내 돌아온 트레이너에게 이미 전부 썰려있었다고 말하는 나타와 달리 티나가 말하기를.

 “칼로 베인듯한 차원종들의 잔해가 있었다. 거친 단면을 생각해본다면 좋은 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이 남아있었다. 불 계열 능력자라고 유추가 가능하다.”
 “그렇군. …또다른 특이 현상은 없었나?”
 “또다른 특이 현상….”
 “아, 그거? 이상한게 있더라고. 갑자기….”
 “말주변이 없군, 나타. 내가 설명하겠다.”
 “…알겠어, 알겠다고!”

 표현력에 한계가 있던 나타와는 다르게, 빠르고 간결하게 결말만을 말한 티나의 말에 무언가 짐작가는 것이 있던 것인지 트레이너가 말했다.

 “아마 실종된 하늘새 팀의 일원일거다.”
 “어쩔거야, 꼰대? 오지 말라했는데.”
 “가지 말라 해도, 그곳에 차원종이 나타난다면 가**다. 우선 다음 지역에 또 나타났으니, 그쪽부터 가도록.”

 ─또, 출격.
 하루종일 출격만 하고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출격해**다는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나타는 출격하기 시작했다.
 그래, 결국 이럴 수밖에 없으니까.

 “하늘새… 살아있던건가.”

 그들이 모두 떠난 뒤, 하늘새의 자료를 보며 오래 전 만났던 한 남성을 떠올린 트레이너가 홀로 읊었다.
 그때는 서로가 적으로 만났었건만, 이번에는 아군인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싶었다.
 한때 가로막았던 자와 함께 싸워**다는 것은.


 반면, 세하와 제이는 서로 등을 맞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도끝도없이 몰려오는 말도안되는 차원종들. 지키고 있는 것 뿐인데도 불구하고 저것들은 계속해서 덤벼든다.
 과연 만들어진 괴물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생성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겠지.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또다시 몰려오는 차원종들의 모습에 세하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정말이지, 이젠 게임할 힘도 남아있지 않다고요.”
 “그래도 일어서, 동생. 우린 클로저니까.”

 ‘클로저니까’. 사명이 등을 떠밀기에 일어선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단지 어리며, 지위에 비해 경험과 실력이 모자란 한없이 어린 애들일 뿐. 그걸 단지 의욕만으로 밀 수만은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래. 녀석들이 점점 거리를 두면서 나타나고 있어. 우리를 유인하려는건가? 호프만이 만들어낼만한 녀석이군.”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세하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제이는, 저 앞쪽으로 나가기엔 무리가 있다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을 지키는게 임무야. 잊지마, 동생.”
 “알았어요. 아저씨는 괜히 주먹 휘두르다 허리빠지시지 마시고요.”

 서로간에 덕담…은 아닐지라도, 기운을 붇둗어줄만한 말 한마디를 해준 뒤 다시금 싸우기 시작했다.
 유인책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적들은 아예 전법을 바꾼 것인지, 계속해서 몰려오기 시작했고 한동안 기습이 잘 없었던 것을 암시하듯, 벌레떼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군. 옛날이 떠오를 지경이야.”
 “그때는 어땠는데요?”
 “지금보다 많았지. 많고… 많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그만하지. 적이 코앞이야, 동생.”

 이야기를 일부러 회피하는듯한 말에 억지로 그의 신경을 붙잡아두고싶지 않았던 세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적에게 포격을 날렸다.
 개전의 신호임과 동시에, 이번에는 기필코 끝장내겠다는 차원종의 의지가 엿보일 지경의 공세.
 끝이고 나발이고, 해일처럼 몰려오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제이가 세하에게 말하길.

 “지원요청해, 동생.”
 “아저씨는요?”
 “막아야지. 몇마디면 충분하잖아?”

 그 말에 긍정을 표하지만, 앞으로 몰려오는 벌레떼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마당이었다.
 버틸수나 있을까? 의문을 가지며 버텨보았건만 숫자 속에는 역부족이니, 두 명이 막기에는 너무 무리가 컸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타아앙!

 시원한 소음과 함께 총탄이 벌레의 머리통을 뚫어버렸으니.

 “지원입니다, 요원님.”

 처절하게 기다리던 시간 속에서 간신히 도착한 특경대들의 지원 사격이었다.
 위상관통탄, 탄환당 1천만이라는 말도 안되는 금액이라고는 하나 부산시에서는 과거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저하게, 철저하게 놈들에 대해 조사했다.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질기며, 단단하다고는 하나 한계를 뚫은 힘에는 뚫리는 법.

 “고질량 물리 탄환입니다. 위상관통탄만큼의 효과는 안난다지만 가격은 1/100이죠.”

 위상능력자도 피가 나올 수 있다며 말하니 상상만해도 끔찍했는지 세하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희를 쏴주지만 말아주세요.”
 “걱정마십쇼, 요원님을 쏘진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협력하는 관계니까.
 고질량 물리탄이 자신들에게 효력이 있음을 인지한 것인지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한 차원종들을 보며 간신히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쨍그… 쨍….

 “아저씨.”
 “유리 깨지는 소리?”
 “네. …무슨 소리일까요?”
 “글쎄… 확실한건 좋은 소리는 아니라는 점이지.”

 그리고 그 말이 정답임을 입증하는 듯, 불길하게 깨지는 소리는 다른 어디도 아닌 배경처럼 여져겼던 특이한 장소였다.
 부산에는 없다고 했던 그곳. 1주일 전의 일로 인해 ‘불합리한 세계’가 생성된 그곳이 천천히 깨어지고 있었으니, 보고만 있던 것에 천천히 금이 가고, 금이 커지며, 이윽고 완전히…

 …그래, 터져나왔다.

 검은 줄기가 상공을 뒤덮었고, 온 세상을 암흑으로 덮어버릴 것만 같은 커다람 속에 혼란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마치 그것이 환각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빛이 되돌아왔다. 태양빛을 잃어버린 0.1초조차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 아주 짧은 시간만으로도 부산 시민들. 아니, 전 세계는 공포에 떨지도 모르지.
 되도록 전자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후자라면, 이 지구를 덮어버렸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요원님들. 보내온 쪽은… 하늘새 팀이에요.

 “…그렇다는데요?”
 “잘 된거지. 일단 살아있다… 아니, 메시지라 했으니 살아있는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말라며, 주변 안전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세하에게 제이가 말하길.

 “아무래도 다 처리한 것 같은데? 동생.”
 “그렇네요. …돌아가죠.”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발생한 특수한 반응에 앨리스가 레이더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위상력의 파장이 세 개, 부산 각지로 흩어지고 있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휠 오브 포츌과 유사한 기기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건… 리버스 휠…? 아니….”

 시대가 지난 옛 함선. 공적을 세운다 한들 징계위원회 산하에서 움직이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지급해줄 의사따위 유니온에게는 없었으니까. 아마 퇴역하기 직전의 전함을 개량하고 개량해서, 또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겠지.
 살아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에 담아두고는 있었건만, 진짜로 살아있었다는 사실에 문득 다행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늘새…군요….”

 하늘새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는 단 한 통.
 어디에 있었는지 연락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는지, 수신일은 1주일도 전이었으니.
 그들이 사라졌던 순간과 완벽히 일치했다.
 메시지는 단 하나.

 ‘부산을 부탁합니다.’

 “…정말….”

 한결같은 클로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이곳까지 오게 만드는 것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총장이 그 뒤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내 클로저들을 소집하기 시작했으니.

 클로저들에게 요청할 것은 두 가지.

 하늘새의 ‘리버스 휠’ 회수와, 흩어진 세 위상력을 추적하는 것.

 “이상입니다.”

 ─하늘새를 진지하게 추적해야만 한다.
 그들이 이곳에서 가지게 된 정보와, 그들이 이곳에 온 정보. 그리고… 목적이 같다면.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
 하늘새의 정보가 완벽히 일치한다면,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전력이 되겠지.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될 것이며… 동시에 커다란 전력이 될 것이다.

 물론, 일시적이겠지만….


‡     ‡     ‡


 “**, 또 너랑 같이 가는거냐?”
 “어쩔 수 없잖아, 불평이라면 트레이너 아저씨에게 하라고.”

 이번에도 세하와 함께하게 된 나타였지만, 비단 세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안가로 떨어진 하나의 반응을 쫓기 위해 출동하는 수는 약 세 명이었으나, 이쪽만큼은 네 명이었기에 나머지 두 명중 한 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부~!”
 “너도냐!”

 서유리였다.
 절망할지도 모르는 팀의 상황이었지만, 도대체 그 셋을 엮어보내는 것은 무슨 짓인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가는 곳이 굳이 상공이 아닌 해안 쪽이라면, 이 세 명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굳이 한 명을 더 넣은 이유는 뭘까.
 무작정 앞으로만 돌진하려는 나타를 막으려고? …뭐, 현명하다면 현명하겠지.

 “나타, 앞으로 같이 행동할 전우다. 사이좋게 지내라.”
 “깡통, 너도냐?”
 “너희 셋만 보내기엔 후열과 원거리가 불안하다. 서유리의 권총도, 크게 도움이 되진 못할거다.”
 “윽.”

 명치를 찌르듯 들어오는 그 사나운 말투에 서유리가 식은땀을 흘렸다.
 동시에.

 “굳이 우리 넷을 보내는 것은… 그 해안이 이곳 부산과 가장 멀리 떨어져있고, 바다와 가장 가깝기 때문일거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힘이 필요할거다. 그렇기에 4명이 된 것이지. …저쪽으로 떨어진게 뭔진 몰라도, 사람이 아니길 바라야겠지.”
 “…인간이겠어, 설마….”

 그리고 출격했을 때.
 괜히 4명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서야 인지했다.
 시내에서 특경대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다른 두 팀에 비해, 특경대의 지원을 바랄 수 없는 지형을 가지고 있는 이곳 해안의 컨테이터의 산은 뚫는건 물론이요, 나아가는 것조차 예사롭지 않았으니 필시 흩어진 그 셋에 대해서 호프만이 흥미를 가진 채 움직인 것이겠지.
 그 중에서도 가장 먼 이곳이 회수 확률이 가장 크다는 것쯤은 그 역시 알고있을 일이고.

 “…꽤나 멀리 왔는데, 보이지도 않는데요?”
 “좌표가 더 멀리 있다. 해안만쪽이다.”
 “쳇, 쓸데없이 멀리 떨어져서는….”

 쓸데없는 일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내로 떨어진 둘에 비해 멀리 날아갔다는 것은 그만큼 뭔가가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움직이는 네 클로저를 막아서는 차원종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다른 잡생각을 하고 있던 것인지, 위에서 떨어지는 컨테이너를 인지하지 못한 이세하에게 서유리가 외쳤다.

 “세하야, 위에!”

 서둘러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 내용물이 없는 빈 컨테이너라 해도 질량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데….

 ─쩌엉!

 갑작스레 반으로 갈라진 컨테이너가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지나가고, 동시에 나타가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이냐, 나타.”
 “…뭐야, 저건….”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은 감정도, 의식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였으며, ‘공포’를 유발하는 어떠한 물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단지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전장을 지배하는 귀신이었다.
 온 세상을 가득 채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그 ‘흑색’의 모습은 깊고도 어두워서 의식을 잡아먹으니, 빠르게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의식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티나 역시, 그것을 보는 순간 센서가 망가지는 듯 싶었다.
 인간 형체의 자그마한 체구를 가지고있는 주제에, 이만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걸까.
 센서로 바라보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차원종을 압도할 정도로 그것이 크고, 거대하게 느껴진다. ─강하게 와닿는 감각은 살아있지도 않은 몸에 생기가 있다는 듯, 두뇌가 가열되게 만들었다.

 “…누구냐.”

 철컥, 하며 조준을 해보았으나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듯, 총신을 붙잡은 무언가의 팔은 종잇장처럼 철을 구기더니, 이윽고 물러난 그녀에게 망가진 총을 내던졌다.

 “특경대 아저씨…?”

 아머드 특경대의 아머를 입고있는 그것은,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괴력을 내고 있었으며, 검은 것에 비하면 덜하지만 그 역시, 차원종을 한참 웃도는 존재감을 드러낸 채 당당하게 그곳에 서 있었다.
 이윽고 아머를 입은 쪽에서 입을 열었으니.

 “우리가 회수할 것은 저 ‘불합리성’인가?”
 “아뇨, 우리가 할 것은 다리 쪽에 있을 ‘정의되지 않은 법칙’입니다.”
 “그런가?”

 대화. 사이에 놓인 네 명의 클로저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한 대화 속에서, 세하는 알 수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컨테이너를 잘라낸 것은 저 검은 무언가이며, 저 뒤의 누군가는 결코, 특경대라 부를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도대체 누가, 저 안에 있다는 말인가. 위상능력자? …총장의 수하가, 이토록 강한건가?
 허나.

 “그럼 저 불합리성은 어떻게 처리할거지? …훗날 화근이 될지도 모른다.”
 “고작해봐야 인간… 아버지께 해가 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군요.”
 “…확실히. 하지만, 가능성이 단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여기서 근절해내는 것이….”
 “아버지의 명령은 단지 ‘우리엘’ 뿐. …저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시죠.”
 “음….”

 납득을 한 것인지 돌아가려는 그들의 분위기 속에서 숨조차 쉬기 어려울 찰나, 등 뒤를 점거하고 있던 아머드가 떠나고, 동시에 천천히 앞으로 다가온 검은 그것이 말했다.

 “당신들 처분을 어떻게 할지… 조금 생각을 해봤는데.”

 ─그 대화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던 빈틈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파동이 몸을 쿡쿡 찌르는 것이, 바늘로 계속 찔러대는 것만 같아서 괴로웠다.
 허나.

 “역시 당신들이 없으면 곤란하니까.”

 이세하의 앞까지 와서는, 그와 눈을 마주친다.
 붉은 빛으로 강렬하게 물들어있는 그 눈동자는 핏물보다도 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이 깃들었는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인 공포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무기를 떨어트리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그제서야 사라졌다.
 사라지는 속력도 예사롭지 않았으니, 눈으로 간신히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수준이었다.

 “아까 그건… 도대체….”

 한참이나 굳어있던 상황에서, 간신히 내뱉은 한 마디 속에 모두의 긴장이 흐트러졌다.
 그들이 이곳에 얼마나 있었던 걸까, 시간의 흐름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으며, 주변엔 언제 처리한지도 모를 차원종들의 시체만 가득 쌓여있을 뿐이었다. 아니, 나타의 검흔보다 날카로운 상처를 보면 그들이 독단적으로 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게 총장의 수하라면….

 “우선… 앞으로 가야겠지. 우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떨어진 반응을 찾는거다.”
 “…그래야겠지.”

 그 말에 나타가 긍정하며, 팀이 간신히 몸을 다스렸다. 떨리는 손끝으로 다시 무기를 붙잡고, 해안을 가로질러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차례 극한의 공포를 마주한 상황에서 더 나아가기란 무리였는지, 그 흑색이 있었을 자리란 지라마다 쌓여있는 차원종의 시체를 마주할 때마다 한 번씩 숨을 삼키곤 했다.
 그럼에도 나아간 길의 끝에는, 자신들이 그토록 찾던 ‘반응’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반응은 한 명의 청년이었으니, 황금색의 눈동자와 칠흑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마주본 적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본 적 있는 위화감이 들게 만들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붙잡아 묶어내렸으며, 손에 봉을 쥐고, 차원종의 시체로 바리게이트를 이룬 채 휴식을 취하던 그가 말하길.

 “…정말이지, 뭘 본 건진 몰라도, 그 정도로 울먹이면서 몸을 떨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안녕하십니까, AI미스틱입니다.
 누구를 찾았는지는 대강 짐작하셨겠지만, 일전에 나온 설정과는 다른 외형 묘사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실겁니다.
 당연합니다. 3장에서 변화했으니까요.
 이전 설정은 2장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3장의 변화 내용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번 화에서 의문이 드시거나 오류가 있다면, 혹은 오타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언제나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2024-10-24 23:36:2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