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클로저 10화

검은코트의사내 2021-02-15 1

 한달 뒤, 새로운 인원들이 훈련을 수료하여 전장에 투입되었다. 유능한 교관이라고 불린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에 그들은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인원이 더 늘어났으니 티나와 그녀의 동기들의 수고가 조금은 덜어졌다. 트레이너는 그녀가 여전히 임무 수행하면서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찾아가지는 않는다. 다음 훈련생들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훈련장 내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클로저들의 활약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며 만족해했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신다. 그 이후에도 티나가 클로저로서 활약하고 있는 내용이 보도되었고,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는 그녀의 얼굴도 비춰졌다. 트레이너는 전생의 한을 조금이나마 해결한 기분이 들었다.

"교관님!"

"응?"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티나가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기쁘게 맞이하고 싶었지만, 교관인 입장으로 나와서 그녀를 근엄하게 맞이했다.

"티나 아니냐? 무슨 일이지?"

"충성! 교관님. 오늘 부로 교관님 경호를 맡게 되었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지?"

 트레이너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충분히 강하기에 경호같은 건 필요 없었다. 자기 보다 약한 클로저가 자신을 경호하겠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농담하러 온 것이냐?"

"농담이 아니에요. 교관님. 오늘 부로 지부장님 명령을 받아 이 자리에 왔습니다."

"지부장님이? 잠시 기다려라."

 트레이너는 커피를 전부 마신 뒤에 휴대폰으로 지부장 신현우에게 연락했다. 바빴는지 한참 통화음이 울리고 나서야 받았다.

[음, 나일세. 무슨 일인가?]

"지부장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티나를 제 경호원으로 삼으신 이유가 뭡니까?"

[왜? 마음에 안 드는가? 자네가 직접 구해준 목숨이지 않는가? 김한수 요원, 자네는 한국 클로저들을 양성하는 데 필요한 인물이야.]

"그게 티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클로저들도 인간과 다를바 없지 않나?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컨디션 회복도 중요한 법이지. 전력 상승에 핵심이 되는 자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네. 그래서 티나를 자네 곁에 두도록 했어. 어떤가? 혼자 있는 것보다는 자랑스러운 제자와 함께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지부장의 말을 들은 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신현우는 전생에서 만났던 사람 그대로였다. 전생에서 티나를 잃고 의욕이 떨어졌을 때 그의 능력을 보고 울프팩 팀의 교관자리에 있게 해준 사람이 바로 신현우 지부장이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전쟁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전력이 이렇게 무너질 때가 아니라면서 울프팩 팀의 교관을 맡게 했었다. 트레이너가 한참 말이 없을 때 분위기를 깨듯이 현우가 한 마디 더했다.

[자네가 일을 팽개치면서까지 살리려고 할 정도로 소중히 여긴 제자가 맞지? 이제 티나가 없어도 다른 클로저들이 역할을 대신해줄 테니까 이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앞으로도 최상이 컨디션으로 한국 클로저들 육성에 힘써주길 바라겠네. 그럼, 좋은 결과 기다리지.]

 통화가 끊어졌다. 트레이너는 가슴이 아픈 걸 느꼈다. 훈련 교관이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컨디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티나가 자신의 경호원 역할을 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이고, 본심은 소중한 제자가 죽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지부장의 배려였던 거였다. 지부장이 자기를 너무 특별취급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건 트레이너도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한국 클로저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소화해내서 전쟁에 참전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트레이너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커다란 한숨을 내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교관님. 무슨 일이세요?"

 티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트레이너는 한참 쳐다보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짓을."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 티나."

"네! 교관님!"

 티나는 기뻐하면서 그에게 다시 거수 경례를 했다. 뉴스에서는 차원종의 습격으로 가장 피해가 적은 곳이 한국이라고 앵커가 언급했다. 전생이라면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심각한 피해를 입어야 정상인데 지금은 아니었다. 위상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트레이너가 실전 경험으로 그들을 잘 가르친 결과였다. 이번에 더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인원이 모자랐다. 

 만약 미숙한 교관인 채 그대로였다면 훈련 4주는 절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어차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거 시간 낭비하지 않고 그냥 대충 기본 전투만 배운 채 전장으로 투입되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훈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트레이너는 티나를 식탁에 앉히고 음식을 대접했다. 전생에서는 형편없는 요리 실력으로 민망함을 드러내기도 했었지만, 이번에는 알바하면서 고깃집 사장님 부인에게 요리를 배웠다. 사람의 몸 건강에 좋은 흑염소 탕, 티나는 트레이너가 건네준 국그릇을 받으며 두 손을 모았다.

"잘 먹겠습니다."

 트레이너는 그녀가 시식하는 걸 바라보았다. 혹시나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국물맛을 본 티나는 표정이 밝아졌다.

"맛있어요. 교관님."

"그거 다행이군. 많이 먹어라. 앞으로 경호원 역할을 하려면 차원종과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경호원이라해도 지루한 시간만 보낼 뿐이었다. 가끔은 티나와 대련을 벌여서 몸이 기억할 수 있게 신경 써야겠다고 판단했다. 트레이너는 그녀가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하는 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3번째로 훈련을 수료했다. 훈련생들이 전부 거수 경례로 듬직한 모습을 드러냈다. 트레이너는 이번에 새로 전장에 투입될 클로저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자신이 직접 수료증을 한 명씩 건네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훈련수료한 클로저들은 유니온 직원들이 와서 데려갔다. 티나는 이제야 끝났다는 걸 알고 기지개를 폈다. 이 정도라면 1년 후에 있을 부산 사태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트레이너는 생각했다.

"교관님. 이번에 클로저들은 어디로 투입되나요?"

"아마 전라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파견될 거라고 예상한다. 특히 부산에 인원이 충분하다면 그 때와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겠지."

"그 때라뇨?"

"아무것도 아니다."

 트레이너는 앞장서서 걸어가다가 대형 스크린에 뉴스가 보도되는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금일 새벽 3시, 차원종의 우두머리라고 자칭한 차원종이 유니온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고 나서 화면은 차원종의 시점으로 바뀌었다. 얼굴이 갈색을 띤 갈기로 뒤덮여있는 고릴라 형태였고, 검은색 전투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다스 군단, 너희 인간들에게 오늘 감사를 하러 왔다. 용의 군단인 파이몬을 해치워준 덕분에 우리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보답으로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 기회를 줄 것이다. 나 다스를 섬긴다면 너희 인간들을 모두 살려줄 것이고, 저항한다면, 모두 죽을 것이다.]

 메시지는 이걸로 끝이었다. 트레이너는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스 군단은 전생에 없었던 차원종 군단이었다. 티나는 교관이 초조해하는 걸 보고 놀랐다.

"교관님. 왜 그러십니까? 교관님."

"이건 말도 안 돼."

 전생에 없던 차원종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다스 군단에 대해서는 그가 아는 바가 없기에 그들이 쳐들어온다면 한국은 상당한 피해를 입을 거라 확신했다. 티나는 그의 팔을 잡으며 걱정하듯이 물었다.

"교관님. 괜찮으세요?"

"음. 난 괜찮다. 티나. 오늘은 먼저 돌아가라. 잠시 혼자 있고 싶으니."

"네. 교관님. 내일 뵙겠습니다."

 티나는 그가 걱정되었지만, 공손히 인사하며 자리를 떴다. 트레이너는 이마에 손을 대며 초조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사내가 숙소 문 앞에 등지고 서 있다. 그를 본 트레이너는 그에게 다가가서 멱살을 잡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내가 모르는 차원종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거야? 설마 네가 한 짓이냐?"

 검은 코트의 사내는 피식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난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 일을 저지른 건 바로 너지."

"뭐라고?"

 사내는 트레이너를 살짝 밀쳐서 떨어뜨린 뒤에 구겨진 코트를 단정하게 했다. 사내는 숙소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트레이너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냉정을 되찾았다.

 검은 코트의 사내가 커피를 한모금 들이킬 때까지 트레이너는 그와 마주한 채 가만히 응시했다. 절반 정도 비우고 나서야 말을 걸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야? 왜 내가 모르는 차원종이 갑자기 나타나는 거지? 이건 과거에 없었던 일이잖아."

"안 그래도 그걸 말해주려고 왔어. 트레이너 김한수, 너는 선택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선택지라고?"

"사람은 살아가면서 인생의 선택지를 하게 되지. 한 어린 양이 죽을 위험에 빠지면, 그 양을 구하거나, 아니면 죽게 내버려두거나. 인생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선택한 그 길을 걸어가게 된다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어."

"내가 티나를 구해낸 거와 관련된 이유인가?"

"사람은 누구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어린 양을 구해내지 않았다면, 늑대가 양이 없는 울타리에 나타날 리가 없겠지. 하지만, 양을 구해낸다면, 굶주린 늑대가 또 찾아오기 마련이지."

 사내의 말을 들은 트레이너는 눈을 반쯤 감으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 말은 자신의 선택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티나를 구하기 위해 용의 군단을 이끄는 파이몬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 결과가 다스 군단의 출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파이몬은 다스 군단을 멸하는 일을 수행해야 하는데 트레이너의 손에 죽었으니 그들이 내부차원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

"결국 내 탓이란 말이냐?"

"그래. 시간을 되돌려서 과거로 돌아간다해도 변함이 없는 게 뭔지 아나? 바로 선택지라는 거야. 인간은 딱 한 가지 운명만 택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곤 하지.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바로 네가 처한거와 같은 운명을 가지기 마련이지."

"큭."

 트레이너는 미지의 차원종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나타난 차원종은 그가 알고 있는 차원종이었지만, 다스 군단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기에 전생보다 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세계에 관여하지 않아. 단지 지켜볼 뿐이지. 그럼 열심히 해보게. 어떤 결말을 맞이할 지 기대하고 있으니까. 후후후."

 사내는 커피를 다 마신 뒤에 그의 숙소에서 나갔다. 트레이너는 아직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쫓아가려고 현관문을 열었지만, 이미 그는 어딘가로 사라진 뒤였다.

To Be Continued...... 

Chapter.0 프롤로그(Pro~3화)

Chapter.1 차원전쟁편(4화~10화)

Chapter.2 울프팩편(11화~)

2024-10-24 23:36:1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