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 2장 8화 > : 천사의 시종과 날개꺾인 새 + 하 얀 소개
AI미스틱 2020-12-28 1
※피드백이나 비판 등, 여러 가지 모자란 점을 제게 지적해서 더욱 나은 방향으로 소설을 이끌어갈 수 있게끔 해주십시오.※
※해당 소설의 하늘새 팀이나 어비스 등은 게임 내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거리.
테러리스트의 출현때문인지, 아니면 어비스의 출현때문인지, 한산하기 그지없는 거리와, 그곳을 휩쓸어담은 듯한 폭약의 흔적들. ─그것은, 전투의 잔흔이었다.
총탄이 박힌 듯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있었으며, 몇몇 어비스의 잔해가 있었으나, 오히려 테러리스트의 손해가 더욱 큰 모양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지상에 흩어진 건물의 파편.
망가져버린 인류 문명의 모습.
그것은 이제 그 드높던 파리의 모습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알고 있었던 모습조차 아니었다.
불길에 휩싸인 채, 그을린 잿빛을 벽화처럼 남기고 있었으니, 그들이 보았던 옛 시절의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국같은 드높은 마천루도 없었으며, 아름다운 전통 가옥들로 둘러쌓인 것조차 아니었지만, 수많은 세월들을, 그 시간들을 인류와 함께해온 그 시간의 흔적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은 일조차 아니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바라볼 때마다 눈물이 새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억누른 채, 리르는 입을 열어 ‘테러리스트 대응 원칙’을 읊었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신원 보장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리르, 그 말은….”
“…살상도, 용납한다는 의사입니다.”
본래 클로저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직업.
허나, 그 칼끝이 사람을 향한다.
이 무슨 모순이고, 이 무슨 불합리인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방패가, 가시가 되어 손을 찌르고, 창이 되어 심장을 찌른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
“또한, PMC에 대한 대응 원칙 역시,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합니다.”
“리르!”
“유니온 상층부에서 내려온 의견에 따라 현 시간부로 파리에 있는 ‘유니온 정규 클로저팀’ 외의 사람들은 민간인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유니온 상층부에서는, 끝내 결단을 내렸다.
프랑스 파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어비스와 테러리스트, PMC의 세력 구도를 깨트리기 위해서는, 파리에 있는 ‘민간인’ 자체를 소거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으며, 그 결과, 이런 결론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민간인’의 규정을 변화시킨다.
리-르 앙골라 관리요원이 해당 원칙을 읽은 순간부터 이 규정은 적용되기 시작하며, 지금 이 시간부로 파리에 남아있는 모든 인구는 ‘민간인’이 아닌 ‘비공식 무장단체’ 및 ‘테러리스트’로 규정, 제압 및 살상에 들어간다.
해당 과정 속에서 당사자의 무기 소지 여부에 대한 확인은 불필요하며, 클로저에 대한 적대 행위를 보이면 상층부의 살상 허가 없이 살상해도 좋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에 대해서 클로저는 유니온 및 국제법으로 보호받으며, 어떠한 ‘살상 행위’도 용납된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비공식 무장단체 및 테러리스트는 국제법상으로 민간인이 아니며, 무장 투쟁에 대한 ‘필요성 살상’은 국제법으로 인정된다.
또한 이미 유니온에서 프랑스 파리에 ‘민간인에 대한 대피 공지’를 내렸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부터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테러리스트’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방해될 것은 없다.
그러나.
“리르 누나, 아직 애들은….”
2분대 아이들은 달랐다.
아직 어린데다가, 옳고 그름조차도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한다.
그정도로 어린 아이들에게 ‘살상 행위’를 요구하고, 인정한다니. 그건….
“하늘새 2분대에 대해서는 아직 이 사안을 전달하지 않았다.”
리르에게 물은 질문이었으나, 전혀 다른 곳에서 대답이 돌아오자 깜짝 놀란 단아가 몸을 움찔, 하며 반응하니 곧장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의료기술부 총괄 팀장─프레이 아델 로가 입을 열었다.
“하늘새 2분대의 연령 및 정신상태를 고려하여, 하늘새 2분대는 둥지 외부, 파리 시가지에서의 활동을 금지한다. ─물론, 자네는 달라. 현단아군, 자네는 본래 하늘새 1분대로 지정받을 예정이었다는 것을 알겠지. …그렇기에 자네에 대한 출격 금지는 내 권한으로 보류하겠네.”
“팀장님….”
“마나 양, 이미 이야기가 다 된 것 아닌가. 물론, 그들을 제압해오는 것은 자네의 의사에 달렸어. 살상 ‘허가’일 뿐, 반드시 죽여**다는 것은 아니니까. …알겠나?”
프레이 아델 로의 질문에 단아가 고개를 끄덕이니, 리르를 쳐다본 그는, 이내 그녀에게 물었다.
“파리 시가지의 파괴 현황은?”
“약 31%입니다. 전 프랑스 주둔 클로저 팀의 보고에 따르면 얼마 전에 큰 격돌이 있다고 했으니, 한동안은 조용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그렇군. …1분대에게는 미안하지만, 곧장 시가지 내부를 정찰해줄 수 있겠나? 격전이 일어났다면 어비스의 잔해가 있을테니, 그 잔해에 PMC놈들이 기어들어올 수 있으니.”
못마땅하게 유주와 하얀이 고개를 끄덕이니, 이번에는 반대로 리버스 휠의 창 너머로 파리를 내려다보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찬란한 문명이 빛나던 파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참으로 암담하군.”
그리고.
“리버스 휠, 착륙합니다. 관성 패널 및 인공 중력으로 여러분들의 안전을 확보할테니, 불편하시더라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키이잉!
날개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관성 패널의 작용과 리버스 휠 내부에 퍼지는 인공 중력에 모두가 한 차례 무거움을 느끼는 가운데, 한참이 지나서야 날개를 접은 리버스 휠이 천천히 둥지의 내부로 들어서고, 그제야 인공 중력이 풀렸다.
리버스 휠로부터 내린 뒤, 비틀거리면서 몸을 가눈 프레이 아델 로가 헛구역질을 하는 듯 싶더니 머리를 짚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인공 중력과 관성 패널… 유니온 기술의 결정체지만, 속이 울렁거리는군….”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하늘새 팀의 이동수단이니까요.”
“끙… 알겠네, 어떻게든 익숙해지도록 하지….”
“우선 현장의 타 클로저 팀과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그동안 둥지 내부에서 휴식을 취해주세요.”
비행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다.
아무리 유니온의 항공 기체 중에서도 최속을 자랑하는 리버스 휠이라 해도 노후화된 하늘새의 리버스 휠은 최신 기체의 속력을 제대로 따라잡지도 못하니까.
긴 비행시간동안의 피로를 회복하라고 둥지 내로 들여보내며 다른 클로저 팀들과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으나, 테러리스트들이 재밍 장치를 가져온건지, 원활한 작동이 되지 않았으며, 영 못마땅한 결과만이 올라올 뿐이었다.
확실히 프랑스 지부에 존재하는 ‘완전한’ 거점은 둥지 하나 뿐이었지만, 이 곳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팀은 꽤 많을텐데, 어째서.
“바쁜 걸까요?”
마나의 질문에 ‘아마도’라고 답한 리르는 몇 번의 연락 끝에 돌아온 대답에 잠시 심경이 복잡해졌다.
“…리르 요원님…?”
“…이건… 이건… …있을 수, 아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데….”
그리고 유니온의 데이터베이스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프랑스 지부의 것으로, 영어로 도배되어있는 그것은 영어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면 곧장 울렁증이 올라올만한 것들이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리르의 손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데이터 베이스… …그럴 수가….”
이곳에 왔던 클로저 팀 여섯.
그 중 네 팀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아예 철수했으며, 두 팀은 현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커녕, 상황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든 상황.
이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마나….”
불길함의 정점을 알리듯, 흔들리며 잃어버린 초점의 눈동자로 마나를 쳐다본 리르가, 손을 떨며 말한다.
“출현 개체… ‘제 6주인’….”
현 상황을 이끌어나가는 주체이며.
클로저 여럿을 손에 붙잡은 채, 유니온을 농락하듯이 세계를 유린하는 ‘얼음성의 주인’.
위대한 존재의 ‘뜻’을 이어나가는, 현 데이터베이스 내 최악최강의 어비스.
─특S급 어비스, ‘하니엘’.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인간이었음에도, 인간을 죽이는데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최악의 적이었다.
‡ ‡ ‡
긴 시간의 무료함.
프랑스라고 불리우던 세계는 얼음처럼 갇혀서, 챗바퀴 굴리는 우리 속의 햄스터처럼 돌아가는 인간 사회에 불과할 뿐.
그런 곳에 자신이 온 이유를 모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정말로, 왔군요.”
─이곳에 그들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여전히, 그런 하늘새 팀과 함께 다니는 단 하나의 인간─자신들의 세계에서 도망친,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의식당하지 않은 채, 단지 따라다니기만 하는 ‘인형’.
정말….
“만들어내기를 참 잘한 것 같네요.”
따지고 보면 그들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찾아갔을까.
그건 간단하게 말해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 깊숙이 숨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인간을 어떻게 찾아내었을까.
그건 단순히 그들이 있는 곳에, 위치를 알 수 있는 추적기를 우겨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단순한 과정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는지, 도망칠 때만큼은 필사적이고, 격렬한 감정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켰지만.
어차피 그것도 한순간의 일. 아주 잠깐의 거부 반응 이후, 안전해졌다는 착각 속에 빠진 그것의 감정을 다시 잡아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억압했다.
“자, 그럼 이제 움직일 시간입니다.”
몸을 일으킨다.
얼음으로 된 왕좌가 붕괴되며, 산산히 흩어진다.
눈더미처럼 불어난 인간의 냄새가 콧등을 자극한다. 증오의 냄새가, 그 증오스러운 피냄새가.
철분이 함유되어있는 비릿한 냄재, 진홍빛의 색을 띄는 그 진득한 액체의 흐름이 허공을 타고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그녀’가 처리하지 못했을 새를, 날개까지 잡아뜯어 추락시키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녀가 바라는 인간의 살육을 마음껏 행하기 위하여.
“가자.”
등 뒤에 열댓명이나 줄서있는, 아주 아름답고 정교하게 새겨져있는 인간들.
‘클로저’라 불렸으며, 인간을 위해 날을 갈고 칼을 든 위대한 분의 ‘적’.
그리고 지금은.
그녀가 손수 공수해온, 인형.
말 한마디와 손짓 한번에 열댓명이나 되는 인간이 순식간에 건물을 타고 나아간다.
이곳에 존재할 인간들에게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힘’을 가진 인간들이 나아간다.
믿었던 인간에게 살해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것은 없겠지.
그래, 그렇게 떨어져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
이쪽은 새가 날아올 때까지 기다려볼까.
일전과는 달리, ‘성’의 일부가 이미 ‘몸’에 재림한 상태.
그 때처럼 허망하게 놓치지 않는다.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인다면, 그 빠르기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서 붙잡는다.
두 번 다시 날 수 없게, 날개를 쥐어잡아 뜯어서.
그 몸을 천천히 얼리고 얼려서, 목숨을 빼앗고.
마치 박제하듯이, 아름답게 성 안에 장식할 것이다.
─상상만해도 즐겁고, 즐거운 일이 아니던가.
망상 속에 사로잡혀, 붙잡힌 새들을 어떻게 성 안에 전시할지 고민하고 고민하던 중, 어느샌가 해가 지고, 달이 뜨게 되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바라오던 순간이 눈 앞에 다가왔으니, 이토록 마음이 두근거리고, 몸이, 손이, 감정이 부들거린 적이 있던가.
아름다운 소년과 소녀를, 자신처럼 바꾸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그런 시간따위 필요없었다. ─되지 않겠노라면 차라리 이 손에 붙잡아, 영원히 가져버리면 그만이니까.
“주인님.”
허망할지도 모르는 망상에서 깨어나라는 듯,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시간에 울리는 ‘주인님’이라는 목소리 하나만큼이나 아름답고 달콤한 것은 없었으니, 뒤를 돌아보자 설화의 10cm는 더 작을법한 자그마한 소년이 검은 테를 목에 매달고, 옷마저 꿰뚫은 채 가슴에 박힌 자그마한 쐐기를 드러낸 채로 말한다.
“‘새’가 움직입니다.”
“그렇니.”
처음에는 거부반응이 심했던 소년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어할 방법을 찾지 못해 몇 년동안이나 얼음성의 1석에 두었건만, ‘그 분’이 내리신 세례 덕에 이토록 쉽게 제어할 방법을 찾았으니, 실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자니, 소년이 말한다.
“그들을 위해 주인님께서 직접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소년은, 주인이 고작 인간따위를 위해 움직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감히 인간 따위가 자신의 주인을 움직이게 만들다니, 이 얼마나 수치스럽단 말인가. ─주인의 힘을 조금이나마 세례로 받고, 그 분을 모시는 이상, 주인께서 헛되이 움직이게끔 해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소년이 말한다.
“저와, 제 누이가 가서… 새를 사냥해오겠습니다.”
그의 그림자처럼 등 뒤에 바짝 달라붙어있었던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신의 스커트 양 끝자락을 서로 다른 색의 장갑으로 들어올리며 주인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밝히고 입을 열기를.
“부디 주인님께서는, 사냥해온 새의 모습만을 즐겨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실로 ‘시종’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던가.
조금의 여흥일지라도, 그 여흥에서 주인이 모욕을 느꼈으니.
이번에야말로 그들에게 죽음이 더 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으깨고 짓밟아서, 두 번 다시 날지 못할 새로 만들어버리리라.
한참이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제 6주인, ‘하니엘’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여러 군데에서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재앙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화르르 타오르는 프랑스라는 역사의 일각을 바라보며, 피어오르는 ‘죽음’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던 하니엘이 입을 연다.
“그리하도록 하거라.”
‘그 분’으로부터 뜻이 내려왔으니, 이제는 그들에게 흥미를 가져도, 살려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단 한번의 흥미와 감정의 흔들림으로 사사로이 일을 망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일을 맡기기로 결정한 하니엘이 말한다.
“여(余-본편 최하단, 작가의 말 위쪽 참조)는 성 안에서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존명.”
주인의 뜻을 받든 채 두 남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던 하니엘은 천천히 자신의 성을 전개하며 그 속으로 사라졌으니, 성의 전개 여파로 파리 시가지의 일부가 완전히 박살나,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망가진 시가지 위의 성을, 우아하게 걸으며 들어간 하니엘은 그 안에 전시되어있는, 수많은 조각상들을 바라보며 만족감에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절망하는 인간, 포기한 인간, 죽음을 눈 앞에 둔 채 허망해져 도리어 웃음까지 짓는 인간까지… 실로 아름다운 장경이 아니던가.
백에 가까운 ‘빙상’들은 ‘인간’ 그 자체였다.
인간들을 얼리고, 의식이 사라질 때까지 얼려두고, 생명이 멎을 때까지 얼려두고.
단지 얼린다고 끝이 아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생명을 빼앗는다. ‘온도’에 구애받지 않는 얼음은 고온에서도 녹지 않는다. ─‘은총’이란 그런 것이기에.
그렇게 인간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면서, 그 몸을 얼려버린다.
그 상태로 얼음을 얇게, 얇게 펼치며, 빙상으로 만들어내는 것 뿐.
물론, 빙상이라 해서 무조건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빙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마음에 든 개체들 뿐. 그 중에서도 급이 나뉘어, 있을 장소가 결정된다.
입구는 마음에 든 정도가 가장 낮은 것들로, 부서진다 해도 별 관심이 없을 정도로 하찮은 것들을 모아둔 것이며, 안으로 들어가는 복도에 있는 것들은, 성이라면 한둘쯤 있을 법한 ‘시녀’나 ‘시종’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들. ─물론, 살아 움직이는게 아니니 역시 부서진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 외에도 복도에 이어져있는 수많은 방, 화장하는 방이라던가, 손님의 숙박시설이라던가, 혹은 시녀들이 사용하는 방 등은, 모두 적당히 배치해둔 것들 뿐.
기사들이 애용하는 훈련소는 애초에 잘 가지 않는 만큼 그 우선도가 낮았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 나오는 ‘알현실’로 향하는 ‘회랑’만큼은 달랐다.
알현실로 향하는 회랑에 있는, 단 20체의 빙상.
그녀가 아끼는 빙상들은, 언제나, 어느 때나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하게 얼어붙어있는 빙상들.
그들을 얻기 위해서,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가. ─며칠몇날을 공들여 이 손으로 만들어낸 빙상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내부의 알현실.
알현실이면서 집무실이기도 한 그곳에는 단 6개의 빙상만이 존재했다.
3좌부터 8좌까지, 자신이 극도로 애용하는 것들은 얼음 끝자락 녹는 것도 허용치 않으며, 서리가 끼는 것도 허용치 않는다. 조금의 흠집조차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존하는 빙상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언제나 감상에 젖는다.
그리고 비어있는 단 2개의 좌.
그곳에 있던 한 남매야말로, 그녀를 모시는 딱 둘만 존재하는 ‘시종’.
그들만큼은, 이곳 얼음성에 있는 모든 빙상을 깨부순다 해도 용서하고, 용납하고,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들.
“아… 아아….”
언젠가 ‘새’가 날개를 잃고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
그들의 목에 족쇄를 채우고, 가슴에 도망치지 못할 쐐기를 박아넣었을 때.
그 때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순간이 도래하리라.
다가올 언젠가를 염원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노라니, 이윽고 시종들의 힘이 느껴진다.
전투가, 다가온 것이다.
‡ ‡ ‡
“적 개체 확인, ‘하니엘’이 아닙니다.”
-뭐? 그럼 도대체 뭔데? 저 얼음은….
“…모르겠어요, 하니엘이 아니면 도대체….”
클로저 팀은 혼란에 빠졌다.
특S급 개체 ‘하니엘’과 같은 위상반응을 일으키는 두 개의 개체가 감지되었다.
하니엘이 분리되어 둘이 되었을 가능성도 따져보았으나,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았고, 드론으로 간신히 촬영한 결과, 자그마한 두 소년소녀였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그 반응은 예사롭지 않았다.
위상 반응만 하더라도 특A급, 그 전투 능력에 따라 S급으로 격상할지도 모르며, 전투 중의 반응 변화로 S급으로 격상할지도 모를 정도의 위험성을 가진 개체들.
하나도 아닌 둘, 어쩌면… S급 하나보다 버겁고, 힘든 전투가 될지도 모르는 현실을 앞에 둔 채, 리르는 결단을 내렸다.
“위험하다고 여겨진다면, 곧장 후퇴해주세요.”
지금 이 순간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어린 아이들조차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다가갈 순간따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도망쳐서 사라지고, 떠나기 전에.
그들의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할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리르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 번의 격전 이후 유니온 상층부로 올라간 그들의 데이터 정보를 토대로 랭크가 결정되었으니.
─어비스 최초의 S급 개체가, 둘이나 탄생했다.
개체명, ‘이즈라엘’ ‘아즈라엘’.
그리고.
“하얀 요원님….”
하얀이 중태로 돌아왔으며, 유주 역시 멀쩡한 상태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뇌제’의 속력으로 간신히 도망친 상태일 뿐.
사실상 ‘뇌제’로 일어나는 반작용이 아니었다면, 둘 모두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아니면, 온 전신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상태가 되었거나.
‘뇌제’는 몸에 강렬한 위상력 부하를 가함으로 인해 육체능력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내는 힘. 다르게 말하자면 ‘육체의 과부하’를 강제로 끌어내는 기술.
그로 인해 올라가는 육체 온도가 아니었다면, 그가 도망치기도 전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터였다.
자그마한 소년소녀로 여겨졌던 이즈라엘(소녀)과 아즈라엘(소년)은, 인류의 거대한 적이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
S급 차원종이라면. 그리고 그 차원종이 지식을 가지고, 더 강한 힘을 행사할 가능성마저 있다면.
지금의 유주와 하얀에게는 승산이 크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것이, S급이라는 것은 S급 요원이 필요할 정도의 사건.
지성이 없는 괴물이라면 유주 혼자서도 격퇴할 수 있으나, 사정이 달랐다.
이 상태가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어쩌면 이 여파가 언젠가 세계를 휩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순간, 뻐꾸기의 송신 기능이 울었다.
“…프레이 아델 로 팀장님.”
그곳에 떠오른 한 남성은,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긴 것같다며 말했다.
-어떤 상황인지 내게 말해줄 수 있겠나? 현재 1분대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것정도만 알고있네.
“…그게….”
갑춰봤자 득될 것따위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있던 리르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게 현실을 전해주니, 그는 한참이나 턱을 쓰다듬더니, 이윽고 말한다.
-…A급 이상의 리미트 해제 권한이 필요하겠군.
“네, 이대로라면….”
현재 요원들에게 허가된 위상력 사용량은 B급까지.
그 이상의 리미트 해제 권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A급 리미트 해제 권한이 내려진다면, 현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든 타개할 방법이….
-알겠네, 한동안 시가지로의 출격을 중단하고, 치료에 매진하게.
그 명령에 따르고자 고개를 끄덕인 리르는,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쩐지 한산해보이는 듯한 모습에 리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니, 단아가 저 멀리서 달려오며 묻기를.
“2분대 애들 어디갔는지 알아요?”
“…같이 있는 것 아니었나요, 단아?”
“모,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서… 숙소에도 없고요.”
어디서부터인가 잘못되었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무언가가 강하게 뒤틀려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는 현 상황 속에서, 리르가 천천히 뻐꾸기로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프레이 아델 로 팀장님, 2분대 아이들을 보셨나요?”
그러자 프레이 아델 로가 답하기를.
“아니, 나도 본 적이 없네. 만약 보게 된다면 자네에게 연락하지.”
─그럴 리가.
둥지는 커보이지만, 아이들이 가지 않을 법한 공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니, 100% 가지 않을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거짓말.
흔들리는 눈동자 너머로 프레이 아델 로만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1분대가 회복될 때까지 출격을 금지하라는 명령만을 내린 채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리르는, 단지 답답함에 자기 가슴이 터지는 감각만 들 뿐이었다.
‡ ‡ ‡
“후… 다행이군. 리르가 이렇게 조심성도 눈치도, 예상 외로 없어서 살았어.”
어디일까, 그곳은.
프레이 아델 로는 물론이요, 리-르 앙골라에게도, 마나에게도.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소.
여러 가지 기구들이 잔뜩 늘여져 있으며,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인지도 채 이해할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본 프레이 아델 로가 입을 열었다.
“리르가 자네들을 급히 찾는 모양이었다만.”
“…그렇습니까.”
감정이 흐려진 듯한, 식어빠진 대답.
허나,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역시, 그녀가 만들어낸 ‘기적’은 이정도로 강한 충격에도 쉬이 죽지 않을 정도의 생명력을 가진걸까.
예상 외의 현실에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움직여 메인 컨트롤러의 의자에 앉는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세나, 세이지 군.”
그 창 너머에 있는 것은, 전前 2분대 팀장 세이지.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를 둘러싼 마리아와 아이트.
그 너머에 있는, 그 자그마한 몸을 스스로 움직여 ‘기구’ 속으로 들어간 두 아이, 아나 스타피트와 히아 마야.
어떻게 된 일인지, 검게 물든 무기까지 든 채 세이지를 둘러싸고 있는 마리아와 아이트는, 한때 동료이자 팀장이었던 가련한 아이를 적대하고 있음에도 어떠한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 상황 속에서 세이지가 씁쓸하게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거라면, 뭐든지 들어줄테니… 이 이상 아이들에게 부담을 가하지 말아줘요.”
“…그러지.”
그것은, ‘거래’이자 ‘복종’의 의사였다…….
여余 : ’나‘를 예스럽게 표현한 말이자, ’나‘를 뜻하는 1인칭 표현. 조선왕조실록 원문만 봐도 왕이 내리는 명령서인 교지에서 과인처럼 여(余)라는 단어를 인칭대명사로 숱하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사용되었던 적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저자 AI미스틱입니다.
2장 8화로 돌아왔습니다만, 왜 알고싶지도 않았던 ’설화‘의 얼음성 얘기가 이렇게 계속 나오느냐고 답답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음성‘이라는 구조 자체가 어떤지 알려드리지 않는다면 어째서 그녀가 하늘새에게 그토록 집착하고, ’그 분‘의 의사가 아니면 끝까지 그들을 바라고있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설명해보았습니다.
이번 2장 8화에서는 어비스의 6번째 주인인 설화, 인식명 하니엘이 가지고 있는 2명의 시종들을 바탕으로 전개를 해보았습니다.
본래라면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두 시종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막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얼음성이 이 세계에 현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이 내부차원에서 움직이며 얼음성의 현계를 계속해서 유지했기 때문에 현재는 이즈라엘과 아즈라엘의 활동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최소 S급으로 등재되어있으며, 최악의 경우 ’주인‘급과 동등한 특S급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죠. 물론, 그 강함이 동급은 아닙니다. 단지 그 격을 나눌 수 있는 단위가 유니온에 특S급까지밖에 없어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죠.
그리고 초기에 나타났던 ’이계의 지구‘에서 온 친구에 대한 설명이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여태껏 아무런 묘사도 없었습니다만 솔직히 그 친구가 현장에 있어봤자 할 것도 없어서 사실상 숙소와 시가지에서만 지냈습니다. 이동할때만 동행할 뿐이었고요.
이번 화에는 그 친구의 진짜 이용수단이 무엇인지 드러났습니다.
사실상 독자 여러분의 시점에선 어이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아니 저친구가 왜 저기서 언급이 될까? 라고요.
삶을 갈망하던 친구가 왜 ’인형‘이라는 식으로 언급이 될까? 라는 식으로요.
이번 화에서 언급했든 아즈라엘과 이즈라엘의 모습을 통해 ’하니엘‘이 인간을 자신의 것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만약 ’강한 마음‘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효율성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마음이 꺾이고, 잃어버려도 아쉬울 것 하나없는 친구정도야 쉽게 조종할 수 있죠.
다만, 인간과 꽤 오랫동안 접촉해있으면서 인간성과 감정이 살짝 겉으로 드러난 것 뿐입니다.
물론 급조된 설정입니다.
다만, 이즈라엘과 아즈라엘은 애초부터 등장할 예정이었으니, 답없이 이런 개같은 설정을 마구잡이로 쑤셔넣는다는 생각은… 부디 양해해주십시오. 제 실력이 좀 안좋습니다.
이번에는 아체르트님이 요청하신 하얀의 프로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캐릭터 설정 및 프로필은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나, 그 수준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설정의 오류 등은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 하 얀 》
성별 :: 여성
나이 :: 7세(전쟁 당시) -> 25세(1장) -> 26세(2장)
키 :: 169cm
몸무게 :: 불명
코드네임 :: 자색 악몽
좋아하는 음식 :: 불명
싫어하는 음식 :: 레몬
위상력 :: 신체강화, 불꽃
위상능력 :: 신체전소, ■ ■■
클래스 :: 드리머
전前 소속팀 :: 유니온 국가차원관리부 신서울지부 ‘홍영’ 소속 ‘A급 요원’.
현現 소속팀 :: 유니온 국가차원관리부 징계위원회 산하 하늘새 팀 1분대 정식 요원
패시브 : 잠자는 공주
패시브 : 악몽
훈련 결전기 : 드림 브레이커 -> 홍영 전개 (특수요원 전직시)
수습 결전기 : 꿈의 회랑
정식 결전기 : 허영의 멜로디 -> 육체 전소 (특수요원 전직시)
특수 결전기 : 떠오른 달밤
상태 :: 전신 화상(상시), 두통(상시), 졸음(상시)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에 현재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특수 상황에서 일어난 상태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거의 없는 편.
외형
진홍빛 머리카락에 타오르는(핏빛에 가까운) 선홍색 눈동자.
긴 생머리. 뺨 끝자락에는 과거, ‘육체 전소’로 인해 벌어진 자색 빛을 뿜는 얕은 금.
태어난 시절부터 선홍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본래 검은 머리카락이었으나 위상력을 각성함에 따라 자연스레 진홍빛 머리카락으로 변화하였다. 다만 선홍빛 눈동자는 태생.
하얀 바탕에 하늘새 마크를 자그맣게 등에 새긴 요원복, 가슴께에 리본을 단 검고 긴 옆트임 상의에 거의 가릴 정도로 보이지 않는 검은 바지. 검은 롱삭스, 거기에 또 검은 신발.
『 성격 』
말을 하지 않으며, 잠을 자주 자는 잠탱이.
하지만 한 번 자기 의사를 표출할 때면 누구도 막지 못할 고집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고집 때문에 관리요원인 리-르 앙골라는 항상 골머리를 썩힌다.
같은 고아원 출신인 ‘연하은’과의 강제적인 헤어짐 이후 유니온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나
유니온이 아니라면 그녀와 재회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속당하는 듯한 낌새가 강함.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철저하게 이행하며, 인도적인 길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인형’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괴로운 사람들 앞에서는 억지로 미소를 비쳐보이는 등, 본인도 괴로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모습을 보인다. 다르게 말하자면 강한 척.
또한 누군가에게 애착을 가지게 된다면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성격은 ‘연하은’과의 접점이 없을 때 일어나는 성격으로, 잠에서 깨어난 상태에서의 성격은 돌변한다.
저돌적이고 적극적이며,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는데 거리낌이 없다.
클로저로서의 사명─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는 제1의 우선순위 자리에 자신이 잃어버린 ‘옛 소꿉친구’를 올려놓은 채, 앞으로 구할 수많은 사람보다 그 하나의 과거를 더욱 바라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그런 것은 아니고, 눈앞에 ‘연하은’과 등 뒤에 ‘시민’을 두었을 때의 이야기.
생명을 저울질하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의 앞에서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유니온이 행하는 비인륜적인 실험을 증오한다.
그녀의 성격을 딱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 인간이기 때문에. ”
- 유니온 평가 -
“ 만약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인류는 S급 요원이라는 큰 전력을 얻을 수 있었을 터였다. ”
“ 잠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S급 요원에서 떨어진 안타까운 인재. ”
“ 이변이 없다면 유니온에 종속시킬 수 있는 ‘노예’이자 최고의 ‘전투인형’. ”
- 평가 -
“ 인간으로부터, 인간이기에 부여받은 희망을 빼앗았기에, 그녀는 절망한다. ”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리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권’일 터다.
하지만, 유니온은 그녀로부터 그런 당연한 ‘인권’을 빼앗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추구할 권리가 있을 ‘행복’을 빼앗고, 인간이기 때문에 추구할 수 있는 ‘미래’를 억압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뿐.
하지만, 그런데도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면, 그녀를 찾지 못한다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것이 모두 거짓이고, 그들이 행한 일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유니온이라는 인류 최고의 연합을 적대할 각오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래,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것을, 그녀는 모두 빼앗겼기 때문에.
그녀는, 한없이 머나먼 미래와, 잃어버린 과거를 붙잡은 채 영원히 절망한다.
『 과거 및 배경 』
태어난 직후, 붉은 눈동자 때문에 불길하다 여겨져 버려졌다.
비 오던 날에 버려졌기 때문에 금세 죽을 생명이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고아원 원장님에 의해서 간신히 살아남았으며, 이후 건강하게 자라게 되었다.
전쟁 극초기, 신체 위상능력자로서 각성했으며 당시 부모님이 없던 고아였기 때문에 유니온에 의해 손쉽게 끌려갔다. 연하은과 함께 유니온에 끌려간 이후 20년간 헤어지게 된 고아원의 소꿉친구.
당시 훈련 교관이던 ‘박용태’에 의해 신체 위상능력자로서의 기질을 키웠으며,
그의 관리 하에서 육체를 불태움으로써 폭발적인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육체 전소’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나
그때의 후유증으로 영구적인 전신 화상과 두통, 그리고 상시적인 졸음에 시달리게 되었다.
전장에 처음 끌려나갔던 그 순간부터 유주를 만나기 전까지 꿈속에서 악몽을 마주한 탓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유주를 만난 이후로는 악몽을 꾸는 일은 거의 없어졌으며, 자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의료 요원인 ‘마나’의 진단대로라면 전신 화상과 두통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본능적 방어 수단.
차원 전쟁 시절에는 서유럽에서 활동했으며, 최악의 재해 ‘용’의 출현 이전,
‘깊은 뱀 무리’라고 불리우는 대규모 크리자리드 무리와 대치하다 육체 전소를 통한 토벌 이후, 큰 격통과 함께 전장에서 이탈했다.
당시 ‘깊은 뱀 무리’라고 불리던 크리자리드 무리를 토벌하면서 ‘리-르 앙골라’를 비롯한 약 300명에 가까운 시민을 전장에서 구출해냈으며,
본인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구출된 시민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자 미소를 짓는 등, 어린 나이에 맞지 않는 용기를 비추었다.
안타깝게도 ‘육체 전소’에 의한 부작용 때문에 당시의 일은 잘 기억하지는 못하는 모양.
당시의 격전으로 인해 몸 일부에는 ‘금 간 듯한’ 자색 빛의 흠집이 나게 되었다.
어렸을 적의 리스크이기 때문에 낫지 않았으며, 어른이 된 이후의 ‘육체 전소’에는 자연스레 낫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외날검/양날검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하나
어느 쪽을 사용하건 무기에 가해지는 막대한 양의 위상력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열량에 견디지 못하고 녹아버리기 때문에 꽤나 많은 무기 교체가 있었으며,
신서울지부로 발령난 이후에는 날이 나간 상태로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홍영’의 팀장이었으나 오더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실질적 오더는 다른 사람이 맡는 등,
여러모로 팀장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 점 때문에 A급 요원 심사에서 감점을 당했으나 다른 부문에서 꽤나 큰 점수를 홍영 팀 내 최초이자 최연소로 A급 요원이 되었다.
또한 신서울지부에서의 계속된 활동과 공적 누적 끝에 ‘S급 요원’ 승격 심사를 받게 되었으나,
‘팀장으로서의 자격 부족’과 ‘많은 수면 시간’, 그리고 ‘수면 시간에 따라 제한받은 출격 시간’ 등을 이유로 탈락하였다.
─물론, S급 요원으로 승격하게 되면 ‘홍영’에서 벗어나게 될 예정이었기에 본인은 그다지 큰 미련을 두지는 않는 듯.
하지만 즐거운 시간은 아주 잠시였고,
이후 상부에서 내려온 ‘토벌’ 명령에 따라 향한 곳에서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유니온 특수작전관리부의 단독행동요원으로 활동하던 A급 요원, ‘유 주’와 대면하게 되었다.
토벌의 내용은 ‘토벌 장소에 있을 위상능력자를 사살, 혹은 생포할 것.’
이에 대해 ‘홍영’ 팀원들은 상부에 큰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팀장의 옛 정과 예의를 담아 그를 놓아주었다.
이후 ‘홍영’은 징계위원회 산하가 되었으며, 얼마 가지 않아 팀 자체가 완전히 와해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당시 놓친 유주는 ‘홍영’의 구 팀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유니온에 순순히 붙잡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팀이 와해되어 흩어진 이후 몇 달이 지나, 징계위원회에서 편성한 ‘하늘새’ 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 당시 그녀의 나이는 18살.
본래라면 ‘아카데미’나 ‘특수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할 시기였으나, 클로저로서 활동한 기간이 너무 길었고,
또한 위상능력자를 배척하던 과거 사회 분위기로 인해 결국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물론, 받지 못한 교육은 이후 유니온에서 직접적인 엘리트 교육을 받았던 유주로 인해 따라잡았고, 이후 검정고시를 통과함으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 타이틀은 딴 듯.
유주에게 여러모로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의 과거를 캐내는 것은 서로에게도 상처가 될 것임을 의식적으로 인지한 그녀는 물어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늘새 팀은 편성된 이후 정해져야 할 관리요원이 한참이나 결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상부 명령에 따라 움직였으며
이후 들어온 첫 관리요원이 ‘리-르 앙골라’. 1장까지 약 7년, 2장까지 약 8년을 함께한 관리요원이다.
또한, 징계위원회 산하로 들어가면서 A급 요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훈련생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며
리미트 재조율로 인해 ‘육체 전소’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클로저 활동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하늘새로 변경될 당시에는 2분대였으나, 훗날 팀의 재조정으로 인해 1분대로 갔으며
겉으로 아이들을 챙기는 유주나 단아와는 다르게, 말을 하지 않고 도와주는 쪽에 속한다.
자기가 누군가를 돌봐주는 일을 들키기 싫은지 대부분 모두가 자는 시간이나, 출격한 시간에 움직이는 듯.
또한 2분대 아이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지켜준 인물로, 당시 2분대 팀장이었던 세이지 역시 그녀에게 목숨을 빚진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세이지가 건강 상태 악화로 인해 팀에서 이탈하여 병원 신세를 지게 되자 하늘새 2분대가 크게 흔들리는 기미를 보이고
팀원 간의 합이나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인지하였고, 어쩌면 내부 분열로 인해 강제 해체될지도 모르는 하늘새 2분대를 붙잡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현재의 하늘새 2분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하얀의 덕분.
이후 하늘새 1분대의 팀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여러 부분으로 인맥을 넓혔는데
그 인맥 끝자락에 ‘박용태’가 걸치는 덕분에 고대하던 스승님과 재회하였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의 박용태는 상당히 망가져 있었던 상태였으며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신이 보고싶었던 스승님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 실망하였고
그 원인이 단아의 어머니인 ‘현단아’의 사망이라는 점을 인지한 시점에서 굉장한 무례였다며 용서를 빌었다.
용서를 받은 이후 훗날 클로저가 될 그의 아들 ‘현단아’를 부탁받았으며, 마치 예언이라도 한 듯, 그의 아들은 하늘새 2분대로 들어오게 된다.
신서울지부에서 활동할 때 연락이 닿을 때면 가끔 그와 바깥에서 어울려주기도 하며
대부분의 대화가 그의 아들로 돌아가는 점에 그가 무식할정도의 아들바보라는 것은 격하게 인지하였다.
그의 스승인 박용태가 ‘어비스의 주인’으로 인해 실종 상태가 되자 하늘새 팀원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마음이 흔들렸으며
그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그 사실을 잊기 위해서 출격의 횟수를 늘리는 등
본래 잠을 자던 시간을 쪼개면서까지(고통에 휩싸이면서까지) 그 사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결국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다행을 표했으나, 그 시점에서는 이미 ‘연하은’의 존재를 인지했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꽤나 줄어든 상황.
‘연하은’과의 첫 만남 직후, 그녀가 자신이 알던 ‘연하은’ 본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설령 S급 요원으로 승격했다 하더라도 이기지 못할 힘이었기 때문에 끝내 도망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또한 그녀가 말한 ‘하찮다’는 발언에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가 ‘진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죽이겠다’는 발언이 자신이 아닌 2분대를 향한다는 점에서 강한 증오를 품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현단아에게 2분대를 맡긴 후, 본인은 1분대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보살피던 2분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해, 그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장 달려갈 정도로 애착이 깊다.
어비스의 6번째 주인인 ‘설화’의 제안을 격하게 싫어하는데, 이는 ‘인간으로서 살아와, 인간으로서 죽고자’하는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다.
2장 시점에서 그녀가 가장 오래 자는 시간은 출격이 없는 시간이나 고아원에 들르게 되는 경우. 다만, 둘 모두 해당되는 사안이 없기 때문에 현재는 강한 피로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