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1 쓰레기섬 9화 이름
DianBurned 2021-03-19 0
24년 개정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침식 발동, 10%."
우득, 우득,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울리며 자온의 왼손에서 금속의 갑피가 돋아났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손목에서 갑피가 돋아나 덮히며 왼쪽 눈의 공막이 검게 변해 역안으로 변모했다.
아주 조금, 손 정도의 변화였음에도, 저릿할 정도로 느껴는 흉흉함에 그 자리의 모두가 약간의 공포에 질리며 중얼거렸다.
"엄청난.... 마물의 힘....! "
"....이게 10%라고? 이렇게 섬뜩한데.....?"
"광인....당신, 정체가 뭡니까. 그런 걸 할 수 있는 건 그분 정도의 존재께서 세례를 내려주시는 게 아니면 불가능할 텐데?"
"뭐... 정체는 알 거 없고, 네놈들에게 화가 많이 난 사람? 넌 딱 그 정도로만 기억해."
꾸득!!
"커허어억.....!"
전우치에게 순식간에 다가간 자온이 갑피를 두른 팔로 전우치의 몸통을 힘으로 뚫어 버렸다. 반응조차 하지 못한 그의 몸에서 붉은 피가 우수수 떨어져 웅덩이가 고인다.
"......가짜네. 진짜는 이런 손맛이 아닌데."
고여 있던 피도, 꿰뚫고 있는 전우치의 모습도 모두 일렁이며 사라지자 자온의 뒷통수엔 서늘한 총구가 겨눠져 있었다.
"지난번 당신의 힘을 생각해서 경계하길 잘했네요. 설마 그런 괴물이 되는 건 예상 못한 변수지만 뭐, 이제 상관없겠죠. 잘 가요. 괴물."
"침식...."
탕!!
자온이 뭘 하려고 하자 전우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캉!!!
그러나 이질적인 금속음을 울리며 탄환이 저 멀리로 튕겨져 날아갔다.
어느새 늘어난 금속의 갑피. 반신이 차원종에 더 가까워진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침식.... 40%."
"큿....!"
조금 전보다 더 많은 갑피가 뒤덮인 자온은 거의 날붙이가 팔을 휘둘러 전우치를 베어냈지만, 어느새 환각을 펼쳤는지 모습을 또 감추었다.
"...아직도 제대로 보이지 않네. 더.... 높여야겠어. 침식 50%."
반신을 뒤덮은 갑피들이 더 짙은 잿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렇게 농밀한 위상력을 방출하고 있음에도, 주위를 쓱 살펴보던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아 보였다.
".....침식, 70%."
잠시 고민하더니, 침식률을 높혔다.
으득, 쩌저....쩌어어억
듣기 끔찍한 괴음을 울리며 갑피들이 더 넓게, 더 크게 돋아났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인간이.... 아닌겁니까?"
더이상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워진 그 모습에, 차원종을 섬기는 교단의 도사인 전우치는 경외와 공포의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인간이야. 그리고...."
"찾았다."
괴물에 가까워진 모습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X자 형태의 동공이, 환각으로 숨겼던 자신을 바라보았다.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순식간에 다가온 자온의 손아귀가 자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큭..... 크으윽.....!"
"아.... 눈 아파. 침식으로 눈이 발동되긴 하지만 이번엔 70%까지 가서야 발동하다니..."
"자.... 널 어떻게 할까....? 죽일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왜인지 더욱 괴물처럼 보였다.
"자온 씨....!"
"어이, 괜찮은 거예요? 어이!"
이상함을 감지한 두 사람은 자온을 불러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전우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킥.... 키킥
누군가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꺄하앗....!
그 웃음 소리에 심장이 폭주한 것처럼 마구 뛰고 있었다.
죽이자.... 죽이자.....!
웃음소리를 들을수록 눈 앞의 존재를 찢어발겨야 한다는 감정이 쏟아졌다.
"아니, 아니야...!"
"크학.... 쿨럭, 쿨럭!"
무언가에 저항하는 듯 고통스러워 하며 전우치의 목을 붙잡았던 손을 풀었다.
전우치가 쿨럭이는 와중, 자온은 계속 무언가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죽이지 않을 거야...! 시끄...럽다고...!"
자온이 걱정했던 불안요소, 그것은 내부차원으로 돌아오기 직전 있었던 [누군가]와의 전투, 그리고 그 이후 알게 된 [어떤 진실] 이후 부터 시작된 환청.
침식의 힘을 크게 발할수록 심해지던 환청은 자꾸 감정을 크게 자극했고, 50% 이상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괜찮았었다.
그러나 눈을 강제로 발동시키기 위해 억지로 힘을 끌어올린 탓에 환청이 시작되자, 이성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
"어이, 정신차려요! 정신 차리라고요!!"
"자온.... 흣... 크흣....!"
"금발!"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군요."
혼란에 휩싸인 이들의 모습을 본 전우치는 환술로 모습을 감추며 루시에게 조용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신중하게 다가가며 루시에게 검은 손을 뻗으려는 순간,
"하.... 이렇게 간섭하는 건 더 안 좋은데...."
섬뜩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와 살기에 뒤돌아 보았다.
두 개의 헤일로를 머리에 감싼, 그러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자온이 정확하게 자신을 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내달리거라, 세번째 칼날."
자온이 손짓하자, 반달의 형태를 띈 칼날들이 순식간에 가속하며 주위를 찢어내었다.
칼날의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피한 대신 모습이 드러난 전우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누구긴, 너희 아가들이 받드는 불꽃의 애송이, 그보다 위의 어딘가."
자온의 폭주를 진정시키려 그의 몸을 차지한 뷜란트가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음... 욕심이 그득한 불냄새. 그 애송이 맞구만. 근데 이 먼지의 냄새는......."
"이봐, 너 누구야??"
"당신! 자온씨를 어떻게 하신.....거예요?"
은하와 루시가 긴장한 듯 날을 세우며 물어왔다.
괴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한 자온, 거기에 명백히 다른 누군가가 그의 몸을 차지한 모습은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었다.
"아, 아가들. 걱정하지 말거라. 위험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간섭했을 뿐, 그만 떠날 거란다."
"너희의 일이 잘 마무리 되길 비마."
뷜란트는 그렇게 말하곤 허무할 정도로 자온의 몸에서 빠르게 떠나갔다.
머리의 헤일로가 사라짐과 동시에 자온의 몸을 감싸고 있던 갑피가 사라지자, 그제야 자온이 제정신을 찾았다.
"무슨....? 크윽.....!"
상황을 파악하려 몸을 움직여 봤지만, 힘이 빠진것처럼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군요. 잘 가라, 괴물."
탕!!
그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전우치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루시에게 날아가는 탄환을 막으려 힘을 모아봤지만, 폭주의 반동인지 힘이 곧바로 흩어져버렸고, 그렇게 탄환이 루시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금발!!"
와락!
그러나, 어느새 달려온 은하는 루시를 감싸곤 대신 총에 맞았다.
"아악!"
부상당했던 어깨가 다시 관통당했다. 은하가 전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은하!"
"은하씨!"
"후, 아깐 위험하긴 했네요. 그러니 지금부턴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천천히, 차분하게 당신들을 불태우면서 회개하며 죽을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죠."
어느새 재차 환술 속에 몸을 숨긴 전우치가 웃으며 선언했다.
"헛소리. 그 전에 널 쓰러트려주마."
"어떻게 그럴거지? 배금주의자는 저 동력 잃은 인형을 지키다 당했고 당신도 멀쩡한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전우치가 비웃으며 승리를 장담한 그 순간,
우우우우웅--------!!
"응? 갑자기 힘이 제어가...? 환술의 유지가.....!"
커다란 기계음이 주변에 울리기 시작하자, 전우치의 환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세 분! 들리십니까? 고출력 위상력 억제기, 기동 완료입니다!"
"원래는 섬의 주민들이 지금보다 안전하거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안한 거지만....앞으로는 쓸 일도 없겠죠."
"리미터도 풀어버리고 최대출력으로 가동시켰습니다. 관리자의 위상력이 충분히 억제 되겠죠! 물론 여러분들의 위상력도 떨어지겠지만... 부탁드립니다!"
한기남이 준비했던 한 수에 의해 환술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이런 환술이 풀렸군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배금주의자는 당하고, 다 죽어가는 인형은 간신히 버티는 중이고, 그리고 당신도 더이상 아까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는 모양이니."
다시 총을 재장전한 전우치가 그들을 향해 연사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칼날!"
그러나 힘을 조금 회복한 자온이 칼날의 영역을 만들어 쇄도하는 탄환들을 튕겨내었다.
".. 미안해. 몸빵, 제대로 못 해냈네."
"됐거든요...하. 내가 먼저 뻗어버렸네."
"왜, 왜 저를 구하신 거예요?!"
루시가 울먹거리며 물었다. 은하는 그런 그녀와 자신을 지혈하는 자온의 눈을 번갈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네가 희망 형씨한테 한 말이 생각나서. 마지막 순간에 자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없다면...서글픈 거라고."
"형씨가 희망 형씨한테 살아달라고 했던것도... 그 후에 따로 얘기했던 거 들었어. 누군가의 빛이 되어 살아가 달라고."
"참 많이 생각나더라. 너희의 말이 마음을 움직인건... 희망 형씨만이 아니였어."
"여전히 너희가 정확히 누군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남한테만 살라고 말하지 마. 너희도 살 수 있는데까지 발버둥 치면서 살아봐."
"루시 플라티니. 자온."
그 살아달라는 말과 불린 이름에 왜 이리 마음에 닿는걸까.
눈물로 새로 지었던, 때론 한탄스럽기 짝이 없던 그 이름이 메마른 땅에 적셔지는 비처럼 스며드는 걸까.
"큿....!"
칼날이 약해졌는지, 탄환이 칼날의 방어를 뚫고 자온의 팔을 스쳐갔다.
"겨우 뚫렸군. 힘이 떨어졌지만, 네 놈들도 마찬가지니 없애는 정돈 쉽겠지...!"
"아뇨, 저는 없어지지 않겠어요! 상냥한 눈의....은하씨가 제 이름을 부르며 살라고 했으니 말이죠!"
"분신 주제에, 이름이라고?"
"그래요! 저는 루시 플라티니! 이 이름을 불러준 은하씨를 위해, 이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을 위해 나는 살겠어요!"
"나도... 살아나가야겠어. 내가 증오하는 이 이름에, 살아달라고 별처럼 빛나는 눈으로 말해준... 사람이 있으니까."
"자온 씨, 은하 씨를 지켜주세요. 저 자는 제가 맡겠어요....! 그리고.... 조금만, 조금만 힘을 빌려갈께요."
앞으로 나선 루시는 자온의 팔에 흐르던 피를 닦아 입가에 훔쳤다.
그러자, 루시의 힘이 요동치더니 주변에 있는 이들, 특히 전우치의 힘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큭....! 힘이 저 인형한테 빨려들어간다?"
"그렇군! 너 잃은 본체를 대신해 다른 존재의 위상력을 흡수해서 연명하는 건가?!"
"맞아요. 지금까지는 마물의 힘만 흡수했지만....종류가, 존재가 다른 힘이니 한계가 있었죠."
"하지만 당신이 은하 씨를 쏴서 상처에서 위상력이 흘러나올 때,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서.....! 그러지 않고 싶었지만....! 살아 남겠어! 반드시!"
전우치에게 쇄도한 루시가 관을 크게 휘두르며, 계속 힘을 흡수한다.
"그랬구나. 그 때 그 힘은....!"
"큭, 크아아아아악!"
힘을 흡수당하면서 공격을 당하던 전우치가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크흑, 크하하하하핫!!"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아닌거 같은데?"
"......사람의 힘은 맛있지?"
"!? 그게 무슨?"
"그도 그럴게, 당신. 엄청나게 달콤한 것을 먹은 거 마냥, 미소 짓고 있거든요."
"마음껏 흡수하시죠. 제 몸이 말리비틀어 질 때까지 말이죠. 그렇게 하면 영영 그 쾌락에서 나오지 못할테죠?"
"아니야! 나는.... 그런 존재가....!"
루시는 자신의 입가를 만져봤다. 그의 말대로 올라가 있는 입꼬리에 크게 당혹스러워 하더니, 그대로 힘의 흡수가 중단되었다.
"흡수가 멈췄군요. 그만한다면 이만 실례하죠. 다음엔 망설이지 마세요. 계속 살아남고 싶다면. 그럼, 다시 만나죠. 흡혈귀."
"어딜 도망가?"
"아, 당신은 움직일 수 있었죠. 이걸 써야겠군요."
----!!
자온이 앞을 막아서자, 전우치는 섬광탄을 던져 시야를 가로막힌다.
"눈이...!"
"안녕입니다, 신의 승은을 입은 광인. 다음에 만났을 땐, 그 눈이 뜨여있기를 바랍니다."
"또 도망치게 내버려둘 것 같아? 와라, 첫번째 창!"
창을 구현하곤 투창 자세를 잡았다.
"첫번째 창, 오의....! 필중!!!"
흐릿한 시야 속에서 전우치를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슈우우웅!!!
아니라 다를까, 창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키리-_-리_--릭!
그러나 자아라도 있는 것처럼 궤도가 부자연스럽게 뒤틀더니, 그대로 날아가 전우치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커헉!!!"
꿰뚫어 본 대상을 무조건 맞추는 그 창에 맞아 옆구리에 난 상처를 붙들고 마지막 한 마디를 말했다.
"크윽.... 이 빚은....갚도록 하죠.....!!"
시야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땐, 전우치는 약간의 핏자국만을 남기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결국 놓쳤네. 하지만 다음엔 반드시...반드시 잡아서 뿌리를 뽑아주마."
"돌아가자. 루시, 갈 준비하자....루시?"
아무 대답이 없자 뒤를 돌아보았다. 루시는 고개를 떨군 채,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는 루시, 루시 플라티니예요....빵집에서 빵을 굽는 평범한 아이인...루시 플라티니예요.."
"흡혈귀가...아니예요.....!"
"...흡혈귀라."
전우치가 루시에게 내뱉었던 그 단어를 곱씹었다.
어이가 없군. 타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봉인한 불행한 왕녀, 그녀를 수호하는 존재를 한번 죽여서 뒤틀어 놓은 건 너희인 주제에.
그래. 너희가 그녀를 흡혈귀로 취급해 죽이려 한다면, 나는 저 가엾으면서 다정한 그녀를 지켜주겠다.
그게 너희를 무너트리는 첫걸음이 되어줄테니까.
"야, 루시, 루시.... 루시 플라티니!"
"엇? 네,네!!"
"가자, 끝났어.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돌아가자."
"네, 돌아가요."
"가자.... 아, 은하. 등에 업혀. 움직이기 힘들잖아."
"됐거든. 이 정도 상처는 그냥 기합으로..."
"그런 소리할 시간에 업히지? 괜히 상처 덧내지 말고 사람이 신경 써줄 때 그냥 좀 받아."
"하...그래요. 아까 몸빵 제대로 못 한 빚이라 생각할테니까, 돌아갈 때까진 자가용으로 확실하게 쓸 거예요."
못이기는 척 하며 업히더니 자가용 대용으로 못 박아 버렸다.
"얌마."
"자, 자가용 출발~"
".....던져버려도 돼?"
"해 봐요. 기왕 업힌 거, 칼침놔서라도 매달릴 거니까."
지치지도 않는지 쓸데 없는 기싸움을 하자 루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두 분, 역시 뭔가 합이 잘 맞는단 말이죠."
"누가!" "누가!"
"그런 점이요!"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섬 하늘에 꽤 오랫동안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