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자작] 하늘새 팀의 평범한 추석
AI미스틱 2020-10-04 1
"여전히 변하는게 없네요."
"변하는게 없다 하심은?"
"모두가 함께 지내던 그 날과 다를게 없다는거죠."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이런 명절에는 1년에 몇 번 바라보는것조차 힘들었던 음식이 나와 눈과 입을 호강케끔 만들었다.
지금도 그 날과 다를건 없었다.
언제나 같은 날 속에, 아주 잠시 스쳐가는 명절을 기쁘게 보내는 것. 그게 전부. 단지 다른 것은 저곳에 자신들이 없다는 것 뿐이다.
"하얀은…"
"밖에 있습니다. 자기는… 들어올 자격이 안된다면서."
─친구를 잃어버렸다.
어린 나이에 잃어버렸을 뿐이지만, 잃어버린 채 영영 찾지 못했다.
그것을, 자신의 탓이라 돌리고 있었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아직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거에요.“
과거에 얽매여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누군가는 그리 말하겠지만, 적어도 그 과거에 잃어버렸던 모든 것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과거에 묶여버린 망령인겁니다.”
잃어버린걸 되찾고자 차원 전쟁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끝에 찾은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진실과 허망함 뿐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곳은 정말 많은게 바뀌었군요.”
다 허물어져가던 고아원은 어느새 새 지붕을 짓고, 기둥을 새로 도배하고, 벽지를 붙이고, 바닥을 닦아내고. 어릴 적에 지내던 곳과는 사뭇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쓰러져가던 서랍장은 매끈한 면을 가지게 되었고, 모래알갱이가 굴러다니던 바닥은 물청소까지 한 듯 맨들맨들거렸다.
“다, 여러분의 덕이죠.”
“...그렇군요.”
바깥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이곳 안까지 흘러들고 있었다.
“명절을 맞이해서 여기까지 온 건 좋지만... 혹여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휴가입니다. 몇 년만에. 고작 하루 정도지만요.”
그 오랜 시간, 차원종만을 불태우며 살아왔다.
십 여년을 그리 세어오다가 내어준 자유라는게, 고작해봐야 하루.
그것도 이 도시 외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한 휴가였다.
어차피 갈 곳도 없었고, 자유를 얻는다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이곳으로 왔을 뿐, 다른 의도는 딱히 없었다.
하루 정도라는 말을 들은 수녀님은, 안쪽 서랍장에서 봉투 하나를 가져오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겠나요?”
“부탁...이라 하심은?”
“저 아이들과 단 하루만이라도, 일상을 같이해주세요.”
일상이라.
그것은 참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부모를 모두 잃거나, 혹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에게 일상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채 복수귀가 되었었던 자신에게 일상이란 무엇인가.
평범함따위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그에게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수녀님은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안될지도 모른다는건, 알고 있어요.”
평범함이 잊혀진 사람에게 일상이란 망가진 것 뿐이다. 그런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단 하루만이라도.”
아주 잠시만이라도 좋았다. 단지 그거면 충분했다.
당연하다는 듯 찾아오는 명절 속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그들에게 ‘다름’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밀어진 봉투를 바라보던 유주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유주...”
“사비면 충분하니까요.”
고아원의 돈은, 다른 날에 쓰는게 더 좋았다. 기왕 바깥에서 보내는 하루라면, 마지막일지라도 자신이 내어주고 싶었으니까.
살짝 남겨져있는 찻잔을 내려둔 채 바깥으로 나서자,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러자, 문 바로 옆에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앉아있던 하얀이 반응했다.
“수녀님과 이야기는... 끝난거야?”
“그래.”
“어떻게 됐어?”
반쯤 잠겨있는 눈으로 쳐다보며 하얀이 묻자, 그에 대해 등을 비치며 복도를 걷던 유주가 답했다.
“하루. ...고아원 아이들과, 놀아달라고.”
“...그렇구나.”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것 같았지만, 거의 반쯤 잠에 잠겨서 지내는 그녀에게 있어서 그 정도 반응이라면 최선의 반응이리라.
어지간한 자극 없이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그녀였던지라, 일상에는 늘 저런 식이었다.
유일하게 일상 속에서 반응해서 깨어났던 적이라면, 운송요원인 선우란의 폭주 정도였었나.
고아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유주는 어느샌가 이야기를 들었는지 몰려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를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많았던 숫자였다.
솔직히 말해서 차라리 차원종 떼를 상대하는게 더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줄로 서라.”
너무 난잡한 통에 한 마디를 툭 던져보았으나,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일렬로 서는 그 모습에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평소에 무슨 일을 하면 이런 말에 익숙하다는 듯이 반응할까.
“저기요, 저기요!”
“응?”
마침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시선을 옮기자, 오른 손을 번쩍 든 아이가 물었다.
“원장 선생님께 들었는데, 우리 밖에 나가요?”
“응? ...어어, 그럴거야.”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많은 인원이라면 밥 먹이기 이전에 자기 지갑부터 먼저 신경을 써야할 것 같았다.
잠시 지갑을 둘러본 유주는 여유잔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받았다.
몇몇가지 개인적이고 사생활적인 질문을 제외하고 모두 답변해준 다음에야 고아원 문을 나섰다.
한줄로 쭉 서있는 아이들은 용케도 줄을 흐트리지 않고 주르륵 따라왔으며, 하얀은 그 줄의 맨 끝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한 줄로는 결국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두 줄로 바꾸고, 가장 많은 표를 받았던 중국집에 들어서니, 큰 식탁 세 개를 모두 채울만큼의 아이들이 앉고 나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많기도 해라.”
“그리고 많이 먹겠지. 애들이니까.”
─그렇네.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의 세례와, 들어갈 때마다 올라가는 금액에 조금 마음이 흔들릴 뻔 했지만 한 번 말한 것은 물리지 않기로 정했기에, 억지로 참으며 이마를 짚었다.
“나도 비싼거 먹을래.”
“...”
그런 와중 하얀에게도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의도치 않은데 1인분이 더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 와중에 음식이 나왔음에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 이유를 묻자, 곧장 답했다.
“다 같이 약속했거든요.”
“약속?”
무슨 의미인지 그 때에는 몰랐지만, 모두에게 그릇이 나뉘어지고 난 뒤에야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가 갔다.
“잘 먹겠습니다!”
식당이 떠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그대로 아이들이 나무 젓가락을 뜯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순간 귀를 막았다가 허탈한 나머지 손을 뗀 유주는, 자신의 앞에서 함께 먹고있는 하얀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응?”
“아니, 잘 먹으라고.”
두 그릇도 아닌 세 그릇. 거기에 탕수육 대자까지 합쳐서 놓여져 있는 식탁의 모습에, 절로 이마에 올라가려던 손을 멈춘 유주는, 자기 앞에 놓인 면 요리를 보며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 날에 보았던, 그 한 그릇.
그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그 한 그릇.
“...잘 먹겠습니다.”
단지 달라진건, 식탁 앞에 놓인 사람들 뿐.
점심이 해결된 이후, 모처럼 나온 김에 공원을 들렀다.
아이들에게 너무 멀리 가지는 말을 해준 뒤, 시계가 3시를 가리킬 때 다시 모이자고 약속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우르르 몰려나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벤츠에 앉으니, 그 옆에 앉은 하얀이 물었다.
“...지갑, 많이 비었어?”
“...30%정도...”
카드는 들고다니지만, 어지간해서는 현금으로 결제하는 습관이 있었다.
왜 그런 습관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옛적부터 있던 습관이었겠지.
축 늘어진 채 지갑을 다시 집어넣으니, 어느샌가 무릎 위에 머리를 얹은 하얀이 말했다.
“나도, 조금 잘게.”
“...그래.”
하얀도 옛날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항상 제일 늦게 일어나서, 가장 빨리 잠에 드는 그녀는, 18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게 18년 전과 같았다. 단지 외형만 바뀌었을 뿐.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인기척에 한쪽눈을 슬쩍 떠보니, 그곳에는 언제인가 본 적이 있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웃는 얼굴로 서 있는 그것은 일전에 보았던 것과는 다른 ‘검은색’ 눈을 가졌으며, 언제나 그렇듯 미소를 지은 채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적으로 온 건... 아닌가보군.”
만남이 사뭇 달라서 그런걸까, 싸우러 온 것 같지 않다고 말하자, 몇 번을 말하느냐며 반박했다.
“우리는 분명,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을거에요.”
“그래, 그러시겠지.”
“제가 준 선물은, 잘 받으셨나요?”
그 질문에 유주는 침묵했다.
이런 외부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그랬을 뿐이었다.
그러자 상대 역시 그 점을 인지한 듯 사람 좋은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
“이 분은... 연인 사이신가요?”
“친구야. 오래된.”
“친구사이시군요. 무릎 위에 눕혀서 재워도 좋을 정도의.”
“그러다 한 대 맞는다.”
약간의 협박을 겸하여 말하자, 화내지 말아달라며 손사래를 친 그녀에게 유주가 물었다.
“그쪽도 명절이라는 개념은 있나봐? 적진일지도 모르는 이곳에 있다니.”
“그건 모르죠. 저는 어디까지나 ‘인간’ 출신이라서 단지 명절을 즐기는 것 뿐이니까요.”
“인간 출신...?”
“이렇게 말해도 모르실거에요. 하지만, 이제 제 고향에서는 이런 명절을 즐기지 못하기에 이곳으로 왔을 뿐이에요.”
내부 차원 출신이라면, 도대체 어디 출신이기에 고향에서 명절을 즐기지 못한다는건가.
아직도 차원종이 출몰중인 위험 구역인가? 아니면 차원종 출몰 이후 출입 금지가 된 구역인가. 아니면...
“...애들이 귀엽네요. 당신이 키우는 아이들인가요?”
“아니, 고아원 애들이야.”
“같은 출신이신가봐요?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휴가 받은 클로저가 애들을 돌볼 이유는 없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바로 앞에 선 채로 말했다.
“곧 폭풍이 들이닥칠거에요. 아이들이 웃으면서 놀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요.”
“...그건, 경고인가?”
“예고에요. 난 당신이 살아줬으면 하니까 이런 친절을 베푸는거에요. ‘용’께서는 이런 행위까지 금하시진 않으셨으니까요.”
“용... 헤카톤케일의 이야기인가?”
“글쎄요? 헤카톤케일 님은 서유럽에서 돌아가신걸로 아는데요. ─뭐, 제가 아는 모든 용들 중에서는 가장 위대하고 현명하신 분이셨지만요.”
“평가가 후하군.”
“실제로 그 분은 역대 용중에서 가장 위대하셨으니까요.”
어째서인지 쓸쓸해보이는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다시금 고개를 든 그녀는 이마에 두 손가락을 올려 약간 쓰다듬는 듯 했다.
“상냥하시네요, 당신은.”
“...그런가.”
스스로 상냥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적이면 불태우고, 베고, 찢는다. 단지 아군에겐 그러지 않을 뿐이었다.
그 차이가, 상냥함을 가른다는 이야기일까.
웃음을 내비친 그녀는 살짝 다가오는 듯 하더니, 이마에 살짝 입술을 갖다대고서는 이내 떨어졌다.
“선물이에요.”
“이런 선물은 필요없는데.”
“그건 조금 서운한걸요. ...그럼, 언젠간 다시 만나요, 클로저.”
등을 보이며 사라지는 그 검은 자태를 바라보고 있으니,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사라져버린 그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높이 솟은 첨탑의 시계를 바라보니, 서서히 3시로 기울고 있는 것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아이들이 점차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 언젠간 다시 만나지.”
아기자기하게 모여든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하얀을 깨우고, 일어난 하얀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난 유주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갈까?”
힘찬 소리를 등에 짊어진 채,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렸던 ‘일상’을 붙잡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덕담>
추석을 세어가면서, 많은 일이 있으셨나요?
맛난 명절음식 많이 드시고 여러분들께 좋은 일만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