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9화> : 홀로 남아서
AI미스틱 2020-10-28 0
*설정이나 컨셉, 혹은 오류가 있는 경우 지적해주십시오.*
*늘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리르 누나….”
1분대, 하얀과 유주가 있던 곳에 갔다왔을 터인 리르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흔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망가진 모습. 아버지의 모습과 비슷했다. ─옆에서 보아왔기에 알았다. 술을 마시며, 자신을 자책감 속에 내던지고, 죄책감 속에 가둬둔 채, 외부와 대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썩어들어갈 시체를 끌어안은 채 하염없이 잠겨있던 아버지의 모습과.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목소리, 울먹거림, 그 때의 생각이 아직도 벗어나지 않는다.
“…괜찮을거에요.”
그리 말했다.
그러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리르는 손을 맞잡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괜찮을거에요.”
그 둘은 그렇게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 그걸 알고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하얀의 모습을 보았던 순간, 어째서인지 하염없이 믿고있던 모든게 무너져내린 기분이었다.
-언니… 아파…?
갑작스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꽂아둔 스피커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리르가 마이크의 전원을 켰다.
“괜찮아요, 아나. 상황은 어떤가요?”
아나라 불린 아이가 답했다.
-북서쪽에서 차원종 소량 발생… 혼자서 가능할 것 같아.
“부탁할게요, 아나.”
-응… 힘낼게…!
이윽고 마이크의 전원을 끈 리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전히 아나는 믿음직스럽네요.”
“그러게. 늘 모습을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 옥상에서 스코프를 쬐며 차원종을 바라보고있을 터인 아나를 생각하자면 뭔가 생각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저격수이기에 배후에서 나타나는 갑작스러운 차원종에게 취약할 것이라 무심코 생각한 단아가 거리를 걸으며 말했다.
“조금 걱정되긴 하니까, 찾아가볼게요.”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리르라면 분명히 어디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채 하늘에 떠오르고, 단 1분만에 스스로에게 실망할 정보가 들려왔다.
-반대쪽이에요, 단아.
길을 아예 반대로 들어버렸던 것이다.
칼바람이 날뛰는 옥상은 언제나 위협이었다.
들키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 그곳은 언제라도 폐허가 될 준비를 마친 상태겠지.
관처럼 생긴 무기의 격납고도, 자신의 육체도, 그리고 자신이 있는 이곳마저도.
“스읍…”
숨을 들이쉬고 트리거를 당긴다.
화약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가벼운 소음과 함께 탄환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평범한 탄환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탄환을 다루는 방법은 꽤나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나 스타피트라는 저격수 본인이 사용하는 방식은 위상력 자체를 탄환으로 빚어내는 것이었다.
새까맣기 그지없는 흑색의 탄환, 윤기마저 비치는 그 탄환은, 수백미터를 넘어 적들의 머리를 확실하게 관통했다.
발사할 때 화약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화약 대신 위상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기 때문에 일어나는 소음과 반동에서 무기 자체의 육중함이 느껴진다.
“후우...”
그 영롱하고 맑은 흑색 눈동자 속에는 더 이상 차원종이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비록 경계를 허술히 하지 않았다지만 무언가에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뭐든 들리지 않는 탓이었다.
“…언제 오셨어요…?”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곳에는 어느새 온 것인지 모를 현단아가 앉아있었기에.
반쯤 꾸벅꾸벅 졸고있던 단아는 그제서야 일어났다.
“차원종들은?”
“모두 처리했어요.”
“잘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았던 것인지 절로 헤헤 소리를 내었다.
“먹고싶은거라던가, 하고싶은게 있으면 말해.”
솔직히 단아나 리르의 입장에선 말도 잘들으며, 차원종도 금세 처리하고, 무엇보다 말썽을 부리지 않는 아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아예 품에 반쯤 파묻힌 채 머리를 부비던 아나가 이내 떨어졌다.
저격총을 챙겨 케이스에 넣으니, 자신의 키보다 더 클터인 그것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무겁지 않아?”
“…무겁지는…않아요.”
위상능력자에게 그게 무겁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지.
하지만 아나는 아직 제대로 성장한 아이가 아니었던 탓에, 대신 케이스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어릴때부터 무거운거 지고 다니면 키 안큰다.”
“…네….”
자신에게 무거울 터인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올린 단아는 앞장서서 돌아가기 시작했고, 마치 어미를 따르는 병아리마냥 그 뒤를 소심하게 아나가 따라간다.
누가 보면 부녀 관계라고 오해할만한─누가 봐도 단아가 많이 젊지만─모습이었다.
돌아가면서 시장 거리에라도 들러 아나가 사고싶은게 있는지 살짝 눈치를 살피던 단아는, 그녀가 어느 한 머플러에서 눈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나.”
“아, 가……갈게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반응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말했다.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도 돼. 아나는…… 가장 열심히 하니까.”
“그……그래도…….”
부끄러운 듯 손을 한데 모아 꾸물거리던 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단아는, 천천히 걸려있는 머플러를 들고서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지 비싼 머플러는 아니었다. 굳이 환산해봤자 만원에서 15000원 사이. 단아가 내기에는 무리가 없는 가격이었기에, 칭찬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주고자 사서, 직접 감아주었다.
“잘 어울리네.”
노란색의 머플러는 칙칙한 흑색을 가진 아나 스타피트에게 있어서 잘 맞는 모습이었다.
머리를 재차 쓰다듬으니, 두 손으로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던 아나는 이윽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괜찮아, 괜찮아. 다음부턴 뭐든 말해. 알겠지?”
“네에…….”
소심하게 말하는 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단아의 수신기에서 리르의 목소리가 울렸다.
“단아 요원님?”
“네, 리르. 무슨 일이신가요?”
“따로 피해는 없었나요? 아나에게 무슨 일이라던가…….”
“괜찮아요. 아나한테는 고마워서 뭔가를 사주려고 이렇게 나왔을 뿐이니까요.”
“다행이네요. ……오늘따라 게임은 잘 안하시네요.”
“저라고 매일 게임만 하는건 아니니까요.”
팀에서 가장 연장자.
어른으로서 알맞은 행동을 해**다는 압박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불안한 기분이었다.
흔들리는 깃발을 연상시키는 듯한 그의 모습에, 아나 스타피트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뿐이었다.
올려다본 채, 옷자락을 잡고 거리를 걷고있자니 문득 뒤통수에 닿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어느정도 감이 잡힌 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외부에서도 계속 그런 식으로 지켜보고 싶은걸까.
아마 단아도 눈치챈지 오래겠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는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 싶었건만.
─콰앙!
돌아오자마자 날아오는 직격타에 케이스를 빼앗아들었다.
정면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선 케이스에는 흠집하나 가지 않은 것이 기묘하기까지 했다.
“……사사로운 감정 싸움은 하지말기로 했잖아. 그리고…… 오빠 앞이야.”
“……크으…….”
주먹을 내지른 상태로 잔잔하게 말을 주고받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팔을 내렸다.
“잘 지냈어? 하도 안보여서 요즘 잘 먹고 지내는지도 모르겠잖아.”
“……가식떨기는……”
“다물어. 알겠지?”
첫 한마디를 하자마자 아나가 똥씹은 표정을 지은 채 그리 말하자 입 다물라는 듯 말한 그녀는 입에는 미소를, 손에는 멱살을, 나머지 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빨이 바득거리는 소리가 어깨 너머까지 들릴 정도였는데 정말 안들켰을거라 생각한걸까. 싶었는데 막상 고개를 돌리니 단아는 이미 리르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아나가 말했다.
“……이제 놔 줘.”
“그래, 뭐.”
미련은 없다는 듯, 멱살을 붙잡은 손을 놓은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여기에는 정상인이랄게 하나도 없는걸까. 하나같이 성격만 이상해가지고는.
“그래도 케이스 하나는 더럽게 튼튼하네.”
“……칭찬으로 알게.”
“그래, 칭찬이야.”
주먹을 거두자 곧장 사라져버리는게, 마치 흥미를 가진 채 다가온 고양이가 이내 흥미가 사라지자 바람결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제서야 케이스를 지면에 내려놓자,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 무거운 무게─라고 그리 느껴지지는 않았지만─에 보도 블록이 깨져나갔다.
빠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난 보도 블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케이스도 어지간하면 내려놓듯 살며시 내려놔야하는데, 영 익숙하지가 않았으니까.
“아나.”
“네……?”
갑작스레 부르는 리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리 와달라는 듯 손짓하고 있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총총 달려간 아나가 그 앞에 서니, 확실히 어른과 아이의 키차이라는게 얼마나 나는건지 깨닫게끔 해주는 듯한 성장차가 있었다.
한창 보고서를 보던 리르는 이윽고 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열심히 해줬네요. 정말로.”
“……아뇨, 이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아나 스타피트는 겁쟁이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으며, 무엇보다 단아처럼 사지에 스스로를 내밀 정도로 담력이 크지 않다.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는 질색이며, 심지어는 많은 사람 앞에 자신을 내보이는것도, 사람 많은 곳에 혼자 들어가는 것조차도 스스로 못한다.
그런 자신이었기에 항상 조심하며 살다보니, 어느새 그 조심함이 소심함으로, 소심함이 성격이 되어 이제는 말 한마디 주고받는 것조차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자신과 같은 때에 태어나 함께 자랐던 다른 2분대의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직접 말을 주고받는 것마저도 리르와 단아, 그리고 1분대의 두 명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겁쟁이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혹시나 도망칠 것이 두려워 더 확실하게 판단하며, 무엇을 어떻게 노려야할지, 우선순위를 빠르게 계산한다.
적들이 눈치채지 못할 사각에서 총을 쏘아 떨어트리며, 설령 발각되더라도 최선의 방법을 통해 자리에서 도망친다.
피하지 못하는 때가 여지껏 오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런 때가 온다면 아나 역시 진심으로 괴물을 상대할 결심까지는 하고 있었다.
그런 소심함의 결실이, 꾸준한 차원종과 어비스의 처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아나의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도 버티고 있었다.
“냉장고에 푸딩 사놨어요.”
“……푸딩……!”
그런 아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칭찬 뿐만이 아니다.
유난히 푸딩을 좋아하는 아나였기에 작전 중에는 무리라 할지언정, 이렇게 돌아온 뒤에는 항상 무언가를 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다던지, 푸딩을 준다던지.
혹은 둘 다 해준다던지.
푸딩이 있다는 말에 눈을 빛내며 사무실 계단을 달려 올라간 아나는, 문을 열자마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언제나 자신의 푸딩을 뺏아먹는 최악의 범죄자(동료)기 때문에!
“웅?”
무언가를 한가득 입에 넣고있던 그는 잠시 푸딩을 보고 아나를 보고, 그걸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난 다음에야 이해한 것 같았다.
푸딩 포장지를 입에 갖다대어 안에 있던 내용물을 쏟아낸 뒤 물었다.
“……이건…… 안되겠지……?”
옆에 세워져있는 무기를 언제든지 잡을 각오를 하며 긴장하고 있자니, 안쪽으로 슥 들어온 아나는 잠시 냉장고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푸딩을 빼앗아먹을 도둑놈(동료)가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던 리르는 아나를 배려했던건지, 푸딩을 총 3개나 사두었었다.
그 중 하나는 이미 한 명에 의해 강탈되었으며, 나머지 하나 역시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다행인 점은 3개였기에 하나가 남아있었다는거겠지.
냉장고에서 꺼내, 숟가락을 들고 소파에 앉은 아나가 행복한 표정으로 푸딩을 우물거리고 있자니 그 모습을 보는 범죄자(동료)가 말했다.
“푸딩…… 진짜 좋아하는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아나 스타피트’라는 인간은 만약 삼시** 먹고싶은 것만 먹을 수 있다면 세 번 모두 푸딩만 먹을 정도의 괴짜라는걸.
도저히 이해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는 인간이었다.
“……푸딩이 제일좋아…….”
“예…….”
세 개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저 숟가락에 올려져있는게 본인의 머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담겨있던 푸딩을 후루룩 되말아먹은 범죄자(동료)가 무단침입한 도둑처럼 살금살금 출입문으로 가더니, 그대로 내뺐다.
그런 그가 도망치던 말던 먹기에 바쁘던 아나는, 이윽고 비어버린 푸딩을 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차원종의 토벌을 하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푸딩을 먹어치우면 사라지는게 당연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되뇌이며, 다음 작전이 시작되기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신강고, 뒷문 너머에 있는 화단.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의 풀을 하은이 짓밟았다.
“……후우…….”
마음 속에 감도는 기이한 감정이 그제서야 밟혀 사그라들었다.
온 머릿속을 헤집는 감정이 그제서야 죽어 사라졌다.
이상하리만큼 자극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런 행위밖에 없었다.
‘빼앗는다’는 치졸하고도 잔인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연하은’이라는 하나의 인간으로 남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근래 수많은 차원종들을 썰어넘겼지만, 그 때마다 있어선 안될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갑피를 가를 때엔 쾌감이, 근육을 자를 때엔 즐거움이, 목숨을 빼앗을 때에는 감정이 절정에 다달아, 몸이 움찔거릴 정도였다.
식어져있을 심장이 싸울 때에만 뜨겁게 달구어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있을 뇌의 용량을 가득 채우고도 한없이 펼쳐질만큼 커다란 두근거림이 생기고 있었다.
죽어버린 시체에 푹푹 창을 찌르거나 하는 습관마저도 생기고 있었다. 그것들이 다시 일어서주었으면 좋겠다는, 해서는 안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죽임으로서 생기는 ‘카타르시즘’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욕망을 배출해내는 듯한, 더럽혀진 모든게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만 같은 그 감정은─스스로 떠올리기만 해도 역겹고 불쾌했다.
“욱…….”
촤아악, 뱃속에 든 게 없는만큼 나오는 것도 없었지만, 겉보기상으로 먹었던 것이 식도를 통해 솟아오르더니 약간의 위액과 함께 지면에 내쳐졌다.
잊으려고 할수록 떠오르는 그 괴로움에서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변해간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잠에 들 때면 늘 악몽을 꾸고 만다. 세상이 벌레로 뒤덮히는, 그 가증스럽고, 태워죽여도 모자랄 벌레로 뒤덮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신의 입을 억지로 열고 벌레가 기어들어가 그 안에서 알을 배설한다. 위액마저 녹이지 못하는 알 속에서 새로운 벌레가 태어나고, 입 속으로 내뱉어진다. 배를 찢어 나오는 자궁에 억지로 생식기를 우겨박아 그것들이 강제로 ‘그것’을 사출하는 것은 악몽이라 해도 끔찍할 정도였다.
“웩…….”
떠올리는 순간, 또다시 목을 차고 내용물이 솟아올랐다.
꿈이라고는 해도 너무나도 생생한 그것은─아마 알파나이트가 실패했을 때 벌어지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번식력이 좋으며, 어떤 인간을 모체로 쓴다 해도 괴물이 우수수 쏟아져나온다.
알을 대거 낳는 벌레들은, 하나의 인간으로 수백수천의 괴물을 양산한다. 그야말로 재앙인 것이다.
“하아…… 하아…….”
타는 듯한 목을 붙잡고, 끓는 듯한 배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왜, 어째서,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기 시작한걸까.
이해할 수도 없는 굴레 속에 엉켜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스스로를 저주하며 계속해서 되물었다.
무엇이 변화시켰는가. 어째서 변화해야만 했는가. ‘왜’ 변화되었는가.
이유도 원인도 없이, 막연히 달라졌다고 해서 알겠습니다, 하며 받아들일 수 없지 않은가.
아니, 그 연구자 놈들이 무언가를 했다면.
죽는 그 순간에 무언가를 해버렸다면. 하은이 죽기 전까지 무언가를 했다면, 죽은 후에까지 무언가를 했다면 분명히 무언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져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죽이는 행위에 쾌감을 느낀다니.
자신을 변하게 만든 연구자놈들을 영원히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며 분노를 불태우는 동시에, 허공을 밟는 듯한 풀숲의 가련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싸우는건 낮이면 충분하다 여겼는데.”
“싸우러 온건 아니니까요.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허공을 밟는 듯한, 따위가 아니다.
정확히 허공에서, 공중을 밟은 채 있는 그것은 불길한 눈동자를 빛내면서 하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로운가요?”
“……뭔 헛소리……”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악몽에 시달려 괴로우신건가요?”
─그걸 어떻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모를 터인 자신의 개인사를 아주 간단하게도 밝혀버리는 그것에게서 무언가 불길함을 인지한 하은이 창을 치켜들었다.
구토를 연속으로 한 것 때문에 당장 목이 쓰라렸지만, 지금 느껴지는 불안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그것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게 당신이 원했던 모습인데…… 스스로 부정하는걸 보니 안쓰럽군요.”
“……내가 원했던 모습은 이런게 아니야.”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수많은 형체 중 하나겠죠.”
“이렇게 망가진건 내가 아니야!”
후웅!
허공을 내젓는 창은, 그 질량만으로도 강풍을 일으켰다.
분노가 담겨있는 창질, 붙잡은 손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핏줄이─분명 피가 흐르지 않을텐데도─서 있었고, 바득 갈린 이는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련한…….”
“닥─쳐어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시선이, 그 동정하는 듯한 시선이 역겹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역겨워서, 싫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싫어서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닿지도 않은 채 허공을 핑글 내돈 창은 어색하게 한바퀴 돌았고. 한 걸음 폴짝 뛰어 뒤로 물러난 그것이 말했다.
“어째서 자신에 대해 그렇게 모르는거죠?”
“나는…… 나는 이런게 아니야…….”
“그럴 리가.”
“나는 이렇지 않아!”
강한 부정을 내세우며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마음 속 한 켠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하면 할수록 편해진다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아아아아!!”
퍼엉!
신강고의 뒤편에서, 자그마한 폭음이 일었다.
“가여운 인간…… 아버지의 은총을, 그 은혜를 받아들이기만 하더라도 지금의 몇 배는 강해지고…… 몇 배는 편안해질텐데.”
그녀를 비난하는 듯한 말과 함께 하늘러 떠오른 그것은, 이윽고 고개를 젓더니 사라져버렸다.
그곳에 홀로 남은 하은은, 창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이상하리만치 붉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창을 붙잡은 채,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렸다.
바람소리조차 두려워 다가오지 못하는 학교의 뒤편에서, 한참 눈물을 흘리던 하은이 정신을 차린 것은, 새벽의 닭이 울 때였다.
“이런건…… 내가 아니야…….”
부정에 부정을 덧씌어, 이제는 목이 메여 말조차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정도로, 스스로를 부정하고 거부하고 싶었다.
죽고싶을 정도로─
“정말, 여기서 뭐하는거야?”
그 때, 마침 뒤에 누군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풀을 사박 밟는 가벼운 소리와, 마치 책임을 묻는 듯한 하이톤. ─뒤돌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법한 상황에서, 자신의 눈으로부터 새어나온 피눈물을 닦아내었다.
“……그냥, 순찰 정도…….”
“그래? 다른 일은 없었어?”
“……응.”
아마 이슬비 정도의 눈치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지면에 흩뿌려져있는 핏물과,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화단.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자.”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걸음을 돌렸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건 어쩌면 하은에게 있어서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한 마디라도,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물어봐주기를 원했던 하은은, 자신이 말했던 긍정의 대답을 강하게 주먹을 쥐며 후회했다.
차라리 모두 말할 수 있었더라면. 차라리 구박했더라면. 몰아붙였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이 마음에 깃들어있는 이상을, 자신의 변화를 토로할 수 있었다면…… 이 이상 어긋나지 않았을텐데.
계속해서 후회했다.
혼자서 고립되기를 원했던 자신의 선택을, 몇 번씩이고…….
───
안녕하세요, 글-쓴이입니다.
9화까지 온 시점에서 이미 조회수는 바닥을 치고 있지만 어쨋튼 완결을 낼 생각입니다.
아직까지도 봐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