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7화> : 패배와 첫 굴욕
AI미스틱 2020-10-18 0
*설정이나 컨셉, 혹은 오류가 있는 경우 지적해주십시오.*
*늘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초에 그러한 이가 있었으니, 하늘에 떠오른 신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내리고자 하시었다. 그러나, 지상을 가린 악룡이 끝내 신을 잡아먹었으니, 세상에 드리운 빛 한줄기마저 멸살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전설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지 않았다.
속에 감추어둔 신앙을 내뱉어버리고, 세상에 가득찬 마약이라는 이름의 사악을 먹으면서, 그저 형편없는 괴물로 전락할 뿐.
그런 어리석은 인간 무리 속에서도, 저항하는 이가 한둘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제는 끝인 듯 싶군요.”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세계를 지배한 검은 괴물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마약같은 극독의 안개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고자 했다.
자유를 갈망하며, 새로운 태양이 맑은 하늘에 떠오르기를 바랬다.
허나, 그런 날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오지 않았다.
오히려, 두 번 다시 하늘을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찾아올 뿐이었다.
원탁 위에, 소년이 무언가를 흐드러트렸다.
인원수만큼 만들어져있는 그것은 USB. 총 15개의 USB였다.
“우리가 여태껏 쌓아올린, 역사와… 그들의 정보. 그것이 모든 것입니다.”
“적군요, 무척이나…”
고작 USB 하나에 모두 들어갈 정도로 적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압도적으로 패배했기에, 얻을 수 있는 정보 역시 극소.
이제는 이 저항군이라는 개념조차, 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전 세계에 있는 인구가 아직도 수 억이나 되었지만, 그 모든 이들이 한 번 맛들이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극독의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그런 지독한 세상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꼬마일 터인 자신을 믿고 이곳에 있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지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표해야겠지.
“그런데, 이 USB는 어째서…”
그제서야 중대한 사안을 물어본 한 남성에게, 소년이 입을 열었다.
“이곳의 위치가 저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런…”
지하 몇 미터인가 이곳이.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안개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수없이 애를 쓰고 쓴 끝에 찾아낸 유일한 안식처.
그곳이 발각당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일부러 유출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제 선택입니다.”
─UBS에 담긴 것은 쌓아온 모든 것.
“살고싶다면 USB를 가지고 피난 행렬에 들어가세요.”
적어도 이 정보들만큼은 가지고 가야만 했다.
최소한 대응 가능한 괴물들의 약점을 기록했으며, 저들의 수장에 대해 기록된, 우리의 모든 것.
이 모든 것을, 여기서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다음을 위해, 그리고 자유를 위해, 남겨서 넘겨야만 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의무.
허나.
“…대장은 우리가 움직일거라 생각했나요?”
“어차피 들킨 이상, 도망칠 사람들을 제대로 도망칠 수 있게 하는게 우리가 해야할 일 아닙니까?”
“수류탄이라도 목에 걸고 싸우면 되지 않겠어요?”
하나같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자신의 화기를 확인하는 모습에 헛웃음을 내었다.
그 헛웃음에, 한 명이 반응했다.
“여기 모두 갈 생각 없는데, 대장은 안갑니까?”
‘도망쳐달라’는 듯한 목소리에, 소년이 웃었다.
“─내가 대장인데, 어딜 갑니까?”
“하지만 USB를 갖고…”
“여러분들 모두 가지 않을거라고 예상을 했었죠. ─그래서 적임자를 따로 찾아놨습니다.”
그 소년은 이제쯤 이곳을 벗어났겠지.
이미 그것들이 들이닥칠 시점에서, 모두가 살아나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모두 죽는다, 이 안에서.
변하지 않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살아남기위해 발버둥 친 결과일 뿐이었다.
“정문은 제가 갈테니, 여러분은 다른 곳으로.”
“정문이 제일─”
“이건 명령입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제가 가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라서.”
단호하게 말한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앞에 있는 USB를, 허리춤에 있는 권총으로 겨누어 부쉈다.
그 작은 아이가 실패한다면, 더 이상 방도가 없었다.
남기로 한 이상, USB는 의미가 없었다.
“죽으러 가죠. ─이 빌어먹을 세상에 태양이 떠오르길 빌며.”
─죽음 끝에, 비로소 자유가 있기를.
총칼을 거머쥐고, 죽음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수없이 많은 시간이 지나고, 세기가 바뀌고.
얼마나 오랜 나날이 지났을까, 저항할 의사도, 의미도, 지식도, 힘도, 용기도. 마음조차도 꺾여 사라져버린 인간은 그저 괴물들의 먹이이자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나마 저항하던 이들은 어딘가 깊숙이 숨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들키는 날이면 그 즉시 멸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자들은 착실히 살아갔다.
손에 거머쥔 USB를 들고 뛴다.
그들이 남겨준 유산이자, 인류가 쌓아올린 업.
뒤에서 무언가 쫓아오고 있었다.
대지를 울리며, 숲을 쓰러트리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쫓아온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압적인 생각과, 오히려 죽는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한구석의 망설임이 한데 응축되어 얽히기 시작했다.
뇌세포처럼 얽혀서 무너지기 시작한 이성은, 본능만 남아 마치 정신병자처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느새부터인가 뛰어더니던 곳이 언덕에서 숲으로 변화해버렸다.
언제 변했는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괴물들은 느리지만, 착실히 따라오고 있었다.
살고싶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해도, 이 걸음은 멈추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터였다.
몰랐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 불합리한 세상을 알지 못했다면 편했을 것을.
그 옛날, 옆집의 아이처럼, 앞집의 이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수긍하며 살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먹혀 사라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어느새부터인가 환각이 보이고 있었다.
아니, 환각일까? 나무 너머에서 비치고 있는, 기괴한 색의 어떤 일그러짐은 보기만 해도 역겨워,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 안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감각에,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발을 내디뎠다.
파지직거리는 울림, 몸을 뭉개는 압력. 들어가는 것 뿐인데도 불구하고 으깨어질것만 같은 고통에 피가 울렁거리며 전신의 구멍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주르륵 새어나오는 상황 속에서, 온 몸의 혈관이 짜내어지는 듯한 격통이 들기 시작했다.
죽는다, 라는 생각이 한순간 스쳐지나갔다.
들어온게 잘못이었을까? 살아온게 잘못이었을까.
사람으로 태어나, 이성과 지성이 결여되어있는 채 그대로 살아가다 죽었더라면,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을까─
“─아…”
핏빛으로 물드는 시야 속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상하리만큼 낯선 건물들.
분명 터져나왔던 피들은 마치 환영이라도 되었다는 듯, 한방울도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으며, 아주 짧은 시간 걸었던 주마등같은 시련은 어느샌가 사라진 채, 자신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여긴…”
간신히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은 아무도 없는 한산한 곳.
도시처럼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
모두 무너져내린 고향과는 달리, 아직도 고고히 그 높이를 자랑하는 고층 빌딩들의 향연.
아무도 본 적 없는 세상을 바라보게 된걸까, 아니면 태양마저 모조품으로 만들어낸 고대 종족의 세계인걸까.
혹은, 전등을 틀어놓은, 잘 만들어진 지하세계일까.
아니면 지옥이거나.
아마, 지옥이겠지.
뒤를 따라 나온듯한 기이한 괴물들이, 천천히 다가오는게 들렸다.
땅을 울리는 진동과, 초저음의 기음이 귀를 찢는 듯 했다.
그런 상황에서─
─퍼억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그런 소리가 울려퍼진건지 잘 모르겠지만, 동시에 땅을 울리는 진동이 사라졌다.
살고싶다는 마음에 꾹 감은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앞에는, 신발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고개를 올리자, 신발을 신고있는, 그 소년의 생각으로는 절대 저렇게 클 수 없다고 여겨지는 키를 가진 장신의 남성이 있었다.
“괜찮니?”
순간 눈물이 새어나왔다.
도시, 그리고 사람.
인간은 문명을 빼앗기고, 죄인처럼 살았다.
무법지대로 변한 세상에 내려진 것은 마약같은 중독성을 띈 극독.
마시면 두 번 다시 원래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 세상을 보고 자라왔다.
허나, 이곳은 어떤가.
맑은 공기. 당연하다는 듯이 떠오른 태양과, 푸른 하늘.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
태양이 뜨기를 그토록 바라고 원해왔거늘, 왜 우리에게는 저런 세상이 비치지 않았던 것인가.
─아마도, 약함이겠지.
치사할 정도의 약함. 비겁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약함.
그렇기에, 저 태양도 우리를 버렸던 것이리라.
“…괜찮은건가?”
“…네…”
대장에게서 받은 USB는 아직도 쥐고 있었다.
부서진 곳 하나 없이, 자신의 몸을 부러트리더라도 지킬 각오로 붙잡고 있었기에 당연한 노릇이었다.
“저…”
무기를 가다듬는 그에게,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저항군인건가요…?”
“…저항군…?”
그는 모르는 듯 싶었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규모도 적은 저항군이 알려질 일은 없었고, 무엇보다 적의 세력은 바다보다 거셌으니까.
하지만 해외에는 분명 더 제대로 된 저항군이 있을거라 믿은 채, 계속해서 정보를 축적했다.
언젠가 만나기를 기원하며─
“난 유니온 소속의 클로저인데…”
“…에?”
유니온이라는건 듣도보도 못했다.
그도 그럴게, 바로 옆집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직접 옆집으로 향해야했으니까.
기술을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투쟁심 뿐인데.
하지만 이따금씩 바깥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에도 ‘유니온’이라는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렇게 쉽게 괴물을 죽이는 사람이 있는 단체따윈…
“단아 요원님, 끝났나요?”
“예, 근데 애가…”
“애가 있었나요?”
“차원문 너머에서 넘어왔습니다.”
“…예?”
그 말에, 잠시동안 스피커에서 나오던 목소리도, 심지어는 이곳에 있는 남성도, 말을 잇지 못했다.
우긱, 끼이익…
비틀어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수 톤의 철로 이루어진 질량의 문. 어지간한 괴물로는 뚫지 못할 화력을 동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철문은 의미없이 열린다.
과연 괴물이라고 부를만 했다.
“이런 곳에 꼭꼭 숨어서, 숨바꼭질은 이제 끝입니까?”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의 사이로 누군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키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인간의 규격 내는 아니었다.
그것은 성인 남성 둘을 이어붙인 것만큼 컸고, 그만큼 강대한 힘을 가졌다.
직경 13m, 높이 20m짜리 철문을 힘으로 비틀어 열 정도였으니, 적어도 그는─
“인간은 1만여 명, 북동쪽으로 하나가 빠져나갔지만,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가만히 놔두는것도 상관없겠지.”
“…당신이 그걸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보는 본인의 눈을 속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까? 가소로운 일이군요. 지금쯤 처리가 끝났으면 좋겠지만… 오랜만에 하는 ‘사냥’인지라, 다들 너무 느긋하게 즐기는군요.”
“…사냥이라, 당신들에겐 우리가 고작해봐야 사냥감으로 보인다는건가?”
“꼬리를 감추고 이빨을 뽑으면 맹견이 순종한답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야생으로 도망친 맹견이 이빨이 뽑혀있다면 그 때부터는 사냥감인겁니다.”
그리 말하며 안쪽으로 발을 디딘다.
그 너머에 보이는 지독한 검은색은, 안개와는 다른 불안감이었다.
“…안개를 몰고오진 않았으니, 걱정은 하지 마시지요.”
“…배려인가?”
“오랜만에 나타난 1만마리의 사냥감이 있는데, 안개에 취해버리면 아랫것들이 즐길 시간이 없으니…”
“자비가 없군.”
한 줌의 대화를 나누니,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본 적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대장처럼 보입니다만… 부하를 대동하진 않았군요.”
“그쪽도 없잖아?”
“있어도 걸리적거릴 뿐이기에…”
“말투도 X나 거슬리고, 그 체구로 잘도 그런 말을 쓰네.”
순간, 무언가가 터져오르는 것 같았다.
입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공격을 받았나?
아니, 공격따윈 받지 않았다. ─그래, 그의 이마에 서 있는 핏줄. 그 핏줄이 한 번 세워진 순간, 몸에서 피가 울럭거렸다.
입을 틀어막자, 손의 틈새로 피가 흘러내렸다.
“하등한 것이라 해도 대장이기에 나름의 예의를 갖추어주었거늘.”
“…엿이나 처먹어.”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아니, 온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제야 알았다.
어차피 아무도 살지 못한다.
빠져나간 한 명조차도 잡혀 죽을 운명이라면, 적의 머리처럼 보이는 개X식에게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주고 싶었다.
“유언이라면 하찮군.”
발을 들어올린다.
너무나도 거대한 발. 짓밟는다면─
─쿠직.
“유린해라. 한 줌의 육편조차 남기지 않고… 먹어치워라.”
너무나도 아득한 힘의 차이.
이럴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보험을 들어둘걸… 그랬… 나…
“어비스의 주인, 그리고… 그들이 모시는 ‘위대한 존재’.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있네요.”
“하지만 양이 적군요. ─정말 20년동안 모은게… 이게 전부인가?”
그 USB속에는 상당히 많은 정보가 있었다.
물론, ‘저항군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말이다.
터무니없이 적은 양의 정보. 그나마 나타나있는 정보라고는 추상적인 형체와, 크기, 그리고 나타난 장소 뿐.
“하지만 믿기지도 않는군. ─20년 전의 중국이라곤 해도, 고작 한 놈이 며칠 밤 사이에 중국 대륙을 지워버렸다고.”
“…네.”
저쪽 세계의 ‘지구’에는 ‘위상력’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탓에 화력만이 존재한다.
검은 그것은 미사일도, 폭격도 버텨내었고, 말기에 나타난 존재는 끝에 가서야 만들어진 ‘미완성’된 원자폭탄마저 무리없이 견뎌내었다고 한다.
이것이 ‘주인’이라는 건가.
“크기를 늘린 대신 강도가 약해졌을텐데…”
“그런데도 뚫리지 않는 갑옷이라니.”
그것은 첫 번째 주인의 이야기.
하늘을 검게 물들인 동양풍의 ‘용’.
그림으로 그것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그려놨으나, 그곳에 있는 것은 검게 칠해진 백지 뿐.
“…하늘을 덮었다는건가.”
“수평선 너머까지, 말인가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게 가능한건가.
이겨낼 수 없는 절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서유럽에 나타난 헤카톤케일도, 그보다는 작았을터인데…!
“…하지만 한곳에 계속된 공격을 하던 끝에, 외갑피 하나를 부수는데 성공했다, 라고 적혀있군요.”
“한곳에 공격을 집중해 고작해봐야 외갑피 하나…”
아무리 옛 적의 지구가 기술이 낡았다고는 해도, 그만한 공격을 퍼부어서 하나라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아니, 오히려 외갑피 하나라면 더 대단한걸까? 이곳 역시 위상력 없는 화력가지고는 D급 차원종에겐 총탄 한 발 박히지 않으니까.
“우리는 지금 이런 녀석들의 부하들과 싸우고 있다는건가.”
근래 들어서 자주 나타나는 차원문.
그 너머에서 나타나는 것은 차원종이 아닌, ‘어비스’로 명칭된 괴물들이었다.
“그래도, 이걸로 조금의 대비는 할 수 있겠군요. 유니온 상층부에 보고하겠습니다.”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아는, 자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것들 중 하나가, 아버지를 데려갔다. 어떤 방식을 썼는지 모르는 채로.
아버지는, 저런 괴물을 상대로 싸우며, 피 한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는건가.
스스로가 창피해졌다.
“…더, 강해져야…”
붙잡은 봉에 힘이 가해지니, 공간의 형상이 일그러져,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요원님, 어딜 가십니까?”
“…뒷정리를 조금 하고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단아가, 하늘에 몸을 실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을 오래 가지 않았다.
‘더 강해져야만 한다.’
압박감 속에 죄어오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생각 이상으로, 상상 이상으로 너무나도 거대하고 넓었다.
세상을 멸망시킨 괴물을 억압할 수 있는 인간.
그런 아버지처럼,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손에 쉰 봉을 휘둘러보았다.
강한 돌풍이, 건물 사이로 흩어졌다.
아무것도 상처입히지 않은, 부드러운 바람. 빌딩은 멀쩡했고,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재능이라 말씀하셨다.
처음 바람을 부렸을 때, 아무것도 상처입히지 않은 상냥한 바람이 휘어닥쳤다.
바닥에 기어있던 연이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린 바람으로는 아무리 해도 괴물을 죽이지 못한다.
“난, 아버지처럼 되지 못하는거겠지.”
정면으로 치고받는 싸움, 정정당당함.
그런 말도안되는 싸움을 할 자신이 없었다. 도시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싸울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
이상하리만큼, 아버지가 그리웠다.
“오랜만이군요.”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겠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빛을 낸다.
이번에는 일전과는 다르게, 이쪽에서 먼저 찾아왔다. 저쪽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을 열어 물어왔다.
“제 제안에 응한것이라 보아도 되려나요?”
그 대답 대신, 총구를 내어주었다.
“아니.”
“그렇다면 어째서 쫓아온건가요? 죽기 위해서?”
“너를 토벌하기 위해서다.”
이 순간을 위해 상부로부터 ‘리미트 제한 해제’를 허가받았다.
단지 다른 것도 아닌, 이 괴물과의 단 한번의 격전을 위해서.
높다랗게 세워진 빌딩의 전광판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빼고서는, 길고양이의 발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그녀가 웃었다.
“…꿈도 크셔라.”
새하얀 입김.
저 입김을 몇 번이나 영상으로 보았던가.
CCTV로, 관측영상으로 몇 번이나 보았던가.
─쿠과과광!!
정면을 뒤덮은 푸른 번개의 향연.
그것은 입김을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
지면은 물론, 건물마저 삽시간에 얼린 지옥의 냉기는 그 앞에서 턱 막혀, 더 이상 발을 들이지 못했다.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늘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건물 한 채만한 얼음가시가 떨어지고 있었다.
총구를 위로 향하고, 발사한다.
리미터가 풀린 광범위한 출력의 전뇌가 얼음을 밝혔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얼음조각이 하늘에서 눈발처럼 흩어져내렸다.
그 아주 약간의 공방 사이에 미소를 지은 설화가 입을 열었다.
“보면 볼수록 아까운 인재네요.”
“아까운 인재를 죽이기엔 너무 마음이 아프나?”
“아뇨, 가지고 싶어졌어요.”
섬칫.
발끝부터 머리를 관통하는 한기에 발을 굴려 공중으로 떠오르니, 지면이 새하얀 백지처럼 얼어붙었다.
‘더 빨라.’
일전에 보였던건 진심이 아니었나.
─퍼엉, 펑… 콰아앙!
공중에서 선회하며 몇 번이고 포격을 날렸지만, 이번엔 방심하지 않겠다는 듯 땅에서 솟아오른 커다란 얼음이 모두 막아내었다.
너머가 보일 정도로 투명한 얼음, 시야가 가릴 것을 우려한걸까.
발바닥에 위상력을 감아 착지하니, 미끄러지지도, 얼어붙지도 않은 채 안전하게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공방이 계속될지.
‘빈틈이 없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허점 투성이인 자세 모든 곳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모든게 페이크, 들어오는 순간 붙잡기 위한 카운터.
침을 삼켰다.
전쟁 시절에도 겪어** 못했던 두려움이 밀려올라온다.
“당신도 이쪽으로 오면 좋을텐데!”
콰드득!
지면을 뚫고 올라오는 얼음가시를, 곡예마냥 피해낸다.
허공을 딛고 밟아 올라가라. 건물을 침식한 얼음덩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검을 휘둘러라.
적의를 감지하고, 미리 의식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 당신이 복수하고 싶은 대상에게 복수할 힘을, 원하는 것을 이루어줄 힘을, 그분께서는 아낌없이 하사하시는데!”
“…말이 많군.”
틈틈이 날리는 포격은 어이없이 막히고, 포격을 받은 얼음에서는 얼음조각이 튀어나와 총탄처럼 쏘아진다.
번개를 휘둘러 중간에서 격추시키니, 지면에서 커다란 얼음 거인의 팔이 솟아올랐다.
“나와 같은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텐데!”
내려찍히는 공격을, 리미트를 해제한 포격으로 관통한다.
번개를 담은 검을 휘둘러, 남은 팔뚝을 양단해 부순다.
─콰과과광!!
그럼에도 번개는 저 너머에 닿지 않는다.
투명한 얼음, 그 무엇보다도 투명한 얼음이 그곳에 있다.
‘한 번에 꿰뚫는다.’
가능할까?
위상력을 압축시키면 압축시킬수록 위력은 강해진다. 하지만, 무기가 버틸 수 있을까?
푸른 번개를 담아, 이제는 아예 빛나기 시작하는 검으로 공간을 갈라낸 투명한 얼음을 꿰뚫었다.
─빠직
─와장창!!
불길한 소리, 그리고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간신히 절반의 거리를 넘어섰다.
공중에 떠오른 채,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자비한 공격을 피해낸다.
자그마한 파편을 딛은 채, 공중을 선회한다.
시야가 핑글 돌고, 뇌가 흔들려 울렁거리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건, 춤에 가까운 회피.
무리 없이 부드럽게 회피하는 그것은 뱀의 움직임을 닮았다.
“복수 뿐만 아니라,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할 기회조차 주어지는데!”
하찮은 소리다.
친구는 친구.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였지만, 이제는 지켜줘야할 꼬마들이 생겼다.
지키고 싶은 장소가 생겼다.
자신이 사라져버리면 그 누가 지키겠는가.
검을 앞으로 휘두르자, 궤적 속에 다섯 개의 번개창이 나타났다.
십자로 그어내리자, 서로 다른 곳에 처박힌 번개창은 서로 공명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위력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했다.
─위상 폭발
─콰과과광!!!
번개가 내려치는 소음.
격렬한 파괴음은, 지상의 어느 폭약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울림을 내고 있었다.
부디 먹히길 바랬거늘.
“역시 당신은─최고에요.”
눈꽃의 방패.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그것은, 자연의 힘마저 막아설 정도의 방패란 말인가.
그러나 멈추지는 않았다.
회전하며 땅에 착지하니, 이번에는 창같은 것이 바닥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뒤로 풀쩍 뛰어 피하니, 그곳에 창이 들고 일어나 마치 중세의 기마병사같은 것이 나타났다.
‘저런것도 가능한건가.’
사정상 하얀이 없는 싸움이라고는 해도, 불리하기 짝이 없는 싸움.
이길 수 있을까.
살의도 비치지 않는 적을 상대로 이렇게나 고전하는 주제에, 적을 베어낼 수 있을까.
─쿠과과광!!
포격과 얼음덩이를 교차한다.
뺨을 스치는 서늘한 얼음,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냉기를 떨쳐내고 땅에 발을 디뎠다.
“아아… 아아아아!!”
콰드드드득!!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얼음의 벽.
거울처럼 상대를 비추는 그 벽 안에서, 무언가 찌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압사壓死
─파지지직…
번개줄기가 나온다.
끝없이 새어나오는 번개줄기에 설화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리 클로저라곤 해도 몸이 뭉개진 상황에서 계속 싸울 수 있는걸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몸을 피한걸까.
쿠릉-쿵…
천둥소리가 들린다.
공간을 울리는 천둥소리의 근원지를 감각적으로 때려맞춘다.
“역시 당신은 최고─”
번개를 두른 주먹이 얼음을 제치고 나아간다.
반응속도의 우위, 동체시력의 차이.
아슬아슬한 속도로 먼저 닿으려던 순간─
“…확실히 이 눈으로는 반응하기 힘들군요.”
저쪽에서 처음으로 하늘에 떠올랐다.
허공에 붕 떠오른 그녀는 한참 멀리 간 다음에야 착지했다.
“당신은 최고에요. ─그 힘도, 마음도 가지고싶을 정도로.”
오싹, 하는 감각이 온 전신을 내달린다.
흉흉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온 몸을 죄어드는 핏빛의 눈동자였다.
“저와 함께 가는건, 아직도 고려사항이 아니신건가요?”
그리 물어왔다.
하지만 고려사항조차 되지 않는다.
─콰과과광!!
아득히 먼 거리에 있는 자가, 회유를 위해 가까이 다가온다. 그만큼 좋은 일이 어디있는가.
붙잡은 칼로 최대한 거리를 좁혀보고자 노력한다.
그것만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아쉽네요.”
퉁, 튕기는 손가락 소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가득 메운 얼음의 세계. 그 위에 떠오른 것은 리버스 휠만한 크기의… 거대한 검들.
한자루, 두자루… 총 여섯자루나 존재하는 그것은, 아까 전처럼 무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허공에서 무언가에 튕겨나듯 가속한 그것은 대지에 처박히고, 땅이 갈라진다.
천재지변, 그게 더 알맞은 일이 아닌가.
핑글 화전하며, 두 번째로 날아오는 공격을 비켜친다.
칼날 끝엣 밀어내듯이 처냈지만, 질량의 차이, 그리고 힘의 차이가 너무 강한걸까. 뼈가 부러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으…오오오오!!”
팔을 붙잡고, 전력으로 쳐낸다.
터엉! 하고 튕겨나간 얼음의 검이, 쐐**,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콰과과광!!
땅에 처박힌 그것을 바라볼 틈새도 없이, 다음 공격이 허공을 헤치며 날아온다.
정면에서 맞받아치지 않는다. 검의 측면에 칼날을 대고, 마치 슬라이딩하듯 미끌어진다.
─까가가가각!!
머리를 울리는 소음, 귀를 찢는듯한 소리에 얼음을 깎아내며 쳐낸다.
측면에서 가하는 그의 공격이 강한걸까, 날아오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궤도를 바꾼 얼음은 한참을 나아가 시가지의 집 몇 채를 쳐부쉈다.
쿠구구궁…
“역시 제가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기쁜 듯한 목소리와 함께, 검의 형태가 변한다.
얼음의 검이었던 것이, 둔탁한 망치로 변화하고, 치는 면적이 터무니없이 늘어난다.
봐주지 않겠다는 듯 떨어지는 그 말도 안되는 질량을 앞에 둔 채, 회피를 행하고자 하니 땅에 처박혔던 칼이 언제 변했는지, 얼음의 창이 되어 중력을 거스르며 올라오고 있었다.
‘뚫는다.’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할 수 밖에 없다.
두 손으로 붙잡은 검에 방대한 위상력이 주입되기 시작한다.
특A급 차원종의 잔해로 만들어진 무기라고는 하나,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쩌억…
처음 났던 금이 천천히 면적을 넓혀간다.
이게 부러지면 곤란한데. 한 번 만드는데 드는 비용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검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바깥으로 유출된 위상력이 천천히 날카로운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베는 것이 아닌 찔러 꿰뚫기. 커다란 면적에, 공격 범위가 크기 때문에 베어내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사이킥무브하듯 허공을 박차며 상승한다. 다가오는 얼음덩이의 하늘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쿠구궁… 구궁…
─터엉!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경쾌한 음색을 울리며 떨어진 것은 다름아닌 검의 조각. 부러진 검의 날쪽 부분.
총구부분까지 한번에 부서진 것을 확인한 다음, 끝이라고 생각한 설화가 숨을 내쉬었다.
“…안타까운 사람. 이깟 세상이 뭐라고.”
그를 알아봐주지도 않는 사람들과, 뒤에서 몸을 사린 채 지켜만 보는 인간들.
사지로 내몰리고 있음을 알고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최소한 시체라도 챙길 생각에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직… 파지직…
“…설마.”
그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오는건가?
땅바닥에 떨어진 커다란 얼음은, 지면을 거슬러 올라온 검을 으깨며, 눈사태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굉음이 모두 잦아들고, 얼음먼지가 다 사라진 다음에야 간신히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용케 살아남으셨네요.”
“놀랐나?”
“네.”
가볍게 대답한 그녀는 잠시 발치에 걸린, 얼어붙어 땅에 붙어버린 돌멩이를 걷어찼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아간 돌멩이를 내버려두고, 다른 돌멩이를 하나씩 걷어차기 시작했다.
어떤 의도로 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단순한 심심풀이일 뿐.
“죽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언제는 데려갈거라더니.”
“그분께서는 무엇이든 가능하시니. 그 분의 은총을 몸과 마음에 깃들이게 된다면 불멸을 이룬답니다.”
“불멸이라. 난 그런 이야기 질색인데.”
“저도 원래는 그랬었죠.”
“원래는?”
무언가 처음부터 인간이었다는 듯이 말하는 그 말에 유주가 물으니, 그녀는 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더 이상의 말은 삼가도록 하죠. ─어차피 의미도 없잖아요? 절 토벌하러 오셨다면서.”
“…그래, 그랬었지.”
더 이상 나눌 대화는 없었다.
토벌하기 위해 있는 사람과, 토벌 대상이 만난 이상 싸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문득 든 생각에 유주가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너 원래 인간이었던거냐?”
“…그건 왜…”
순간 설화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마치 말해선 안될 것을 말했다는 것처럼, 얼어붙은 표정에는 약간의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대충,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마치 옛날엔 인간이었다는 것 같아서 말이지.”
거기에 최근 칼바크 턱스인지 뭔지하는 차원종화 된 인간도 있다고 들었기에.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라. 외도가 아닌가?”
그 질문에, 설화가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아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가벼운 웃음부터 시작된 그 웃음은, 점차 광기를 띄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하하… 하─”
순식간에 끊어졌다.
“─이렇게 기분나빠본 적도 처음이네요.”
지네가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감각.
백족의 지네 백마리가 동시에 온 전신을 기어다니는 소름에 몸이 떨리고, 그런 몸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궁금하네요. 당신이 나와 같은 세계를 보게 되었을 때─그 때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고맙군.”
“예?”
덕분에 시간끌기는 적당히 됐다.
무기가 사라진 탓에 시간이 조금 필요했지만, 오히려 무기가 없었던 덕분에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수 있었다.
“…저건…”
“하늘을 밝혀라─”
창공에 떠오른 커다란 두 번째 태양.
새하얀 백색에, 푸른 오라를 두른 태양은 자그마한 대리인을 앞으로 내보내듯이 천천히 한 곳에 재충전되기 시작했다.
─결전기, 창공의 우레
번쩍하는 빛과 함께, 세계를 울리는 심판이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쿠구구궁… 구구궁…
레이저처럼 떨어지는 그것은 직경이 3m를 남짓했다.
맞는다면 죽어 사라질 것이 틀림없는 필살의 일격. 정면으로 맞고 버틴 존재는 유주가 상대한 괴물 중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S급 차원종으로 명명지어진 괴물마저도, 압도적인 출력과 고열에 녹아 사그라들었으니.
‘…무슨?’
순간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몸을 관통하는 오싹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상하리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느껴진 나머지, 하늘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움직이지 않는 구름이 있었다.
─정확히는, 얼어붙은 구름이.
‘성을 꺼내들지 않았더라면 위험했을지도.’
처음 보았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
공기가 휘말려들어가는 감각. 필시 고온에 의한 강한 상승기류에 의해 발생하는 것.
그것이 떨어지려던 순간 직감했다.
─막을 수 없다, 라고.
그 순간, 치욕을 느꼈다.
이곳에서, 고작 인간에게 막을 수 없다는 직감을 느꼈다는 자신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성 일부 소환
하늘에 드리운 구름이 쩌억, 하고 얼어붙기 시작한다.
수증기로 변해 올라간 물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그 구름을 얼리며, ‘얼음 성’이 내려온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힘의 크기가 결정된다.
얼음 성이 얼마나 많이 소환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까운지에 비례해 증폭하는 그녀의 힘은, 성이 완전히 소환되었을 때, 비로소 국가를 유린하는 괴물이 된다.
허나.
“대단하군요, 유주…”
─티딕…
눈꽃에 금이 가고 있었다.
일부라고는 하나, 전력을 개방한 그녀의 눈꽃 방패에 금이 가고, 천천히 깨어지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출력,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에 의심이 될 정도였다.
‘영웅’도 아닌 주제에, 이정도로 밀어붙일 수 있는 괴물이 정녕 있다는건가.
두근대는 심장이 혈액을 빨리 돌리기 시작한다.
점점 더 가지고 싶어지는 저 남자를, 빨리 이 손에 넣고싶었다.
붙잡아서, 몸도 마음도, 모두 빼앗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제 끝이군요.”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히 분해되어 사라지는 눈꽃과 그의 결전기.
저 정도의 위력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상력을 소모했는가.
이젠 한계에 다다랐을 그를 붙잡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
“자, 이제 비장의 수단도 끝났는데, 뭘로 절 토벌할거죠?”
모든 수를 써버린 그는, 지상에 내려앉아 두 팔을 축 늘인 채로, 간신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단지 물러서는 것조차도 힘겨운지, 계속해서 다가가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제게─”
“…시끄러…”
실수였었다.
그 번개는, 그 힘은, 한번에 내쏘아야하는 일격필살이었는데, 실수를 한 것이다.
산산히 무너져내린 힘과 몸은, 이제는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눈 앞에는 재해와도 같은 괴물이 있고, 몸은 엉망진창.
죽는다면 운명이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욱신거리는 몸에, 남은 모든 위상력을 돌리기 시작했다.
무식할정도의 출력을 내보내고 나서도 몸에 남아있는 잔여 위상력은, 평범한 클로저가 보기에도 결코 정상적인 위상력이 아니었다.
“…한계일텐데, 이제 그만하세요.”
“한계라,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이미 거칠어진 숨, 움직이지 않는 몸. 그리고 아까의 그 출력… 말하는것도 고작일텐데요.”
떠보기 위해 되물은 질문이었으나, 완전히 정답만이 돌아오는 그 말에 색바랜 미소를 지어올렸다.
“설마 이 상황에서 제가 당신을 놓칠거라 생각하나요?”
─몸이 한계라면 어떻단 말인가. 망가지면 어떻단 말인가.
앞으로 살릴 목숨이 한둘이 아닌데, 며칠 몇 주 몸이 망가져 움직이지 못하면 또 어떻단 말인가.
몸이 움직이기를 바라며, 두 손으로 붙잡은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빛 잃은 눈동자로, 저 너머에 흘러내려가는 태양을 쫓아라.
─한계를 넘어서.
“그럴리가요.”
한 발자국 강하게 내딛는 설화의 발.
동시에.
─쿠구구구궁-!!!
굉음이 울려퍼졌다.
아까 전의 천벌과는 다른 소음. 떨어진 벼락과는 다른, 천둥이 울리는 소리였다.
“…빨라졌다?”
파직거리는 몸을, 이끈다.
언제 불타 사라질지도 모르는 몸을 가지고, 전속으로 움직인다.
번개보다도 빠르게─빛보다도 빠르게.
그것의 눈이 바라보는 것보다도 빠르고, 막아서는 것보다도 강하게.
─쾅, 쾅!
지면을 차며 내달릴때마다 천둥소음이 울린다.
파직거리는 소리가 전방향에서 울린다.
“아직 벗어나지 않았다는걸 알아요. ─이런 수작이 통할거라 보다니…”
설화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의 소음이 그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그가 있는 장소에서 움직일 때마다, 움직이는 방향으로 번개가 따라 움직인다.
‘온다.’
좌측에 내려앉은 번개가 움직인다.
접근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반응해, 얼음으로 뒤덮는다.
─콰과과광!!
허나, 그곳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하물며 옷자락은 커녕 그림자조차 닿지 않았다.
‘가짜?’
뒤통수에서 찌릿한 기운이 느껴졌다.
얼음벽이 갈라서니, 약한 번개의 줄기가 막혀 사라졌다.
“오답이야.”
파직거리며 정면의 거리에 내려앉은 남성.
유주는 일전보다 창백해진 모습이었다. ─그런 몸으로, 그런 상태로, 그런 위상력을 두른 채 움직이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오히려 지금 당장 죽어도 모를 정도의 위험인 수준인데, 살아있는게 신기한 정도였다.
“오답이라 알려줘서 고맙네요. 이젠 놓치지 않을게요.”
대지에서 올라오는 단 한자루의 창.
그녀가 선택한, 세계를 얼리고, 복수의 불꽃마저 얼려 모든 것을 허망하게 되돌릴 단 하나의 무기.
순식간에 유주가 사라졌다.
또다시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음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이제 그 페이크에는 속지 않는다.
그는 그를 중심으로 해서 일정 반경의 영역을 가지고, 그 영역 어디에서든지 번개소음을 발생시키고, 울림을 전파시킨다.
허나, 그가 박차는 땅의 소리, 스쳐지나가는 바람의 갈라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량은 속이지 못한다.
귀를 믿지 마라, 눈을 믿지 마라. 믿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 선택한 결과만을 믿어라.
─아아, 터무니없이 잘 보인다. 그의 움직임이.
눈에 비치듯 훤히 머릿속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날쌘 고양이같은 움직임이었다.
이번 일격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그는 얼어붙을 것이며, 대적할 이는 하나로 줄어든다.
그리고 도시와 함께 얼려진 그를, 얼음성에 데리고 가서 그를 그분에게 진상해, 이 기분좋음을 선사할 것이다.
사람을 죽임으로서 해방되는 카타르시슴을─!
─콰아아아악!
창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도시가 얼어붙었다.
창문, 건물… 수백미터, 혹은 그 이상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이것이 성이 소환된 상태에서 검을 잡은 그녀의 힘.
압도당한 ‘절망’을 안겨주기 위한 그것은, 필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얼려죽일 창.
─촤아아악…
─쿠르르릉
그 순간, 소음과 함께 뒤쪽에 밑창이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지.”
─콰아앙!!
지면이 깨지면서, 그가 사라진다.
얼어붙어, 그분의 은총을 받아야 마땅할 우리의 동족이, 나의 그가 사라진다.
서둘러 창을 돌려봐도, 그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천둥소리는 저 너머 멀리에서 울리고 있었으며, 창날을 앞으로 내밀었을 때엔 소음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감히 제게… 이런 굴욕을…”
성을 소환하고, 눈꽃이 부서지고, 심지어는 창까지 꺼내들었거늘, 마지막에 남은 것은 놓쳐버린 대어 한 마리.
“으… 으…!!”
분을 삭히지 못해 창을 있는힘껏 휘두르니, 문화로 가득 찼던 거리가 완전히 얼어붙어 사라졌다.
“인간도 남지 않고… 싹다 사라졌다고…”
그와의 싸움에서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결국 잃은 것은, 그녀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