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er 시즌 2 3화. 검은 붕대의 남자, 칼바크 턱스
pixibee 2020-09-05 2
“이곳인가…?”
구로역에 있는 한 백화점,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기에 텅 비어있어야 할 백화점이었지만 그 안은 난민들로 북적였다. 사람이 지나가던 말던 텅빈 눈동자로 훑어볼 뿐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프레이를 대리고 한 구석 의자에 앉았다.
“한성….어떻게 할 생각이냐?”
“일단 당분간은 몸을 피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프레이”
프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내 품에 안겼다. 나는 프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퇴역했다고 쳐도, 관리국에 대한 모든 것은 절대로 내부차원에 알려줘서는 안되는 것이 원칙일 텐데….그것도 카운터의 존재에 관해서는 1급 기밀사항에 해당할텐데, 왜 관리국에서는 내 존재를 아는 벌처스를 방치하는 거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대체 왜….
“자네….잠깐 날 따라올 수 있는가?”
생각에 잠겼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낮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는 어떤 낮선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며 서있었다.
“난 이곳의 대표일세. 다름이 아니라 자네를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서….혹시 괜찮으면 같이 가 줄수 있는가?”
“네….알겠습니다. 프레이, 넌 잠깐 여기에 있어”
별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이곳의 대표라는 자의 말을 무시해서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날 보고싶다는 사람이 있다니…..뭔가 수상했다. 그렇기에 프레이는 이 곳에 내버려둔 채 난 혼자서 난민대표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려왔습니다.”
“설마 이렇게 쉽게 와줄 줄은 몰랐는데….수고했네”
강남에서 마주쳤던, 검은 붕대의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함정이었나…..오늘만 몇 번째인건지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쉬며 검을 뽑아들었지만, 검은 붕대의 녀석은 의자에 앉은 채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냐? 거기에 앉은 채로 싸우려고?”
“싸우다니. 난 그저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걸세. 어쩌면 내가 자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 내가 왜 니 도움을..”
“쫒기고 있지 않나? 벌처스의 개들에게 말이야.”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는거지?”
“일단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칼바크 턱스라고 하네. 나도 자네에게 꽤나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강남에서의 일 이후 지켜보고 있었지. 늑대개팀과 교전할 때는 도와줄까 생각도 했었는데 필요 없어보이더군. 그래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네”
내게 관심이 있다는 건….설마 이 녀석도 나에 대해 알고 있는건가?
“….어디까지 알고있는 거지? 단순히 나에 대해서만 아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자네에 관해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지. 나는 오히려 자네의 힘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내가 널 왜 믿어야 하지?”
“믿고말고는 자네 마음이지만, 나는 진심일세. 내 비록 지금은 이런 신세지만 그래도 내 나름 인류를 위해 행동하고 있어. 하지만 자네의 힘은 내 근심을 덜어주었다네. 그리고 그 힘이 누군가에게 넘어간다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지.”
…..헛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직감이 그렇게 믿을 것은 못 되지만, 이 눈앞의 사내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어떻게 나를 도와줄 셈이지?”
“일단 벌처스가 자네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해주지. 아직은 구로역 사방에 벌처스의 병력이 깔려서 자네를 찾고 있지만, 조금만 있으면 자네를 찾지 못하게 될거야. 그러니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다가 내가 초대한 손님들과 함께 빠져나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될걸세”
“손님?”
“자네를 만나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이 있어서 말이야.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쓰지 말게.”
“…….”
뭔가 꺼림직했지만, 지금은 녀석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검을 거두어 들인 뒤 그대로 칼바크 턱스가 있던 곳에서 나왔다.
“한성, 무슨 일 있었냐? 표정이 좋지 않다”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프레이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프레이에게는….그 녀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아니야….일단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자. 오늘 재대로 **도 못했으니까 눈 좀 붙여둬.”
“음…아니다. 한성이 더 피곤해보인다. 내가 옆에 있을 테니 눈 좀 붙여라”
프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누워있던 곳을 툭툭 쳤다. 거절하려 했지만…..강남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몸을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했는데 또 한번 전투를 치르느라 몸이 한계에 이른 것 같았다. 17년이라는 공백이 이렇게 클 줄이야….
“미안해. 그럼 조금만 쉬고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워줘.”
나는 프레이가 있던 곳으로 가 몸을 눕혔다. 칼바크 턱스가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 걱정이 됬지만, 눕자마자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잤을까…..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프레이가 나를 깨웠다.
“한성! 한성!”
“프레이….무슨 일이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군데군데 퍼져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모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정말로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던 난민들이 한 곳으로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들고 있던 것은…
“저건….강남에서 봤던 그 가방이잖아!!”
차원종을 소환했던 그 가방. 저걸 왜 난민들이 들고있는 건지는 몰랐지만, 일단은 뺏어야했다. 저걸 함부로 사용했다간 이곳에 차원종이 나타날 거라고!
“멈춰!!!!”
내가 달려가 가방을 뺏기도 전에, 한 난민이 가방을 열어버렸다. 가방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그 자리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차원문이 생성되었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차원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르륵….크아악!”
저 차원종은….데드 리퍼? 여왕과 나이트를 제외한 스컬은 마치 일개미와 같아서 생각이라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인간을 마주친다면, 자신의 상황을 살필 겨를도 없이 학살을 시작하겠지. 하필 나와도 저런 차원종이….
-인간……죽어라!!-
데드 리퍼가 목을 뒤틀며 난민들을 향해 다가왔다. 겁에 질린 난민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리퍼의 칼날이 난민을 덮치기 직전, 나는 검을 뽑아들어 그대로 리퍼의 목을 쳐냈다. 데드 리퍼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난민들은 혼비백산 백화점 안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프레이, 난 이곳에 있는 차원종을 정리할게. 넌 저 난민들을 지켜줘”
“알겠다. 조심해라 한성!”
프레이는 도망치는 난민들을 따라 백화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 안쪽에서 차원문이 열리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으니 나도 최대한 빨리 차원종들을 처치하고 프레이와 합류해야했다.
-인간…..죽인다…-
대략 20마리 정도. 시간이 없으니, 단번에 처리한다.
“제 2식. 선(線)!”
촤아악!!!!!!!!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차원종들이 일제히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광분한 차원종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한번 더 휘두른 검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질 뿐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차원종들을 모두 처치한 뒤, 프레이와 합류하기 위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한성, 이건….”
“……백화점 내부에 그렇게 사람이 많았던 건 이것 때문이었나”
백화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자, 공장으로 개조된 공간이 보였다. 그 공장이 찍어내고 있던 것은 차원종을 소환하는 가방이었다. 칼바크 턱스 이 자식….
“저…저희는 저 사람이 시켜서 만든 것 뿐이에요! 이런 물건일 줄은 몰랐다구요!!”
피 뭍은 검을 들고 있는 나에게 겁먹은 난민들이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그렇겠지, 이 가방은 차원종을 소환하는 가방입니다. 하면 만들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용도는 말하지 않고 돈을 줄 테니 만들어달라 했겠지. 이 난민들은 돈만 덥석 받고 이것들을 만든 것일테고
“남은 가방들은 어디있죠?”
“좀 더 안으로 들어가시면 창고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안에 모두 보관해뒀습니다…”
난민의 말에 나는 프레이와 함께 창고로 뛰기 시작했다. 창고로 들어서자 잔뜩 쌓인 가방과 함께, 칼바크 턱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너…내가 이딴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았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 지금 이 근방은 차원종들의 출현으로 정신이 없다네. 벌처스의 병력들도 전부 철수했을 터. 자네는 이 혼란을 틈타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네.”
“그럼 여기 있는 난민들은 다 죽으라고?”
“큰 것을 위해서는 작은 것들을 희생할 필요가 있는 법이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네”
“너 이자식…”
콰아앙!!!!!!!!!
내가 검을 뽑기도 전,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프레이였다. 듣다 못한 프레이가 칼바크 턱스에게 주먹을 휘갈겼고 칼바크 턱스는 그대로 반대편 기둥에 쳐박혔다.
“작은 것들은 희생해도 된다는 말, 차원종일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다. 그리고 그딴 말을 지껄이는 녀석 중 재대로 된 녀석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후흐흐….꽤나 거친 소녀로군. 그래, 은혜를 받은 소녀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파지지직!!!!!
칼바크 턱스가 자주빛 번개를 뿜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프레이도 붉은 위상검을 뽑아들며 다시 달려들려 했지만
“프레이, 잠깐 멈춰”
“에? 하지만…”
“저 녀석, 못해도 A급 차원종 수준은 될거야. 아마 여기서 싸우면….이 건물이 버티지 못할거야”
전에도 느꼈지만, 칼바크 턱스에게서 느껴지는 위상력은 못해도 A급 이상이었다. 게다가 인간의 높은 지성을 지닌 반차원종. 내 검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는 이상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 싸울 것이 분명했고, 그랬다가는 방치되어있던 이 건물이 싸움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되면 이 안에 있던 난민들은 전부 깔려 죽게 될 것이고.
“후후…잘 생각했네. 사실 나도 자네와 그녀 둘과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어서 말이야. 나는 이 가방들을 챙기고 가야하니 자네들도 어서 몸을 피하게나”
칼바크 턱스는 뿜어져나오던 번개를 거둔 뒤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쌓여있던 가방들이 떠오르며 칼바크 턱스를 향했고, 그렇게 칼바크 턱스는 가방을 가지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파악!!!
검을 개방한 나는 칼바크 턱스와 가방 사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브레이커의 능력에 의해 칼바크 턱스의 위상력의 흐름이 절단되었고 떠있던 가방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졌다.
“이건…무슨 짓인가?”
“이건 놓고 가. 어따 쓸지가 뻔히 보이는 데 내줄 순 없지”
“큭……크하하하!!! 알겠네. 자네의 뜻대로 이 가방은 놓고 가도록하지. 물론 다시 되찾겠지만 말이야. 그럼 나는 물러가도록 하지”
내 말에 칼바크 턱스는 크게 웃더니 작은 차원문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그럼 이제 이 가방들은…..어떻게 하지?
“어? 너는……”
고민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이는 익숙한 유니폼. 저건…
“너가 왜 여기있는거야?”
“너희들이 왜 여기있는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