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헌터 4화. 폭스 헌터팀, 퇴각하다.
pixi 2021-01-29 2
-결전기 : 유리 일섬-
크리자리드 블래스터의 검이 붉은 섬광을 뿜어내며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이걸로…끝인가?
까아앙!!!!!
“엘리스….?”
“벙찐 표정 짓지 말고 일어나요. 오래 못 버티니까!-
녀석의 붉은 검을 막아낸 것은 엘리스였다. 다행히 위상력에 대해 절대적으로 우위를 가지는 AB소드 덕분에 녀석의 검을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녀석은 방금 그 한 합만으로 더 이상 검을 사용하지 않고 곧바로 육탄전을 걸어오고 있었다.
파칵!!
“크으윽….”
-인간이란 볼수록 흥미롭군. 네 녀석에게도 위상력이 느껴지지 않아….심지어 네 녀석은, 생명체가 아니로구나?-
“역시 그 클로저분 말대로 쓸데없는 말이 많으시군요!!”
콰앙!!!
엘리스가 AB소드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크리자리드 블래스터를 쳐냈다.
“이미 노심을 최고 출력으로 활성화했지만, 급하게 활성화하느라 효율이 떨어집니다. 최고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5분 남짓이지만….그정도면 충분하죠.”
까앙!! 까아앙!!!!!!!
엘리스의 AB 소드와 녀석의 위상검이 연달아 맞부딫혔다. 녀석의 위상검이 AB 소드와 격돌할 때마다 힘없이 박살났지만, 애초에 녀석의 노림수는 그게 아니었다. 공격의 틈에 숨겨둔 자그마한 위상칼날이 엘리스를 향해 쇄도했지만…
카앙!!!
-호오…? 어떻게 막은거지?-
“기업비밀입니다. 순순히 보내주신다면 알려드릴 수도 있는데”
투칵!!!
-강하구나. 생명이 아닌자여-
“그쪽도 만만치 않네요.”
슈트와는 달리 애초에 몸체가 기계로 되어 있어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고, 전투 도중 생기는 수많은 잔상처들은 몸안에 내장된 나노머신으로 알아서 치료한다. 게다가 전투 도중에도 주변 상황을 분석하는 논리센서까지. 다른 건 몰라도, 폭스 헌터 중 근접전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엘리스였다. 만능 전투형인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균 이상의 능력치를 발휘할 수 있었기에 1대1에서 최강이었지만, 그 1대1 상황이 지금처럼 근접전이라면 폭스 헌터 중 그 누구도 엘리스를 이길 수 없었다.
-이 싸움을 조금 더 즐기고 싶지만, 네놈들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크리자리드 블래스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인간들은 다른 클로저들과는 다르다. 처음 보는 병기와 힘을 가지고 싸우는 이들은 자신이 모르는 인간들. 그렇기에 흥미롭지만, 위험했다. 평소라면 더욱 흥미를 가지고 전투에 임했겠지만, 지금 그는 용의 군단을 이끌어야 하는 자. 용의 군단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인간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형제들이여. 그리고 나의 군단이여. 이들을 섬멸하라-
크리자리드 블래스터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정도 시간을 끌었으면 슬슬 오실때가 되지 않았나요…..아리아님!!!”
“알고 있어!! 백련 10잎 합**. 중력장 최고출력!!!”
콰드드드득!!!!!!!!!!
클로저를 체크포인트에 대려다놓고 오느라 늦었던 아리아가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원종 녀석들이 대응할 틈도 없이 아리아의 백련이 중력장을 전개하면서 최고출력의 중력장에 크리자리드 블래스터와 드라군 블래스터는 그대로 바닥에 짓눌렸다. 곧바로 중력장에 저항하며 몸을 일으키는 그들이었지만…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리아는 부스터팩을 전개하여 나를 안고 그대로 전장에서 이탈했다.
“이대로 체크포인트까지 날아갑니다!”
“엘리스..대체 어떻게…”
“그 클로저의 말을 듣고 먼저 엘리스부터 보냈었어. 그렇지만 설마 너가 당하다니….”
아리아는 어느새 백련으로 만들어낸 날개형상의 부스터를 전개하며 엘리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역시 기동성에 있었어서는 폭스 헌터 부동의 투탑….육체강화라 해봤자 결국 지상에서 뛰어다니는 나와 비교할 것이 안됬다.
“녀석들이 금방 쫒아올거야! 도망치기만 해서는…”
“걱정마. 백련을 4잎을 자율전투모드로 남겨두었으니까. 아마 그것들 처리하느라 바쁘겠지.”
아리아의 말대로, 남은 백련 4잎은 공중에서 입자탄을 퍼부어대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크리자리드 블래스터 녀석은 방금 상대해봤을 때 대인전의 스폐셜리스트. 저렇게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퍼부어대는 포격에는 대응하기 힘들겠지…..물론 저 4잎의 백련으로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시간을 끄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애초에 우리의 목전은 녀석들을 섬멸하는 것이 아닌, 정보를 캐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클로저는 구했어?”
“걱정 마. 지금 체크포인트에서 기다리고 있어.”
“다행이군. 그 사람에게서 들어야 할 것이 많아. 저 차원종…..정말 위험해.”
“그러고 보니 그 클로저분도 그 차원종만큼은 위험하다면서 저희에게 빨리 가보라고 하더군요. 대체 얼마나 강했길래 마스터가 당한거죠?”
엘리스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방심한거지 뭐. 처음부터 재대로 싸웠으면 내가 이겼어”
“네?”
나는 그저 말했다. 방심한 것 뿐이라고. 애초에 수많은 대 상위차원종 무기를 두고 단검으로 격투를 하는 내가 멍청했지.
“하지만 녀석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끔 상황을 유도했어. 내 방심을 유도하고, 무기를 잃게 만들고, 그리고……가장 무서운 것은 그 적응력”
단언했다. 멍청한 것은 나였지만, 그 녀석은 그 상황을 유도했다고. 겨우 B급 차원종인 녀석에게 격투술에서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유도하고, 싸움 도중에도 내 격투술을 배워나가며 그대로 카피하며, 처음 보는 무기까지 곧바로 사용하는 그 무시무시한 적응력. 그건 마치…
“….이건 반드시 보고해야 해. 놈에게….시간을 줘서는 안돼”
-죄송합니다. 놈들을 놓친 것 같습니다.-
드라군 블래스터들이 고개를 숚이며 크리자리드 블래스터에게 고했다. 그 말을 들은 크리자리드 블래스터가 손에 쥔 백련을 박살내 가루로 만들자 드라군 블래스터들이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는 그저 한숨을 쉬며 돌아설 뿐이었다.
-상관없다. 녀석의 목숨을 끊지 못하고, 이 인간의 기계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 것 모두 나의 부족함이니..-
크리자리드 블래스터는 이미 가루가 되버린 백련, 인간의 기계를 바라보았다. 이 것은 그도 경험하지 못한 강함, 그리고 배울 수 없는 종류의 힘이었다. 인간 놈들이 차원종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차원종이 도둑맞은 힘, 위상력 덕분이라고 생각했지만….놈들에게 있는 힘은 위상력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인간 놈들에게 이런 힘이 있다면…..위대한 존재의 예언도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군. 물론 지금 용의 군단은 괴멸 직전까지 갔으나…그것은 선대 용이신 아스타로트의 배신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인간 놈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 힘은….진실로 용의 군단을, 아니 차원종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위상력과는 전혀 별개의 힘. 오직 물리력만으로 대기를 찢고 A급 차원종을 일격에 꿰뚫을 수 있는 인간의 탄환. 그리고 위상력에 절대상성을 가지던 인간을 닮은 기계가 기자고 있던 검. 그리고 포격형 아지다하카와 비슷한 위력의 포격을 쏘아대던 이 작은 기계까지.
-병력을 이동시킬 준비를 해라. 최대한 빨리-
-옙!-
크리자리드 블래스터가 명령하자 드라군 블래스터들이 존명을 외치며 모습을 감추었다. 크리자리드 블래스터는 인간들이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곧 다시 만나게 되겠구나. 인간이여…-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서 다행이야. 이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만약 차후작전에 차질이 생겼으면 어쩔 뻔했어?”
“하하…..정말 죄송합니다…”
위그드라실로 복귀한 나는 회복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며 케이에게 꾸중을 듣는 중이었다. 전투를 최대한 회피하고 놈에 대해서 확인만 하고 오라고 했었지만…..독단으로 팀을 나누고, 놈에게 습격당했다고 해도 결국 부상을 입고 복귀했으니까.
“그나저나, 그 클로저분은 어때? 그 분은 괜찮데?”
“상처가 깊긴 하지만…역시 클로저라 그런지, 빠르게 회복 중이야. 하지만 몸 보다는….”
오퍼레이터 케이는 말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우리는 뭐가 문제인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녀 자신을 빼고 나머지 팀원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몸 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 클 것이었다.
“마리…라고 했었나. 잠시 시간이 필요하겠군….”
“아니, 마리아 함장님께서 바로 심문하러 가셨어.”
“심문???”
“오해하지마. 그저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를 듣기위해 가셨을 뿐이니까. 너희들이 말이 사실이라면 최대한 빨리 놈의 토벌작전을 진행해야 해. 우리에게도, 그녀에게도 맘 편하게 쉴 시간은 없어.”
….마리라는 클로저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케이의 말대로였다. 점점 성장하는 차원종, 녀석은 이미 나와의 싸움,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도 성장했다. 게다가 우리의 존재를 들켰으니 병력을 이끌고 숨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녀석이 숨어서 지금 토벌하지 못하게 된다면….녀석은 또다른 클로저와의 싸움에서 점점 더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아마 우리도 곧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진행하게 될거야. 유니온의 클로저들과 함선들도 합류 중에 있으니, 너도 치료가 끝나자마자 바로 준비하도록.”
케이는 내게 말하며 방에서 나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드러누었다. 크리자리드 블래스터 타입인 상태에서도 졌다. 만약 놈이 용이 되어 S급 차원종으로 각성한다면,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자네가 이번에 구출된 클로저, 마리 위드밀라인가?”
“네. 맞습니다…”
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며 앉아있는 마리의 옆에는 마리아 안토노프가 앉아있었다. 본래라면 델타의 함장실에서 심문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부상 중인 그녀의 상황을 고려하여 치료센터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자네의 팀원들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말해줄 수 있나?”
“전…..저는….”
마리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의 일을 다시 생각해내는 것 만으로도 지옥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네. 그저 놈에 대한 특징이라든가, 그 녀석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 말해도 된다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는…..”
마리는 떠는 손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B급 차원종 크리자리드 블래스터 1마리에게 전멸당해버린…..정예 클로저팀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