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수현/수현미래] 한때 상냥했던 세계에게

Forgetter 2021-01-28 4

지인분 리퀘스트(저수지의 죽음 이후 if 설정으로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미래를 걱정하는 수현)

미래 검은손 스토리에서도 if 설정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계기는 사소해도 좋았다. 그것이 나중으로 가 어떠한 후폭풍을 불어올지가 가장 중요하였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우연히 들어간 바(Bar)에서 받은 명함 한 개, 수화기 너머로 짤막한 문장만으로 듣게 된 비통한 어떤 사람의 죽음, 정신없이 녹아 흘러버리는 시곗바늘 속에서...

 

 ...그 안에서 미래는 그저 서 있기만 하고 있었다.

 

 사족이지만 만약이라고 하는 단어는 참으로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 혹은 일어날 가능성이 실존하는 숫자로 표기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상상의 나래를 저 멀리까지 펼쳐서 나갈 수 있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생경했던 어느 극장에서 본 수많은 미래들은 대체적으로 밝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 바로 밑으로는 그저 웃어넘길 수는 없는 최악 중의 최악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이건 그 중에서 한꺼풀만 겨우 들추어서 본, 어느 미래의 단편일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말하는 부분들은, 일어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그저 꿈일 뿐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방심하지는 말라고 극장의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아주 적은 소수점으로 표출이 된다고 한들, 그들이 그 적은 수를 선택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면서.

 

 

 

 

 

 세계는 생각보다 낙관적이지도, 그렇다고 자신들에게 전혀 상냥하지도 않았다.

 

 그걸 어느 순간 깨달아버렸을 때, 미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당시 미래의 주변 상황도 낙관적으로 해쳐나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쯤 미래가 속해 있는 팀을 전체적으로 침체를 하게 만드는 사건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누군가의 죽음이라고 그냥 말할 수도 있었지만, 미래한테는 당연하게도 그렇게 단순하게 단정 지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그나마 자신의 안에 있는 감정들을 모조리 쏟아낼 수 있었을까. , 그래. 저수지는 미래에게 있어 하나의 열쇠였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왜 열기만 하는 열쇠가 존재를 했냐고 한다면, 그 문이라는 건 자기 멋대로 잠기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여는 용도로만 열쇠가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저수지는 미래가 섬 밖으로 나갈 이유가 되어주었던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잃어버린 지금, 미래는 어떻게든 잠겨질 것만 같은 문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동문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틈을 봐서라도 닫혀지는 문 틈 사이에 끼어 생채기 같은 것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것들이 가끔 쓰라리고 따가왔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은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수지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제법 많았다. 저수지는 확실히 좋은 사람이었다. 툴툴거리지만, 그 안에 미래를 향한 걱정이 한가득 담겨져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 중에서 저수지가 미래에게 특히 많이 했던 말이, 몸을 챙기라는 말이었다. 미래가 없으면 자신이 곤란하다는 듯이 굴었지만, 사실은 미래가 자기 자신의 과거에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소리였다. 미래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자기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했다. 이 오래도록 자리 잡은 사고방식을 고쳐나가는 데에는 물리적으로 큰 시간이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렸다. 미래는 이제 살아갈 나날도 기대하게 되었고, 이런 다짐을 들은 저수지는 무척 흡족하게 미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니 그런 소중한 존재의 갑작스러운 부재 그 흔한 인사치레도 없이 - 는 알 수 없는 공허감만 가득 만들어내게 되었다.

 

 “미래 씨...!!”

 

 미래는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한 명의 목소리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자신 또래의 한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을 보니 여러 번 미래를 불렀으나 그 소리를 미래가 듣지 못하여 지나가려던 것을 어떤 식으로든 붙잡기 위해, 그닥 특기도 아닌 달리기를 열심히 했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숨차하는 소년을 보며 미래가 중얼거렸다.

 

 “...민수현.”

 

 그 소년의 이름은 민수현이었다. 외부인에서, 이제 모두가 섬 밖으로 나왔으니 당연히 외부인이 아닌 본인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당연했다. 수현은 미래가 차분히 자신의 이름을 상기하는 동안, 어떻게든 호흡을 진정시켰는지 이제야 단어 같은 것이 튀어나오는지 단박에 미래를 타박하는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그 상처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상처도 아니고 상처들이라고 했다. 미래는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다. 상처라니, 자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여러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차원종을 처치하고 왔을 뿐...

 

 “....”

 

 갑자기 미래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수현의 말을 들어보니 몸이 , 이런 상처가 있긴 했지.’ 하면서 뒤늦게 반항하는 느낌이었다. 미래는 아파오는 복부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짙은 갈색 상의를 입고 있는데도 검붉은 무언가가 천의 위로 스며들어있었다.

 

 태연해하다가 갑자기 몸이 크게 경련하는 미래를 보며 수현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걱정이 담뿍 담긴 말을 소리쳤다.

 

 “거봐요, 다쳤잖아요...!!”

 “...어떻게 알았어?”

 

 미래의 저 말은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던 걸, 어떻게 타자(他者)인 수현이 알아챘냐는 말이었다. 옷에 가려져 있어서 못 볼 것이 뻔했는데. 그러자 수현의 2차 타박이 오고갔다.

 

 “어떻게 알았냐뇨! 얼굴도 아주 엉망이신데...”

 “얼굴? , 얼굴도 엉망이야?”

 

 수현은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의 입씨름은 소용도 없다는 걸 알았는지, 수현은 일단 거기에 앉아 있으세요.’ 라며 간단한 구급 키트를 가지고 왔다. 수현이 키트를 가지고 올 동안 미래는 정말 얌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팔 걷어 올릴게요.”

 

 수현은 어쩐지 붙잡았을 때 미세하게 움찔거렸던 미래의 왼팔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왼팔, 복부 근처, 그리고 얼굴의 뺨 등. 상처는 심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방치해둘 수준은 아니었다. 수현과 미래의 사이에 쓴 거즈가 소복히 쌓이기 시작했다.

 

 응급조치가 끝나고, 미래는 팔에 새로 감겨진 붕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민수현은 상냥하네.”

 

 아까와 달리 몸의 떨림이 확실히 멎었다. 이런 칭찬에도 수현은 얼굴을 계속 굳힌 채 딱딱하게 이렇게 대꾸만 하였다.

 

 “이건 당연한 일이에요.”

 “당연한 일?”

 “다친 사람을 보면 걱정되는 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미래 씨도 제가 다치면 괜찮냐는 질문을 해주실 거잖아요? 수현의 반문에 미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러자 조금 수현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이제야 미래가 보던 수현의 얼굴이 나왔다. 아까는 많이 단호하게 자신을 타박한 지라 조금은 얼떨떨한 상황이었다. 수현은 이제 평소의 수현으로 돌아온 듯 했다. 그만큼 아까 미래를 붙잡았을 때가 급박하였다는 소리일지도.

 

 “...미래 씨,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뭔데?”

 “조금 더...미래 씨 몸을 잘 보살펴주면 안 될까요?”

 

 수현은 진지하였다. 요 며칠 간...아니, 약 한 달 전부터 시작된 미래의 이 앞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거기에 가장 큰 지분은 저수지의 신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일은 수현에게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후로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미래나, 미래를 비롯한 시궁쥐 팀원들을 도저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수현의 부탁에 미래는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러고서 하는 대답이 전혀 엉뚱한 것이었지만.

 

 “민수현은 상냥하네.”

 

 타인인 나도 챙겨주고...이번의 그 상냥하다는 말은 이 뉘앙스가 더 강하게 붙들려 있었다. 수현은 또 당연히 걱정되죠! 라는 판에 박힌 말을 할 뻔 했다. 그럼에도 그 말을 하지 않은 건, 또 대화가 아까와 같이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요점만 찾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아간다는 소리였다.

 

 수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건 상냥하다고 말할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하는 말은 그 옛날처럼 다시 돌아가지 말라는 소리에요.”

 “옛날?”

 “벌써 잊었어요? 흑지수 씨랑, 저수지가 미래 씨한테 알려주었던 거. 너 자신을 소중히 여겨라.”

 “...”

 “그 사람들이 아무리 없다고 해도, 그걸 잊고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요...”

 

 미래의 표정이 알 수 없게 변했다. 화를 내는지도, 슬퍼하는지도, 아니면 아예 아무 감정이 들지 않은지조차 아무것도 모르겠다. 수현은 괜히 강하게 몰아붙인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던 찰나, 앉았기에 눈높이가 맞은 미래가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수현은 당황해 뺨이 급속도로 홍당무같이 빨개졌다.

 

 “, 무슨 짓...!!”

 “칭찬하는 거야. 민수현은 착하네. 상냥하고 착하고.”

 “, 놀리지 마세...”

 “민수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당연하다는 걸 항상 해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해.”

 

 민수현은 강하기도 하구나. 미래의 칭찬일색에 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이 쓰다듬에도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구나, 싶어서.

 

 사실 이렇게 단호해야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수현도, 어쩌면 미래 본인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래는 직전까지도 이제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만 이 세계를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 같은 걸 확인받는 것이 조금은...기뻤다.

 

 잔혹하게도, 이런 식으로만 확인을 하는 것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 채로.

 

 결국 미래는 수현과도 약속을 하나 하였다.

 

 “노력해볼게.”

 “진짜죠?”

 “.”

 “만약 다음에도 이렇게 다쳐서 오면 저 진짜 화낼 거예요?”

 “.”

 

 손가락까지 걸고 굳게 맹세했다.

 

 

 

 

 

 세계는 전혀 자신들에게 상냥하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상냥했던 사람은 있기는 했었다.

 

 그 따스함이 조금이라도...아주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자신들은 이렇게 되지 않았으리라고 미래는 단언한다.

 

 “미래, 무슨 일이지?”

 “....”

 

 의자에서 불편한 자세로 쪽잠에 취해있던 그들의 여왕을 철수가 깨웠다. 눈을 뜨자 보인 김철수는 미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충성을 다 하는 어느 충견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건 꿈이었구나. 하지만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일이기도 하였다. 잠깐 꾼 그 꿈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래의 입술에 살짝 미소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곧 사그라지기는 했지만.

 

 철수의 물음에 미래는 눈두덩을 일부러 세게 비볐다.

 

 “잠깐 졸았어. 미안해.”

 “무슨 말을. 그리 피곤하다면 나에게 맡기고 쉬는 것이 어떤가?”

 “...김철수는 상냥하네.”

 

 이에 대한 철수의 대답은 항상 딱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난 오로지 너를 위해 살아갈 뿐이다, 미래.”

 “그래...그랬지.”

 

 그리고 미래는 그걸 씁쓸해했다.

 

 당신은 나의 검은손이 되기로 맹세했었지...이와 비슷한 대답을 그 사람한테도 분명 들었었다. 분명 그 뜻이 전혀 크게 다른 건 아닐 텐데도 어쩐지 미래는 철수의 그 대답을 거북하게까지 느껴졌다. 무언가 크게 다른 어떠한 것이 있었기 때문일까.

 

 수현은 미래와 같이 함께 나아가기를 원하지만, 철수는 최소 그렇지는 않다는 소리인가.

 

 아무튼 작전 시행에 앞서, 철수가 미래에게 이번에 토벌할 조직에 대한 작은 정보 하나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조직은 민산 그룹에 적잖은 손해를 가져다준 곳이라고 하더군.”

 “...”

 “어쩔까, 미래.”

 

 이미 답은 정해져 있지만 철수는 예의상 미래에게 물어보았다.

 

 미래가 쿡, 웃음기 없이 웃었다.

 

 “어쩌긴.”

 

 콱- 짓밟아버려야지. 그래도 한때나마 상냥했던 세계에 대한 지금 자신의 보답은 고작 이 정도였다.

2024-10-24 23:36: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