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2장 9화 : 천사의 시종과 날개꺾인 새 + 연하은 소개 α버전
AI미스틱 2020-12-31 1
※피드백이나 비판 등, 여러 가지 모자란 점을 제게 지적해서 더욱 나은 방향으로 소설을 이끌어갈 수 있게끔 해주십시오.※
※해당 소설의 하늘새 팀이나 어비스 등은 게임 내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하시는 캐릭터의 설명을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다음화에 참고하여 넣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캐릭터는 어비스 세력을 포함한 모든 캐릭터임을 알려드립니다.※
제목이 너무 길어서 2장 9화는 제목 변화가 있습니다.
‘연구실’의 분위기를 풍기는 세계 속에 갇힌 소년과, 그 세계를 내려다보는 한 남자.
프레이 아델 로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출력도 안정적, 육체도 안정적…. 이상적인 환경이로군. 어떻게 생각하나, 세이지 군?”
그것에 대해 세이지가 답했다.
“글쎄요, 적어도 제가 살았던 곳과는 꽤나 딴판인 곳이군요.”
“살았던 곳?”
“그래요. 이 아이들이 모르는 세계였죠.”
그는 기억한다.
자신이 태어난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의 풍경을.
눈 앞의 남자가 서 있는 ‘복제’된 환경이 아닌, 그 따뜻했던 세상을.
그러자 프레이 아델 로가 말했다.
“그렇군. …하지만 이제부터 그런 생각따위, 하등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릴걸세. 내게 필요한건 ‘연구’와 ‘자료’인 것이지, 자네의 추억 이야기 따위가 아니니까.”
“그래요, 우리는 이곳에 ‘목적’을 가진 채 있으니…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나를 사용해주시죠.”
그의 검은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프레이 아델 로가 예상했던 감정이 아니었다.
단지, 수긍하고 순응하는… 그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눈빛.
“…그럼, 우선 테스트를 시작하지.”
프레이 아델 로의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세이제에게 최악이라고 새겨진 악몽의 시간이 찾아왔다.
‡ ‡ ‡
프랑스의 공원.
그곳에 있을 터인 사자상은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으며, 물을 뿜어내던 분수대는 어느샌가 메말라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불타오르던 불길은 잠잠해져있었고, 울리던 총성도, 귓가를 시끄럽게하던 인간들의 ‘비명소리’마저도, 이제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콰득! 무언가를 강하게 짓밟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면, 언제인가 보았던 한 소년이 있다.
평범한 아이처럼 보였기에, 클로저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기에.
그렇게 크게 경계하지 않았던 소년이.
한때 옆에서 총을 함께 쏘아대던 대원의 머리를 강하게 짓밟고 있었다.
위상능력자급 신체능력까지 끌어올려주는 강화 슈트임에도 불구하고 찌그러진 수준은, 이미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침 끝난 것인지, 아니면 시선을 느낀 것인지.
고개를 돌려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자신에게 시선을 향한 소년이, 현혹시키듯이, 그 아름다운 음색을 울리며 말한다.
“…주인님의 뜻에, 여러분들은 필요없습니다.”
“아… 아아….”
─그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귓가에 울리는 그 음색. 그 한 마디의 음색에 뇌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성도, 본능도. 감정의 판단조차 그것을 정의내리지 못하는 사이, 그는 말한다.
“퇴장해주세요.”
들어올린 신발의 밑창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어째서인지 회한이 들지 않았다.
단지, 그저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도, 받아들일 뿐이었다.
─쿠직.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더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머리를 짓밟자, 곧장 터져나간다.
뇌의 파편이, 끈적한 뇌수가, 기울어진 표주박마냥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초점 잃은 눈알이 데굴, 바깥으로 혀 내밀 듯 나와있었으며,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노려본 그 눈처럼 찐득하게 달라붙은 두개골의 파편을 툭툭, 바닥에 신발을 쳐대며 떼어내었다.
“이러면 주인님을 보러갈 수 없잖아.”
상당히 분노가 일어나는 목소리가 허무한 거리를 울리자, 조명등마저 꺼진 거리를 마치 풍경삼아 천천히, 누군가가 걸어온다.
창백했으나, 그렇기에 더욱 미소가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걸어들어오는 이를 바라보며 소년이 물었다.
“…누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인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과, 주인님의 뜻을 받드는 것. …고작 신발 밑창 더러워졌다고 주인님께서 너를 싫어하실 리가 없잖니.”
동생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소녀는 새로 들어온 정보가 있다며 말문을 다시금 열었다.
“인간들이 우리에게 ‘인식명’이라는 것을 붙였다고 해.”
“…인간따위에게….”
“그래,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나고 열불이 치밀지만, 주인님께서도 예상하고 계시던 부분이야. 이곳의 인간들은 새로 만난 적들에게 ‘인식명’을 붙인다고 하니까.”
─아즈라엘, 그게 네게 붙어진 인식명.
*이후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이즈라엘/아즈라엘로 통일하겠습니다.*
“인식명따위 아무래도 좋아. 나는… 주인님께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 뿐.”
그런 동생의 바람을 들은 누나, 이즈라엘이 말한다.
“그래, 우리는… 단지 그것만이 소원일 뿐이니까. …가자,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하기위해.”
“응.”
그리 말한 이즈라엘이 다시금 거리를 향해 걸어들어가고, 그런 누나를 바라보며 아즈라엘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얼마 가지않아 새는 다시금 날개를 펼칠 것이다.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할 일은 단 하나.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처리하고, 자신들이 조련할 장소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얼음성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단 하나의 존재.
“자, 도망칠 공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어떻게 할 거지? 작은 새들아….”
‡ ‡ ‡
클로저 팀들의 데이터를 모두 종합해본 결과, 저들의 손에 넘어간 클로저는 약 열 셋.
그중 A급에 해당하는 것은 한 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B급 이하.
유주와 하얀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숫자이며, 여기에 단아까지 함께 한다고 한들 그다지 바뀔 것은 크게 없었다.
그리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시가지 내에서의 변화.
총성이 줄어들고, 불길이 잦아들고 있었다.
불길이야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 수 있는 것이지만, 총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전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나, 혹은….
“…모두 쓰러지고 있거나, 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
“…박용태 씨….”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마치 철옹성같은 몸을 가진 박용태가 존재감을 과시하듯 다가오고 있었다.
저 거리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은걸까, 초인같은 감각에 입을 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확실히 최악의 경우였다.
“이대로 현장을 방치할 수는 없으니, 내가 직접 나가보도록 하지.”
“하지만 박용태씨의 징계는….”
“이 상태에서 징계는 아무 소용도 없어. 그리고 애초에 이곳 상황도 마땅치 않고. …단지 정찰일 뿐이다, 너무 신경쓰지는 말라고.”
거기에 여기서 ‘박용태’에 대한 정보를 기입하지 않는 이상, 징계위원회에서 그를 파악할 방법은 크게 없었다.
이곳에는 시민도, 그렇다고 그를 따라온 징계위원회 소속 요원도 없었다.
하물며 감찰부에서 붙여둔 A급 요원조차도 없었으니, 그의 행동을 억압할 수 있는 족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걸까.
한참이나 고민하던 리르가 결정을 낸 것은, 30초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허가나 다름없는 말이 떨어지자, 박용태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순한 인연이라고는 하나, 한때 제자이기도 했던 하 얀을 밀어붙인 아즈라엘과 이즈라엘.
단지 정찰에 불과했지만, 여차할 경우에는 적대하고, 그 자리에서 토벌할 생각조차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리르는, 단아가 다시 찾기 시작한지 몇 시간이나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조차 없는 하늘새 2분대의 상황에 단지 답답함과 불안함만을 느끼며,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박용태는 하늘에서 떨어지듯, 시가지에 착지했다.
동시에, 위화감을 느낀다.
분명 불이 일어나고, 총성이 일어나고.
차로 틀어막고,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거기에 클로저와의 교전까지 일어난 곳.
온도가 높다면 높지, 낮을 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곳은 도대체 어째서 이토록 차가운 곳이 되었다 말인가.
거리에 너지분하게 널려있는 수많은 유리파편들, 기울어서 땅에 머리를 처박은 가로등들.
망가져서 더 이상 작동조차 하지 않는 전광판들, 거기에 힘잃고 추락한 가게의 간판까지.
하나같이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밟아서 부순 건가? 두개골을…?”
거기에 강화 슈트까지 한번에.
박용태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다른 위상능력자라면 어지간히 강하게 제압해두지 않은 이상에야 꽤나 힘들었을 일을, 이토록 쉽게, 난전에서 했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무언가 꿰뚫린 듯한 흔적.’
폭발과는 전혀 다른 것.
날카로운것에 찔려서, 그대로 들이박힌 듯한 커다란 흔적은, 강화슈트마저 뚫은 채 배에 커다란 구멍을 낸 상태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부위가 욱신거릴 정도였다.
한참이나 현장을 분석하며, 최대한 정보를 모으려던 차에, 구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발굽소리에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든다.
어두운 거리, 달빛이 들어서기 어려운 골목길에서, 유리마저 모조리 깨진 탓에 이제는 빛조차 반사할 매체마저 없어, 정말 칠흑이나 다름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을 의식하라는 듯, 차가운 한기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길 잃은 새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커다란 용이었다…인가요.”
“…너는….”
자그마한 소녀. ─160cm조차 안될 법한 그 자그마한 체구에, 키높이 구두를 신은 그것은 자신의 작은 키의 콤플렉스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작은 체격의 가슴 사이를 꿰뚫고 있는 하나의 ‘쐐기’.
그리고, 그 목을 조이듯 채워져있는 무언가의 초커.
벌처스가 가졌다고 하는 처리부대의 목에 걸린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이질적인 힘을 내뿜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던 소녀는, 이윽고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입술에 손가락 끝을 대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렇네요, 아직 제 소개가 없었었죠.”
박용태의 질문을 의식한 듯한 대답이었다.
그녀는 ‘늦었지만’ 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소개하였으니.
“저의 주인님이신 어비스의 여섯 번째 주인의 ‘유이’한 시종으로 아직 이름을 하사받지는 못하였으나, 여러분들이 지어낸 제멋대로의 ‘인식명’으로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즈라엘.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스커트 양 끝자락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허리를 굽히는 그 모습은 완벽 그 자체의 행동.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완벽에 한없이 가까운 것도 아닌, 마치 1천여년 내내 같은 행동만을 반복해온 무언가처럼, 아주 철저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행위였다.
이내 달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달이 기울어, 건물을 넘어온 것이겠지.
그리고 그 달빛에 비친 소녀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이 보았다면 처음 보는 순간 매혹에 빠질 정도의 모습이었다.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그것은 잘 모른다. ─어째서냐고? 그것은, 외모라거나, 그런 것의 매혹 이상의 것이었다. 천부적인 것. 가지고 태어난 천재성 그 자체.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
그렇기에,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었다.
단지 빠져든다는 행위에,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질 필요따위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용태는 그 거리를 철저하게 유지한 채, 용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경계한다.
그녀의 주변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차가운 온기.
예민하기 그지없는 감각이, 직감이. 그것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그에게 경고를 날렸기에 쉬이 다가가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자 그녀는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는 여기서 당신과 대적할 생각은 없기에.”
그 말에, 박용태가 물었다.
“이즈라엘… 하얀과 유주를 상대했던 녀석인가?”
“그 자그마한 새들이라면, 제 동생과 함께 맞이해드린 것이 맞습니다. …아쉽게 놓쳐버렸지만요.”
‘자그마한 새’.
그 둘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단 말인가.
아니, 오히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처럼 말을 걸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성인 어른도 아닌 아이를 상대로, 하얀이 마음이 흔들렸다면….
한참이나 말없이 적막한 거리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있자니, 댕댕거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은 없지만, 종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누가 울리는건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그녀가 말한다.
“벌써 새벽 5시로군요. …다음에 오신다면, 가벼운 차라도 한 잔, 어떠신가요?”
“…생각 없다.”
“그렇군요.”
실로 하찮고, 영혼없는 목소리에 넘어갈 정도로 하찮은 인간은 아니었다.
그 아이의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를 들은 박용태가 오른 손바닥을 펼쳐보이며 말하기를.
“**라.”
─그 머리를 쥐어 터트리기 전에.
협박이나 다름없는 발언. 하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정도의 힘이 있다는 것이 박용태와 평범한 위상능력자를 가르는 가장 큰 척도.
그 위협 속에 잠들어있는 ‘현실’을 본 것인지, 뒤로 천천히 물러선 이즈라엘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새들에게는 이리 전해주시지요.”
─프랑스의 정점에서,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그 말과 함께 허공을 몇 번 걷다가, 곧장 하늘로 날아 사라진다.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던 박용태는 그림자 끝자락조차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숨을 내쉬었으니.
“그 둘에겐… 버겁겠군.”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할지도 모르는 일을 다짐하며, 정찰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 ‡ ‡
테러리스트 세력이 거의 전멸.
그 소식은 유니온에게, 하늘새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최후의 방어막이나 다름없는 테러리스트들이 어비스에 의해 완전히 전멸했다는 것은.
“2분대는 아예 연락이 되지 않고… 단아밖에 없어요.”
“…위험하면 도망치라는 거겠죠.”
“맞아요. 유주 요원님도 하얀 요원님도. 두 분 모두 중상을 입고 돌아왔으니까요. 그러니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려던 찰나, 옆에서 말을 채가듯 누군가 리르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애 혼자 보낼 생각이야?”
“…유주 요원님….”
“녀석도 둘이야. 최악의 경우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는데, 너만 보낼 수는 없지.”
“하지만 요원님은….”
“‘뇌제’로 도망치는 것까지만 도와줄 수 있어. 싸우는 건 당연히 무리겠지만.”
무기는 완전히 망가져서 보급될 때까지 기다려**다. 최악의 경우 보급마저도 이제는 완전히 끊어질지도 모른다.
몸상태는 아슬아슬한 선으로, 몸에 부하를 가하는 ‘뇌제’ 이외의 전투는 완전히 불가능.
말 그대로 ‘도망치는 용도’나 다름없는 그를 두고, 리르가 반문했다.
“단아는….”
“나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그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상대가 놓아준다는 가정에서만 성립되는 일이야.”
“….”
단아의 능력은 불완전하다.
그것을 잘 알고있는 것은 본인 이외에도 몇 명이나 더 있다.
당장 며칠 전에 맞붙었던 한국에서 활동하는 테러리스트, ‘지옥의 변견’역시, 그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데미지를 주었으며 그보다 더 오랫동안 함께한 유주는 말할 것조차 없었다.
연속되는 능력의 사용은 신체에 부담을 가한다. 그건 모든 위상력에게 공통되는 사항이지만, 그런 건 자신의 육체 능력으로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의 사용량’은 육체 능력으로 대신할 수 없다.
능력을 얼마나 넓고,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는 사용자의 역량에 따른 것.
단아는 같은 수준의 클로저들과 비해서 능력의 연속 사용은 확실히 우위를 차지하지만, 그만큼 사용량 면에서 떨어진다.
그도 그럴게, 그는 애초부터 클로저로서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팀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서야 알게된 자신의 능력을 이만큼이나 진화시킨 것이 더 대단한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짧은 능력의 사용시간 때문인지 그는 큰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능력의 다중 사용 능력이 모자란 애를 혼자 보내서, 죽이겠다고?”
단아는 능력을 한번에 한곳에만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의 주위에 호위용으로 둘러놓는다면, 공격에 활용할 수 없다.
그리고 공격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방어를 위해 주변을 돌던 능력은 해제된다.
“그런 애를 혼자 어떻게 보내겠냐.”
“그건….”
리르 역시 할 말이 없었는지 말꼬리를 흐렸으며, 그 상무겁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단아가 하는 말은 간단했다.
“유주 형은, 우선 건강부터 챙겨주세요.”
“뭐?”
“…지금의 형은 ‘뇌제’도 한 번이 한계일텐데, 그 몸으로 함께 가서, 돌아왔을 땐 얼마나 망가지려고요?”
그리 말하며 살며시 미소지은 단아가 말하기를.
“걱정하지 마요. …죽지는 않을거니까.”
유주가 바라보기에 그 미소는 어째서인지, 옛적의 자신을 닮은 듯 싶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보다는, 죽지 않을 자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같은 미소.
어린 시절의 그가 자주 비치던 그 미소가 어째서 그에게서 비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딘가가 변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괜찮겠어?”
“네. …그러니, 형은 치료에만 전념해주세요. 나중에 하얀 누나가 깨어났을 때, 두 분이 아니라면 저들을 토벌할 수 있는 녀석은 없으니까요.”
S급 개체.
그것은 재해나 다름없다.
심지어 대놓고 ‘성’을 이끌고 쳐들어온 ‘적’은 세계 자체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고 침식하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클로저는 이 프랑스에 그들밖에 남지 않았다.
외부로 연락한다면 클로저들의 증원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닐 것이며, 수많은 희생, 끝없는 전투 끝에서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겠지.
그리고 그 희생을 과거로부터 차단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뚫는 역할은, 자신의 몫이 아닌가.
“하늘새 요원 ‘현단아’, 출격하겠습니다.”
비상하며 날아오르는 단아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유주이ㅡ 눈동자에는, 회의감이. 주저함이, 그리고 후회가 한가득 담긴 채, 그 사이에서 빛나는 ‘희망’이라는 글자가 비치었다.
그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건지, 리르가 알 턱은 없었으나.
적어도 그 ‘희망’이, 단아와 연관되어있는 것임은 틀림없으리라.
그리고.
-현단아 군은 출격했나? …마침 잘 됐군. 자네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는데.
“…프레이 아델 로….”
-오랜만일세, 유 주 요원. 이렇게 담소를 나누는 게 몇 년 만인가? 자네가 특수작전관리요원의 자리를 박탈당한 이후 처음이었던가? …뭐, 옛이야기는 관두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가 아니니.
“어디에서 뭘 하고 있기에 지금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거지?”
-너무 감정에 몸을 맡기는 것 아닌가, 유 주 요원. 단아 군의 출격을,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나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꾸어,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끼려는건 잘 알겠네만, 나는 그런 의미없는 이야기를 싫어한다네.
그리고 화면의 노이즈가 몇 분이고 지속된 다음에야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화면으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화면의 미세조정을 하더니,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이쪽의 모습이 잘 보이게 된 듯, 말을 이었다.
-우선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자네들이 고민하고 있는, 그리고 현재 상태에서 봉착한 ‘어비스 세력’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했네.
“무슨….”
-리-르 앙골라 관리요원. 내가 말하고 있지 않나. 우선 들어주게나. …어비스 세력이 점차 이곳으로 넘어옴에 따라 일어나는 ‘위상변곡률 변화’는 확실히 위험하지.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차원종’이라 부르는 그것들의 차원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네.
-놀랍게도, 그들이 이곳으로 넘어옴에 따라 변화하는 ‘위상변곡률 변화’는 그들의 차원과 이어지는 것. 다시말해 계속해서 그 변곡률 수치가 높아지게 된다면 ‘주인’이라 불리우는 고위급 개체들이 이곳으로 아무런 제약도 없이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는걸세.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현상은 어디까지나 그들 어비스가 차원종과 같은 현상을 앓는다는 점에 한해서야.
“…용건만 말하지.”
-그래, 빙빙 돌려말하는 것 같아서 실로 미안하군.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비스가 얼마나 넘어오고, 또 얼마나 위상변곡률 수치를 변화시킨다 한들, 그들의 차원에서 ‘주인’이라 불리우는 개체가 넘어올 가능성은 없네.
“…무슨….”
-유 주 요원. 자네는 보았지 않나. 이곳 프랑스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성’을 세우고, 자신의 ‘수하’를 부리며, 신처럼 군림하는 괴물의 정체를. …그 정도로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어비스라는 개체가 차원종이라는 개체와 달리, 이곳 차원압력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겠지. 이해했나?
“…결과적으로 놈들은 이미 익숙해져있어서 위상변곡률 수치의 변동에 따른 고위 어비스의 출현은 없다는건가.”
-잘 알아들었군.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곳에서 발생하는 차원문에 그들이 반응하지 않을거라는 이야기지, 완전한 이야기는 아닐세. 결국 그들의 출현으로 발생하는 차원문은 더 많은 어비스를 불러들일테니.
-계속해서 흘러들어오는 어비스는 결국 유니온의 신뢰를 떨어트리고, 이곳 프랑스 시민들에게 불안을 안겨주겠지. …그렇기에 나는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네.
마치 무언가를 물어봐주기를 기다리듯, 정확히 그곳에서 말을 끊은 프레이 아델 로의 모습에, 자신이 예상한 정답에 한없이 근접함을 인지한 유주가, 부들거리는 손에 주먹을 강하게 쥐며 물었다.
“무엇을.”
-하늘새 2분대를 ‘완성’시키기로.
그것은, 유주가 생각한 정답에 비해, 한없이 동떨어진 대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AI미스틱입니다.
이번 화는 대부분 전투가 아닌 상황 파악, 그리고 대화 등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요, 그래도 역시 어비스 처리나 그런 것으로 페이지를 채우는건 독자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어느정도 뛰어넘은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즈라엘’과 ‘이즈라엘’과의 전투를 생략한 것은 의도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드리면, 그건 소설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떨어트리는 일이겠죠.
어떠셨나요? 2장 9화는.
하늘새 2분대에게 숨어져있는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런 2분대들을 이용해 프레이 아델 로가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일까요.
자세한 것은, 그리고 확실한 것은 프레이 아델 로만이 알고있는 것이겠죠.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알 수도 있고요.
한가지, 여러분께 여쭈어보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새 2분대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인간이란 곧 무엇일까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자연적인 생물체’
‘인공적으로 태어난 인공 클로저’
그런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을 ‘두 분류’로 가르는 것 뿐이죠. 고작해봐야 장애인과 정상인 따위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차원종임에도 인간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레비아.
몸 대부분이 기곗덩이로 바뀌어, 이제 남은 것은 뇟덩이 몇 조각밖에 없는 티나.
그들은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호프만에 의해 인위적으로 태어난 사냥터지기 2분대와 미스틸테인.
그들은 과연 ‘인간’의 분류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본체를 강탈당하고 가짜만이 남은 ‘루시 플라티니’는.
원치않은 방법으로 탄생한 ‘흑지수’.
그들을 정말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걸까요?
결국, 그건 누군가의 가치관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이상입니다.
《 연하은 》
성별 :: 여
나이 :: 7세(전쟁) -> 7세-13세(실험/사망시기) -> 25세(1장) -> 26세(2장)
키 :: 143cm
몸무게 :: 불명
별칭 :: 불명
좋아하는 음식 :: 불고기(전쟁이전) -> X
싫어하는 음식 :: 양파(전쟁이전) -> X
위상력 :: 불명
클래스 :: 그라비토
소속 : 검은양(임시) -> 불명
위상력 색 :: 검은색
상태 :: 잠듦, 사망(육체)
외형
새하얀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
하얀색으로 통일한 의복. ─의미는 없다.
신발을 신지않은 맨발.
사망 이전까지 검은 머리카락이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백색으로 변화.
긴 머리카락은 원래 허리까지 정도로 짧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늘어나 현재는 허리 아래까지 닿는다.
유니온 요원복을 입고 있었으나 ‘어비스’ 쪽에 완전히 넘어간 이후 하얀 의복으로 바꿔입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인연이 있는 모든 물품을 불태우거나 부숴서 없애버렸다.
19년 전에는 두 소꿉친구와 함께 만든 조잡한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전쟁중 부서져서 현재는 아무것도 착용하고 있지 않다.
맨발이기 때문에 양말도 신지 않으며, 내복도 입지 않는다. 속옷 유무는 불명.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멋대로 조정되는 듯.
『 성격 』
인간을 좋아한다.
클로저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하며, 등뒤의 사람을, 사람이 사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내던질 각오를 언제라도 하고 있다.
눈앞에 커다란 산을 옮겨서 그녀를 깔아뭉갠다 한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산의 흙을 파내면서까지 기어 올라와 그녀는 끝내 창을 들어 올릴 터다.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싫기에, 누군가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불행해지는 것이 싫기에, 누군가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란다.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 작은 몸으로 전장에 나서 미소를 띈다.
그 창에 담긴 염원과 소원이 얼마나 거대한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녀가 바라는 소원은 단 하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이상향’이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세계의 끝이리라.
다만, 그만큼… 그렇게 커다란 희망과 소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 앞에 다가온 자신의 ‘불필요성’을 부정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필요없는 세계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인간이기 때문에 한없이 고통밭기를 자처하고, 괴로워한다. ”
그러나.
인간을 믿지 않는다.
어릴 적, 자신의 팀원에게 배신당한 경험 끝에 얻은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으나
‘검은양’ 팀과 만난 이후 함께하면서 한번 더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연하은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완전한 ‘거래’나 ‘계약’ 관계에만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모습을 비치며
자신을 절망으로 끌어넣은 유니온 상층부에 대한 불신이 깊다.
거기에 죽었기 때문인지 따뜻했던 생전의 성격과는 달리 차갑고 냉혹하며, ‘복수’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해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편.
복수를 위한 행위는 설령 외도를 걷고 올바르지 않은 길이라 해도 나아가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자신처럼 ‘차원종’에 대해 어떠한 ‘절망’을 맛본 이슬비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복수심을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여긴다.
다만, 이것은 언제까지나 그녀가 내비치는 겉표면적인 성격이다.
그녀는 인간을 증오한다.
본래 ‘인간을 좋아하는’ 연하은의 성격과는 사뭇 다르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성격이자 그녀가 감추고 있는 본질로
인간이라는 생명체 자체를 증오하고 싫어한다.
인간에 의해 절망을 맞이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들과 한 자리에 서는 것을 싫어하며
이 성격이 바깥으로 드러날 최악의 경우, 사람에 대한 ‘살인 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인식한다.
‘죽음’을 거부하지 않으며, 죽이기 위해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인지한다.
복수라는 행위를 위해 행하는 모든 일을 ‘정당’하고 ‘올바르다’고 알고있으며
이 성격상의 그녀는 자신이 증오하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어떤 소중한 목숨이 걸리건 ‘소모품’으로 인지하며
증오하는 존재를 죽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
정신적 주축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며.
설령 인지한다고 한들, 그것은 모두 ‘올바르고 정당한’ 일이라고 단정짓는다.
‘살인 행위’에 대해 ‘카타르시즘(어떠한 행위를 함으로서 얻는 큰 쾌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녀가 원하는 최종적인 목표이자 궁극적인 목표에 다다르는 것은 결코 존재해서는 안된다.
최종적인 성격에 닿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 ‘모든 것’의 죽음을 목격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인간에 의해 절망하였으며. "
" 인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였기에, 인간을 증오한다. "
- 유니온 평가 -
연하은이라는 인간은 실로 흥미롭다.
마취없이 두 팔을 절제하고, 두 다리를 절제하고, 그 상태로 신경마저 뜯어내는 커다란 실험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쇼크사하지 않는다.
클로저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 샘플이자, 최고의 실험체.
실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궁극적 ‘표본’.
산 채로 배를 갈라 장기를, 내장을. 아무것도 먹이지도 않고 방치해도 죽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궁극의 위상이 아닌가.
그녀를 파헤쳐서, 보다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 경지를 통해 우리가 더 크고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인류를 구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 눈알 하나에 깃든 가치가 인간 수천명이라면.
그 팔 한짝에 깃든 가치가 인간 수만명이라면.
그런 가치를 수도없이 만들어내면 그만이 아닌가!
심장을 뽑아내고, 뇌를 적출하고 실험을 계속해라.
영원히, 그녀라는 인간을 수천 수만을 만들어낼 때까지.
이 실험은 계속되어**다.
- 평가 -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에 의해 희생된 안타까운 소녀.
그 손에 주어져야 했을 희망은 절망이 되어 돌아왔고.
그 몸에 가득 찼을 행복은 죽음이 되어 그녀를 잡아먹었다.
그녀가 인간을 증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인간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을 행하고, 그것을 당연하지 않다며 경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싫은 점이다.
사과만으로 끝나지 않을 고통과.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을 괴로움을 선사해놓고.
이렇게 그녀를 평가하는 것조차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 그럼에도 그녀는 클로저이기에, 사람을 지킨다. ”
『 과거 및 배경 』
한국 출생으로, 2살 시기 동생이 태어나던 순간 고아원에 버려졌다.
부모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며, 단지 주어진 것은 ‘연하은’이라는 이름 뿐이었다.
무책임한 부모라고 매도하고 원망하고, 이름을 버려도 상관없을 정도였으나 부모와 이어진 연이 오직 이름밖에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태어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그 이름을 계속해서 가져가기로 결심한다.
태어날 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황금색 눈 때문에 고아원 안에서도 왕따에 속했지만
똑같은 처지였던 하얀과 만나면서 언제부터인가 가지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불신이 천천히 낫기 시작한다.
유 주와 하 얀과 함께 놀기를 좋아했으며, 그 중에서도 좋아했던 것은 젠가.
본래 8살이 되면 입양될 예정이었으나, 정말 운명의 장난인 것인지,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기 1년 전, 갑작스레 ‘차원 전쟁’이 발생하였다.
차원 전쟁 초기부터 위상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은 변화하지 않았으며
고아였기에 데려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당시 사회 문화로 인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서 인사조차 끝마치지 못한 채 소집되었으며
유니온에 회부된 이후 강제로 하얀과 떨어져, 다른 팀에서 활동하게 된다.
한동안 한국에서 활동했으며, 이 당시의 활동으로 인해 B급 클로저로서 인정받았다.
이후 ‘용의 출현’ 사건 이전, 부산으로 내려가 부산에 나타난 ‘아폴리온’과 ‘황충 군단’을 상대로 시민들의 대피를 위해 시간벌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만, 이 때 그녀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거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하늘을 덮고 바다를 대신하는 수준의 황충무리를 보고 지레 겁먹은 채 도망갔으며, 항구에 남은 클로저라고는 그녀를 비롯해 몇 명조차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남은 클로저들마저 도망쳐, 그들은 다른 작전에 투입되어 아마 아직까지 살아가고 있겠지.
하지만, 그녀만큼은 등 뒤에 부산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창을 치켜들고,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황충무리를 상대로 싸우기를 자처했다.
온 몸이 부서질 정도의 격전 끝에 그녀는 힘이 다해 쓰러졌으며
기회라 여긴 것인지, 아니면 죽은 동료의 복수를 하려는 것인지 수많은 황충무리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산 채로, 신경이 살아있는 채로 배를 물어뜯고, 팔을 물어뜯고, 다리를 물어뜯으며 그 굶주린 배를 채우고, 드러난 내장에 이빨을 들이밀며 그저 식사행위만을 계속하였다.
개중 몇몇 개체는 번식 행위를 하려고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녀가 정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폭’이었으며
저 멀리 컨테이너를 들고있는 크레인의 사슬을 끊어낸 그녀는 고공에서 떨어지는 수 톤의 컨테이너로 자신을 먹어치우는 차원종과 함께 끝을 맞이했다.
─불운인지 아니면 행운인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녀의 몸은 오른쪽 가슴이 짓이겨지고, 우측 팔다리는 쓰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살아난다 해도 영구 불구로 살아갈 정도의 상처였다.
당시 유니온의 기술이라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가능성이 보였으나, 유니온은 그녀가 가진 ‘검은 위상력’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를 회수하는 것은 물론이요 명분 확보를 위해 ‘알파나이트’ 제이를 부산으로 내려보냈다.
또한 제이의 활약 이후 소강 상태에 들어선 부산에서 그녀를 이송하고자 클로저를 내려보냈으며
이미 죽어야 할 상황이었던 그녀의 생존력과 위상력이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 여겨진 유니온은 그녀의 사지를 분해하기까지 이르렀다.
사지를 분해한 이후 ‘엘트 라 어스트’에게 옮겨져 위상능력자 및 위상력 복제를 위해 수없이 많은 실험에서 고통을 받았으나
엘트 라 어스트의 자비인지 아니면 상부 명령인지 이 시점부터는 마취로 인해 그나마의 편안함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잠시. 그녀의 ‘생존력’에 의문을 비롯한 흥미를 품은 유니온은 ‘엘트 라 어스트’의 실험 진행도가 안정기에 들어갔다는 증언을 확보한 채 그녀를 강제로 탈취했으며
그 이후 질기고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게 된다.
엘트 라 어스트와는 달리 마취 없이 배를 절개해 장기를 뽑아냈으며, 그 눈은 그 시점부터 잃어버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심장을 뽑아내었으나 심장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것인지 혈액은 그대로 정맥과 동맥을 흐르고 있었으며
최종적 난관이자 궁극적 흥미였던 ‘위상력의 발생 기관’을 찾기 위해 뇌를 적출했다.
그 순간부터, 연하은은 완벽히 사망하였으며.
엘트 라 어스트의 완성될 수 있었던 ‘검은 위상력 복제’에 대한 실험은 완전한 불완성으로 남았다.
이후 12년이 지나, 외부 차원 어딘가 배양실에서 눈을 뜬 그녀는 두 눈과 사지, 심지어 장기까지 모두 멀쩡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부활은 아니었으니, 본래 존재했어야할 심장의 고동도 없었으며,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몸은 완전히 차가운 상태를 유지했다.
그녀를 반긴 것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상한 누군가였으며, 그의 ‘흥미가 갔다’며 보내주겠다는 말 한마디로 인해 내부 차원으로 돌아왔다.
그래, 유니온이 불을 켜고 찾아다녔던 10년의 시간을 2년이나 넘어선 다음에야 그녀는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