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15화, 1장의 막幕> : 내가 잃어버린 것
AI미스틱 2020-11-23 0
어비스의 주인 1장의 막幕
내게 주어진 것, 내가 잃어버린 것.
헤카톤케일을 멈추는데 성공한 검은양 팀의 보고 이후, 김유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유정 씨. 한숨을 많이 쉬면 주름이 는다고 하던데.”
“국장님은 태평하시군요. …이정도로 대대적인 일이 발생했다면, 하은이도… 와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렇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의외였어. 어떤 문제라도 있는걸까? 아니면… 오지 못하는 건가.”
데이비드가 어림짐작으로 말하자, 김유정이 말했다.
“그 일은, 그 아이가 저지른게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믿네. 하지만 생각해보게. 그러한 폭주를 막기 위해 있는 ‘리미트’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현상이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다르게 말하자면, 그녀는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게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고있네.”
“차원종이 되어간다는 말씀이신건가요.”
“너무 그렇게 살벌하게 말하지는 말게. 어디까지나 의심이니까. …하지만.”
거기에서 말을 멈춘 데이비드는 괜한 우려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그것이, 악몽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듯한 행위같아서 무심코 불안해진 김유정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데이비드가 말했다.
“헤카톤케일이 멈춰있는 틈을 타서 지상의 차원종들을 정리하도록 하지. 만에 하나라도 차원종이 위상변환엔진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네, 국장님.”
지시를 내린 뒤, 데이비드는 천천히 헤카톤케일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하늘까지 넘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헤카톤케일이 터렛 속에 가만히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웅장하기 그지없었으며, 그만큼 불안하게 보였다.
만약 저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까.
고개를 내젓는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그럼, 김기태, 자네는 나와 할 이야기가 있었지.”
“제…길….”
천천히 다가오는 데이비드의 모습에, 김기태는 그저 이빨을 바득거릴 뿐이었다.
‡ ‡ ‡
하지만 그런 임시방편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손해’라는 말과 함께 위상변환엔진을 역류시켜버린 애쉬와 더스트로 인해 헤카톤케일이 말도 안되는 위상수치와 함께 부활했으며, 허공에는 차원종의 영지가 통째로 넘어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차원문이 나타났기에.
그것은 운석이라던가 지진이라던가 하는 것에 비빌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재앙이 되어있었다. 인류사가 시작된 이후, 여태까지 일어난 모든 일 중에서도 가장 두려울 정도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정 반대편에서 지켜보던 한 인간─연하은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예정대로 되었다.
그들은 틀리지 않았고, 그들이 한 말은 모두 옳았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갈라져버린 땅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건너갈 수는 없었다.
건너가는 순간,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기에, 그녀는 저 건너편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손을 꾸욱 쥐어 주먹을 쥔 하은은, 바들거리는 손을 내저었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세상의 종말은, 언제 바라봐도 기분이 좋네요. ─아, 저는 처음이지만.”
그 옆에, 또다른 존재가 발을 디뎠다.
‘그 분’께서 ‘별’을 빚고, 깎아서 만들어낸 ‘직계’.
직계라서, 라는 하찮은 이유가 아닌, 오직 실력과 능력만으로 ‘주인’의 자리를 꿰차고, 모든 이에게 인정받은 공포─‘피어’.
그녀는 헤카톤케일과 그 위에 나타난 커다란 차원문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말을 흘렸다.
“듣기로는, 선대 용께서는 ‘이름없는 군단’의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현명했다고 하셨는데… 죽어서는 이 모양 이 꼴. …안쓰러울 정도네요.”
“그런가.”
“아버지의 총애와 은혜를 입을 기분은 어떤가요? ─기분 좋지 않나요? 온 몸이 취하는 것만 같은 감각이라고, 설화 님께서는 그리 말씀하시던데.”
“…모르겠어.”
굳이 말하자면, 아마.
“…이해의 바깥에 있는 기분, 이랄까.”
“…그런가요? 확실히, 그 ‘흑색’을 바라보면 대충 이해가 가지만요.”
‘흑색’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있는 것 같았지만, 물어보기도 전에 피어가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알 수 있는건 아니에요.”
“…그러면….”
“그것은 아버지의 것. 아버지만의 것이지만… 아버지의 총애와, 그 권능에 한없이 가까운 능력을 가진 당신이기에 가지게 된 것이겠죠.”
‘그 분’의 것이라는 말에, 무심코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다시금 고개를 돌려 차원문을 바라보자, 그 시선을 눈치챈 듯 피어가 말했다.
“원한다면 가셔도 됩니다.”
“…그럴 리가.”
“어차피 돌아오시는거라면, 한 번쯤 작별인사는 해야하지 않겠어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자 피어가 미소를 끌어올리며 답했다.
“그 땐 당신의 모든걸 죽여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런, 가.”
“아직 당신은 우리 차원으로 향할 힘이 그다지 없어보이니, 한 달… 정도일까요. 이곳에 남아야겠군요. 섣불리 이동하다간 온 몸이 찢어질테니까 초조해하지 마세요. …자기 고향 정도야, 얼마든지 기억에 새길 시간을 드릴테니.”
“그거… 고맙네.”
영혼없는 감사를 전한 뒤,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 마지막 순간까지는, 자신의 손으로 붙잡고, 지키고 싶었던걸까.
어차피 허망하게 무너질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있는, 불안한 세상을 지켜보기에는 너무나도 정신이 어렸던 하은이 차원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피어가 약간의 웃음을 지은줄도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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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이틀 뒤에, 차원종들의 영역인 ‘용의 영지’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합니다.”
“…이틀 뒤…인가.”
그 사이, 어디서 뭘 했는지는 모른다. 실제로 ‘그 사건’ 이후 처음 만났다고 적혀있는 기록이었기에.
그렇기에 더욱 불길했다.
“뭔가 달라진 점은?”
“그게….”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삐걱이는 것 같기도 하며, 일렁이는 것 같기도 하며, 무언가 ‘있다’는 것만 확실한 그것은 아마도 ‘직선’의 형태를 한, 날개처럼 뻗어져나온 6개의 ‘흑색’.
그리고.
“…선대 용, ‘헤카톤케일’의 힘을 끌어온 아스타로트를 단 일격에, 즉사시켰다고 합니다.”
“─그런게, 가능한건가?”
용이라 불린 ‘아스타로트’. 그것은 제 3위상력을 가지고 있어 차원종도, 인간도. 모두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상처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같은 ‘제 3위상력’ 뿐. 그러나, 연하은은 애쉬와 더스트에게서 힘을 받지 않았고, 그렇기에 제 3위상력을 가지지 못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타로트를 일격에 즉사시켰다는건.
“아니, 그 이전에… 헤카톤케일의 힘까지 끌어온 아스타로트를….”
“그 이전에 검은양 팀과의 교전이 있어 소모가 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해도.”
헤카톤케일이라는 존재가 가진 위상력은 실로 두려울 정도의 것일텐데.
그 힘까지 가지게 된 아스타로트를 어떻게, 일격에 즉사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기에 고개를 저은 유주가 물었다.
“당시 위상 수치는?”
“극히 미미했습니다.”
“…그 말은….”
“위상력이 아닙니다.”
위상력과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 아스타로트를 즉사시켰다면, 분명히.
“그 ‘흑색’과 관계가… 있겠군.”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라면 아마도 가능할 일이겠지.
하지만, 그 이전에.
‘흑색’이란 무엇인가.
단지 빛을 모조리 흡수하는 빛의 파장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런 하찮은 흑색이 아닌, 그녀가 가진 ‘흑색’은.
“─혹시 그런게 아닐까요?”
“뭐지?”
“저들의 수장과 이어지는 무언가.”
일리는 있었다.
아무리 아스타로트가 강하다 해도, 동급의 영역에 존재하는 ‘주인’이라는 개체를 슬하에 둔 채 차원계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그 힘의 파편에 스쳐맞아 죽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게 정말로 있다면 어째서 다른 ‘주인’들은 그런 힘을 사용하지 않은건가.
그저 고민만 늘어갈 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자 답답하다는 듯 유주가 한숨을 토로했다.
그 한숨이, 신경을 쓰이게 만든걸까. 따로 신경을 돌릴만한 것을 찾는 둥 싶더니 이윽고 리르가 물었다.
“유주 요원님, 방금 막 갱신된 자료가 있습니다.”
“응? 하은에 관한건가?”
“…어비스의 주인에 대한 ‘인식명’이 정해졌습니다.”
“그건… 뭐야, 이제 정해진건가? 자료 제출이 언젠데.”
“따로 전투 기록이나 언행등을 살펴본 끝에 결정된 인식명이니 너무 거부감을 가지지 말아주세요. ─우선, 요원님이 가장 자주 조우하는 ‘6번째 주인’의 인식명입니다.”
─인식명, ‘하니엘’.
신의 은총을 뜻하는 천사의 이름으로, 한 때 인간이었던 그녀가 ‘신’처럼 숭상하고 숭배하는 존재의 은총을 받고, 하염없이 감복하여 그 마음이 닳아 없어지도록 그 분을 위해 움직인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신’으로 섬기는 자의 의지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외도’이자 ‘사악’이니.
“해당 개체를 특S급 차원종으로 구분, 조우 시 후퇴를 권장하며, 토벌대를 꾸릴 것을 거듭 추천한다.”
피해 규모를 상세히 적어 상부에 제출할 것을 요구.
또한 해당 개체에 대한 전투 기록을 보존하며, 전투 중 위상력 반응의 급상승에 유의할 것.
“이상입니다.”
“상세히, 인가.”
꽤 구체적인 피해 규모 조사였다.
생각해보면 ‘특S급 차원종’의 위상력 수치에 변동이 생긴다는 것부터가 이미 문제였었다.
“또한 해당 개체에 대한 내용 전문은 모든 관리요원에게 전달될 사항입니다.”
“적어도 몰라서 얼어죽진 않겠군.”
“그런 의도로 보이는군요.”
작전구역 이괄 이전에, 해당 구역을 맡으러 오는 클로저들이 하나같이 얼어붙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온 몸이 오싹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에 대한 정보가 있네요. 방금 내려온 문서입니다.”
“또 하나의 ‘주인’?”
“네. 자칭하기를 ‘피어’, 공포를 자칭하고 있으며 해당 개체에 대한 개체명은 ‘지브릴’….”
“가브리엘의 또다른 지칭어로군. …어째서 천사를 지칭하는거지?”
“이야기에 따르면 ‘검은양’ 팀과 접촉했으며, 팀내 피해는 단 한명. 첫 조우에서 일어난 것 외엔 없다고 하는군요.”
드물게 예절이 바른 녀석이었다.
무엇보다 첫 조우 이후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이상적이었다.
적어도 회유나 제안을 하러왔을 때 보여야하는 아마, 모범적인 모습이 아닌가.
“허나 차원종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적’이라고 하는데 걔들에게 신경을 쓰겠어.”
“그렇군요.”
그러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재해복구본부에서 신서울을 지키기 시작한지 약 2달째.
‘뉴욕’에서 ‘램스키퍼’가 격추된 사건에 신서울 지부장 데이비드 리가 연관되었으며.
데이비드 리 사건에서 연하은이 특A급 차원종으로 분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에.
‡ ‡ ‡
쩌억.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현단아가 봉을 거두어들였다.
그 앞에는 마치 원통형으로 갈려나간 듯, 자그마한 원만한 너비의 부피가 사라져있는 차원종이 힘없이 쓰러졌다.
“후.”
클로저가 된지 벌써 몇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여태껏 그렇다할 전과를 올리지 못해서, 친구인 세하와의 격차가 점차 멀어지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런 격차는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의 페이스로 천천히 나아가면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그저 좋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여기도 처리가 끝났어요.”
통신망 너머에서 들리는 경쾌한 목소리에 걱정을 한 시름 덜었다.
아무래도 본신으로 싸우는 단아와는 다르게, 차원종들의 잔해나 시체를 이리저리 엮고 꿰메어 만든 ‘인형’을 중점으로 싸우는 그녀가 너무나도 불안했기에 그런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형 조작에 집중할때면 주변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고는 했으니까.
“마리아 엘라이트, 복귀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마리아 엘라이트, 하늘새 2분대에서도 가장 불안정한 위상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자신이 아닌 외부 개체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상력으로, ‘마리오네트’라는 클래스로 분류되는 인형술사였다.
죽은 차원종은 물론이요 무너진 건물, 심지어는 여기저기에 망가진 전봇대까지 뽑아서 다루며, 실 하나에 부여할 수 있는 힘과 내구성의 크기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딘가에 단단히 박혀있는 전봇대같은건 끌고올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실제로 트룹 한 마리를 움직이는데에도 실이 세 개 이상 필요하다는걸 생각해보면, 그다지 썩 좋은 능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골격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여도 어떠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식하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쪽도 복귀하겠습니다.”
복귀한다는 의사를 리르에게 전해준 후, 발을 옮길 준비를 하자니 스산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감각이 들었다.
기이하게 움직이는 기류와, 덮여있는 공간의 너머에서, 무언가가 노려보는 듯한 그 감각. 대기로 장막을 치고, 그 너머에서 이쪽을 거울로 비추어보는 듯한 틈새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해할 수 없을 그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바람이 새어나가는 통로, 그리고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일그러짐.
그 자그마한 일그러짐은, 위상능력자의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고, 기계의 눈으로는 포착조차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누구냐.”
아마 그 공간의 특이현상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단아 뿐이리라.
유니크 능력자, 그것도 ‘공간’이라는. ‘제한’된 능력이 아닌 ‘포괄’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단아는 차원문이 근처에 열리게 된다면 불안정해지는 공간의 파장을 인지하고 미리 움직일 수 있었다.
단지, 차원문의 감지는 꽤 가까이 있어야만 가능할 뿐.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공간에 개입한데다가, 명백한 의지까지 드러내고 있으면 그건 거리가 꽤 된다 해도 눈치챌법했다.
봉을 고쳐잡고 뒤로 돌아서자, 그 너머에서 나오는 존재가 있었으니.
“…아버지?”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뭐랄까, 실로 시시하고도 한심할 정도로 밝은 표정을 지은 채.
수 달만에 재회한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다, 정도로 끝내실만한게 아니잖아요.”
어이가 없어 단아가 딴지를 걸 수 밖에 없었다.
무려 몇 달. 편의점에 한 번 갔다오는데 걸린 시간이라고는 너무나도 늦었으며, 그의 복장 역시 어디선가 몇 번 싸운 듯, 옷이 헤지고 찢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집 하나 나지 않은 그 몸은 그저 소름돋기만 할 뿐이지만.
“아, 그래. 슬리퍼가 없어서 좀 힘들긴 했다만….”
“…어디 갔다오셨는데요?”
딴지를 거는 것도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아서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돌리니, 박용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외부 차원. 거기서 좀 이상한 놈들을 만났지.”
“…일단, 돌아가도록 하죠.”
돌아가는 길에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임에 관한 이야기, 팀에 관한 이야기. 클로저는 어떻냐는 등, 여러모로 단아를 배려해주는 질문이었으며, 그 질문에 대해서 단아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한 마디로 답했다.
“…글쎄요.”
클로저 생활이 어떤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평범한 일반인의 시절과 지금이, 도대체 어떻게 다른지… 그는 모른다.
학교에서의 일상보다, 집에서의 게임 시간이 더욱 길었으니까.
수업 시간에는 졸고, 쉬는 시간에는 게임하고. 영웅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다가오는 친구도 없었으며, 설령 다가온다고 해도 단아가 이해하고자 했던 친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게 학교에 흥미를 잃고, 홀로 고립되기를 원했다.
그나마 그 속에서도 친해질 수 있었던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한석봉 뿐이겠지.
“그래도 게임은, 최근엔 잘 안해요.”
“어디 아픈거 아니지? 응?!”
“…일이 꽤 많아서요.”
게임에 대해 한 마디 하자마자, 뭔가 당황한 듯 온 전신을 훑어보며 건강 상태를 물어보는 아버지의 질문에, 그렇게 심했나,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게임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일수록, 같은 팀원인 아이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은 단아는 물론이요 리르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모든 즐거움은 일이 끝난 다음에.
“그렇게 정했거든요.”
“호오… 단아가 많이 컸다?”
“아버지가 집에 계실적부터 저는 좀 컸었는데요.”
“아니지, 그 때는 네가 쬐끄맸으니까.”
옥상 위에서 잠시 발을 멈춘 박용태가, 앞서 가다가 걸음을 멈춘 단아를 불러세웠다.
바로 앞에 선 단아가 무슨 일인가 싶어 천천히 다가가니, 아버지는 그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컸다, 정말.”
마지막이 언제였을까.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던 것이.
중학생 시절인가? …아무래도 좋았다. 이렇게 시선을 나란히 보는 것이 이토록 감회가 새롭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금방 큰다고 하지만, 벌써 이렇게 클 때가 된건가.
회한이 섞인 한숨을 내쉰 박용태는, 이번에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너와 놀아줄 걸 그랬구나.”
“…아버지.”
그 뒷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날의 뒷모습보다 조금 더, 조금 더 커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 착각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단아는 그 뒤를 따라 게속해서 옥상을 건너갈 뿐이었다.
어비스의 주인 1장, 끝.
안녕하세요, 저자 AI미스틱입니다.
본래 어비스의 주인은 시리즈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스토리의 분기점을 가르기 위해 가볍게 1장과 2장으로 갈라낼 생각입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더 늘어날지는 모르겠죠.
아마 연재 속도는 일주일 내외로 유지될 것 같습니다. 제 대학 생활이 피곤하거나 곤란하거나, 제가 아프거나 아니면 다른거에 열중하지 않다면요.
1장에서는 독자분들도 아셨을진 모르겠지만, 연하은에 대한 많은 정보가 나왔습니다. 그 사이에 어비스 세력의 분포와 그 상하관계가 확실히 나뉘어져 있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이번 15화, 1장은 연하은이 완전히 어비스의 세력으로 돌아섬으로써 막을 내렸는데요, 이후에 일어날 사건들은 저도 계획은 있으나 아직까지 완전히 짜여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끝이 초 해피엔딩일지, 초 배드엔딩일지. 그것은 제 심경의 변화에 따라서, 혹은 여러분들의 선택에 따라서 갈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설령 그 엔딩이 초 배드엔딩이라 할지라도, IF의 세계를 빌려 초 해피엔딩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주일 이내에, 2장의 시작인 16화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제목은 아마도 2장 1화나 16화 그대로 나올 듯 합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