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클로저 15화

검은코트의사내 2021-02-26 0

쿵! 콰콰쾅!

 강력한 위상력 능력자들끼리의 사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트레이너와 서지수는 거의 동시에 숨을 헐떡이며 거리를 두었다. 훈련장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동시에 천장을 뚫고 높게 점프했다.

콰르르릉!

 넓은 훈련장이 무너져 내렸다. 양측 모두 전력을 다한 탓이었다. 훈련장 주변에 있던 가로수들도 기둥이 잘려나갈 정도였다. 트레이너는 과연 알파퀸이라고 생각하면서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에 착지했다.

"후, 간만에 제대로 힘썼더니 조금 풀리는 기분이네."

"서지수. 내 교육 방침에 불만을 가졌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지금 주변을 봐라. 저 가로수들은 나름 튼튼하다고 알려진 나무들이다. 저게 만약 민간인이 사는 집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 같나?"

 트레이너의 말에 서지수는 할 말을 잃었다. 민간인 피해를 언급한다면 그녀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차원종들이 나타나는 장소는 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나 시골마을이었다. 눈 앞에 싸우는 사람이 트레이너가 아니라 차원종이었다면 겨우 쓰러뜨렸다해도 거주지 피해가 확대된다는 얘기였다.

"저도 알아요. 교관. 이미 그 설명은 질리도록 들었다고요.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라는 거죠?"

"안 되는 건 없어. 조금씩 노력하면 될 일이다. 너만 늦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강하다는 걸 의미한다.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아. 훈련장을 새로 구해야 할 거 같군."

 트레이너는 무너져 내린 훈련장을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지부장님이 한 번 정도는 봐줄지도 모르지만, 다시 짓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들기 마련이니까. 지수는 혀를 차며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 * *


 다음 날, 데이비드는 울프팩 요원들을 모아 상부에서 온 명령을 전달했다. 트레이너는 그 명령이 뭔지 짐작했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어. 유니온 수석 연구원인 이세진 박사님을 구출하는 임무다."

 이어서 이세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유니온 수석 연구원이며 20대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딴 천재였다. 차원전쟁 중에 외부차원을 연구하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차원문이 열리는 걸 막을 방법을 알아냈다고 하지만, 차원종이 연구소를 습격하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다.

"차원문을 막을 수 있는 열쇠를 지닌 인물인 만큼 중요하다면서 강력한 위상력을 가진 우리에게 임무를 준 것이네. 이번이 첫 출전인 만큼 조심하길 바라네. 이세진 박사님은 위상력 능력자가 아니니까 알겠지?"

"네!"

"트레이너. 자네도 가는 건가?"

"물론이죠. 대원들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는지는 교관인 제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트레이너는 마침내 이 날이 왔다고 생각하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여기서부터 서지수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으니까. 

 연구소를 습격한 차원종들은 스캐빈저, 벽을 갉아먹는 걸 시작으로 각 장비들까지 망가뜨리고 있었다. 울프팩팀이 도착하자 스캐빈저들은 전부 검을 들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훈련받은 대로 최소한의 힘으로 상대한다. 연구소 안에는 아직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걸 명심하도록."

"네! 저 먼저 가겠습니다."

 준혁이 먼저 앞장섰다. 훈련 받은 대로 최소한의 힘으로 스캐빈저를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뒤 이어서 다른 팀원들도 나섰지만, 서지수는 망설였다. 마음 같아서는 싸우고 싶은데 자신이 나서다가는 연구소에 피해가 갈까봐 두려웠던 것.

쾅!

 서지수는 가볍게 건 블레이드를 지면에 내리쳐 커다란 폭발을 한 번만 일으켰다. 연구소 벽에 금이가는 걸 보며 혀를 찼다. 두 번째로 내리쳤다가는 연구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더는 나서지 않았다. 

 스캐빈저 무리는 순식간에 전멸했다. 트레이너는 이에 만족하며 그들과 함께 연구소 내부로 들어갔다. 트레이너가 직접 나서서 최소한의 힘으로 안에 있는 스캐빈저들을 마저 소탕한 뒤에 그들이 숨어있는 지하로 향했다. 전생에서도 연구소에 온 기억이 있었기에 길을 조금도 헤매지 않았다.

"클로저들이다!"

"이젠 살았어!"

 울프팩 팀이 도착하자 서로 껴안으며 좋아하는 연구원들도 그대로였다. 트레이너는 그 중에서 안경을 쓴 젊은 남성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니온 정예 클로저 팀, 울프팩 팀을 이끄는 트레이너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세진이라고 합니다. 구조 신호를 받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첫인상도 예전 그대로였다. 클로저들을 밝은 얼굴로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여기서 이세진을 데리고 나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바깥에 진동이 울렸다.

"차원문이 또 열렸어요."

 지나 그레이스의 말에 트레이너는 차원문이 생성되는 방향을 보았다. 차원문은 어디서든지 생길 수 있었다. 지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트레이너는 지하 구석에 생성된 스캐빈저 주술사가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며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쿵!

 우두머리가 차원종들을 소환하기 전에 미리 제압했다. 트레이너는 이대로 탈출하자고 했지만, 세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연구소 발전기를 복구해야 하는데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구조 신호를 보냈으면서 여기서 연구하겠다는 말이오?"

"차원종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으로 보낸 신호였습니다. 클로저 여러분들, 발전기를 가동할 수 있게 저희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뭘 하려는 것이오?"

"이번에 저희가 만들어 낸 장치를 시험가동해야 합니다. 외부차원이 열리지 못하게 하는 거죠."

 미래의 위상 억제기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 장치였다. 세진은 장치를 시험 가동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벌어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여기 있다가 차원종이 또 나올지도 모르는데."

"발전기들이 대부분 망가졌는데 가동하는 거 자체가 무리 아닐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신다면 말이죠."

 지수와 베로니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세진은 자신있게 답했다. 트레이너는 그 때와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걸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때 당시에는 한 번 믿어본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확신이었다.

"좋소. 박사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교관!"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해라. 이번 일이 잘 된다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장치가 완성되는 거다."

 외부차원의 문을 여는 걸 억제하는 거야말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차원종 사령관인 아자젤을 소멸하는 게 아닌 외부차원이 열리는 걸 막는 거였다. 세진은 트레이너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곧바로 연구원들에게 발전기 복구 지시를 내렸다.

"쳇. 맘에 안 들어. 저깟 기계가 뭘 할 수 있다고."

 지수가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고물 기계처럼 보였다. 단순히 냉장고만한 크기인 대형 건전지 모양의 장치가 뭘 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트레이너는 울프팩 팀에게 지시를 내려 연구소 주변을 사수하라 명했다.

"너도 자리로 가라. 지나친 위상력 사용은 하지 말고."

"네, 네. 알았다고요."

 지수는 건성으로 답하며 대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예전에는 서지수의 강력한 힘 때문에 위상력 억제기 장치가 가동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절반 정도 힘을 발휘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아, 싫다. 싫어. 힘조절하는 건 정말 싫다니까."

 다른 울프팩 팀 요원들은 트레이너가 말한 대로 힘조절하면서 차원종들을 쓰러뜨리지만, 서지수가 공격할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 지면에 구멍이 생겼다. 트레이너는 그 모습을 보며 예전보다는 덜 큰 구멍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발전기를 잇는 파이프가 이번에는 망가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우우웅!

 연구소 내부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거처럼 보일 정도로 파동이 발생했다. 지금 막 열리려던 외부차원문이 서서히 좁아지면서 닫히려고 했다. 울프팩 요원들은 그걸 보며 놀라워했다.

"믿을 수가 없어. 차원문이 닫히고 있잖아."

 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별 거 아닌 기계라고 생각했던 지수도 깜짝 놀랐다. 단지 거대한 건전지 모양을 한 고철기계가 차원문을 닫게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파동이 멎어지고 나서도 외부차원은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지하로 내려가 성공을 축하하는 연구원들을 보았다.

"성공했습니다. 박사님."

"모두 잘해주셨습니다. 특히 클로저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세진은 예의바른 자세로 트레이너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트레이너는 여전히 품행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이세진 박사,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지만, 위상력 억제기를 만든 최초의 과학자였다. 트레이너는 할 일이 또 생각났다. 서지수가 밝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를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차갑고 냉혹한 그녀의 마음을 열게 만든 인물이 18년이 지난 후에도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To Be Continued......

Chapter.0 프롤로그(Pro ~ 3화)

Chapter.1 차원전쟁편(4화~10화)

Chapter.2 울프팩편(11화~)


2024-10-24 23:36:1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