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10화> : 아무것도, 남지않고.

AI미스틱 2020-10-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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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主人’이라고 명칭된 새로운 S급 차원종.
 하늘새 1분대가 활동하는 구역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추정하는 해당 개체로 인해 거점 이전이 늦춰지고 있는 가운데, ‘유 주’가 전투 불능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얀은, 유주가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한 시도 쉴 틈 없이 작전구역을 뛰어다녔다.

 ─치이이……

 무언가가 타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작전구역의 한복판에서 나는 그 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닌, 차원종의 근육이 불살라지는 소리였다.
 한 차례 힘차레 검을 휘두르자, 갑피 째로 베여나간 차원종이 허망하게 쓰러졌다.
 그 사이에 숨을 내쉬면서 서 있는 여성─하얀이 숨을 내쉬었다.
 이글거리는 듯한 자색 빛의 머리카락, 태양보다 올곧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가 화염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주변의 공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생고기를 달구어진 쇳덩어리 위에 올린 것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후우…….”

 차원종 수십, 수백에 달하는 그 숫자를 언제 또 베어넘겼는지,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전투 불능이 된 유주의 빈자리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가 없으니 본래 나누어 관할하던 구역이 두 배, 혹은 세 배로 늘어난 것 같았으며, 자신보다 몇 배는 빨리 처리했던 유주의 처리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피로가 축적되고 있었다.
 몸을 망가트린다, 라는 말까지 할 건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힘들다고.
 하지만 그런 망가진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있었다.
 깊은 곳에서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단 하나의 감정. 오래 전에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대변하는 듯이, 지금까지도 잠자고 있는, 폭탄보다도 강한 그 감정은, 터지는 순간 어떤 식으로 발화할까.
 분노라는 감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한 번 이해하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붙잡히기에.
 어쩌면,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닌, 견딜 수 없어서 잠에 빠지고 있는게 아닐까.
 깨어나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온 전신을 침범하는 불같은 분노에 잠식당하는게 느껴지고 있었다. 숨을 내쉬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가끔씩은 이 모든게 꿈이었다면 좋겠다는, 그런 환상을 원한다.
 모든게 거짓말같은, 하룻밤 새의 환상같은 일이었다면 좋겠다고.
 눈을 뜨고, 다시금 아침이 떠올랐을 땐, 어릴 적의 친구들이 바로 옆에서 인사를 건네주는, 그런 세상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렇게 핏물로 질척이는 손을 가지고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맑은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어째서 이토록 멀리 떨어져버렸을까.
 유주도, 하은도. 이제는 손에 닿지 않는─너무나도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자신만이 이곳에 남아, 모두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공을 메아리치는 적적함에, 지글거리는 아지랑이들을 등진 채, 발길을 돌렸다.
 눈물의 흔적만이 남아있었건만, 뜨거운 열기는 그마저도 불태워내었다.



 처음에는 ‘변했다’라고만 단순히 인지했다.
 피에 취한다, 라는 감각은 이해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취한다’라던가 ‘변한다’라던가. 그런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천천히 이해할 수 없게끔 변화하기 시작했다.

 ─으직.

 밟으면 으깨어지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는 점차 심해지기 시작해, 발 한발자국 내딛는 것 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어 멋대로 겁을 먹고 만다.

 ─삐걱.

 손을 대는 것이 두려웠다. 몸이 제멋대로 뇌의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하는 것처럼, 손을 가져다 댈때마다 그만큼 멀어지려고 물체가 부서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눈에 비치었다.
전봇대, 신호등, 보도블록은 물론이요 도로, 건물벽, 심지어는 사람의 손까지도 밀어내고 있었다.
 무엇을 바라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채 계속.

 “한동안 쉬고, 다음에 더 잘하자, 하은아.”
 “……네.”

 온 몸에서 천천히 ‘배출’되는 듯한 검은 무언가.
 위상력이라고 표현한다면 말이야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도 너무 두려울 정도로 불쾌하고, 늘러붙으며, 떨어지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것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연하은’이라는 자그마한 통 안에 담길 수 없는 양의 물을 억지로 집어넣어,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스스로도 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저기, 슬슬 괴롭지 않아?”

 심지어는 눈 앞에서 환각이 비치기도 했다.
 푸른 빛의 나비가 하늘 위를 천천히 날더니 말을 건다던지, 옆에 내려앉아 또 말을 건다던지.
 항상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그것이 짜증나기도 해서 늘 내쫓으려고 하지만, 휘저어도 마치 그곳에는 없는 것이라는 것처럼 그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이제 그만두자.”
 “……뭐를?”
 “이 모든 것.”

 ─감정에 맡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단지 끝내는 것 뿐.
 고통을 끝내고 이제는 편안함으로 돌아가는, 아주 당연한 순환 속에서 하은은 단적인 대답 하나만을 내뱉었다.

 “싫어.”
 “……왜…….”

 하은이 스스로를 지탱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단지 ‘클로저’로 존재해서, ‘사람을 지킨다’라는 개념 하나만이 등을 떠밀어 사지에서 죽게끔 만들었지만, 지금의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신념이자 가치관이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알파 나이트가 오기까지 약 3일.
 그 3일동안 희생된 몇 명의 클로저가 없었더라면 부산은 보다 더 참혹한 현장이 되었겠지.
물론 그 몇 명 중에서도 도망친게 대부분이었지만.
 부산이 그 이후 클로저를 믿지 못하고, 싫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쯤은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하겠지.
 그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서일까, 이해했다는 듯 한 차례 빙글 돈 파란 나비는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끝내 선택하게 될거야.”

 ─한 번 나락에 빠졌던 인간은, 나락에서 얻은 쾌감을 잊지 못하기에.
 마치 비웃음을 날리듯 하늘을 훨훨 날아 사라진 파란 나비의 흔적은 빗물처럼 남아, 하은의 생각을 방해했다.

 “……그만두자, 라니…….”

 답지않은 소리만 하고 사라져버린 파란 나비에 차라리 질타를 받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응어리가 맺힌 듯, 꾹 막혀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욱신거리고 있었다. 감정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허무한 그 너머에 무언가가 녹슬어서,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자물쇠로 잠궈져있는 듯한 괴로움에, 눈물이 새어나왔다.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던 눈물으로부터 녹슨 감정이 묻어나오고, 투명하지만 적색빛이 속으로 내비치는 눈물에 하은은 창을 우겨쥐었다.

 “차라리…… 그만두고 싶어…….”

 하염없는 메아리는 적막함에 사그라들기만 하였다.



 수없이 많은 것을 바라왔다.
 모든 사람들이 색이 바랜 옛 것을 내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적에도, 그곳에 그대로 남아, 많은 것이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끝에 남는 것이 비극이라는 이야기는, 너무하지 않은가.
 괴로움, 그리고 외로움. 홀로 남아있는 적막함 속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해봐야 몇 사람 되지 않았고, 마음 놓을 데 없이 항상 출격하며 차원종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잃은 것들은 되돌아오지도 못한 채 저 멀리서 맴돌다가, 그대로 스러져 사라지거나, 혹은 스스로를 불태울 커다란 광염이 되어가고 있으니, 바라보는 그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자신만큼은 돌보았으면 좋겠다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그리고 그 만큼 자신에 대해 무심경해지기 시작했다.
 다쳐도 싸우고, 힘들어도 싸우는. 투쟁이라는 개념만이 삶에 남은 원동력이라고 생각했건만─

 ‘당신의 친구와 함께할 기회를─’

 머릿속에 울리는 그 한마디 말이 계속해서 울린다.
 그렇게 실컷 싸워놓고, 아직도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주인’이라는 존재가 말한 단 하나의 제안이었다.
 그 순간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던 적은 없었다. 만약 그 자리에 정말로 그녀가 왔더라면, 클로저는 물론이요 인간이기마저 저버린 채, 그대로 사라져버렸겠지.

 “……아…….”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와, 어지러이 흔들리는 시야. 귀에서는 이명이 일렁이고, 살짝 뜬 눈꺼풀 사이로 빛이 사정없이 침투해온다.

 “기분 참 X같네…….”

 처음 내뱉은 그 한마디에, 기계같은 음성이 전해졌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말씀이 그거라니, 정말 기운이 넘치시군요.”
 “그래, 기운이 넘쳐 흐를 지경이야. ─얼마나 이렇게…….”
 “5일간 잠들어 계셨습니다.”

 순간 머리에 충격이 전해졌다.
 사고회로가 멈추고, 논리적인 두뇌 회전이 일그러진다.
 자신이 날짜를 잘못 들었기를 바라며, 천천히 되물었다.

 “며칠……?”
 “5일입니다.”

 1주일에 가까운 시간. 다르게 말하자면, 그 시간동안 발생한 차원종이나 어비스들은 하얀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일전의 그 전투 때문에 또 위상력 안정기가 부숴지거나 망가졌을텐데, 그 사이로 계속해서 출현하는 차원종들을 혼자서 감당한다는건…….

 “하지만 아직 요원님께 출격 허가를 내어 드릴 수 없습니다.”
 “어째서!”
 “하얀 요원님의 요청입니다.”

 할 말을 잃었다.
 개인전에 특화된 그녀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한 화력이라는 것을.
 그런 그녀를 서포트하기 위해, 혹은 대량 발생한 차원종들을 처리하기 위해 있는 것이 유주인 것인데, 도대체 어째서 그녀가 자신의 출격을─

 “요원님께서는 한동안 휴식을 취해주십시오.”
 “5일동안 잠들어있었다면─”
 “안타깝게도 저도 허가를 내어드릴 수 없어요.”
 “……마나……”

 의료 요원인 마나 역시 허가를 내어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몸에 강대한 위상력을 담아 일시적으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는 하나, 그 부작용이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5일이라는 짧은 시간의 휴식만을 믿고 내보내기에는─그는 너무나도 불안정했다.
 언제나 바라보면 그랬지만, 지금은 특히 더욱.
 바깥쪽 것만 빼어낸 젠가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약한 바람만 쐬어도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그 불안정함. 그 불안정함이, 마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었다.
 짧은 시간, 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간 보아온 클로저들의 눈이 선명히 떠오른다.
누군가는 결의에 차서, 누군가는 분노에, 누군가는 희망을.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며 일했지만, 지금의 유주는 그 어떤 사람들의 눈동자보다 빛을 잃은 채였다.
 어디로 흘러들어갈지 알 수 없는 배. 근원지를 찾을 수 없는 빗물이 구불구불한 경사를 타고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결의는 온데간데 없으며, 그나마 비치던 분노마저도 사그라들었고, 남은 것은 망설임과 후회 뿐.
 그리고 그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보면, 의외로 쉽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포기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놓아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도 그는 싸우고있지만, 언제 망가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은 전장에 보내라고 한다면 보내겠는가.

 “유주 요원님은 안정을 취해주세요.”
 “……너…….”

 신경질만으로 해결될 일이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과 전투를 벌인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이상현상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게 심지어 전투 시에만 벌어지는 이상현상이라고는 해도,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지도 몰랐기에.

 “그런거면 5일동안 실컷 했을텐데.”
 “무의식 상태와 의식이 있는 상태는 다르니까요.”

 절대 보내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마나의 모습에 끝내 고개를 돌렸다.

 “마음대로 하던지.”
 “하지만 요원님은 마음대로 하실 수 없어요.”
 “알아.”

 어찌되었건 전투는 금지되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차고 다녀야하는 기구들을 몸에 메달았다.
 거추장스럽기는 했지만, 떼어낸다면 한 번에 하루씩 기간을 늘리겠다는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가끔은 자신이 지킨 마을의 거리도 둘러보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등을 힘차게 친 마나는 오히려 제 손이 아픈지 몇 번 허공에 휘저었다.
 뭔가 침울해진 듯한 기분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바라보는, ‘평화’를 가장한 거리의 풍경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지킨’ 마을일까.”

 지킨게 아니라, 배려받은 것이겠지.
 필시 그 ‘주인’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에 도망칠 수 있었으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회유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빼앗는 정도에서 그칠 생각이 아니었더라면. ─하물며 손에 넣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곳에 유주가 서 있는 일도 없었을테니까.
지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도, 친구도, 동료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순간 느꼈던 것은,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었다.
 무너진 거리, 한산한 거리,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거리. 수없이 많은 거리를 보아왔지만, ‘클로저’로서의 활동 중에 사람들이 즐비하게 있는 거리에 발을 내딛은 것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 발을 섞어보는 것이, 이토록 감회가 새로운 것인줄은 차마 몰랐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 그것은─뿌듯함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2024-10-24 23:35:5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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