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2장의 막幕 17화, 선택
AI미스틱 2021-03-01 0
유니온 총본부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일본에서 날아온 하나의 정보. 그것은 ‘주인’급의 개체가 둘 이상 등장했다는 것 외에도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으니, 일본 내부에선 이미 ‘어비스’와 손을 잡기로 결정했다는 점이었다.
상위 임원들이 대거, ‘연하은’으로 인해 살해당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회의조차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비스와 척을 진다 해서, 우리 인류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오.”
“허면, 유니온이, 세계가 어비스라는 미지의 적과 손을 잡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겁니까!”
“그렇다면 공께선 이 사태에 오기까지 무엇을 하셨습니까! 어비스, 그 알 수 없는 것들이 다가올 때 까지….”
당연히 회의라고 하기에는 너무 급이 떨어지는, 거의 말싸움 수준이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침묵을 유지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그들은 현 상황에 대한 타개책, 이라기 보다는 이로 인해 자신의 입장이 어느 쪽을 향해야 하는 것인지를 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총장은 공석이었던지라 제어조차 되지 않는, 마치 브레이크가 없어진 폭주기관차같은 형태로 대화는 이어졌으며, 그 대화를 끊어낸 것은 다름아닌, 일본에서 온 또 하나의 데이터 파일이었다.
데이터 파일 내부에는, 미리 검토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포, 혹은 혐오감이 든다고 여겨졌는지 아예 검은 색으로 덧칠해버려 그 정체가 보이지 않았으나, 아무리 덧칠을 한다 한들 인간의 본능적인 혐오감과 그 감각을 감출 수는 없었던 걸까. 이따금 헛구역질을 하는 임원들 사이에서, 화면 너머로부터 소리가 새어나왔다.
─대화를, 하고, 싶다.
대화. 말이 대화라는 것이지, 사실상 일본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협박.
녹음된 파일인지라 이 말에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았지만, 오히려 녹음된 파일이었기에, 유니온에게는 생존의 가능성을 더 넓게 열린 것일지도 모른다.
지도자 없는 회의에서, 브레이크 없는 사람이 한둘 있는 가운데 이것이 직접 통화였더라면 어떤 일로 번질지. …확실한 것은, 이곳에 있는 누구도 인류의 존속을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중간중간 띄어서 말하는 그 거슬리는 화법만 제외한다면, ‘인류의 존속을 보장한다’는 것과 ‘차원종의 적대’라는 공통점을 가진 어비스는 어찌 보면 하나의 공통된 적을 가진 동맹이기도 하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 어비스는 유니온을 포함한 인류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얼어붙는 ‘제 1차 주인 사태’를 비롯해 파리 전체가 얼어붙고 얼음성이 내려앉은 ‘제 2차 주인 사태’, 그리고 일본을 침공해온 ‘교토 대공습’을 비롯한 수많은 사건.
그 모든 것을 생각해보자면, 참작하고 넘어갈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였다.
-결정의… 시간… 까지… 이곳… 일본…의… 시간…으로… 다음… 주… 수…요일… 오후… 6시…까지… 주겠다….
─선택을 잘 하기를 빈다, 인간들이여.
그 말을 끝으로 영상이 끊어졌고, 이내 정적만이 남았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곳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극독일지도 모르는 어비스와 손을 잡고, 당장의 적인 차원종을 몰아내느냐.
극독일지도 모르는 만큼, 눈앞의 재해인 어비스와도 척을 지고, 차원종과도 맞서 싸우느냐.
어느 것 하나 결정할 수도 없는 이 회의 속에는, 인류의 존속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무게감을 가진 인간들이 답답함을 호소하지 못한 채, 단지 선택의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 ‡
얼음성의 알현실.
그곳에서 마주한 성의 주인과 두 침입자는, 격렬…하다기 보단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인 끝에, 결말을 맞이했다.
본래 사용하던 창도 아닌 검을 들어올린 성의 주인은 성 내부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기를 베어내듯, 가볍게 휘두른 칼질 몇 번에 적대하던 소년 두 명이 숨을 헐떡일 정도였다.
“…이제 끝인가요.”
즐거움, 여흥.
인간을 싫어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단지 그것 뿐.
사냥이라는 재미가 아니며, 적수라 말하기엔 너무나도 과찬인 인간은, 그녀에게 있어서 단지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여흥을 부여해주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일순의 재미가 결국 부서져버린다 한들, 아끼는 것이 아니기에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결국 적대하기를 원했으니, 이 역시 당신들의 선택.”
그나마 한때 인간이었던 시절의 정을 베풀어, 그들에게 마지막 선택을 주었으나 그마저 거부했으니,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 두 개를 시체로 만들어버린 채, 들고 가는 것뿐이었다.
서늘하게 식어버린 시체를 그분 앞에 진상하여, 이윽고 이 성에 전시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하나의 시종으로─자신과 함께, 그분을 모실 시종으로 교화하리라.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이즈라엘과 아즈라엘의 격전의 소리가 심해져가는 소리를 듣고있자니, 저쪽도 어느정도 심각한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이 도시를 가르는 천둥소리는 심상치않은 위상력을 내비치고 있었으니, 위상력의 크기만으로 저 작은 도련님─단아의 공격보다 더 일그러진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뭐 어떠랴.
모두가 함께 그분을 모실 종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겠지.
발로 한 차례, 지면을 차서 떠오르니 살짝 파여버린 성의 흔적을 남긴 채, 어느 순간 단아의 앞에 도착했다. 한 손에 들고있는 얼음의 검은 가볍다 못해 쥐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으나, 분명 있을 터인 그 검을 휘두른 순간─
“─당신이 나올 시간인가요?”
그 칼날은 목에 닿기 직전, 멈춘다.
꿀꺽, 침을 삼키는 긴장감이 허공을 흐르며 전해지고, 살벌하게 내비치는 얼음의 빛은 죽음을 연상시킬 정도로 서늘했다.
그 냉기를 바로 목옆에서 느끼고 있는 단아의 기분은 어떨까. 일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그 순간, 그는 이미 단념하고 있었다.
실패. 그 한마디만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허나, 신이 도운 것일까.
바로 목 옆에서 멈추어버린 칼날은,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천천히 거두어졌다.
죽을 각오를 했다고는 하나, 고작해봐야 어린 아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생사의 경계에서 간신히 돌아온 단아의 다리힘이 플린 채 풀썩 주저앉았으며, 그와 동시에 비틀거리며 다가온 세이지는 단아를 간신히 붙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반드시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그 공격은, 단 한명에 의해 막혔으며.
아마 한명 때문에 막혔다기 보다는, 이 성의 주인, 하니엘의 뜻에 따라 멈춘 것이겠지.
“…현단아, 씨….”
단아 형과는 다른 사람.
단아 형의 어머니였던 사람.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
만들어졌을 터인 그녀는, 모성애인지 아니면 동정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단아의 앞을. 막아선다 해서 바뀌는 결과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막아섰으며, 동시에 그녀를 상처입히지 않기를 원했던건지, 하니엘이 검을 멈추었다.
어째서 멈춘걸까. 왜 멈춘걸까. 수많은 의심이, 의혹이 머릿속을 맴돌며 복잡하게 이어져나가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단아가 살았다는 진실 뿐이었다.
“형, 괜찮아요?”
적을 앞에 두고 괜찮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당연히 어리석은 행위였겠지만, 마치 성을 가르듯 서 있는 여성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그 뒤에 숨은 둘을 공격하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을 하니엘은 살짝 물러서더니 말했다.
“그분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려두었을 뿐인데, 당신이 제 앞을 가로막는건가요.”
그러자 단아─그녀가 답하였다.
“…잘은 모르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기억의 주인에게 있어서… 그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인 것 같으니까요.”
“당신을 도와주고, 인간의 병기로 자라지 않게 해준 것은 저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로서 가졌던 의식과 본능만큼은 그대로 남아서, 단아를 지켜주기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정말로 그녀가 단아의 어머니라면, 단아가 개명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 틀림없을 그녀는 ‘단아’라고 소년을 칭하며 말했다.
“당신과 하고싶은 이야기가. …동시에 거래가 있어요. 그러니, 지금만큼은 그들을 돌려보내주세요.”
“어리석은. 당신이 뭘 말한다고 한들, 저들을 죽인다는 결론은 변화하지 않아요.”
“아뇨, 듣는다면 분명, 많은 것이 변할거에요.”
확신. 틀림없을 것이라 단언하는 그녀의 말에 잠시 흘깃, 여성을 쳐다본 하니엘은 그 너머에 주저앉아있는 두 소년을 보았다.
탐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공간’ 계열의 정점, 현단아와, ‘그분’과 같은 색의 위상력을 사용하는 소년, 세이지.
그리고 눈앞에 서있는 여성은, 인류 최초의 검은 위상력 각성자이자 동시에… 그분이 선택한 최초의 ‘그릇’.
중요성을 판단한다. 어느 쪽이 더 좋을지, 가치를 판단한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위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눈앞에 새겨져 있는 선택지는 셋 모두 죽이는 것과, 셋 모두 살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동안 칼끝으로 성의 바닥을 약하게 내리치길 반복하던 하니엘은, 이내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당신이 말하는 것이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변화조차 주지 않는다면….”
전력을 다해서, 저들을 몰살하겠습니다.
협박을 내세우며 말하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화답한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목숨을 부지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이 성에서 나가세요.”
칼끝을 가볍게 휘둘러 검을 와해시킨 하니엘의 말에, 여성은 뒤돌아 세이지가 부축해준 덕에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선 단아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구나.”
무모한 것도, 그이와 같은 것도.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반박하듯, 단아가 이빨을 강하게 뿌득이며, 목메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내 어머니가 아니잖아.”
“…그렇, 지. 하지만… 네 어머니라면 적어도 이렇게 말했을거라고 생각해.”
─정말, 잘 자라주었다고.
“그럼, 잘 가렴. …단아야.”
속삭이듯 스며드는 그 마지막 자그마한 ‘이름’의 목소리와.
뒤에서 잡아끌 듯 허리를 붙잡으며 내달리는 세이지의 다급한 발걸음.
이 정적인 세상을 바꾸지도 못한 채, 잃어버리고, 그렇게 냉전으로 끝나버린, ‘토벌’이었을 터인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같이, 잘못된 것 투성이었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 ‡ ‡
“기록, 관찰. ‘공간’ 위상능력자 현단아, ‘힘’의 상대적 크기로 압도당하였음.”
“그런가.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군. ‘공간’이라는 능력도, 어디까지가 범위고 어느 정도까지 끌어쓸 수 있는지 모르는데다가.”
─무엇보다, ‘여섯 번째 주인’과 격전할 때 일으켰던 그 공명 현상은.
이미….
“계속해서 기록을 개시할까요?”
“아니, 됐다. …더 이상 기록을 계속해봤자, 저쪽에는 최대 규모의 ‘방전기’가 있어. 그 사거리 안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그렇다면….”
“다른 두 개체의 상태는?”
“…S개체의 상태는 현재 폭주. 위상력의 크기를 육체가 버티지 못한 채, 약간의 붕괴 현상을 일으켰었습니다만, 해당 붕괴 현상을 ‘방전’이라는 특수 기능을 통해 해결한 모양입니다. 나머지 개체의 경우, ‘자색 불꽃’의 형태에 대해 불명확한 부분이 많아 아직까지 검토가….”
“됐다.”
터억, 하고 책을 덮는다.
이곳, 수억개의 책이 세워져있는 유일한 차원계, 차원의 도서관에서조차 찾지 못하는 기록이라면, 그 자색 불꽃이라는 형상은 틀림없는 오리지널.
누구도 하지 못할 짓을, 자신의 몸과 함께 불태워 현현시키는 마기魔奇.
“…왕께 돌아가도록 하지. 더 이상 의미없는 기록은 필요없다. 다른 놈들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싹다 제거해버려.”
“명령 받들겠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나올까.
열쇠로써는 완성되었지만, 그릇으로써는 불안정한 육신으로 현현한 이계의 신이여.
법칙을 가르고 개변시키는 그 힘으로, 왕에게 칼날을 들이밀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의 왕은… 늙어빠진 고룡이나, 개나 다름없는 쓰레기와는 다르다고.”
철저하게 정보를 수집해서, 너희를 지탱하는 근본부터 전부 무너트려주마.
‡ ‡ ‡
아즈라엘과 이즈라엘의 퇴각 이후, 하늘새 팀은 한참이나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방대한 위상력. 아마 전함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할 정도의 크기의 위상력을 몸에 응축, 전신에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서 반응속도는 물론 육체 가속을 포함한 전체적인 능력치 상승을 이루는 ‘뇌제’를 리미트도 없이 사용한 유주는 최악의 경우, 전선에서 은퇴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하얀의 경우.
“…피가, 모자라요. 수혈을 해야할 것 같은데….”
빈사. 그것도 출혈사.
아니, 출혈사라고 하기에는 피를 흘린 기척은 없었으나, 하얀의 전투 기록을 본 마나는 주먹을 쥐며 반응했다.
“자색 불꽃. 본래 푸른색으로 비추어져야할 불꽃이지만, 육체능력과 더불어 살상력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혈관에 위상력을 침투시킨 기술. …다르게 말하자면, 저 불꽃 하나하나가 모두 피라는거에요.”
“그럼, 하얀 요원님을 살릴 방도는….”
“수혈만 잘 된다면 좋겠지만, 하얀 요원님의 혈액형이….”
─Rh-형.
“과거, 서양에서는 약 20%이상의 인구가 이 혈액형을 가졌다고 알려졌지만 파리가 이 상태고, 무엇보다 차원전쟁을 겪으며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는 희귀한 혈액형으로 변화했어요. 물론, 유니온 총본부의 혈액보관실로 간다면 있겠지만….”
리버스 휠이 당장 움직일 수 있을까?
얼음성으로부터 퍼져나오는 이 결계를 뚫고 날아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일어나는 가운데, 저 멀리서 천천히, 굉음과 함께 얼음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의도일까. 이대로 모든 것을 짓누르겠다는 걸까, 아니면, 한 차례 봐주겠다는 걸까.
아무도 모르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택한 것은 자비였다.
얼음성과 함께 하늘 너머로 두 시종이 사라졌으며,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온 단아의 상태는 정신적인 붕괴가 크게 일어난 상태였다.
“…아무래도 본부에 돌아가서, 세 분 모두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가요?”
마나가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언제부터 듣고있었던걸지, 뻐꾸기에 화면을 띄운 프레이 아델 로가 답했다.
-확실히, 하늘새 팀의 전투 능력이 거의 상실되었군. 이 상태에서 무리한 전장 투입보다는, 한 명의 클로저가 아쉬운 우리에게 있어서는 빠른 치료를 요구하는 것이 낫겠어.
하지만.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녀석들이 어디로 향했을 것 같아?”
“유주 요원님, 무리하시면….”
“녀석들은… 녀석들은 아마 한국으로 향했을거라고.”
유주의 추측에 프레이 아델 로가 되물었다.
-근거는?
“녀석들의 주인이 어디있을거라 생각하지?”
-그 주인이 한국에 있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 있나?
그 확신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유주의 감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연하은의 정적. 유니온 상층부의 학살 이후 사라졌던 그 행적이, 만약 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거기다가 현재 한국 지부─신서울 지부는 지부장은 물론이요, 임시 지부장마저 외국에 있는 상황. 마음껏 활개치기에는 좋은데다가.
“…녀석에 대해 잘 아는건, 우리니까.”
연하은이라는 인간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인연을 끊기로 결정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연을 끊어, 연하은이라는 인간의 싹을 잘라놓기 위해 어떤 다른 개체가 개입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향할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지 않은가.
“…부산, 이라고.”
부산에서도 내륙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적 드문 고아원.
셋이서 자라고 컸던 과거 모든 것이 새겨져있는 그 모든 이야기를, 그녀는 ‘끊어내러’ 향했을 것이며.
이곳에서 머뭇거리다간, 그녀를 붙잡을 수 없게 될 터였다.
“출발해야해, 당장!”
“하지만 요원님들의 상태가….”
“클로저 둘이랑 애들 수십이랑 목숨 저울질 할 때가 아니야.”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이 모든 것을 끊어내기 위해, 나아가야만 했다.
이 상황과 이야기를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프레이 아델 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코드 입력은 끝났으니, 이쪽도 동행하도록 하지.
“당신은 일국의 생명보다 과학 진보에 더 중점을 둘 줄 알았는데, 신기하군.”
-결국에는 사람을 살리는 일. 이쪽은 세세한 조정은 끝났다. 제어 코드가 활성화되어있고, 세이지 군과의 약속이 있는 이상, 그대들 역시 내게 손댈 수 없을테니까.
“약속? 그리고 약속 이전에, 당신이 뭔가를 한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지. 이 심장이 뛰고 있는 이상, 그들이 폭주 상태로 들어설 일은 없을걸세. 하지만… 뭐, 폭주 상태의 조건까지 내가 말해줘야할 이유는 없겠지.
그 또한 하나의 족쇄가 될 수 있을테니.
능구렁이처럼 밀고 당기기에 능숙한 프레이 아델 로의 말에 유주가 혀를 찼다.
내심 그 조건을 알려주었으면 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 바이니. 치료중인 하얀을 리버스 휠에 옮긴 뒤에야 천천히 연구실에서 나온 프레이 아델 로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조금 더 괜찮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조금 안타깝군.”
“고작해봐야 그깟 연구 하나를 위해 몇 명을 희생하려고 하는거지, 프레이 아델 로? …당신의 방식에는 이제 진저리가 날 정도야. 그리고, 아무리 보험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무방비하게 나오면….”
“그대 눈엔 이것이 무방비한가?”
무언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살며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자, 한때 같은 동료로서 같은 적을 공유하고 싸웠던 하늘새 2분대의 네 명이, 이 곳을 쳐다본 채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결국 이런건가? 아이들의 목숨을 빌미로, 날 억압하겠다고?”
“그런 셈이 되겠군. 하지만 자네는 쓸데없이 아이들의 목숨을 걱정한다고 나를 감히 해치지 못하지. …어떻게 할건가. 나도 죽이고, 아이들까지 모두 죽일 생각인가?”
“썩을 늙은이가….”
이 자리에서 4명 전원과 싸우라 한다면 싸울 수 있었다. ‘뇌제’를 극한까지 끌어낸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쪽은 인질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여럿이며, 이쪽은 대응할 수 있는 숫자조차 맞추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니, 프레이 아델 로가 말하길.
“아직 내 연구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내 중요한 샘플을 가져갔다면, 되찾을 수밖에 없겠지.”
“마음대로 되겠나? 프레이 아델 로….”
“그렇기에 난 지금 이 순간, 도박을 결정했을 뿐이다.”
연구자로서 가져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도박’을 해**다면.
그 도박에 서슴없이 달려들어야하지 않겠나.
“가지, 부산으로….”
“…그럼, 리버스 휠… 작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우리는.
‘천사’라 불리우는 역대 최악의 괴물을 상대로, 싸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되었다.
‡ ‡ ‡
반면, 사냥터지기 성.
12번째 주인으로 인해 지체된 시간만큼이나 늘어지는 추격전은, 이제야 간신히 호프만의 실마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AI미스틱입니다.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서 많은 것으로부터 손을 떼고 도망쳤습니다만,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이번 2장 17화에서는 유니온에게 주어진 선택지와, 어떠한 방식을 통해 서지수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단아의 어머니가 한 선택을 보여드렸습니다.
과연, 유니온의 상층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요.
세계 정세를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파급력을 가지고있는 유니온 상층부가 하는 선택은 분명, 모든 것을 바꾸겠죠.
그리고, 단아의 어머니가 한 선택은….
…어비스의 길로를 바꿀, 커다란 해일이 되어서, 돌아올겁니다.
여담입니다만, 이번에 ‘부산’행으로 가는데 있어 한 가지 염두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부산에서 하늘새 팀과 검은양을 비롯한 세 팀은 만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만남은 아마 ‘어비스 사태’가 끝난 이후일지도, 혹은 이전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어비스 사태가 끝나기도 전이라면, 그들의 만남에 있어 커다란 여파가 일어날 것이고.
사태가 끝난 다음이라면… 뭐, 좋겠네요.
오랜만에 돌아온 점에 있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슬슬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시작하는 어비스의 주인을 계속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힘이 든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외세…라고나 할까요.
저 외세에 대해서는, 이 어비스의 주인 내부에서는 다루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코로나19가 일어나는 이 시기에,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