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마법사. 프롤로그
클라인다이나 2020-09-05 1
쨱쨱 울려퍼지는 한적한 새소리를 들으며.
청년은 한가롭게 커피를 타고 있었다.
얼름을 듬뿍 넣고 시럽은 무려 5번이나 넣은 달달한 아이스커피는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자극제 였다.
"가만, 오늘은 이걸 읽을까?"
손님이 적기에 청년은 카운터가 아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손님 대기 석에서 판타지 소설을 꺼내 읽어내렸다.
이미 차원종이라는 괴물들이 난립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판타지는 그닥 인기가 없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이야기였기에 매달 5만원은 꾸준히 책값으로 나가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책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딸랑딸랑.
손님이 오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었다.
하지만 손님을 확인하는 순간 청년의 얼굴은 너무나도 빠르게 일그러졌다.
"캬핫, 너무 티내는 것 아니야?"
"돈도 안내는 차원종한테 이정도면 양반 아닌가?"
긴 은발을 하늘거리며 요염한 미소를 짓는 어린 소녀.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아는 청년은 경계심을 한껏 높이며 노려보았다.
그런 그를 소녀는 너무나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클로저보다 훨났네. 대부분은 다 오줌을 지리던데."
"오줌지리는 나이는 지났으니까."
커피를 마시며 다시 책을 펼치려는 순간.
쾅!
충돌이 일어났다.
검은 섬광을 삼킨 황금개.
황금개의 내부에서 터진 덕분에 그리 큰 여파가 있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카폐의 전등이 터져버렸다.
"혜~ 반응 좋은데. 역시 마법사."
"몇번을 말하지만 난 널 도울 생각 없으니까 제발 오지 말아줄래?"
"뭐 어때? 이런 손님도 없는 촌구석에 나같은 미소녀가 오면...."
"동생까지 잡아먹은 괴물을 미소녀로 취급하고 싶진 않은데."
단칼에 소녀의 발언을 끊어버리는 청년은 아무런 감흥 없는 얼굴이었다.
상대는 차원종.
거기까지는 상관 없다. 청년에게 인간인가 차원종인가는 그렇게 큰 관심사가 아니니까.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차원종을 모조리 척살해야된다는 클로저들의 의견에는 도무지 동조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예외였다.
순수한 악의와 힘에 대한 갈망은 이성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존재.
원래라면 이렇게 한 자리에 있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지만, 청년은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자신이 갖고 있으니까.
"제안은 유효해. 나랑 같이 외부차원으로...."
"싫어. 거기 마법의 바람은 너무 정신 없어서 토나올 거 같단 말이야."
"걱정 마. 내가 안정화 시켜줄게."
"바람 구분도 못하는 주제 퍽이나 가능하겠다."
마법의 바람.
사람들에게는 위상력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청년의 눈에는 이것저것 뒤섞긴 엉터리 바람에 불과했고, 그것은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총량은 소녀가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같은 힘을 사용했다는 전제에서 청년은 결코 소녀에게 밀리지 않는다.
"애초에 난 내가 태어난 고향이 매우 매우 만족스럽거든."
"그럼 날 도와서 내가 여왕이 되게 만들어, 그럼 군단의 침공을...."
"아, 안팔아요. 돌아가요."
손을 휘휘 저으며 쳥년은 다시 책을 펼쳤다.
소녀는 인상을 와락 구겼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미 멸전된 로어의 마법사.
군단에서도 기록만이 남은 그 전설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동시에 정의감도 욕망도 없는 기묘한 인간인 탓에 소녀의 장기였던 유혹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친절을 가장한 방문으로 설득을 하는 중이었지만 그 인내심도 슬슬 한계에 봉착한 것 같았다.
마음같아선 이 건물체로 날려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 녀석이 죽어버리면 더 강해질 방법을 영영 놓쳐버릴 수도 있었기에.
소녀는 오늘도 참고 물러났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다음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