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2장 12화, 용의 형제와 진실로 향하는 길

AI미스틱 2021-01-14 1




 해당 화의 부산 사투리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제가 부산 출생이라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습니다만, 어지간해서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성격이기에 부산 사투리랑은 좀 멀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기억에 남는대로 재현해보았으니 부디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산 사투리는 언어뿐만 아닌 억양에 비례해서 강약이 조절됨에 따라 사투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고향의 사투리도 잘 못하다니, 정말… 스스로에 대해 하찮다고 여겨질 정도로 부끄러워집니다.
 그런데도 어비스의 주인을 봐주시는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 살려줘!!”

 항구에서 한 특경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현재의 무력을 가지고도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정내린 최악의 재해, 특S급 차원종 아바돈의 잔해로 만들어진 갑옷조차 무력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차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부산 항구, 그곳을 순찰하던 세 명의 특경대에게 일어난 불운.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갑옷이 무참하게 깨어지고, 심장을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명을 유지해놓고, 계속해서 뛰는 심장은 혈액을 돌린다.
 차갑게 식은 시체로 변하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부산 인구가 셋 줄어든 그 날.
 부산에서는 커다란 재해라며 뉴스가 경보가 울렸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간처럼 스며든 두 개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면, 하지 못했거나….

 그러나,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특경대 세 명이 행방불명… 하지만 작은 파편이 남아있었다고.”

 한 쪽은 그것을 보고받는 입장이고.

 “우리 민수 우짜노… 아무리 생명 보장을 몬하는 특경대라케도 이그는…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닌디….”

 한 쪽은, 그 속보를 직접 현장에서 확인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더불어 후자의 경우에는.

 “케서, 니들은 누꼬? 누군디 이 부산에다가 디러븐 발바닥 들이밀고 쳐들어와가 특경대 아재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쌌고 이 X랄을 하고있는긴데?”
 “…꽤 귀찮은 일이 되었네요, 레비….”

 직접 맞대면까지 했으니.

 “적당히 죽여놓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죽음을 불사해야 할 일일 터였다

 “하아… 니들같은 짜슥들이 나올 때마다 내 계~속 생각하는긴데….”

 아무래도 좀 맞아야 쓰지않겄나?


‡     ‡     ‡


 G타워, 유니온 터렛 옥상 위에, 누군가가 내려앉았다.
 거의 모두 복구된 도시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밝게 빛나고 있었건만, 유일하게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양 오로지 흑색으로 물들어있는 자가 있었으니.
 허망한 표정을 지은 채, 터렛에 둘러쌓인 채 가라앉은 한 존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잔해가 이송된 탓에 몸과 머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헤카톤케일…. 이 얼마나 참담한 광경이란 말이냐, 용의 후계자여.”

 2m에 가까운, 혹은 그보다 더 클지도 모르는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헤카톤케일에 비하면 발가락 하나조차 되지 못할 정도의 키를 가진 그는, 용이라 불리우며 군단장의 자리에 오르고, 군단에서 가장 현명하고 위대했던 용을 동정하고 있었다.
 실로 안타깝지 아니한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갔더라면, 이런 참혹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씁쓸하구나.”

 터렛 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투신은 아니었다. 붕 떠오른 그 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고, 이내 빛 한줌 들어오지 않아 오직 어둠만이 남은 바닥에 들어섰을 때, 그는 헤카톤케일의 머리뼈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한때 뜻을 이루기 위해 충돌했던 형제가, 이토록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인간따위에게 팔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딱히 형재애가 깊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게,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힘을 추구하고 왕좌에 올라서려했던 형, 아지다하카와는 다르게 동생인 헤카톤케일은 어머니의 부활을 위해 차원종따위와 손을 맞잡았으니까.
 결국 충돌할 수 밖에 없었던 두 형제는, 수평선 너머까지 뒤덮을정도로 크고 긴 몸을 가진 거룡 아지다하카와, 천지를 이어낼 정도로 크고 웅장했던 거룡 헤카톤케일간의 싸움으로 변모했다.
 풍요로웠던 용의 대지는 산이 드넓었던 지평선이 평지가 될 정도의 격렬한 충격을 마주했고, 한 차례씩 충돌할 때마다 일어나는 충격파는 지진을 일으키고 해일을 일으켜, 영지 대부분을 침몰시키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싸움은 어느샌가 끝을 맞이했다.
 형제인 아지다하카의 목을 물어잡은 헤카톤케일이 하늘에서 그를 끌어내리고, 손으로 대지에 붙잡아두었으니, 땅에서의 격전은 실로 대지가 분쇄될만한 일이었다.
 감히 비유를 하자면, 한 차례 화산이 터지고, 터진 자리에 운석이 떨어진 뒤, 운석만치 커다란 폭탄이 터져나가는 듯한. 그런 울림이 일어나고, 그 울림에 반응하듯 커다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끝내 패배한 아지다하카는 갈라진 대지 사이로 추락하여 용들의 신화에 끝을 맺었고, 승자인 헤카톤케일은 남아있던 용의 땅을 이끌고 이름없는 군주를 찾아갔으니.
 그것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형재애의 마지막이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한 때 형제로서의 우애를 다졌던 이가 마치 도구처럼 다뤄지는 그 모습은 실로 눈뜨고 보기 힘든 일이었다.
 몇 차례고 헤카톤케일의 두개골을 쓰다듬던 아지다하카가 손을 떼어낸 뒤에야, 회한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대로… 복수란 덧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무의미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별의 주인을 만나고 난 다음에야, 용이라는 존재들과 군주들의 격차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머니를 몰아내고 그 영지를 잡아먹은 자의 힘이 그토록 클 리는 없겠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패배로 몰아세웠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 아니던가.
 그래도.

 “나는 복수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헤카톤케일.”

 복수란 결국 감정 표현의 일부. 대상에 대한 격한 분노를, 어떤 계기를 붙잡아 방출하는 일종의 무력시위나 다름없는 행위.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그렇기에 강함을 추구하고, 그에게서 영역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리고 끝내, 어머니의 복수를 해낼 준비가 끝났으니.

 “그분께서 되살아나신다면… 그에게 복수할 이빨을 들이밀 수 있다.”

 위대한 별의 주인.
 그분께서는 아득히도 머나먼 곳에 계신다.
 군주라는 것은 너무나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 차원 세계에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군주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그것은 해당 차원 세계의 법칙이자, 진리와도 같은 것.
 그렇기에 법칙과 법칙끼리 마주했을 때 일어나는 승패는, 결국 힘이 더 크고, 더 견고한 법칙으로 이루어진 쪽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그 법칙이라는 것이 현실에 구현화된다면 어떻게될까.
 법칙이라는 존재가 현실에 되살아날 때 일어나게될 일 정도야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존망따위, 아지다하카에게 알 바는 아니었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상이 망하건 붕괴되건, 어찌되었건 복수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는 마지막 종착점이니까.

 스윽, 손을 들어올리자 헤카톤케일의 두개골이 부웅, 하며 떠올랐다.
 다른 모든 곳을 내어준다 해도, 설령 세상이 무너져 아지다하카라는 존재를 짓누른다고 해도.
 형제의 마지막 남은 우정과 우애가 있는데, 어떻게 이것까지 넘긴단말인가.

 “자, 가자… 헤카톤케일.”

 ─가여운 나의 동생이여.

 씁쓸하기 그지없는 발걸음은, 실로 무거운 것이었다.

 그리고, 용의 영지.
 새로 태어난 용과, 그 전대 용, 전전대 용을 모두 잃은 영지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용을 결정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소멸할것만 같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그 영지가 완전히 붕괴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지, 다하카님….”

 오랫동안 용을 모셔온 자가, 그를 알아본다.
 본래 황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의 영지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데다, 용을 결정하는 공석이 아닌 사적인 감정을 품고 내란을 일으킨 반란죄로서 헤카톤케일에 의해 영지에서 영원히 추방당했던 자.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자, 아지다하카였다.
 헤카톤케일이 살아있는 이상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극형이었을텐데.
 그런 그가.
 현왕이었던 위대한 용, 헤카톤케일의 두개頭蓋를 가진 채, 돌아왔다.

 “오랜만이로구나, 영지도, 그대들도….”
 “어찌, 선왕의 유해를, 그 두개頭蓋를 가진 채! …설마….”

 설마, 라는 말과 함께 그의 뇌리에 최악의 사태가 스쳐지나갔다.
 설마 눈앞의 황자는, 역사상 유래없던 현왕이신 헤카톤케일을.

 “그럴 리가 있겠더냐.”

 아지다하카는 어떤 방식이던 결국 헤카톤케일에게 패했다.
 목을 물린 채 지면에 내다 던져지고, 끝내 그 끝자락에서 본신本身의 모습을 드러낸 채 패배하여, 극형極刑을 받는 자들의 감옥인 타르타로스까지 떨어졌음은 자명한 일이리라.
 완벽한 패배. 거스를 수 없는 과거의 일을, 이제와서 갚을 필요는 없었다.

 “왕은 단 하나로 정해졌고, 그것은 우리 형제가 정한 일이었다.”

 그 결과 아지다하카는 추방당했고, 헤카톤케일이 왕이 되었다.
 어떤 말도 증언도 없었건만, 그것만큼은 완벽한 사실이었다.

 “패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죽어서 항변하면 된다.”

 승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패자를 내려보며 목숨줄을 쥔 채 말하면 된다.
 그런 당연한 사건에서, 헤카톤케일은 형제의 마지막 우정이라며 아지다하카를 살려주었다.
 그 이후 풍요로움을 유지하던 용의 영지가 차원종, 이름없는 군단의 일부가 되었다.

 “헤카톤케일이 실수한 것은 단지 하나 뿐이다.”

 어린 뱀에게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주고.
 그들이 거스를 힘을 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로 인해 이곳에 남은 용은 아무도 없다.”

 왕도 군주도 없는 영지는 무너진다.
 정부 없이 이끌어져나가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촌장같은 대체제가 있다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대체제일 뿐이다.
 왕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

 패자는 왕이 되지 못한다.
 허나 이제 이곳에 있는 것은 왕이 아닌 패자들 뿐.
 그 패자들 사이에서 왕이 되기 위해, 그는 다시 돌아왔다.

 ─용의 군단을 부흥시키기 위해.


‡     ‡     ‡


 파리 시가지에 퍼진 클로저들의 제압이 모두 끝난 이후.
 프레이 아델 로는 그들에게 휴식을 지시했고, 그것이 벌써 이틀 전의 일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거리는 어비스도 클로저도 다니지 않았으며, 얼음으로 둘러쌓인 성에서는 어떤 적의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마치 때를 기다리듯이.

 “…거의 완성, 인가.”

 연구실에 틀어박힌 지 벌써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위상력이 가진 무한한 힘과 가능성은 길로 놀랍고 두려울 정도였다.
 원한다면 별을 깎아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지는 힘은 그만큼 커다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단지 법칙을 짓이기고 변화시키며, 이 세상의 ‘규율’로부터 벗어난 개념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겠지.
 위상력 역시 그런 축에 속했지만, 검은 위상력은 애초부터 그런 법칙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모든 개체에 힘을 가한다.
 생명, 무기체, 유기체, 정신, 영혼… 공간은 물론이요 하물며 시간까지.
 인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면 분명 그것은 검은 위상력이 다루는 영역의 안.

 “실로… 대단하군….”

 세이지에게 응축되어있는 힘은 그 힘의 재현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으니.
 완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퍼즐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이곳 파리 내부에 있다는 소식은 실로 낭보였다. 실로 희소식이었으나, 그 즐거움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설마 유럽 최대 규모의 유니온 연구소인 루이 연구소가 파괴되어있을줄은….”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의한 붕괴.
 자료는 모두 무너져있었으며, 그곳에서 들려온 세이지의 소식에 따르자면 지하는 아예 붕괴. 사람이었던 것들이 찢어진 흔적만이 남아있었다고.
 그걸 잃어버렸다니. 실로… 실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샘플을….
 손톱을 문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자니, 그의 모습을 본 세이지가 실험실 안에서 물었다.

 “인공 인간을 잃어버리신게 그렇게나 안타까웠던 건가요? …프레이 아델 로.”
 “…너 같은 꼬마는 모른다. 그 샘플이, 그 인간이 얼마나 깊고 커다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걸 잃어버린 순간부터, 우리는 영원히 순환되는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는 알고있냔 말이다.

 “모릅니다.”

 그런거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하물며 알아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그것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비명지르기 전에 완성하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당신이 할 일.”

 그리고 그것조차 이루지 못한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야말로, ‘가치’를 논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가.

 그 말에 프레이 아델 로는 피식 웃더니 이윽고 말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오늘 실험은 이걸로 끝이다, 세이지.”
 “프레이 아델 로… 당신에게 한 가지 말해볼 게 있습니다.”
 “뭐지?”
 “…그건….”

 세이지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는.
 테러리스트라던가 어비스라던가.
 그딴 것들 모두를 잊어도 좋을만큼의 비보였다.



 그리고 파리─

 ─의 정점.
 …에펠탑.

 리-르 앙골라도, 프레이 아델 로도.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그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은 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며, 지금 내딛는 한걸음은 진실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에펠탑 중층 부근에서 누군가를 만났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이즈라엘.
 자신에게 진실과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회유를 꾀했던 자.
 S급에 등재되어있는 괴물이었으나, 보여주고있는 능력은 S급 이상.
 유주와 하얀을 상대로, 2:2의 승부였으나 압도적으로 승리했던 그들을 단아는 당해낼 수 없겠지.
 그걸 알면서도 이곳에 왔다.
 저쪽에서 단아를 인지한건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차렸다.

 “…오셨나요, 단아 도련님.”
 “도련님이라… 전부터 느낀건데, 너는 벌써부터 나를 자기 편으로 인식하고 있는건가?”

 어째서인지 가라앉은 목소리는, 실로 스산했다.
 얼어붙은 파리의 어두운 거리보다도 차갑고, 깨져버린 전구의 암흑보다도 깊은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만든다거나,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거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가까운 것은 아마도 ‘공포’의 감정이겠지.
 평범한 인간이라면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얼어버릴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비스이기에, 어떤 부담도 없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아닙니다.”

 확신하지는 않았다.
 단지 무한한 가능성 중 가장 높은 가능성일 뿐.
 그렇기에 그리 부르는 것 뿐이었다. 결국 주인님게서 원하는 수많은 장난감 중, 가장 재미있고, 가장 갖고싶어하는 것일테니.
 얼어붙은 새의 장난감은 얼마나 갈까. 그런 흥미가 아닐지.
 약간 잡념을 했다는 것에 미숙함을 느낀건지, 잠시 미소를 띄어올린 이즈라엘은 이윽고 물었다.

 “단지… 그런 진실을 듣고도 도련님께서 유니온에 남겨둔 신뢰를, 계속 붙여두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그 생각, 곧 꺼트리게 될거야.”

 처음으로 마주보는 그 황금빛 눈동자.
 실로 신기하기 그지없는 빛이었다. 순금보다도 맑고, 호박보다도 깊은 색을 내고있는 그것은, 도대체 어떤 ‘맛’과 ‘향’을 가지고 있기에 이토록 영롱하게 빛나는걸까.
 주인님께서 흥미를 가지고, 손에 넣고싶어할만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피어오르는 특이한 기류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위상력. 그의 주변에는 방어를 위해 일그러진 공간이 둘러쌓인 상태라고 했던가? 가까이 가는 것은 물론이요, 지금의 힘으로는 얼음조차 닿을까 의문일 정도였다.
 적의를 눈앞에 둔 채, 이즈라엘이 말했다.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도련님께서 원하셨던 그 ‘증거’를….”
 “아니, 됐어….”
 “…그 말씀은….”

 진실의 일부를 엿들었던 그 순간.
 마음이 크게 흔들렸었다.
 ‘영웅’이라 칭송받으면서, 영웅이라 추앙하면서, 간판을 내세우고 그렇게 써먹으면서.
 그렇게 전쟁때 닳을 때까지 다루고, 소모되었던 아버지를 만들고, 또다시 다루려고 하는 그 죄악.
 죽음으로조차 갚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죄악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흔들림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어비스라는 인류의 적.
 아버지와, 단아 본인의… 가족이나 유니온과의 관계와는 하등 관계없는 신세력일 뿐이었다.

 그 뜻을 전하니, 이즈라엘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단아가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게 재미있나?”
 “…재미라… 주인님의 소중한 장난감(시종)인 저희로서는 잘 모르겠군요.”
 “자유도, 자기 의사조차 잃어버리고선, 다루어지는 도구처럼 살아가는 인생에 어떤 후회도 없다는건가.”
 “물론이죠. 한 때, 주인님의 뜻에 저항하고자 했던 때가 제게도 있었겠지만─”

 그건 결국 한 때의 이야기.
 현재에 이르러서는 어떤 의미조차 없는 하찮은 일이었을 뿐.

 “그리고 도련님께서 이 재미없는 표면적 진실을 받아들이셨으니, 주인님의 뜻에 따라─”
 “배제하는건가?”
 “그 내면에 존재하는, 진짜 진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주인님은 아직도 당신을 가지고싶어하십니다.
 그 한마디에 피어오르는 커다란 욕망에 인상을 찡그리니, 이즈라엘인 그 모습에 웃음기를 엿보이며 말했다.

 “진실은 다가갈수록 괴로운 법이죠.”

 ‘장난…일까?’

 장난이라면 좋을 터다.
 하지만 그것이 장난이 아니라면, 현실이 되어버린다면….
 순간의 호기심을 적의를 드러냄으로서 억누른 단아가 봉을 꽉 쥐며 답했다.

 “필요없어.”
 “…과연, 아무리 길 잃은 새라고 하나, 새는 새… 하늘을 나는 법을 잊어버리지는 않는군요.”

 이즈라엘은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현단아가 가지고있는 ‘인간’이라는 개념의 의지를. 그리고 그것을 알고 받아들인 채, 새로운 진실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언제까지나 호기심이 있으니까.
 그런 호기심은 평범한 인간인 이상,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악마의 손길.
 그러나 그런 손길로부터 작은 새는, 하늘을 날아 도망쳤다.

 “…그래요, 여기서는 당신을 놓아줄 수 밖에 없는 건가요.”

 어차피 이곳에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이즈라엘은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S급 어비스인 이즈라엘과 A급조차 되지 않는 현단아가 이 장소에서 싸우게 된다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지, 누구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보내주는 쪽이었던 이즈라엘은 어서 도망가라는 듯 여유를 두고 있었으며, 그 여유에 의문을 품었으나 보내준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여긴 단아는 빠른 속도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미소만을 짓고있던 이즈라엘은, 이윽고 뒤에서 일어나는 인기척에 즐거움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신가요? 무슨… 감정이라도 드셨는지….”
 “…아마….”

 실로, 괴로운 진실일 뿐이다.


‡     ‡     ‡


 독일.사냥터지기 성.
 그곳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저게 도대체 뭐야?”

 ─계속해서 거대해지는 붉은 무언가의 새.
 그것은 액체같기도 하고, 기체같기도 하였으며, 하물며 고체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베어내도 달라붙고, 뚫어내도 채워지고. 마치 불사조처럼 태어나는 그 모습은 도대체 무엇일까. 불사不死의 힘이라도 가지고 있는걸까?
 하지만, 그런 불사의 존재라면 흑지수가 공격했을 때 흠집이 그리 쉽게 나을 리도 없을텐데.

 “그것은 신수神獸, 짐이 기르는 세 번째 신수다.”

 그 질문에 답하듯,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허공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 괴조의 너머에서, 마치 모두 보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윽고 허공에서 떨어진 하나의, 인간의 형상을 띄고있는 그것은 커다란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었으며, 단지 떨어진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고 있었다.

 “…누구지?”

 볼프강의 의문 섞인 한마디에 그는 너무 그리 보채지 말라며 답했다.

 “짐은 ‘위대한 별’의 은총을 받은 11번째 주인!”
 “설마….”
 “그대들이 지어낸 이름으로는… ‘자드키엘’.”

 특S급 차원종과 동급이라 여겨지는, 인류의 재해.
 피의 공작이라 불리는 굶주린 짐승, 자드키엘.

 “어떻게, 여기에….”

 차원문의 반응조차 없었다. 하물며 위상 변곡률조차 변동이 없었다.
 그 말은 즉, 이 자는 현재 위상력 대다수를 봉인하거나, 혹은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이 자리에 서 있다는 반증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재해에 당황한 듯, 스피커 너머에서 트레이너가 움직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한 마리의 붉은 신수를 거느리고 이곳에 내려앉은 그는, 차원압력따위에 제약을 받지 않았으며, 이는 곧 익숙해졌음을 의미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러나, 그런 의문에 대해 자드키엘은 일축했다.

 “우문이로다.”

 자드키엘이 원하는 것은 단지 하염없이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강자’.
 그 강자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원을 여행하고, 제약을 받는 세계에서 싸우고, 그들에게 이기고, 살아남았다.
 그는 별의 주인 중에서도 유일하게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유일하게 자신의 주군으로부터 어떤 명령조차 받지 않는 자.
 그렇기에, 자유로운 괴물.

 그런 괴물이 원하는 것은 그저 강자일 뿐이니.
 한없이 약한 약자들은 관심 바깥이었기에, 그는 ‘자비’를 상징하는 자드키엘로 불린다.

 그런 자드키엘은, 마치 기회를 주겠다는 양 클로저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짐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그대들에게 선택지를 주기 위함이다.”

 비록 강자를 찾기 위해 이 세계로 넘어왔으나, ‘여섯 번째 주인’으로부터 들은 클로저라는 인간들은, 그의 예상 이상으로 강한 존재였다.
 그토록 강한 존재를 한 줌의 재처럼 날려보내기에는 실로 안타깝지 않던가.
 그렇기에 그는, 그 강자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이곳에 내려왔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나.”

 ─차원종이건, 인류건.
 분노나 증오를 느꼈건.
 어떤 이유라도 좋다. 같이 할 자들은 무한한 힘과 축복을 줄 테니.
 함께한다면, 어떤 복수건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으리라.

 그 말에, 퍼엉! 쏘아진 포격을 붉은 괴조가 막아내었다.
 그 궤도의 일직선상에는 단 한 명, 흑지수가 총구를 겨눈 채 서 있었다.

 “…그런 말에 넘어갈 것 같나?”

 인간으로서의 존엄, 자존심. 그런게 아니었다.
 괴물에게 복수하기 위해 괴물이 된다, 그런 하찮은게 아니었다.

 “너희를 우리가 왜 믿어야 하지?”

 신뢰의 여부. 그것은 당연하기 그지없는 것.
 그 당연하기 그지없는 의문을 표하고 있자니, 자드키엘은 그럴 줄 알았다며 답했다.

 “…우리의 세게에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절망하고 분노한 자가, 우리의 일부가 된 존재가.”

 ─여섯 번째 주인.

 “그녀는 위대한 별께서 내려주신 은총을 받고, 인간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했다.”

 그 복수 과정 속에서, 일본과 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소멸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었다. 중요한 건 충분한 힘을 가지게 해준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자드키엘이 일부러 독일의 이곳까지 날아온 이유는.

 “그대들로부터 커다란 증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을 향한 증오인지, 집단을 향한 증오인지, 아니면 차원종을 향한 증오인지.
 그 어떤 방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하게 감지된 증오는, 자드키엘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어떤가, 짐의 손을 잡는다면, 복수할 힘을 주겠다.”

 그 말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이곳에 증오 없는 인간이 어디있는가.

 전우를, 어머니를 복제한 유니온에게 증오하는 인간.
 부모님을 살해한 차원종에게 증오하는 인간.
 실험체로 다루고 사용해먹은 인간을 증오하는 인간.

 그 모든 증오는, 결국 그가 말하는 ‘복수’에 한없이 뜻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복수는 결코 이런 방식이 아니었으니.

 “우리는… 인간의 방식대로 나아가겠어.”
 “호오.”

 그 뜻을 스스로 밝힌 것은 병약하고, 위상력조차 별로 느껴지지 않는 하찮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 인간만큼이나 올곧고 굳은 의지를 갖고있는 자는 이곳에 없었으니, 실로 오랫동안 쌓아올린 업….
 한참이나 그를 쳐다보던 자드키엘은, 그 눈동자를 돌리며 살펴보던 중, 검은양 팀을 모두 확인하고서는 입을 열었다.

 “…네놈들은….”

 그 순간, 차갑게 식어버린 목소리는 체내의 혈액조차 얼려버릴 정도의 한기를 내뿜었다.
 몸을 일순 떨며 반응한 그들에게 자드키엘이 말하기를.

 “네놈들에게선, 짐의 전우를 빼앗아간 ‘잿빛’의 냄새가 나는구나.”
 “잿빛…?”

 그의 친우이자 전우였던 자의 목숨을 빼앗아간 배신자.
 그것만큼은 아무리 자유롭고, 강자만을 원하는 자드키엘이라 해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증오스러운 자.
 분노한 모습이 엿보일 정도로 강한 감정의 격류를 내비치며 자드키엘이 손을 뿌드득거리니, 이윽고 그것이 죽음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은 1초도 채 되기 전.

 그리고 그 순간.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그 가운데에 트레이너가 내려앉았다.

 “…전원, 퇴각하도록.”

 ─시간을 벌겠다.

 그런 의미로 말하는 듯한 트레이너에게 자드키엘이 짙은 흑색을 품으며 말하기를.

 “비켜라, 죽기 싫다면….”

 등 뒤에서 흉흉하게 빛나는 ‘신수’를 밝게 비추는 그 모습은.
 실로 ‘피’라고 말하기에 적합한 형상이었다.





 2장 12화가 끝났습니다.

 안녕하십니까, AI미스틱입니다.
 어비스의 주인 2장 12화에서 보여드리는 것은, 단아의 결정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비스의 주인을 보며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셨을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그 선택지가 쉽지는 않았겠죠.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단아의 상황과, 또다른 진실의 내막은 무엇을 의마할까요.
 그리고 이전에 내어드렸던 선택지의 결과가, 정말 2장 12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결과일까요.
 그것은 저만이 알고있는 진실이겠죠.
 확실한 것은, 단아가 설령 첫 번째 진실을 알았다고 한들, 어비스라는 신세력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11번째 주인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정확히는 외형이 아닌 인식명과 특징입니다만.
 자드키엘은 강자 외에는 어떠한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원하는 점이라면 전우의 복수, 정도가 되겠지요.
 하도 민간인이나 약자에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인류에게 있어서는 가장 호의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두 번째 어비스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다만, 강자와 만나게 되었을 때 터지는 전투의 스타일이 꽤 크다는 점이 있겠네요.

 그가 기르고 있는 신수 중 하나도 등장하였는데요, 그 중 하나인 붉은 괴조는 불사 살해로는 전혀 죽지 않습니다.
 당연히 불사가 아니고, 죽음에 다다를 조건이 필요할 뿐이니까요.

 그리고 자드키엘이 독일에 나타난 이유는, 강한 증오를 느낀 점과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강자가 허망하게 사라질 바에는, 영원히 싸울 수 있는 동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주인끼리의 싸움은 거의 일어나지는 않습니다만, 자드키엘의 경우에는 가장 싸움을 잘 일으키는 쪽에 속하게 되죠.
 설령 그 싸움에서 패배해 죽는다 하더라도 그마저도 하나의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 괴물입니다.

 누가 만들어낸건지 참….

 그럼, 2장 12화를 여기서 끝마치겠습니다.


 설정이나 설명을 원하시는 캐릭터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다음 화에 스포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확인해본 뒤 스포가 아니라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캐릭터의 기준은 모든 자작캐를 의미하며, 어비스의 주인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아나 스타피트 등, 설정이 부실한 캐릭터의 경우 설정이 자세하게 수정되었습니다.


 언제나 여러분들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가슴아픈 일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2024-10-24 23:36:0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