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클로저 18화
검은코트의사내 2021-03-16 0
이세진 박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트레이너는 숙소로 돌아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위상력 능력자가 아닌데도 나름대로 소신발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민간인들과는 다르게 클로저를 앞에 두고도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들어가서 쉬려고 문을 열었는데 앞치마를 하고 있는 티나가 그를 맞이했다.
"교관님. 저녁 준비 되었습니다."
"음? 오늘은 네가 만든 거냐?"
현관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였다. 트레이너는 깜짝 놀라며 식탁에 차려진 푸짐한 음식을 보았다. 티나가 이렇게 요리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가르친 적도 없는데 겉모습만으로도 맛있게 느껴졌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교관님께 매일 신세져서 가끔은 제가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허락없이 부엌을 손대서 죄송했습니다!"
티나는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녀의 마음도 있었지만, 숙소에 머무르는 주인 허락도 없이 멋대로 이용한 건 실례되는 행동이었으니까. 트레이너는 괜찮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어 국물맛을 먼저 보았다.
"음? 흠."
너무 짰다. 겉모습은 그럴듯해도 소금 간을 잘못했다. 이번에는 달걀 말이를 한 번 맛보았다. 너무 싱거운 맛이었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늑대개 팀이 먹는 맛없는 전투식량은 그도 평소에 많이 먹어봤었기에 그 경험을 떠올리며 견뎌냈다.
식사를 마친 트레이너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관님, 어, 어떠셨습니까?"
티나가 양손을 모으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트레이너는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소녀의 모습에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먹을 만 했다. 저녁 식사 대접해줘서 고맙다."
일반인이었다면 못먹을 수준이라고 했겠지만, 전생부터 입맛이 습관화된 트레이너에게는 사실적인 대답이었다. 티나는 그의 말에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짓는 걸 보니 그녀가 인간이 맞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트레이너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살리기를 잘했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녀를 살려준 덕에 다스 군단이라는 새로운 적이 나타났지만, 그 역시도 감당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울프팩팀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적.
트레이너는 창가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잠에 들려고 했지만,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전원을 켰다. 훗날 제이라고 불리는 전준혁의 연락처였다.
"무슨 일이냐?"
[교관님. 저 고민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알았다. 곧 가지."
트레이너는 피식 웃었다. 전생에서도 그는 형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의지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 생에도 변함없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혼자 밖으로 나와 그를 만나러 갔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준혁은 아무도 없는 공원에 있는 그네에 앉아 있었다. 트레이너는 옆에 있는 그네에 앉으며 준혁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냐?"
"교관님. 제가 과연 싸울 수 있을까요?"
"두려운 거냐?"
준혁의 양손이 심하게 떨렸다. 강한 위상력을 지녔음에도 순수한 소년이었기에 자신감이 없었다. 클로저의 전사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살아남은 클로저들에게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마련이었다. 그 당시에는 클로저 인원이 부족한 시기였기에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저 말고 다른 클로저들이 대신하면 안 되나요? 저는 싸우기가 싫어서요. 한심하다는 걸 알지만......"
전생에서 활약했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준혁은 본래 겁쟁이였지만, 차원종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용감하게 나서는 편이었다. 두려움을 능가할 용기가 그의 몸에 흐른 탓이었다. 트레이너는 어떻게 말할 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심한 건 아니다. 넌 아직 미성년자고 실전 경험이 모자라니 두려움이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너같은 애는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으면서 학업에 매진할 나이지. 본래 차원종과 싸우는 일은 사회에 나온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위상력이 너의 운명을 결정했다."
위상력 각성자가 된 이상, 평범한 인간으로 취급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클로저는 사람을 지킨다. 그게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목숨을 잃은 클로저들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제가 겁을 먹으면 안 되겠죠? 저보다 더 겁에 질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겁을 먹는 건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정 원한다면 클로저를 그만두어도 좋아. 하지만,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 지 생각해봐라. 네가 클로저로서 활약해주지 않으면 클로저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전생에도 이러한 질문으로 준혁을 일깨우게 했다. 이번 생에도 그는 손의 떨림이 멎을 정도로 의욕을 되찾았다. 트레이너는 그가 다시 기운을 차린 모습에 뿌듯해했다.
* * *
3일 뒤, 트레이너는 지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심각한 얼굴로 맞이하는 그에게 거수 경례를 했다.
"잘 왔네. 트레이너, 이번에 심각한 일이 발생했어. 1시간 전에 들어온 보고인데 강원도에 있는 클로저들이 하나 둘씩 차원종으로 변해가고 있어."
"차원종 말입니까?"
트레이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고위급 차원종이 있었다. 사람을 차원종으로 만들어버릴 녀석은 한 마리 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지부장에게는 딱히 밝히지 않았다.
"그 차원종이 유니온 본부에 영상을 하나 보냈어. 이번 차원종은 지능이 있는 존재인 거 같아."
지부장은 본부에서 받은 동영상 파일을 재생하여 트레이너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그가 생각한 차원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장발을 한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한 차원종, 미래에 애쉬와 더스트로 나뉘어지기 전의 본래 모습이었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인간을 해치우기 위해서 온 게 아니야. 구해주러 온 거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날 찾아오도록 해.]
영상은 이걸로 끝이었다. 트레이너는 이 말에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름없는 군단의 참모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먼저 인간의 방식을 깨우친 차원종이었고, 인간의 약한 점만 파고들어 클로저들에게 절망을 안겨준 고위급 차원종이었다. 서지수도 겨우 쓰러뜨릴 수준으로 불사의 속성을 가진 차원종이었다. 수많은 클로저들을 학살하거나 타락시켜 군단으로 끌어들였기에 유니온에서도 미래에 블랙리스트로 선정될 정도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트레이너."
"만만치 않은 차원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원도에도 실력이 뛰어난 클로저들이 있을 텐데 그들마저 당했다면 울프팩팀이라도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강원도에도 정예 클로저들이 있었는데 그들 마저 당했다면, 제 아무리 울프팩 팀이라도 어렵겠지. 그리고 녀석은 이런 영상도 보냈어."
지부장은 추가로 도착한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러자 트레이너는 깜짝 놀랐다. 민간인을 인질로 삼는 모습이었다.
[너희 인간 전사들, 아니, 클로저들이라고 해야 하나? 너희들은 이런 힘없는 벌레들을 구하는 데 목숨을 걸지. 자, 봐봐.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모습 말이야.]
영상에 나온 사람들은 뚱뚱한 몸을 가진 강원도 지사와 그의 아들과 아내였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클로저들이 자진해서 차원종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더 이어졌다.
[너희 한심한 유니온들은 약해빠진 전사들만 보내서 희생을 강요했더라. 강한 녀석들을 보내지 않고 말이야. 하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너희 인간들은 그 정도 밖에 안 되니까.]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트레이너는 유니온의 이러한 조치도 알고 있었다. 정예 클로저들은 더스트가 직접 처리했고, 나머지는 군단으로 삼아버렸다는 얘기였다. 어떠한 말로 그들을 차원종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준혁이 말한 거처럼 차원종과 싸우는 걸 두려워하는 클로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거였다. 아무리 인간을 구해봐야 전쟁은 끝나지 않고, 희생자만 늘어나서 더욱 고통스러울 뿐이라고 유혹했을 거라 확신했다.
"유니온 본부장님께서는 울프팩팀이 이 고위급 차원종을 처리해주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할 수 있겠나?"
"처단해야 한다면, 처단하겠습니다."
트레이너를 압도한 실력을 가진 차원종이었기에 승산은 없었다. 이번에는 울프팩 팀에게 있어서 좋은 환경이었기에 더스트를 막아내는 게 더 쉬워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만약 어렵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후퇴해도 좋아. 최정예 클로저들도 당해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트레이너는 바짝 긴장했다. 이 날이 올 거라는 걸 알았지만, 이럴 때 시간이 빨리 가는 게 원망스러웠다. 더스트를 상대하는 건 서지수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었지만, 다스 군단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안해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