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클로저 17화
검은코트의사내 2021-03-12 0
트레이너는 숙소에서 세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마치 그는 예언자같았다. 인간의 호기심으로 인해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마치 호프만 부부를 뜻하는 듯 했다.
"호프만."
나타가 벌쳐스 처리부대 대원이 되게 한 장본인이자 세하 엄마인 서지수의 클론을 만드는데도 참여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 외에 인공 차원종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인체실험까지 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세진이 말한대로 호기심으로 인해 그가 사이코패스처럼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교관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별로 심각한 고민은 아니다."
티나의 물음에도 그는 떳떳한 척 했다. 그녀가 본 트레이너는 매번 숙소로 돌아올 때마다 고민을 한 번씩 하는 편이었다. 물론 교관이기에 많은 생각을 해**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심각한 얼굴을 보이는 일도 있어서 걱정되기도 했다.
"아 참, 티나. 너는 혹시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나?"
"네? 네. 그건 갑자기 왜 물으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은 좀 복잡한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야. 이만 들어가서 쉬어라. 혼자 깊이 생각할 일이 있으니까."
"네. 교관님."
티나가 물러가자 트레이너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전생에서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세진에 대해 더 자세히 아는 시간이었다. 어쩌다가 서지수가 그런 사람과 가까워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작은 한숨을 내쉰 뒤에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갔다.
* * *
다음 날, 트레이너는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서 데이비드가 세진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울프팩 팀 요원들은 불편한 시선으로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보고 있었다. 특히 서지수는 표정이 매우 안 좋았다.
"왜 그러는 거지? 다들."
"교관,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요? 차원종 잔해들을 가져다 달라고 하잖아요. 안 그래도 싸우느라 바쁜데 그것까지 챙길 여유가 어디있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요."
"잔해를 모아야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연구자에게는 필요한 순간이지."
연구자가 잔해를 모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유니온 과학자들은 차원종 잔해들을 모아서 연구하여 새로운 장비를 만들어냈다. 위상력 억제기도 이 중 하나였다. 트레이너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에 나온 두 사람, 이세진 박사는 그들에게 인사하고 나갔고, 데이비드가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자, 다들 주목. 이세진 박사님께서 이번에 민간인들도 차원종과 맞설 수 있는 무기를 만들려고 계획중이신데 차원종 잔해가 더 필요하다고 하셨다. 너희들의 임무는 차원종들을 많이 섬멸해서 잔해를 모아 연구팀에게 건네주는 역할이다."
트레이너는 그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전생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본래 차원종 잔해를 수집하는 팀은 울프팩팀이 아닌 다른 클로저들이 담당했었다. 울프팩 팀은 그 당시에 고위급 차원종을 포함하여 수많은 도시를 구하러 다니느라 바빴으니까. 지금은 트레이너가 졸업시킨 훈련생들이 상당한 활약을 하고 있었기에 울프팩들이 많이 출동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운명이 바뀌었군. 어쩌면 지나 그레이스도 죽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어.
전생에서는 지나 그레이스가 준혁을 보호하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에는 유능한 클로저들이 많이 없어서 울프팩 팀이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위상력이 아무리 강해도 쉬지 않고 싸우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준혁이 위험에 처했던 것도 그 영향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차원종을 쓰러뜨릴 클로저가 아니라 자신들의 영역에 차원종들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거다. 이세진 박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
"차원종을 없애기 위해 우리같은 전사들이 있는 거잖아. 교관. 연구에나 ** 그 과학자가 우리 클로저들의 고생을 알기나 할까요?"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말아주게. 서지수 요원. 이세진 박사는 클로저들을 위한 장비도 만들고 있다네."
데이비드가 그를 변호하듯이 말했다. 이세진이 위상력 억제기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차원문이 생성되는 과정을 정밀기계로 분석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우두머리 차원종들이 차원문을 여는 원리를 철저히 연구해서 그 반대 작용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냈던 거였다.
"이것 보세요. 관리 요원님. 차원문이 열리는 걸 막는 거 가지고 뭐가 대단하다는 거죠. 결국에는 장비 하나에 의존하는 것 밖에 안 되잖아요. 차원종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는 대인병기가 우선 아닌가요?"
"물론 차원종들을 섬멸할 수 있는 병기가 나와준다면 전쟁을 끝내는 걸 더 앞당길 수 있는 법이지. 하지만, 이세진 박사의 세미나는 상부에서 이미 인정한 바가 있네."
"쳇."
마치 민간인의 따까리 노릇을 하는 기분이라서 지수는 불만이 많았다. 트레이너와 다른 팀원들은 상부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를 기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지금도 도시에는 차원종들이 날뛰고 있네. 잔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훈련을 마친 클로저들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자네들은 도시만 파괴하는 걸 최소화해주기를 바라겠네."
데이비드는 이대로 출동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른 팀원들은 부동 자세로 답했지만, 지수만은 불량한 태도였다. 관리요원인 데이비드는 그 모습에 불쾌했지만, 그냥 참고 넘어갔다. 강력한 위상력을 가진 전력은 유니온에서 꼭 필요한 인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울프팩 팀원들이 차원종 처리하러 나가자 데이비드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서지수 요원 말이네."
"지수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저렇게 까칠하게 변한 배경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녀의 마음을 녹여줄 사람이라도 나타난다면 가능하겠죠."
"그런가? 교관으로 봤을 때 그녀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저를 능가할 수준이었습니다. 힘을 잘못사용하면 반대로 파멸을 맞이할 지도 모르겠군요."
그의 말을 들은 데이비드는 침묵을 유지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트레이너는 이세진 박사의 말을 떠올렸다. 호기심,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호프만 부부가 그렇게 타락한 원인이기도 했다. 칼바크 턱스도 그런 호기심의 유혹에 빠져 인류에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호기심은 좋은 쪽으로도 작용하기도 하지만, 나쁜 쪽으로도 작용하기도 하는 군.
* * *
트레이너는 이세진 박사를 찾았다. 울프팩 팀을 구원할 수 있는 열쇠가 어쩌면 그라고 생각이 들었다. 현재 상부에서도 아끼는 인물이라면 어쩌면 팀원 모두를 구할 가능성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울프팩 팀은 차원전쟁 당시 큰 활약은 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 트레이너는 이세진 박사와 어떻게든 잘 친해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생에서 그와 대면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어떻게 지냈는지 모른다.
"어서오세요. 트레이너 씨. 요즘 자주 뵙네요."
"이세진 박사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소.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시오?"
세진은 마침 탄환을 하나 만들어낸 뒤였다. 함께 일한 연구원들이 지친 기색을 드러낸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들 휴식 좀 해. 탄환 하나 만드느라 고생했어. 이쪽으로 오시죠."
트레이너는 그의 안내를 받아 단 둘만의 자리에 마주보며 앉았다. 세진은 커피를 한 잔 대접해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트레이너는 눈 앞에 있는 세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전생에서는 거의 만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유명해진 것 때문에 만날 기회가 생겼다. 세진은 근엄하게 그의 말을 기다렸지만, 트레이너는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다가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서지수 요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네?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보시죠? 서지수 요원이야 뭐, 클로저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 정도? 그거 외에는 특별한 거 없는 거 같은데요."
세진은 왜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트레이너는 저 반응으로 보아 그녀에게 마음이 전혀 없다고 느꼈다. 쓸데없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하며 헛기침을 한 번 한 뒤에 말했다.
"이세진 박사님은 차원종이 두렵지 않소? 차원종의 잔해를 다루는 것부터 상당히 위험한 일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연구소에서도 차원종이 습격해오는데도 도망치지도 않았지."
"정말로 위험한 때가 아니라면 도망칠 이유가 전혀 없죠. 트레이너 씨.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저는 전혀 이해못하겠어요. 마치 제가 도망쳐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시는 거 같네요."
"위상력이 없는 민간인은 차원종을 상대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법이오. 그저 도망칠 수밖에 없지."
"그걸 누가 정했는데요?"
세진이 정색하자 트레이너는 눈을 크게 떴다. 민간인들은 차원종과 싸울 수 없으니 도망쳐야 하는 게 맞는 일이지만, 세진은 오히려 정색하면서 그걸 부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민간인이 꼭 차원종을 상대로 도망쳐야 한다고 누가 그렇게 정했는데요? 전, 그런 고정관념에 박히는 말을 하는 사람을 무척 싫어하거든요."
트레이너는 그의 말에 심장이 울리는 걸 느꼈다. 민간인과 마주하고 있는데도 자신의 가슴을 울리게 할 정도로 정곡을 찌른 듯한 말투였다.
To Be Continued......
Chapter.0 프롤로그(Pro ~ 3화)
Chapter.1 차원전쟁편(4화~10화)
Chapter.2 울프팩편(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