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12화> : 특별해져버려서, 그렇기에 더욱 쉽게 울어버리는 아이
AI미스틱 2020-11-10 1
기이한 색상의 지면과 바위가 있는 곳.
고작해봐야 그게 전부인 곳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의 차원이었다.
“슬리퍼는 신고올걸 그랬나.”
너덜너덜해져서 버린게 아쉬워질 정도였다.
그간 어찌저찌 버텨왔다고는 해도, 이제는 정말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봉착한 느낌이었다.
싸움에 싸움의 연속. ‘오염위상’이라는 것에 노출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상한 액체 비스무리한 몸을 달고있는 괴물과, 자신의 형상을 베낀 이상한 놈, 그리고 고기를 뜯어먹는 괴조와 눈을 가린 인간의 형체를 가진 무언가 등등.
하여간 요사스럽기 그지없는 놈들만 가지가지로 모아놔서, 하루를 내도록 싸우고도 하루를 더 싸워야하는게 벌써 몇 번이던가.
사람이 싸우더라도 먹을 것은 먹고 싸워야하는 것을 먹지도 못했으며, 마셔야할 것을 마시지도 못한 채 벌써 며칠이나 흘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탈수 증상에 죽어야 정상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 끌어들여진 인간이 평범한 인간도, 클로저도 아닌 ‘박용태’ 본인인지라 죽기에도 참 어려운 것이 많이 뒤따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죽어버리면, 지금쯤 자신을 찾는다고 난리인 단아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닌가. 겉보기에는 듬직해보여도, 의외로 속은 어린애나 다름이 없기에 혼자 내버려두기에는 아비가 된 입장에서 너무 미안할 따름이었다.
“어우.”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에 두 발 뻗어 앉았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몰려오던 오염위상의 괴물들이 오늘따라 다가오기는 커녕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근처에 오던 흐물거리는 괴물은 무언가에 놀랐는지 호들갑을 떨면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 덕에 간신히 발뻗어 있을 수 있지만….
‘이 녹색 연기는 뭐지?’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녹색의 연기. 가스라고 해야 마땅할 그것은 위상력을 방출하지 않았더라면 필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줄 법한 것이었다.
또한 바닥을 주륵, 하며 흘러가는 녹색의 끈적한 액체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구토가 올라올 것만 같은 역겨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왔…다….”
그런 식으로 앉아있는 박용태의 앞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한 형태를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괴이하게 생겼다. 한쪽에는 팔이 수백개라도 달린 것처럼 수많은 손가락과 팔뼈들이 부득거리며 나와 있었고, 다른 한 쪽은 마치 썩어버린 시체를 강한 산성에 담궜다가 빼낸 것처럼 여기저기가 구멍이 뚫린 채 빼빼 말라 있었다.
등에서는 특이한 뼈, 비스무리한 것이 몇 개씩이나 우직하고 튀어나와 있었으며, 앞쪽은 훗날 ‘요드’라고 불리게 되는 개체의 머리에 있는 눈알이 수천수백개나 달려서 공포를 선사하고 있었다.
얼굴은 어디서 주워온 신문지를 뒤집은 후, 그 위에 붕대를 감았다가 헐어버린 듯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썩어서 뚫려있는 눈쪽에서는 서로 다른 11개의 동공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촤악, 하고 퍼졌다가 한 곳으로 뭉쳐졌다.
“인간….”
“너도 싸우려고 온거냐? 질리지도 않고.”
외형만 딱 봐도 싸우자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에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난 박용태가 위상력을 끌어올리고 있자니, 그는 때려치우라며 답했다.
“이곳…은… 어떤… 괴물도… 오지… 못한다…. 그러니… 걱정… 마라….”
“…그러냐.”
의외로 싸울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과 동시에 달팽이가 기어다니는게 더 빠르다고 생각될 정도로 느린 말에 인상을 쓰며 답했다.
그러자 그것은 양해해 달라는 듯 말했다.
“녹색… 가스… 액체… 내… 의사… 무방하게… 나온다….”
“무의식적으로 나온다는 건가? 어째서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
“그렇군. ─저놈들은 널 두려워하는건가?”
“아니… 그들은… 나와… 이… 가스들을… 두려워… 한다….”
생명체가 아닌 가스와 액체를 두려워한다.
오염위상에 있는 이상, 정상적인 삶따윈 두려워하지 않은 채 오염위상을 퍼트리는 것만을 의미로 두며 살아갈텐데, 그런 그놈들이 이런 가스와 액체따위에 두려움을 가진 채 접근하지 않는다는 말에 박용태가 고개를 기울였다.
“도대체 네가 무엇이기에.”
“…그들… 에게… 있어선… 안될… 것….”
생긴 것부터 시작해, 말하는 것, 그리고 내뿜는 것까지.
역겹고, 짜증나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것들로 빽빽이 차 있는 그것의 말에는 의문밖에 남지 않았다.
“놈들에게 안좋은 건가? 이 가스가?”
“아마… 죽음….”
죽고싶지 않아서 다가오지 않는다는 건가.
“애초에 놈들은 죽을 목숨이 아닌가.”
“…저들…에게… 부여…된… 본능….”
“본능이라.”
스쳐지나가듯 바라보고, 다시금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그 시선을 인지한 듯 그것이 입을 열었다.
“만약… 내… 모습이… 불쾌… 하다면… 그것…은… 네… 의식이… 포착한… 내… 모습…이다….”
“내 의식이 너를 이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냐?”
“…아마… 그렇…다…. 나…는… 본래… 형태…없는… 존재…. 그렇… 기에… 너희…가… 인식…하기… 편한… 모습…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지?”
“…불가능…하다…. 이… 모습…은… 본능…과… 의식… 사이에서… 결정…된… 모습… 의도…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럼 말이라도 제대로 해줄 수 있나?”
“…미안…하다…. 인간…의… 언어가… 어렵…다….”
차원종 따위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식하고, 말하려고 든다.
그것부터가 역겨웠다. ─하지만, 그 덕에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가면 갈수록 흥미로워지는 그것의 모습에 의문을 가진 채 조용히 있자니, 그것은 천천히 말했다.
“이제… 곧… 용…께서… 오신…다….”
“용?”
─서유럽에 나타난 ‘불을 뿜는 용’ 헤카톤케일.
그것은 이미 토벌되었으며, 현재까지 나타난 용 개체는 아스타로트 외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한번에 두 마리의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용’이라는 개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듯이 말한다.
“무릎…꿇고… 맞이…하라…. 그…분의… 뜻….”
“용 따위를 무릎까지 꿇으면서 맞이하고 싶지는 않군.”
“…네놈…”
그 썩은 시체같은 것이 무어라 반문하기도 전에, 커다란 파장과 함께 그 너머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만. 그 분께서 보고계신다.”
그 한마디에 오염 위상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차원종’, 이깟 단어로는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가 새로 깃든 것만 같았다.
녹아내린 시체같은 것이 다시금 주저앉자, 그제서야 그 너머의 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용태와 비슷한 키─아마 190 이상일 법한─를 가졌으며,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 온 전신이 검게 물들어있는 것이 흑요석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눈에서 드리우는 날카로운 안광은 보석의 광채를 꿰뚫을 정도였으며, 온 몸에서 풍기는 어마어마한 무언가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박용태마저 고개를 살짝 내릴 정도였다.
“처음 보는구나, 인간이여.”
“…당신이 ‘용’인가?”
“나는 ‘그 분’의 뜻을 전하는 ‘대리자’… 엄밀히 말하면 용이지만, 용이 아닌 존재이다.”
“말장난은 싫어하는데.”
“그렇다면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도록 하지. ─용이 아니다. 아직은.”
당연한 말을.
“아스타로트인지 뭔지하는 것 때문인가?”
“그렇다. 그것은 영지를 무단으로 탈취하여 선대의 용을 떨어트렸다지. ─미련한 것. 처음부터 보다 강한 힘을 얻을 기회를 주어선 안되는 것이거늘.”
마치 헤카톤케일과 하는 사이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번에 그대와 대면하고자 한 것은 다름아닌 ‘그 분’의 뜻이다.”
“하찮은 인간과 얼굴까지 트여가면서 할 말이 있던건가?”
“물론.”
가볍게 답한 그것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분께서 손수 빚어 창조하신 열쇠가 곧 각성할지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와 손을 잡고 ‘이름없는 군단’을 멸망시키는 것은 어떠한가.”
‘열쇠’라는 말이 무척이나 귀에 걸렸다.
하지만 함께 힘을 합쳐 ‘이름없는 군단’… 차원종을 토벌하자는 말은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싫은데.”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이 이후에 할 일이 인류에게 있어서는 두려운 것이었다.
박용태가 딱 잘라 답하자, 그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허면 두 번째 제안을 하도록 하지.”
“두 번째 제안?”
“지금 여섯 번째 주인이 인간 몇을 우리의 영역으로 끌어오고자 하거늘, 그대도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떠한가.”
“엿이나 처먹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가볍게 응수한 박용태가 말했다.
“니들이 얼마나 대단한건지는 모르지만─사람을 잘못 본거 같은데.”
“…확실히.”
뒷짐지던 손을 천천히 풀어낸 ‘대리자’는 붉게 비추는 두 눈을 번뜩 뜨며 박용태에게 말했다.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은 안하는게 좋을 것이다.”
삐격이는 듯한 환각일까. 중간의 공간이 모두 일그러져 망가지는 듯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서 있던 녹색의 괴물은 천천히 팔을 들어 대리자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 그… 분의… 뜻은… 이게… 아니…다…. …박용…태… 그대…를… 인간…들의… 차원으로… 보내…주겠다….”
“무슨.”
“그것…이… 그… 분의… 뜻…. 알…고… 있지… 아니한…가…, ‘주인’… 이여….”
그러자 ‘주인’이라 불린 존재는 아쉽다는 듯 손을 다시 내리며 반응했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그 분의 뜻이다. 단지 그대의 힘을 엿보기 위한 행동이었으니 너무 노여워하진 말아주게.”
“…그런가.”
그것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돌려보내주겠다고 말하는 그들의 말을 믿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것이 그대들의 차원으로 향하는 문이다.”
─콰지지직!
눈 앞에 열린 그 차원문의 너머는 확실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구로 향하는 것이었다.
어디 하나 다를 곳 없는 지구. 높게 솟아오른 고층 빌딩들이 한없이 연결되어서, 하나의 길을 만들어놓고 있는 모습은 그저 장경이라고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다.
발을 한 발자국 내딛으니,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을 보며, 박용태가 물었다.
“설마 이상한 짓을 하는건 아니겠지.”
“그것은 ‘그 분’만이 아는 일. 우리는… ‘그 분’의 뜻에 따를 뿐이다.”
“말은 잘하는군.”
결국 차원문을 넘어서자, 그곳은 확실히 자신이 살던 곳이었다. 그야말로… 그래, 과거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이었다.
● ● ●
“도대체 왜! 이제야 힘을 가졌는데… 어째서 너희만….”
인간으로 돌아오는 항체 주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돌아오기를 거부하듯이 절규하는 목소리를 내지른다.
그것을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끝없는 인간의 악의. 힘을 탐한 대가는 무엇보다도 강하고, 거대한데도 불구하고 고작 그것 하나따위를 위해 스스로를 망가트린 행위를 한 유하나를, 하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잿빛으로 물들어버린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한다.
그 모습에,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힘’ 따위에,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함’을 포기해도 될 정도의 가치가 있는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유하나가 갈퀴를 내저으며 외쳤다.
“너는 절대로 날 이해하지 못해!”
“─그걸 어떻게 알아?”
십자의 창을 내려놓는다.
아예 손에서 떨어져버린 창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지면에 파묻혔다.
무기가 떨어져 무방비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은은 어떠한 방어 태세를 취하지 않았다. 공격한다면, 그대로 그 나약한 몸을 꿰뚫겠지.
그럼에도, 유하나는 아무것도 행하지 못한다.
그 두 눈동자에 담긴 실의를 본걸까. 그 몸에 담긴 슬픔을 본걸까.
그 모습으로부터 무엇을 보고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단지 바라본 채, 점차 다가갈수록 더욱 멀어질 뿐이었다.
“나도, 너도. 아무도 모르는거잖아.”
서로가 가진 상처의 깊이가 다른다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하은이 가졌던 상처가 그녀의 욕망보다 더 크다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그렇기에 할 수 있었던 하찮은 일이었다.
자신을 포기한다는, 그만큼 하찮은 일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다.
“오지마!”
망가진 걸음걸이로 다가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걸까.
아니면, 단지 스스로 겁먹고 도망치는걸까. 힘이 사라진다는 것을 느끼고, 두려움을 인지한걸까.
하지만.
“너는 돌아갈 수 있어.”
“무슨….”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인간이 아닌 인간.
이제는 무엇을 통해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움직이는지조차도 모른다.
뇌의 활동조차도 완전히 멈추었다는 기록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움직인다.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움직인다.
아니, 애초에 뇌가 활동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고가 가능하며,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평범했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돌아갈 시간이야.”
“안돼… 나는… 나는….”
“특별한 인간따위,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거라고.”
클로저는 특별한거 따위가 아니다.
특별해져버렸기에, 불행한 존재가 클로저인 것이다.
천천히 그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다.
겉을 둘러싼 외갑피가 부서져 사그라지고, 실이 점차 풀리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돌아온걸 축하해. …나는, 이미 축하할 자격따위도 없지만.”
이윽고 남은 것은, 추악한 그림자의 하은과,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녀의 모습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