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존의 태만

Forgetter 2021-01-13 6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현명한 군주의 고민에서 시작된다.

 

최근 들어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짭짤한 소금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짠맛만이 느껴지는 바람만 불어온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바람에 같이 딸려오는 눅눅한 감촉이 불안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눅눅한, 그러니까 물기도 머금고 소금기도 간직하고 있는 바람이 자신의 영역을 향해 불어온다. 이것만으로 얼마나 큰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요 자그마한 규모의 군단을 이끄는 군주는 필시 알고 있었다.

 

물과 소금. 소금기를 머금은 물의 존재. 이것만을 두고 본다면 이 세상 적어도 여기 차원에서만 말이다 에서 바로 떠올려져야 할 존재는 딱 한 명뿐이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욕심이 많은 대양왕이라 일컬어지는 자가 다른 군단의 영역에게까지 자신의 권능인 바다를 넓힌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그래도 설마 여기 외딴 곳에 위치한 자신의 영역으로까지 마수를 펼치려고 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대양왕의 욕심이라는 것은 이 세계의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감히 유추도 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군단의 규모는 대단하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의 타고난 혜안으로 훌륭한 군주로 그들의 수하에게 인정을 받았다. 외딴 곳에 고립되어 있었고, 주변에 나름의 세력을 가진 여러 군단들과 별 다른 갈등 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다 그의 노력 때문이었다. 힘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원칙인 이 세계에서 보기 드문 행보였고, 지나치게 이상향의 길만을 가려고 한다고 비난도 받았지만 그는 결국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군단을 유지시켰고, 현명한 왕이라는 칭호까지 알게 모르게 받아오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자신이 지켜온 것의 멸망을 바로 직전에 목도하게 된 기분이란 참...그는 자신이 대양왕에게 대응할 만한 힘도, 자질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몇 수 앞을 보았다면 본인의 뛰어난 지혜로 어떻게든 협상 따위라도 진행을 해보았을 텐데, 대양왕은 그 주변에서 익히 소문이 난 현명한 군주의 소문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소리 소문도 없이...라고는 말 못하겠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천천히 그 주변을 삼키게 될 줄은 몰랐다. 이미 그가 희미하게 바다내음을 맡았을 때부터 본인들의 군단의 몰락은 이미 점쳐졌던 것이었다.

 

그는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수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는 자신은 끝까지 여기 지역에 남아 최후를 맞이할 생각이었지만, 그들의 수하가 본인의 선택을 따라가야 할 법은 없다고도 생각하는 자였다. 기특하게도 그들의 수하들은 전부 자신을 따라 이곳에 남겠다는 말을 하였다. 오히려 그 중 일부는 대양왕에게 맞서겠다는 의견도 표했다. 그것이 그들이 자신의 왕인 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하나 들렸다.

 

-정말, 감탄을 자아내는 왕을 향한 애정이구나.

 

칭찬하는 뉘앙스가 컸던 것과는 다르게,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해일이 그가 다스리던 지역을 순식간에 몰살하였다.

 

그래도 그 해일 속에서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것 같았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앞에는 끝없는 수평선만이 보였고, 그 속에서 자신만이 살아있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그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쌓아올린 것들을, 이 무자비한 난봉꾼은 아주 짧은 찰나에 다 무너뜨렸다.

 

그를 둘러싼 바다의 안에서 해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들렸던 목소리가 들렸다.

 

-흐음...규모가 작긴 했다만 나름대로의 왕이기는 했다는 건가?

-...

-살아있구나.

 

그리고 바다의 표면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양왕이었다. 대양왕의 커다랗고 매끄러운 얼굴의 일부를 보며 그는 말문이 막혔다.

 

대양왕은 자신의 본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너무 크기가 커다란 것도 있지만, 대양왕 본인은 자신의 본모습을 내세우면 어머니라고 하는 역할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다며, 대개 자신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허상을 앞세워 나타날 뿐이었다.

 

그래도 대양왕이 자신의 원래 모습을 아예 안 드러낸다는 것은 아니었다. 예외는 언제든지 있는 법이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이렇게...

 

-파도에 휩쓸리지 않다 하더라도, 이미 나의 해수를 많이 섭취하였을 터. 끝내 내 해수의 독에 당해 죽을 터이니 따로 손은 쓰지 않겠다.

-...

-...평소라면 그러했겠지만, 흥미가 생겼다. 마음에 들었다. 너는 특별히 내 가족으로 만들어주마.

 

친히 가족으로 만들려고 할 때였다.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그래도 나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나? 도통 알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또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도 아주 폭력적이었다. 대양왕이 말하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동생에 걸맞은 모습이 되어야겠지?

 

상대방의 의사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어차피 대양왕이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생명체들은 거의 대양왕에게 패배한 위인들이었다. 패배한 자들이, 승리한 자들이 전리품을 취하는 것에 반론을 거는 것 자체는 안 될 일이었다. 그는 이 세계에 걸맞지 않게 현명했지만, 결국 이 세계가 가지고 있는 순리만큼은 벗겨내지 못하여 결국 대양왕의 전리품 신세가 되었다.

 

대양왕이 몰고 다니는 해수는 자체적으로 독이 있었다. 대부분은 그 독을 일정량 이상 섭취하게 되면 당연히 죽음에 이르지만...극히 아주 운이 좋은 일부는 그 독이 몸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전에 없었던 힘까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대양왕은 이것을 시련이라고 칭하였다. 시련에서 통과하면 자신의 가족이 되는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면...그냥 죽는 것이다.

 

그리고 시련에 통과한다는 것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됨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야 그 시련은 대양왕이 자신의 가족을 만들어낸다는 명목 하나로만 지어낸 아주 강압적인 고문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는 대양왕이 억지로 내린 시련을 불행하게도 통과하였고, 그는 그렇게 대양왕의 두 번째 동생이자 약탈자가 되었다. 대양왕은 그에게 엄연한 복수의 대상이었지만, 그는 그러한 자신의 의무에 태만하여 대양왕의 가족인 동생의 일원으로 대양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 시작했다.

 

그는 칠흑뿐인 밑바닥 해구에서 배들을 공격해 그 안에 있는 보물들을 약탈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은 수심이 깊어 그만큼의 수압도 강한 곳. 지상에서만 형태를 잘 유지하는 보물들은, 해구의 심층부로 오면서 수압을 못 이겨 소멸하여 결국 그의 손에 온전한 형태로 보물들이 손에 넣어진 적은 없었다. 이를 보면 그가 단순히 운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일종의 형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군단을 멸한 대양왕에 대한 복수라는 의무를 잊어버리고...게으름을 피우는 어느 군주에 대한 벌. , 자신이 진정으로해야 하는 일을 타의에 의해서지만 결국 져버리고 있기 때문에, 나태하기만 한 그의 손에 들어갈 보물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는 당연히 모르고, 대양왕은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으나 적절한 해결책은 제시해주지 않았다. 그야...이미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그것은 자신을 향한 사랑을 거부하도록 본인이 유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양왕은 이기적인 인물이다. 결코 손해를 두지 않는다. 가족을 만든다는 것도 다 본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 대양왕이, 자신이 사랑한다고 하는 동생에게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라는 명령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랬기에 어느 현명했던 왕의 직무 유기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었다. 그의 손에 닿는 보물들은 언제나 그랬듯 물거품이 되어 수면 위로 올라가려 할 뿐이었다.

 

 

 

 






 

[작가의 말]

개인적으로 대양왕 패밀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데비 존입니다. 대양 알현 당시 아스모데우스가 생각보다 임팩트가 없어서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 데비 존과 로렐라이가 설정 과다였을 뿐이었어요...

대양 대면 스토리가 곧 나와서, 언젠가는 써봐야지...라고 다짐했던 데비 존 단편을 지금에라도 올립니다.

2024-10-24 23:36:0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