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1화>
AI미스틱 2020-09-24 3
*기존 클로저스에 개인적인 수정을 가해보았습니다*
*특S급 차원종, 특A급 차원종이 있습니다. 단, 특A급 차원종과 A+급 차원종은 다릅니다*
*‘용’같은 군단장급 존재는 특S급으로 분류됩니다*
〈 되살아난 클로저 》
그날─나는 한 차례 죽었다.
깊은 공포가 몰려오던 날,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해충들과, 바다를 넘어온듯한 역겨운 무리.
그리고, 온 몸을 헤집어다니는 차가운 이빨까지.
기어다니는 으슬거림과, 검게 변화하는 시야 속에서, 나를 버리고 도망친 동료들을 원망하며 바다에 잠기는 듯 싶었다.
그래, 그대로 바다에 잠겼더라면 얼마나 편했을까. 애매하게 살아남지 않은 채, 그대로 숨죽여 사라져버렸더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유니온에서 파견된 클로저들에 의해 연구실로 옮겨진 날, 진정한 의미의 공포와, 도와주러 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절망을 알았다.
“네 동료들도 저기있지.”
그 한마디에, 원망의 말 한마디라도 내뱉고 싶었으나 고개는 채 돌아가지 않고, 간신히 숨이 쌔액쌔액 내뱉어지는 사이, 그는 상태라도 보여주겠다며 모니터를 틀어주었다.
하나는 상반신이 없으며, 하나는 내장이 헤집어졌고, 또 하나는...
별에 별 것, 보아선 안될 것과, 보고싶지 않았던 것.
심하게 훼손되어있는 시체에 어떤 원망을 퍼부으면 내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까? ...아니, 나아진다는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겠지.
그래, 꿈꾸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 뒤로 일어난 모든 일을 헤아려보면,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최악 뿐이었으니까.
살아서 겪을 수 없는 치욕, 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런 치욕이 있더라면, 차라리 그런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위상력을 부여받은 탓에, 죽어야 정상인 몸에 활기가 살아있었고, 떠나야할 정신이 그런 육신에 얽매여 있었기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장도 반쯤 뭉개졌군. 역시 위상능력자라는건가? 아니, 위상능력자도 이건 버티지 못할텐데. 삶에 대한 집착인가?”
팔다리의 형체는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고, 비치던 눈에 있던 후회와 절망조차도 파내어져 모든 것이 절망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큰 소음이 들려왔고, 소동이 끝난 다음에는 정적만이 남았으니.
편안해질 수 있다는 상상을 품으며, 꿈에 잠겼다.
하지만, 꿈은 꿈.
하늘에 도착해, 그제서야 끝났으리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의식이 돌아왔으니, 잃어버린 눈에 처음으로 비친 것은, 부산의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기이한 색의 땅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리의 너머로 비치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따뜻한 액체에 품어진 채, 코와 입에 호흡기를 달고있었던 나는, 갑작스레 유리를 가득 채운 누군가의 모습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는 한 차례 지긋이 쳐다보더니, 이윽고 무언가 장치를 조작하는 듯 싶었고, 동시에 물을 가둬낸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촤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내지듯 몸이 바깥으로 나왔으니, 그제서야 자신의 변화를 알았다.
분해되었을 터인 두 팔이, 두 다리가 어엿이 붙어있었고, 파내어졌을 두 눈은 정확히 빛을 포착하여 정보를 뇌로 보내고 있었다. 뿐만아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무거움, 그것은 차원 전쟁에서 연구실로 옮겨진 이후로부터 처음으로 느끼는 개방감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그토록 신기한 감각일줄 누가 알았으랴.
“음, 제대로 생각도 하고, 자기 상태도 파악할 수 있는걸 보아하니 괜찮게 돌아왔나보군.”
그리 말하며 몸을 돌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있는 녀석이야, 살고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만을 가진 채, 무의식적으로 자기 능력을 통해 생명을 유지할줄 누가 알았겠어.”
“...당신이, 날 고쳐준건가요?”
처음부터 들던 의문을 입으로 내뱉자, 그는 뭐가 신기하냐는 듯 대답했다.
“단지 신기하고 흥미로운 실험체를 발견해서 들고왔을 뿐이다. 뭐, 그런 식으로 데려온게 한둘은 아니지만.”
“...그런가요.”
“뭐, 내가 하고싶은건 다 해뒀으니 알아서 돌아가보던가. ...아, 그래. 지금은 전쟁이 끝났다더군.”
“...끝났, 다고요?”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의외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니, 그는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자젤의 소식이 들려와서 말이지. 군단장의 ‘용’이 추락하고, 열풍이 갈라졌다고 들었거든. 파리가 해충을 몰아내고 군단장의 자리에 올랐다고도 하고.”
“─해충...”
“...아, 그렇군. 초기의 그 상처들은 아마 해충놈들에게 물어뜯긴 흔적이겠지. 걱정은 그리 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 측에서 아마... ‘제이’라는 녀석이 며칠 밤낮을 거슬러가며 놈을 불태웠다 들었으니까.”
─몇 개의 팀이, 버림패로 쓰이듯 희생되었다.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방어선은 유지하는게 고작이었는데, 그런 해충 무리를 홀로 막아내고, 쓰러트린 괴물이 존재했다는 것인가.
“돌아가려면 기동성이 필요할거다. 군단 놈들이 억지로 열어젖힌 몇몇개의 차원문을 통과하려면 말이지. 아마 저놈이 적격일거다.”
하늘을 쏘아대듯 날아다니는 검은 색의 새. 빛 한줄기 제대로 비치지 않아, 인공조명을 만들어두거나, 혹은 스스로 발광하는 물체 없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저 하늘을 멋대로 날아다니는 새가 있다는건가.
아니, 애초에 그런 하늘조차도 볼 수 있는 자신이 이상한게 아닌가.
“너희 인간들에게는 ‘흑까마귀’라 지칭된 녀석이지. 아마 A급 차원종이었나?”
“...흑까마귀...”
들어본 적은 있었다. 공군의 억제기라고 해도 무방할 하늘의 폭군. 구름마저 물러나게 만든다는 그 날개의 풍압과, 바람마저 따돌린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속력.
흑까마귀는 하늘을 몇 번이나 선회하다가, 이내 은인의 손짓 한번에 지상으로 내려와 고개를 내밀었다.
“이놈이라면 군단을 따돌린 채 넘어갈 수 있을거다.”
“...제게 이렇게 해주는 이유는, 뭔가요...”
“흥미있는 실험체에겐 몇 번이나 계속해서 실험하지만, 이미 실험이 끝난데다 깨어나버린 녀석에게는 관심이 없거든. ─아, 그리고 네게는 알려주지 않은게 아직 있군.”
“알려주지 않은 것이라면.”
“심장은 고치지 못했어.”
그의 말에 따르자면 연구 후기, 위상능력자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위해 연구진은 끝내 망가진 심장을 꺼냈으니, 내가 다스릴 수 있었던 범위 바깥으로 벗어난 심장은 순식간에 터져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 어떻게든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았으나 이미 터진곳은 돌아오지 않았고, 간신히 능력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고.
“지금의 네 몸에는 피가 돌지 않는다. 그 탓에 몸도 차가울거야. 외형적으로는 문제없어보이지만 말이지. 뭐, 여러모로 흥미로운 개체였으니 괜찮은 결과로군.”
피가 돌지 않는 존재가 살아있을 수 있는걸까.
의문스럽기 그지없는 자신의 몸상태였으나, 직접 치료해준 사람이 그리 말하고 있으니, 그저 믿을 수 밖에 없었던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은, 차원종인가요?”
그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기구들을 챙기며 정리를 할 뿐이었다.
이윽고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마지막 기구마저 넣고 가방을 닫았을 때, 그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
“네가 정해라.”
그 한마디와 함께 사라졌으니, 마치 꿈같은 일이었다.
갑작스레 흑까마귀가 머리를 들이밀기 전까지 그저 멍하니 서있던 나는, 낮은 소리로 우는 흑까마귀의 목을 올라가 그 등에 올라탔으니, 하늘을 갈라내듯 크게 울부짖은 흑까마귀는 그대로 하늘을 날아오른 채, 작별인사를 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곧장 날아가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공기저항이 있었겠지만, 그 공기저항이 어떤 무의식에 의해 걸러져나가고, 편안한 승차감 속에 자신이 있는 차원을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씹어죽여도 시원찮을 괴물들과, 여기저기에 흩뿌려지는 핏방울들이 분수처럼 나오고 있었다.
그래, 이런 세계라도 무언가를 섭취해야지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겠지.
그렇기에 약한 것을 잡아먹는 일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우우우우...
갑작스레 들려오는 울음소리. 그것은 S급 차원종인 ‘베어-울프’가 내는 울음소리였다.
군단의 사냥개이자 위험 탐지기의 역할을 하는 그것은 위험한 것이 다가올 때, 혹은 그 외의 기타 사항이 존재할 때 크게 울며 군단에 위험을 알리는 봉화같은 것.
적에게는 저 울음소리가 강한 충격이 되며, 들리는 순간 온 전신에 경직을 부여하는 특수능력이 있다.
특유의 투명화에다가 철은 물론이요 합금마저 간단히 갈라내는 그 발톱은, 특A급 차원종으로 분류되었으며 민간인 피해에 지대한 공을 올린 탓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피해 규모를 축적하여 S급 차원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속도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앞서는 흑까마귀의 기동성이 있었던 탓일까, 소리가 울려짐과 거의 동시에 차원종 무리를 돌파했다.
그야말로 쾌속질주나 다름없었던 흑까마귀는 정확히 열려있던 차원문을 통과해 고향─지구로 돌아왔다.
─쿠궁...
나오는 순간 들려온 커다란 소리. 무언가에 부딪힌 듯한 충격. 흑까마귀에서 떨어져 하늘 높이 떠오른 나는 공중에 부유한 채 상황을 내려다보았으니 흑까마귀가 무언가를 부리로 강하게 찌른 채 반대편 빌딩에 처박혀있었다.
“...말렉?”
─특B급 차원종 말렉.
전투능력에 대해서는 A급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나 위상력의 출력과 범위 등을 고려하여 여부에 따라 A급으로 격상될 수 있는 랭크.
A급이나 특A급에 비해 사람들의 피해는 적지만, 차원 전쟁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클로저들을 썰어내기에는 상당히 좋은 수단이었던 그것이 도대체 왜, 전쟁이 끝난 이곳에 있는건가.
눈을 돌리니, 그곳에는 검은 붕대를 감은 채 두 눈을 부릅 뜬, 정장을 입은 특이한 남자가 있었다.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평범한 위상력과는 무언가 다른 기운이 엿보였기에 무언가를 캐묻고자 했으나, 갑작스레 차원문을 열며 사라지는 바람에 차마 붙잡지는 못하였다.
혀를 쯧, 하고 차며 다시금 말렉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서는 건물을 부숴가면서까지 크게 난동을 부리는 말렉과, 부리에 피를 묻힌 채 하늘로 날아오른 흑까마귀의 대치전이 있었다.
상당히 강한 데미지였는지, 배에는 구멍이 얕게 뚫려있었다.
“역시 말렉.”
평범한 차원종이었다면 몸이 관통되었겠지만, 오직 파괴와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파워형 차원종이었던지라 그 근육만큼은 단단한 모양이었다.
허나, 여기저기에 보이는 큰 상처들을 보면 딱히 흑까마귀가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지켜보기에는 클로저가 된 입장에서 차마 그럴 수 없었기에 적당히 말렉을 멈추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으니, 커다란 진동이 울리며 말렉이 처박힌 빌딩이 천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저걸 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걸까.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다.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그 수상한 남자가 여러모로 치료를 하면서 기억에 손을 댔다거나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 정도의 출력을 ‘평범하다’고 인식하게끔 만든걸지도 모른다.
빌딩을 막 들어내려던 찰나, 잠시동안 화를 식히던 말렉은 이윽고 뒤로 돌아 차원문을 열며 사라졌으니, 그제서야 끝난 작은 소동에 나는 한숨을 흘렸다.
“─구속구, 인건가?”
특B급 차원종이 이곳에 넘어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차원문이 필요했을 터, 하지만 그것은 그러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범한 말렉에 비해 출력도 약했다.
그렇다면 멀리 가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말렉의 목에 걸려있던 그 구속구였다.
아마 출력을 억제하는 무언가겠지.
그런 의식적인 수긍을 하며 나도 역시 발걸음을 돌리고자 하니, 옥상 위에 선객이 있었다.
“...말렉을 돌려보낸건가?”
“돌려보냈다라, 멋대로 돌아간거에 가깝지만요.”
그곳에는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백발의 남성이 있었다.
단련되어있는 근육은 그야말로 강철과도 같이 빛나고 있었으니, 두 손을 주머니속에 넣어둔 채 자리를 내어준 그가 물었다.
“멀리서 보기는 했어. 차원문에서, 그것도 흑까마귀를 타고 나오더군.”
“그렇군요. ─제가 차원종이라고 믿으시는건가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차원문 너머에서 사람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저를 어떻게 할 생각이죠?”
능청스레 물어보자, 그는 당연한걸 물어보냐는 듯 답했다.
“동행해줘야겠어.”
“...‘연 하은’. 그게 제 이름입니다.”
“하은... ‘제이’라고 불러주면 좋겠군. 아저씨는 아니야.”
“...당신이, 그...”
“응?”
“아니에요.”
고개를 저었다.
동명이인이라거나, 혹은 똑같은 가명을 쓸 수도 있었다. 누구든지 동경하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홀로 해충으로 덮인 바다를 정화할 정도로 강한 인간이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찌꺼기만 남은 위상력밖에 없는 그가, 고향을 구해준 그 남자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동행 요청을 수락하니, 그는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몇 번 뜀뛰기를 하고선 그대로 사이킥무브를 통해 날아갔다.
“엄청난걸.”
준비동작 없이 사이킥 무브, 그게 상당히 어렵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부웅, 하고 떠오른 몸은 먼저 떠난 제이를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느끼는 바람, 얼마만에 느끼는 바람인가.
고향과는 사뭇 달라보이는 거리를 바라보며, 옆에서 함께 가고 있는 제이에게 물었다.
“여기는, 부산이 아니군요.”
“여기는 강남이야. 최근 차원종 때문에 떠들썩해지긴 했지만.”
“강남...인가요.”
어릴적에도 와본 적 없는 강남의 거리라는 것은 이렇게 생겼을까.
사람들이 이토록 북적이는 모습은, 또 얼마만인가.
전쟁 내내 차가워진 시체나, 반으로 갈라져있는 괴물들, 혹은... 그런 핏덩이들만 바라보다 보면, 사람의 마음도 어느샌가 피폐해지기 마련이라는걸까.
고개를 저으니, 어느샌가 고도를 낮추는 제이에 맞춰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당신은 어느 팀 소속인거죠?”
“나? ...‘검은 양’이라는 팀에 소속되어있지. 뭐, 애들 보모같은 느낌이지만.”
“보모인가요. 그럼 특수관리요원인가요?”
“아니, 제의에 응해서 왔을 뿐이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착지. 몸이 상당히 안좋았던 것인지, 착지하자마자 허리를 두드린 그를 위로하듯 한 손으로 같이 두드려주니, 또 한숨을 내쉰 제이는 관리요원처럼 보이는 여성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말렉의 등장은 사실이었어. 이 눈으로 직접 보고왔으니까.”
“제이 씨는 또 멋대로 나간건가요? 정말이지... ...반응에 따르자면 ‘흑까마귀’의 출현 소식도 있던데, 그건 어떻게 된거죠?”
“그건 이제부터 설명해야겠지.”
그리 말하며 시선을 내게로 돌린 제이의 모습에, 해명을 해야하는 쪽은 바로 자신임을 깨달은 나는 옆머리를 긁고서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모르고 차원문 너머로 건너갔다가, 우연찮게 앉아있는 흑까마귀를 타고 도망쳐나왔다고나 할까요.”
“...뭔가 많이 빠진건 아니고?”
“그, 그럴리가요...”
차원 전쟁에 참여했었고, 한 번 죽었다가 외부 차원에서 부활했으며, 구해준 은인이 내어준 흑까마귀를 타고 이곳까지 날아왔다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차원 전쟁부터가 아웃이었다. 신체는 차원 전쟁 시절에 비하면 상당히 성장한 듯 싶었으나, 시간에 비해서는 상당히 어린 모습에 속했다. 완전하게 변한 것은 새하얗게 변색된 머리카락 뿐이다.
그렇기에 차원 전쟁때 있었다는 것은 상대도 믿지 못할 이야기였으며, 심지어 되살아났다는 이야기는 본인조차 믿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 여기저기가 나사빠진 이야기를 듣고서는 여성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선 말했다.
“지금 소속된 팀은 어디인거죠?”
“지금 소속된 팀...은...”
─솔직히 말해서 있기는 할까.
전쟁 시절, 모두 죽어서 없어졌기에 팀 자체도 사라졌을게 분명했다.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으려니, 그대로 고개를 저어버린 여성이 물었다.
“그럼 본명은 어떻게 되시죠? 클로저 조회를 해보면 되니까요.”
“아까 전에 ‘연하은’이라고 밝히더군.”
─말하지 말걸 그랬나.
미간을 붙잡은 채 과거의 나를 탓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던 와중 조회가 끝났는지 노트북을 뒤로한 채 다가온 여성이 말했다.
“해당 이름으로 기록되어있는 클로저는 없는걸요? 정말로 클로저인가요?”
“─네?”
클로저 명단에 없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록 말소를 뜻했다.
자신에게 다가온 뜻밖의 행운에 눈을 깜빡이며 반응하니 제이는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착각했을지도 모르지. ─뭐, 유정 씨. 여기선 사이좋게 넘어가자고.”
“그러면 안되죠! 유니온에 등록하는게 최우선이에요. 아시겠나요?”
“...네...”
여성의 안내에 따라 유니온에 등록하는 절차를 무려 몇 시간에 걸쳐 끝낸 나는, 그나마 관리요원을 통해 했기에 빨리 끝났다며 등을 토닥여주는 여성의 말에 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해졌는지를 먼저 떠올리기 시작했다.
전쟁 시절에는 분명 나이나 개인 정보에 관계없이 위상력에 각성한 사람이면 길바닥의 누워자는 노숙자마저 데려갔었는데.
‘내가 늙었나?’
워낙 구시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그런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니, 곁에 다가온 김유정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임시긴 하지만, 한동안 당신은 검은 양팀에서 활동하게 되었어요. 지부장님도 승인한 사안이고요. 저는 관리요원 김유정이라고 해요.”
“...연하은... 하은이나 연이라고 불러주세요.”
뭐랄까, 괜히 또 귀찮은 일에 휘말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흑까마귀는 어떻게 됐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