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클로저 1화

검은코트의사내 2021-02-02 1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트레이너는 눈을 떴다. 자신을 완벽히 가리는 책상 하나에 대학교 교재가 많이 있었다. 전부 낯이 익은 교재였다. 그는 놀란 얼굴로 교재를 살펴보았다. 대학교 다닐 때 전부 공부한 내용이었다.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든 학생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고 있는 걸로 보아 도서관 열람실이라는 걸 알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복장을 확인했다. 푸른색 청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옷차림, 흉터가 남아있던 손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는 놀란 얼굴로 열람실을 나와 화장실에 있는 세면대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가 없군.]


 얼굴은 20대 외모였다. 검은색 코트를 입었던 남자의 말대로 과거로 돌아왔다. 트레이너는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2010년에 만들어진 구형 스마트폰 그대로였다. 화면에는 2011년 4월 13일이라고 표시되었다. 정확히 차원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


[정말로 과거로 돌아왔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차원전쟁이 뭔지 모른 채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대학생 시절에 뭐했는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에 싸움꾼으로 유명했지만, 취업을 위해 공부를 했었다. 스마트폰 앨범을 **보았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부모의 사진이 있었다. 하필 돌아와도 부모가 세상을 떠난 과거로 돌아왔다. 가능하면 부모도 구하고 싶었는데 안타까워했다.


 열람실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나왔다. 지금 여기서 공부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년 후에 차원전쟁이 일어난다. 프로미넌스회 연구원들이 지고의 원반을 연구하는 걸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남극으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서관을 나왔다.


"음?"


 트레이너는 가다가 멈추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위상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원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왔지만, 위상력이 함께 온 건 아니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건 미래에 대한 기억 뿐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남극으로 갈 방법은 없다는 뜻이었다. 부모도 없는 상황에서 전재산을 다 털어도 남극으로 갈 수 없었다. 아니, 간다고 해도 연구원들을 혼자서 막는 건 무리였다.


 대학교 후문 쪽에 있는 자취방으로 왔다. 1년 후에 차원전쟁으로 여기는 곧 폐허가 될 장소였다.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고 해서 뭐가 되겠는가? 위상력을 처음 각성했을 때를 떠올렸다. 평소처럼 자취방에서 생활하다가 주변이 폭발을 일으킴과 동시에 몸에 힘이 깃들었었다. 그 힘을 가지고 수많은 차원종들과 싸워왔었다. 트레이너는 지금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남극으로 가는 건 무리다.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믿어줄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1년 후에 발생하는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다.


뭘 해야 할까?


 막상 생각해보니 고민이 되었다. 트레이너는 밝은 미래로 만들기 위해 과거로 넘어왔지만, 차원전쟁 이전으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막상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막상 서바이벌 관련 일을 떠올리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차원종이 나타났을 때 각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문제는 정전이었다. 화재도 위험하긴 하지만, 정전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둠의 상징이었다.


정전이 일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지. 그야말로 원시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


 블랙 아웃 현상이 일어나면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전부 변해버린다. 식료품 문제도 자기 몫을 챙기느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변하는 법이었다.


식량을 최대한 확보해야겠군.


 각성한 한국 클로저들이 유니온에서 가장 많이 어려워했던 건 바로 식량이었다. 매일 맛없는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클로저들이었다. 트레이너도 처음에는 싫었지만, 이내 적응했다.


 그는 활짝 웃었던 티나를 떠올렸다. 강한 위상력 능력자로 분류되어 공적을 세운 뒤에 교관으로 활동했을 때 아직 전투에 익숙하지 않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지도했었다. 이번에 다시 살아가게 되는 시간인 만큼 그녀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티나."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클로저이긴 해도 순수한 마음을 가진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미래에서 계속 이어졌었다. 안드로이드 몸을 가진 상태에서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었지만, 인간이 아닌 로봇의 몸으로 살아가는 건 편하지 않은 인생이었다. 사람들을 위해 싸우던 클로저로 활동하다가 테러리스트의 킬러로 이용되기도 한 그녀, 트레이너는 이번 생에는 반드시 그녀를 구하겠다고 판단했다.


[흠, 그러고 보니 생각해본 적이 없었군. 어린 소녀가 뭘 좋아했을까?]


 교관으로서 만났을 때는 그녀에게 매정하게만 대해줬었다. 그건 원래 교관으로써 당연한 일이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티나를 훈련시켰지만, 그녀가 정작 좋아한 게 뭔지는 물어** 않았었다. 어디까지나 교관으로써 엄격하게 대해야만 했었으니까.


 메모장을 꺼내 할 일을 계획했다. 재난상황이 터지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식량을 확보하고, 몸을 좀 더 단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는 원래 싸움꾼이었지만, 지금보다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차원 전쟁 때 자신보다 더 강한 자가 있었으니까.

먼저 학교에 가서 자퇴서를 냈다. 교수와 조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트레이너는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했다. 교수는 트레이너를 자기 방으로 데려와 차를 한 잔 대접했다.


"저기, 한수야. 다시 한 번 생각해주면 안 될까? 네가 발표한 논문이야. 너라면 충분히 인재가 될 수 있는데 어째서 자퇴하겠다는 거니?"


"죄송합니다. 교수님. 딱히 이 학교에 문제가 있어서 자퇴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자퇴하는 겁니다."


 어차피 1년 후면 차원 전쟁으로 여기는 폐허가 된다. 미리 위험을 말한다해도 믿어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트레이너는 눈 앞에 있는 교수님을 보았다. 1년 후에 차원전쟁에 휘말려 죽는 희생자였다. 사실대로 말할까 생각했지만, 그는 미신을 믿지 않는 편이었다.


"그 문제가 뭔지 교수님께 알려주지 않을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도록 할게. 아무리 그래도 자퇴는 아니잖니."

교수가 상냥하게 말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3시간 동안 교수가 그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는 트레이너의 말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아까운 재능인데 말이야. 대체 어떤 문**래 그런 거니?"


"죄송합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해도 어차피 믿지 않는다. 내년에 지구에 종말이 올 거 같은 아포칼립스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트레이너는 몸은 20대지만, 마음은 이미 그 이상으로 성인이었기에 교수의 속마음을 몰라도 대답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알 수 있었다.


"내일 다시 찾아오지 않겠니? 다시 이야기하고 싶구나."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트레이너는 마음 약해지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대학 건물을 나온 트레이너는 은행으로 가서 통장과 카드에 남아있는 돈을 확인한 뒤에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돈을 벌어들인 뒤에 최대한 식량을 많이 확보할 계획이었다. 가능하면 냉장고 없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을 위주로 준비하기로 했다.


 잔소리할 사람도 없어서 그는 마음이 편했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살아왔지만, 지금은 봐주는 친척도 별로 없었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한다며 자립을 선언했었으니까. 지금은 돈이 없으니 자취방에서 묵는 것밖에 하지 않았지만, 대학교를 그만뒀으니 이제 학비 걱정은 없었다. 비싼 학비를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을 벌어들이면서 식량을 조금씩 비축하고 훈련을 하기로 했다.



* * *



 오전부터 오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이후에 자정까지는 격투 연습을 하면서 하루 일과를 보냈다. 돈은 다른 대학생들보다 더 많이 버는 편이었다. 그들은 공부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만, 트레이너에게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주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식료품을 구입하며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


[보관할 장소가 좁다는 게 문제군. 가능하면 시중에서 파는 전투식량을 위주로 해야겠어.]


 막상 보관하려니 자취방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사제품으로 팔고 있는 전투식량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보관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식량 확보하는 것도 어렵겠군.]


 재난 사태가 일어나면 한국인들은 마트에 몰려서 서로 음식을 가져가려고 싸우게 된다.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였다. 아무도 없는 공원으로 가서 혼자 싸움 연습을 했다. 정권 지르기, 발차기 등 싸움에 필요한 무술을 전부 발휘했다. 머리는 기억하고 있지만, 몸은 완전히 기억한 건 아니었다. 미래의 자신에 비해 지금 그는 너무나 나약했다.


[겨우 이 정도로 지치다니, 처음부터 다시 훈련을 받아야 할 정도군.]


 충분히 싸움꾼으로 불릴 정도로 강했지만, 전**에 비해서는 너무나 나약했다. 조금이나마 더 강한 모습으로 각성하게 된다면 그 때보다 더 강한 클로저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해보자.]


To Be Continued......


2024-10-24 23:36:1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