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3장 4화, 천사 사냥 下
AI미스틱 2021-03-19 0
“본래라면 사형─아니, 그 이상의 처벌. …그런 내 죄를 사해주겠다고?”
오세린이 제안한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지금 당장 부산에 나타난 현상. ‘오메가’들에게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많은 전력이 필요했고, 그 전력은 지금, 한국의 신서울 지부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었다.
“당신 독단적으로 그런 일을 할 처지는 아닐텐데.”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현 상황을 보라.
클로저 대부분이 부상을 입었으며, 활동 가능한 부산의 팀이라고는 하늘새와 시궁쥐 뿐. …얼마나 버틸지 모른다. 게다가 적들은 인질까지 붙잡고 있다.
불안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희생을 감수할 책임이 따르니, 그 책임이 설령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거대하다 해도,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러니 연하은 씨. …한 번만 더, 인류를 위해 싸워주세요.”
그렇게 간곡히 부탁하니, 그 말을 들은 우리엘은 뭐가 웃긴지, 허공에 메마른 웃음소리를 풍겨내더니 이윽고 말했다.
“인류를 위해서…라….”
─당신이 보기엔.
삐걱인다. 세상이 삐걱이고, 허무의 관이 비틀어진다. 세계를 찢는 검은 힘이 발산되면서 기관 자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위상력이라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그것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을까, 쨍그랑거리며 깨져나가는 유리창과 스파크를 일으키며 다운되는 제어기구들. 그 사이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세린은 무언가 다짐한 듯 입을 다물고선.
“내가 인간에게 입은 상처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는 건가?”
“아니요, 당신의 마음… 원치 않았지만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렇기에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누구도 죽지 않고, 누구도 울지 않는 세상.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는다만, 적어도 어린아이만큼은 해맑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말했건만, 제어구가 붕괴되는 순간 사라진 우리엘은 오세린의 얼굴 앞에 손을 들이밀고는 말했다.
“우린 너무 먼 길을 걸어왔어, ‘유니온’.”
“저흰 유니온이 아니에요. …클로저죠.”
살의가 새어나오는 눈에서 검은빛이 비치는 그 순간.
“윽… 으큭….”
빠직거리는 강한 전압, 그리고 뇌의 과도한 압박.
─면류관의 개량 완성형 기구 긴고아, 그리고 처리부대에게 달아놓는 제어용 초커 ‘C’ 타입.
연하은, ‘우리엘’이라는 재해를 다스리기 위해 그녀의 몸에 박아넣은 제어기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효과는 있다는 듯, 괴로운 모습을 보인 우리엘은 목에 있는 초커를 꾹 붙잡았으나, 떨리는 손으로 출력을 올리는 오세린의 모습에 허공에서 발버둥 치더니 이윽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미안해요, 하지만…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인간… 인간! 또, 또 인간!! 또!!”
배신감.
거래도, 제안도 아닌 종속과 억압, 그리고 속박.
개목걸이를 채워놓고, 머리에 긴고아를 씌우고.
그렇게 또다시 인간은.
날개조차 잃어버린 천사를 한없이 지옥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인간!!”
떨어져 버린 채 괴로워하는 하은을 내려다보며, 그녀 자신도 괴로움을 차마 감추지는 못한 것인지,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꾹 붙잡은 손으로 괴로움을 토로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래요, 우린 결국… 너무 멀리 와버린 거예요.”
상처 입은 소녀를 기른다.
상처를 입히면서 기르고, 기르고, 기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마치 역할 다한 사냥개처럼 팽개친다.
얼마나 잔혹한가, 얼마나 그들이 어긋나 있는가.
분명 다른 방법이 필시 존재할지언데, 그런데도 계속해서 상처입힌 채, 전장에 나가기를 촉구하는 자신들이 너무나도 밉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세상에 합리화를 시키며, 소녀의 목줄을 잡아 이끈다.
“더 이상 저항하지 않으시길 빌게요. 저도… 이건 사용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전원이 오프되자, 고통을 중화하듯 숨을 거칠게 내쉬며 온몸을 경련한다. ─그것은 도대체 왜, 일까. ‘죽은’ 몸일 터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건… 그녀만이 아는 진실이겠지.
리모컨을 손에 강하게 쥔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연구실의 문이 폭발하듯 찢어졌다.
“오세린 요원!!”
“…유주 요원님.”
특S급 개체 우리엘을 붙잡은 장본인 중 하나, ‘유 주’. 실력만큼은 S급이나, 상층부에 대한 명령 불복종으로 인해 징계위원회 산하로 내려가 평범한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거친 회오리 같은 위상력의 폭풍을 일으키며 나타났으니, 그 위상력의 폭풍에 정정당당하게 맞선 오세린이 말했다.
“지금 부산에서 일어난 일은 들으셨겠죠.”
“어째서 그래야만 한 거지?”
“오메가 나이트… 총장이 한 것이 사실이라면, 세계 최고의 클로저들이 그의 아래에 있을 거예요.”
─그 외에도, ‘현단아’의 클론 역시,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겠죠.
“그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대항을 위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 질문에 오세린은 고민했다.
정의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가? …당연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한 일이라면…요.”
“…당신도, 결국 유니온의 사람이라는건가…?”
“아뇨,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는 속죄이기도 해요.”
─부산에게 입힌 해악, 그리고 퍼트린 절망.
그녀가 행동한 모든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공포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괴로움이었으니, 그녀에게 단 한 번, 속죄의 기회를 주려고 했을 뿐이다.
“이번에는, 부산을 위해 싸워줘요.”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끝내 우리엘이 입을 열었다.
“──.”
‡ ‡ ‡
하늘을 수놓듯이 펼쳐진 불합리한 힘의 창날 아래, 현단아는 그저 그것을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공간을 다룬다고는 해도 어차피 인간. 다룰 수 있는 힘의 한계는 확연히 보였으니까.
허나.
“이해했어요. ─마그네틱 필드, 약하더라도 하늘을 덮어주세요.”
“…뭐?”
그와 동시에 날아온 번개, 유주의 마그네틱 필드가 하늘을 덮은 창을 붙잡았으니, 마그네틱 필드에 걸린 그 순간 창이 가진 효력이 발생해 거대한 흑색의 구를 형성시켰다.
빛마저 빨아들여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인력을 가진 블랙홀이 다수. 그러나 그 인력은 지상에까진 미치지 않았고, 우리엘은 일어난 현상에 대해 이를 부득였다.
창처럼 만들어서 창처럼 휘두를 수 있다면 그만큼 압도적인 힘은 없겠지. 허나, 그녀는 처음 힘을 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직접 창을 잡은 적도, 하물며 휘두른 적도 없다. 단지 날리기만 할 뿐.
조건은 ‘어떤 물체에 닿을 것’.
“그리고 닿는 순간, 일정 범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불합리한 인력의 ‘블랙홀’이 발생한다. ─그것이 당신이 사용하는 ‘중력나선창’.”
“…꼬마가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구나.”
“나는 이제 꼬마가 아니야. …작년에 보았던 나와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 나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니까.”
“후후… 그건 어떨까? 유주가 왔다고는 하나 나는 엄연히 어비스의 ‘주인’. 너희 둘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텐데. …일그러져라, 중력검.”
삐걱이며 세상이 울부짖는다. 색이 존재하지 않을 세상에, 중력을 상징하는 검은 색의 힘이 모습을 드러내며, 동시에 회오리에 빨리듯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꼬마….”
현단아의 ‘공간 왜곡’. 하늘새의 둥지에서부터 계속해서 새로운 힘을 추구해오던 단아는, 수없이 오랜 시간동안 훈련 프로그램을 반복했고, 끝내 작년의 그 만남. ‘지옥의 변견’과의 전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신의 하위호환이 일정 지점의 공간을 제어할 수 있다면, 자신이 못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간 지정, 왜곡.
중력이 공간을 일그러트린다. 그렇기에 공간 지정이 불안정하다. 그런 과학적 법칙따윈 씹어먹어도 좋다. 자신만의 고유 좌표를 세계에 덧씌운 채, 덧씌워진 좌표를 기울여서 세계에 적응시킨다. ─세계가, 단아의 고유 좌표에 얽매이는 불합리한 힘이었다.
“자, 그럼 힘은 어느정도 맞는 것 같고.”
부웅, 봉을 휘두른 단아가 미소를 지으니, 우리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압도적인 힘. 그것이 자신과 그들간의 차이라 여겨졌건만, 현단아라는 존재가, 그 능력이 우리엘을 따라오게끔 해준다.
이 무슨 불합리한 능력인가. 세계의 별을 가라앉힐 힘과, 세계 자체를 일그러트리는 힘. 둘 중 어느 것이 더 강한지에 대한 승부…일까.
아니….
“역시 이자나미 팀은 여우를 빼면 쓸만한 쪽은 없던 건가? 이렇게 빠르게 널 통과시켜줄 만한 녀석은 아니라 여겼는데….”
─유주라는 또 다른 변수를 묶어두고 단아를 먼저 처리하기 위해서 그들을 나눠서 보냈는데, 시간끌이조차 못할 줄이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어차피 이길 걸 기대하지도 않았고… 아니, 그 이전에.
‘저쪽도 하이패스인가?’
3명을 보내놨더니 다섯 명은커녕 한 명에게 붙들려서 막지도 못하고 있는 쪽은,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하긴, 자신과 같은… 편린이라고는 하나 ‘별’의 힘이니까.
“뭐, 좋아. …어차피 기대조차 안 했으니까.”
그럼 이제….
“이 지긋지긋한 ‘악몽’의 끝을 내자.”
그런데 어째서인지.
유주의 눈에 비치는 우리엘… 아니, 연하은의 눈동자에는.
증오보다 슬픔이, 분노보다 가련함이.
절망보다… 희망이 더 강하게 깔려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절망을, 너무 얕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의 흑색이 거두어질 때, 하얀의 잿더미같은 칼날과 나즈키 유키호의 은색 칼날이 교차했다.
쩌엉! 하는 강렬한 소음과 함께 퍼져나가는 일렁임은 그 둘이 퍼트리는 열기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게끔 해주었다.
“…강해, 당신은….”
“그래요, 저는 강하겠죠.”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강함을 받아들인다.
강자로서 비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아무런 부정없이 받아들이는 것. ─강함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이니.
일본 최강일지도 모르는 인간과 칼을 나누는 것만큼, 소름 끼치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당신은, 저보다 약하군요.”
카각… 다리 힘은 하나도 없이, 단지 팔과 어깨, 허리힘으로만 나아가는 주제에 두 다리로 굳건히 버티는 하얀을 밀어내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 이것이 S급 클로저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핑글, 칼날을 비틀며 튕겨내듯 쏘아내니, 허공을 날아 저 너머에서 둥실 떠오른 그녀가 말하기를.
“하지만 이런 강함, 일본에도 많이 없을 정도죠.”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차원문이 많이 없으니까?”
“글쎄요, 그건 어떨까요.”
사방에서 찔러들어오는 날끝을 칼날로 튕겨내니, 핑글 돌이 아래에서 올라오는, 단두대의 역날을 피하고, 검을 휘두른다.
검끼리 맞부딪히는 철의 쇠음과 함께 다시금 벌어진 거리 사이에서 자세를 다시 취한 나즈키 유키호가 말하길.
“하지만 우리도 질 수는 없어요. …우리는, 우리나라의 운명을 걸고 이곳에 왔으니까.”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어.”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작은 한 몸 불태워, 잿더미가 되어서 조국을 지킬 수 있다면.
“1억 넘는 인구를 위해 제 목숨 하나라면, 싼 거겠죠.”
“그런─”
“이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에요, 하 얀.”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로부터, 불길이 새어 나온다.
열기가 가속되며, 불타오르는 뜨거움에 속이 타오른다.
“일본 도쿄 지부 ‘이자나미’ 팀 리더, ‘붉은 여우’ 나즈키 유키호. …전력을 다해, 적을 배제하겠습니다.”
침을 삼키는 순간 증발하듯 속이 뜨거우니, 그녀가 진심으로 베러 올 것을 직감한 하얀이 칼끝을 다리 바닥에 몇 번 튕기었다.
캉, 캉… 그와 동시에 전신의 끝자락부터 균열이 일어났으니, 칼날 끝을 형성하는 자색의 불길이야말로 그녀의 힘. 마치 절단되듯 파고드는 칼날을 들어 올리니, 그 자색 불꽃을 바라본 나즈키 유키호가 나지막히 소리를 흘렸다.
“쉽지, 않겠네요….”
─나즈키 가家 카구라.
─하 얀 결전기.
‘여우 그늘길’
‘자색 홍련紅蓮’
연꽃의 무늬와 함께 펼쳐지는 강렬한 자색의 불길과, 낙엽에 가려진 듯한 그늘밭 길의 부드러운 불길이 맞부딪히며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으니, 이 충격파에, 이 열기에 강화 바리게이트가 일그러지는 등, 다리에 변화가 일어났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열기에 녹아내리는 자면 위에서 떠 있는 나즈키 유키호와는 반대되게, 계속해서 지면을, 융해되어가는 아스.팔트의 지면을 내치며 전진하는 하얀의 검격을 바라보며 순간 밀리는 듯 싶었다.
─오싹함이 밀려올라온다.
그리고 동시에, 흘려보내듯 칼날을 비틀어 하얀의 앞길을 터주어버리니 그대로 나아간 하얀은 바리게이트를 뚫고 나아가 그 뒤에 마련되어있던 바리게이트용 차량마저 부서버린 다음에야 멈추었다.
“저 자색 불꽃… 어디선가 익숙하다 했는데, 설마 진짜일줄은.”
자색 불꽃, 본래 푸른 빛을 가질 위상력의 불꽃이 자색빛을 띄는 이유는 한심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것은 자신의 피를 불태우는 금기.
불꽃을 다루는 계열의 능력자들이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두려워 방어기제가 발동되어, 멈추어야 정상일 터인 그것을… 자기 정신 내부에 있을 세이프티를 억지로 풀어낼 정도로 강한 감정과 격렬한 의식 속에서 끝내 자체적으로 풀어버렸다는 건가.
인간의 생명이 깃든 불꽃과 맞부딪혀서, 단지 힘뿐인 불꽃이 이길 가능성은 제로. 위상력만이 잠든 나즈키 유키호의 불꽃만으로는 저 강대한 ‘생명’의 징표를 이길 수 없다.
허나, 그렇다 해서 다리를 순순히 넘어가게 둘 수는 없었기에 열기를 칼날 끝에 담아 그대로 그어내니, 불꽃의 검격이 호를 그리며 날아가, 차량을 융해시키며 그 너머에 있을 하얀에게 닿았다.
콰앙! 강렬한 음색과 함께 잘린 차량이 무너져내렸으니, 그 너머로 살짝 보이는 하얀의 모습은 예상했다는 듯, 정확히 나즈키 유키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동시에 하늘을 크게 날아간 나즈키 유키호가 고공에서 낙하하며 무기를 휘두르니, 쇠의 음색과 함께 부딪히는 열기가 또다시 도로를 녹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순수한 힘끼리의 대결이었는지, 아래에 있던 하얀이 허공으로 내치듯 튕겨내고, 그대로 다시 앞길을 가로막은 나즈키 유키호가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간절하게 만든 건가요.”
인간이 닿을 수 있는 힘의 한계. 그녀는 분명 그 끝자락에 있는 인간 중 하나임이 틀림없겠지.
그런데도 더욱더 강함을 원하고, 탐하며, 그렇게 해서 도착한 끝자락에 있는 것은 오직 자신에 대한 강한 학대. 자학과 자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을 저지르면서까지 닿아야만 했을 이유가 있을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였을까?
─도대체 무엇이.
“깊게 생각할 게 뭐가 있어.”
나즈키 유키호의 생각을 끊어내듯 말을 한 하얀이, 그녀의 너머를 향해 칼끝을 겨누며 말하길.
“저 너머에, 하은이 있으니까.”
─그것만을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달려왔으니까.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나즈키 유키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인류의 보물, S급 클로저에 한없이 가까운 인간의 한계에 서 있는 자. 자신과 같은 선상에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더욱더 힘을 강구하고 갈구하는 이유가 고작 해봐야 사람 한 명을 위해서라니.
…아니.
고개를 저은 나즈키 유키호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눈동자로 하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만이 이유라면, 그렇기에 더욱… 인가요.”
“그러니까 마지막이야. …비켜줘, 나즈키 씨. S급 클로저를… 여기서 베어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순간 그렇게 말하고자 했지만, 이쪽은 전력이 약화되어있는 상태였으며, 저쪽은 아직 전력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검의 불길이 짙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나즈키 유키호는 그 점을 강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승산이 더욱 내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적어도 두 다리가 멀쩡했더라면… 그녀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나즈키 유키호가 말을 멈춘다.
무언가 연락을 받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허공을 한 차례 베어낸 뒤 칼을 집어넣은 그녀가 말하길.
“다음에도 이런 행운이 따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말과 함께 하늘로 사라졌다.
“…‘행운’, 이라고…?”
그 말에 하염없이 눈만 깜빡이던 하얀은, 간신히 자신이 가야할 곳을 떠올린 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비치는 것은.
“…뭐야, 저게….”
허공에 떠오른, 흑색의 찬란한 ‘별’들… 아니….
‘별’을 가장한, 세계의 붕괴, 였을까.
이 날… 창공을 나는 하늘의 새는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부산시의, 사용되지는 않는다고는 하나 낡은 마천루의 회색 도시가 통째로 모습을 감추었고.
하늘마저 찢어진 채 일그러짐을 유지한 그 세계는, 이 세상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듯, 물리법칙도, 과학 법칙조차도 망가진 채.
그저 일그러져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잔혹하게 들려오는 한마디 말 속에서 트레이너가 직감했다.
지금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인간’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랗고 깊은 어둠이 부산에 내려앉아, 절망을 퍼트리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을 비틀어버리는 ‘흑색’으로 찢어 내린 세계는 하나의 ‘우주’로 돌변했고, 동시에 스스로 새로운 법칙을 창조해내어 이 세계에 속박되지 않는 개념을 만들었으니.
‘우리엘’이 가진 ‘절망’이라는 것이 가진 힘의 크기는 ‘흑색’이라는 개념으로 표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실패의 뒤를 잇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절망을 맞이했던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환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과도 같은 빛의 목소리 속에서, 그들은 무언가를 이해하고 인지했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천사의 날개를 잡아 뜯었다.”
기록에 나와있는 ‘흑색’.
아아, 처음 그녀와 만났을 적이 떠오른다. ─온 세상이 회색으로 죽어들어가는 흑색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건만, 그것이 언제부터인지 황금색으로 비치기 시작하더니.
스스로를 심판자라 칭한 이의 앞에서 끝내 검은색으로 물든 여섯 갈래의 날개를 펼쳐내었다.
그리고 끝내 수많은 희생을 만들어내고야 말았으니, 그녀를 붙잡고 했던 다섯 마리의 검은 양이 피투성이로 돌아왔다.
“인류의 불합리가 법칙의 불합리를 얽매었으니, 그녀는 날개를 잃었다.”
그 데이터 베이스에 정확한 것은 기재되어있지 않았으나, 확실한 것은 그 ‘흑색’이라는 것이 정말 확산되어 퍼졌으면, 이 세계는 종말에 가까워졌겠지.
우주는, ‘확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산에서 천사를 붙잡을 기회를 엿본다.
“우리는.”
─지금부터 천사를 끌어내린다.
이제는 더욱 멀리, 그리고 높이 올라간 천사를.
그들은 붙잡겠노라 선언한 채.
데이터베이스가 종료된다.
총장은 이미 부산으로 도주한 지 오래였으며, 이곳의 일도 곧 끝나니….
“어쩌면 볼지도 모르겠군.”
‘절망’이 만들어낸 ‘불합리’를.
그리 중얼거린 트레이너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다가오는 인공 생명체들에게 무의미한 조의와 함께 움직였으니, 고요한 폭력이 달밤 아래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하늘에 떠오른 커다란 원반의 전함이, 불길의 날개를 펼친 채 항해를 시작했다.
한때 부산을 구원한 알파나이트, 제이의 도움으로 부산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을 맞이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던 엘리스였다.
다른 이들이 짐을 싸고 있을 때, 그녀만큼은 미리 준비한 모든 것을 들고 내려온 것이었으니.
“목적지는 부산. …총장 미하엘 폰 키스케 및 하버트 웨스트 호프만의 체포를 위해 움직이나, 그들이 어떤 짓을 해놨을지 모르니, 최대한 주의해주세요.”
굳은 결심을 담아 말하는 오퍼레이터, 엘리스가 말을 마치고 곧장 부산 내부를 탐색하기 위해 클로저들이 분산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 부산시 내에 있는 차원 변곡률은 0. 이럴 리가 없을텐데, 라며 의구심을 품은 채 클로저들을 보낸 엘리스의 감과 판단은 적중한 것일까, 여기저기서 나오는 차원종의 토벌 자료들을 보며, 끝내 호프만이 또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엘리스가 주먹을 쥐었다.
이럴 때 자신에게 힘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한도 끝도 없이 깊어지는 괴로움에, 생각을 잠시 묻어둔 엘리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팀을 이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에.
하지만, 특이하게도 어비스라는 개체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세력을 자랑한 어비스가 부산에만 나타나지 않은걸까? …그럴 리가. 바로 옆나라인 일본을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는 이유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또 생각할 것이 늘어난 것과는 별개로.
“하늘새 팀은… 어떻게 된걸까요.”
세계 최고의 재해와 마주한 그들의 안위가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검게 일그러진 세상 앞.
한 명의 남성이 있었으니, 법칙이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마치 거울마냥 바라보던 그가 손을 내뻗었으니, 불합리로 차단되어있는 세계엔 간섭할 수 없다는 듯, 투명한 막으로 막혀있는 것처럼 그대로 멈춰버린 손의 움직임에 고개를 저었다.
“대단하군. 인간과 별이 만들어낸 ‘불합리’라니.”
인간이라는건 이렇게 절망스럽게도 변화할 수 있는 것인가.
아직은 아주 자그마한 우주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이 모습은 분명 ‘오염지옥’에서 ‘우주’ 그 자체를 모방하는 괴물, 요드보다도 더 확고하며,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는 진짜 우주 그 자체였다.
─순수한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우주라니.
어이가 없어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고 있노라니, 그런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며 다가왔다.
“해답이 나오지 않는가? 프레이 아델 로.”
그 질문에 프레이 아델 로가 답하길.
“대단하지 않나? 크고, 거대하며, 무엇보다 순수한 우주의 탄생. …자네에겐 흥미가 이끌리지 않는 것인가? 호프만.”
“정신나갔다는 소리는 잘 전해들었지. 덕분에 오랜만에 어이가 없어 실소를 했었다.”
천재라고 불리우는 최고의 과학자 두 명이 이곳에 있으니, 이 차원계에 존재하는 ‘불합리’에 대해 무언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역시 아닐거라며 프레이 아델로는 고개를 저었다.
“음? 무슨 의미지, 그건?”
“자네는 내가 고개를 흔드는 행위 하나에도 흥미를 느끼나? …단지 난… 이게 일개 ‘개인’으로부터 탄생한 세계라는 것이, 놀라울 뿐일세.”
“일개 개인…이라.”
세계에 고정된 여섯 개의 흑색 날개는, 섭리와 법칙을 통째로 비틀어 찢음으로써 세계를 짓뭉개고, ‘법칙’이라는 개념을 가진 ‘검은색’의 무언가는 뜯어낸 세계를 잡아먹어, 새로운 무언가로 재탄생하기 시작했다.
“자네에겐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나? 우주? 검은 빛의 무언가? 혹은 절망?”
“절망이라. 인간의 일개 감정으로 세계의 과학과 이치를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일세, 호프만. …나는 보았네. 이 세계를 끌어내리던 그 순간을.”
세계의 섭리가 붕괴되며, 사라지는 광경을.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물리’라는 과학이 사라지는 모습을.
“우리가 아는 과학은, 저 안에 없다는 거지.”
“그럴 리가. 모든 세계에 과학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쯤은 자네도 알텐데? 그걸 부정하는건가, 과학자가 된 자로서?”
“그렇다면 저건 뭐지?”
─생각하는 것조차도 ‘불합리’하게 만들 정도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저 세계는?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하나의 ‘법칙’. 법칙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에, 과학따윈 존재하지 않겠지.”
“자네는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과학은 하나의 법칙이 아닌, 법칙이야말로 곧 과학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확실한건, 불을 피우면 빛이 나는 당연한 사실조차도, 저 안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무’로 변화해 떠다니고 있다는 것 뿐이야. 실제로 이렇게 검은 색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세계는 ‘빛’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거겠지.”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흡수해 사그라트리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서 있지도 못하겠지. 순식간에 끌려들어가 시간 개념조차 모를 기이한 세상 속에서 순식간에 명줄이 끊기고, 마치 고무줄처럼 주욱 늘어나서는 빨려들어가는 것밖에 하지 못할것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윽고 고개를 저어버린 프레이 아델 로가 말하길.
“이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관둬야겠어.”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가? 이것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말했잖나, ‘과학’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많은 것이라고. …나는 일을 끝마치러 가야하는데, 그대는 딱히 할 일이 있나?”
“시간벌이, 정도겠지. 마침 좋은 조력자가 있어서 한동안 그쪽과 함께 행동할테니, 내 연구의 진척이 늦춰진다 해서 뭐라 하지는 말게.”
“…실패작들밖에 없는 그것을 ‘연구의 진척’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실패야말로 더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는 준비지. 자네의 그 ‘완성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한 것’보다야, 내 실패가 더 가치가 있는 쪽에 속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지.”
말을 끝낸 프레이 아델 로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호프만이 듣지 못할 정도로 거리가 멀어진 다음에야 약간의 한숨을 내쉰 채 중얼거렸다.
“연구라…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연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지는 모르겠다만.”
그것을 연구라 부를 수 있다면.
어째서 인간을 위해 시작한 연구가… 왜 인간을 해쳐야만 하는 것인가.
“도대체 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노라니, 그의 앞에 살며시 발을 내딛는 이가 있었으니.
그 존재가 입을 열기를.
“‘인간을 위한’ 일로써, 그대를 끝마치고 싶나?”
“이것 참… 설마 그쪽에서 찾아올 줄이야…. 아직 연구는 진행 중….”
“단지 묻고자 하는 것에만 답하라.”
그 말에 살며시 시선을 내린 프레이는,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하염없이 한숨을 내쉰 채 나아가며 답했다.
“그게, 인간을 위한 일이라면….”
“…그런가.”
그것은 천사의 것인지 악마의 것인지 모를 속삭임.
그 속삭임 속에서, 프레이 아델 로는 어느샌가 죽어버린 자신의 의미 없는 잿빛 세상을 끝낼 단서를, 간신히 찾아낸 듯싶었다.
‡ ‡ ‡
“흑색에 익숙하지 않을텐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세계의 종말을 예고할 참인가, 저 새로운 주인은?”
“…혹은,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저질러버린걸지도 모르죠.”
아머드 특경대의 옷을 입은 자의 곁에, ‘지브릴’이 내려앉았다.
흑색, 정해지지 않은 세계의 ‘법칙’.
그것이 여섯 갈래나 있다면 세계 자체를 뜯어내어, 새로운 세계를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건가.
세계 자체를 잡아먹는 좌표이기 때문에 옮기지도 못하며, 어떠한 법칙도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히 잡아먹는 폭식에 불과한 저것을, 과연 세계라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실로 놀랍군요.”
인간과 별이 탄생시킨 ‘불합리’.
흑색이라는 ‘법칙’의 불합리를, 그런 불합리의 확장을 틀어막고 가둔 저 불합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의 한없이 깊고도 강렬한 감정, ‘절망’을 이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법칙이라는 개념에 붙잡혀있는 이상 저것을 가둬둘 수는 없을텐데.
“…설마 싸움 속에서, 혹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 속에서, ‘능력’을 개화시킨건가요.”
서지수의 ‘불사 살해’가 격전 끝에 발현된 것처럼.
그들의 ‘불합리’ 역시, 이러한 불합리 앞에서야 간신히 꽃피운 것인가.
하지만, 지브릴이나 어비스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아버지의 각성이 이루어지기엔 너무 멀었으니까요.”
그 말에, 특경대의 모습을 한 이가 의구심이 들었는지 묻기를.
“수십 수백년을 기다려온 그대가, 이 일순간을 기다리지 못하다니. 아버지와의 재회가 그토록 기다려지는 것인가?”
“…그렇죠.”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이라는 개념이 무엇일까.
감정이란 무엇일까.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들을 보면 볼수록, 기이한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를 처음 뵈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그 감각을 모두 잡아먹는다는….
“아무래도 좋겠지. …하지만, 저 검은 세계는 과하군.”
─자신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이나 다름없는 자의 흔적.
평범한 어비스들은 다가가는 것조차도 두려워하기에, 자신과 같은 ‘주인’의 강한 명령이 아닌 이상, 그들이 자의적으로 이곳 부산에 나타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새로 도착한 인간 중에는… 아버지와 같은 힘을 가진 분이 계시는군요.”
“극권의 군주… 설화라는 인간, 아니 제 6주인이 가진 ‘성’의 본 주인이라 했나.”
“…어째서 인간따위에게 힘을 가세해주시는지는 모르나, 확실한 것은 하나 뿐이겠군요.”
─설령 상대가 ‘군주’라고 불리우는, 세계의 ‘법칙’이라 해도, 그들이 아버지를 적대한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벌레나 다름없는 자신들 역시 적대할 것.
그것만이 확실한 것이였다.
“자드키엘은…?”
“공작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분이 깨어나시는데 혼란이 있어서는 안되겠지. 피어, 그대는 움직일 생각인가?”
“…아무리 중간에 괴물이 끼어있어도 저런 모습이라면 힘의 행사에 어려울테니,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들을 붙잡아둘 생각입니다.”
“그런가. …허면 이 몸은 완전해질 시기를 엿보며, 계속해서 기다리는 것 뿐인가?”
“네. …번거롭겠지만, 꼭 부탁드립니다.”
“그래. …또 연락이 오는군. 부산이란 곳에 이렇게 쓰레기들이 많이 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콰앙!
말을 끝마친 그가 발을 강하게 굴렸으니, 앉아있던 곳이 부서진 것도 아닌, 찌그러져버린 채로, 파편을 흩날렸다.
그리고 그곳에 남은 지브릴─피어는, 이곳에 상륙한 새로운 클로저 중 ‘파이 윈체스터’라는 이를 기억해두며, 그 칼날을 되새겼다.
“극권의 군주….”
─어쩌면, 그것이 최후의 수단이 될지도….
AI미스틱입니다.
이번에는 또 신박하게 찾아뵙는군요.
6개의 정의되지 않은 법칙, ‘흑색’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불합리한 법칙을 얽매는 인간의 불합리.
과연 이게 정상적인 상태에서 쓰는 필력인지, 혹은 아예 다 내던진 상태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어비스의 주인’이 멀지 않았다는 것 뿐입니다.
어비스의 주인은 꽤 오래 이어져왔습니다.
처음부터 세어보자면 약 반년의 시간이 지나버렸군요.
그 동안 어비스의 주인은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각 장마다 1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딱히 계절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죠.
자, 그럼 앞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군주라는 불합리가 가진 힘을 아주 약간 드러내 보았습니다만, 사실상 저걸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하지는 않습니다.
군주라는 것도 결국 세계의 법칙이니까, 자신이 만든 정의되지 않은 법칙의 세계에 말려들면,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결말만을 낳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세계에 끝도 없이 절망한 소녀에게는 자신이 죽는 결말이 나타난다고 해도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강한 감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던 것 같네요.
악몽이나 다름없는 세계로부터 깨어나고 싶다. …누구나 그렇게 소망은 합니다만, 현실은 너무나도 턱없이, 악몽보다 괴로운 세상이죠.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지는 악몽이 아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오랜만에 ‘하늘새’가 아닌 ‘검은양’ 팀의 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점을 바꾼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검은양이나 늑대개가 올 때까지의 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죠. 하지만 진실은 아니라는 점과, 현재의 하늘새 팀은 데이터 베이스 외엔, 부산 시장인 민수호조차 그 현재 상태와 거처를 알 수 없기에, 번거롭게 시점을 돌렸습니다.
물론 그만큼 그들이 알아야 할 것과, 알아내야 할 것과, 또한 거쳐야 할 시련이 한도끝도없이 많겠지만 말이죠.
그럼, 여기서 3장 4화 마치겠습니다.
코로나19가 날뛰는 지금 이 시기.
병에 걸려 앓지 말고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