藤下 [볼파]
Forgetter 2020-08-28 10
등나무 꽃이 즐비한 어느 벤치에서 설핏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동안에 행복한 지 파이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할 것이라는 추측을 타인이 저절로 억측하게 해준 꿈의 내용은 별 거 아니었다. 애초에 깊게 잠든 것도 아니라서 꿈 사이의 간격도 짧다. 꿈속에서 파이는 그리 스펙터클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누군가의 옆에 있을 뿐이었다.
그 가만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는 아주 좋은 예시일 것이다. 파이는 꿈속이었지만, 작게 후회를 하나 해댔다.
그 사이 짤막한 대화 같은 것이라도 할 걸. 아니면 조금 용기를 내어서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먼저 내민다든지, 어깨에 손을 얹는다든지...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남겨질 만한 행동이라도 할 걸 그랬다.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 사람과 하는 일들이 전부, 자신의 기억 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참으로 야속했다.
아마 꿈이 조금 더 진행되었더라면 파이는 울상을 지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러한 사실들을 자각하게 된 순간부터 옅게나마 지어졌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끝내 파이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일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고? 어느 이름 모를 사람이 벤치에서 아주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파이의 모습이 많이 걱정이 되었는지 파이를 급하게 흔들어 깨운 탓이었다.
이름 모를 행인은 – 그저 지나갈 뿐이었을지도 모르는데 – 친절하게도 말까지 걸어주며 파이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보였다.
“괜찮으신가요?”
“...?”
곱게 감겨 있던 파이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태양빛에 파이는 잠시 시야의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두 번 눈을 깜빡이자 눈앞에 상당히 아름다워서 혼자 보기에 아까운 풍경들이 펼쳐졌다.
어느 나라의 초여름 오후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것을 자신에게 넌지시 알려주었던 자가 누구였더라.
“...”
파이는 저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인정사정없이 부여잡았다. 자각하고, 기억해낸 탓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족족에도 자각 없이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나 슬픔 같은 것이 묻어져 나온다. 그러한 순간순간들을 자각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자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 파이는 울컥해지는 가슴을 붙잡고 입술을 있는 힘을 다해 깨물었다.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대체로 그녀와 그 사람의 제자들이 같이 있을 때가 많았다. 파이는 어찌되었든 강해야만 했다. 적어도 제자들의 앞에서만큼은.
지금 상황에서 제자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근처에 사람 하나는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한 명.
그 행인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만은 않은 파이의 곁에서, 굳이 굳건하게 그녀의 옆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 참고로 이렇게 사람에게 박하게 보이는 평가는 생전 그녀의 선배가 자주 써먹던 사람 보는 시각이었다. 행인은 재차 파이에게 현재의 파이 상태를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아, 네...괜찮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괜히 깨운 것이 아닐는지.”
아마 그렇게 덥지도 않은데 식은땀을 흐르는 파이의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에 대해 파이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딱 알맞았습니다.”
그 이상의 꿈을 꾸더라도 파이는 더 비참할 수밖에 없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꿈에서라도 볼프강을 본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그것뿐이라는 걸 파이는 잘 알고 있었다. 볼프강의 옆에 있으면서 그의 얼굴을 보는 것뿐. 그것뿐이다. 그 이상의 진전은 없다. 앞에서의 후회처럼 다정하게 말을 걸거나 가볍게 터치를 한다든지,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나 참으로 소심하게도 살아왔구나, 싶었다. 파이는 그래도 자신에게 선의를 가지고 친히 행해준 행인에게 감사의 인사는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
“...?”
“갚, 아야...할...지...”
파이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행인, 그러니까 오늘 분명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할 남자의 얼굴을 보고서 파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행위 없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때까지도 굳건히 입을 다물게 된 파이의 행동이 궁금했던지 남자가 먼저 말을 건다.
“왜 그러시죠?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아뇨...저희 오늘 처음 보는 거 맞죠?”
“네. 혹시 저를 어디에서 보시기라도 한 적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갑자기, 그 사람이 떠올라서요.”
파이는 얼버무렸다. 두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닮은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착각을 하게 되었는지 파이는 자기 자신에게 궁금해졌다.
그런데 남자는 파이가 언급한 ‘그 사람’ 이라는 자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다시 물어보는 것이었겠지.
“그 사람이라뇨?”
“아, 저, 그게...”
남자는 파이의 얼굴을 신중히 보더니 대충, 거의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찍어냈다.
“혹시 소중한 사람이었나요?”
“...얼굴에 표시가 그렇게 났나요?”
파이가 중얼거렸다. 그야 남자가 이러한 해답을 내리기 전에 계속 꾸준히 자신의 얼굴을 관찰한 것을 알아차렸기에 이런 반문이 가능한 것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는 한숨을 쉬었다.
본래라면 자신의 이런 깊은 속내를 남에게, 그것도 제3자에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터인데 왜였을까. 이 남자의 앞에서는 그래도 대략적으로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순간적으로 볼프강이라는 착각을 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언제까지 담아두기만 하면 종국에는 감정이 한계치에 다라라 어떤 순간에는 넘쳐버릴 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는 조금씩 흘려보내는 것이 참 좋은 해결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걸 같이 감내해줄 위인은,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다가 다시는 ** 않을 사람일수록 적합하였다. 남자는 마침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파이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제가 이리 보여도 사실은 클로저랍니다.”
조금 자기 폄하적인 저 수식어는 아마 현재의 파이가 가벼운 외출복 차림이기 때문에 붙인 건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런 파이를 눈이 부셔라 쳐다보았다.
“무척이나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남자의 대꾸에 파이는 조금 수줍게 웃었다.
“이 일을 한 지는 몇 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을 이루겠다는 방향이 더 짙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클로저의 본분을 지키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천성적인 거군요.”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 때에 제 주변에는 저에게 조언과 격려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축복이라고 생각했죠. 파이는 그 어려운 초창기 시절을 상당히 수려하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 분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사람’ 이라고 표현하신 분 말입니까?”
“네.”
파이가 긍정하였다. 그 후 구체적인 설명까지 덧붙였다.
“저의 첫 번째 선배 클로저였습니다. 그 시점에 저보다 몇 년을 더 일을 하고 있는, 클로저로서도 아주 드물게 경험이 풍부한 분이었습니다.”
“그 선배에게 많은 것을 배우셨군요.”
“네. 생각보다 많은 것이었죠.”
파이가 피식 웃었다. 왜 심각한 쪽에 가까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웃었는지는 그 다음 대사로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첫 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는 틈만 나는 대로 자기만 하는 게으름뱅이로 보였으니까요.”
“...”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요? 당신은 그 사람의 그 점을 싫어했습니까?”
파이는 잠시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
“무작정 싫어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제 입을 통해 당신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사람이었겠지요.”
파이는 무척이나 솔직했다. 지금만이라도 솔직해지자고 아까 전,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다짐했던 것이니까.
“좋아했습니다. 선배의 그러한 점들도. 겉에서도 부지런했다면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지요.”
“...”
남자는 파이의 당돌한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경청만을 한다.
파이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침울해졌다. 아마 여기서부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파트가 시작이 되려는 듯 하다.
“그런데 혹시 알고 계신가요? 클로저라는 직업이, 사실은 언제나 죽음을 각오하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요.”
“...”
“...저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은근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볼프강이 가장 먼저 눈치를 채고, 한참 뒤에야 파이가 그 마음을 알아챘다. 그 후로는 당사자들만 숨이 막히는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그 시절을 회상하라고 한다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아무 이유 없이 재밌었다. 그저 비눗방울 무리가 그들 옆을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웃음이 저절로 터질 정도였다.
몇 개월을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 자부한다. 파이는 행복했던 최근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 시기를 바로 입 밖으로 털어낼 것이었다. 그건 볼프강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좀 이상하지 않았는가. 묘하게 볼프강과의 일에 대해서는 과거형이 수두룩 튀어져 나오는 것이.
이게 그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어떤 임무에 같이 배정을 받았습니다.”
딱히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다. 둘이서도 충분히 해쳐나갈 수 있는 임무였다. 실제로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완벽하게 해내었다. 단, 여기서 조그만 변수가 하나 생겼다. 고위급 차원종과의 갑작스러운 대치가 그런 것이었다.
“저희 둘의 힘으로는 아무래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
“...제가 말했지요? 클로저는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다녀**다는 걸. 우습게도 저는 그 순간까지 그 되새김을 별로 자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사는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라는 경우를 저는 운이 좋게도 많이 봤고 경험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삶이라는 건, 한순간에 하강으로 치닫기도 하죠. 그 때, 파이는 자신의 두 눈 앞에서 무너진 건물의 철골에 의해, 처절하리만큼 옆구리가 찢겨나간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다친 것도 아닌데 아픔이 같이 느껴지는 그런 처절한 기분.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 잔재 밑으로 깔려버리기까지 했다. 파이는 그 후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눈을 뜨고 나니 자신은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고,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고 했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사소한 것 하나만 달라졌다. 아무도 파이의 앞에서 볼프강을 언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파이는 짧은 악몽을 자주 꾸게 되었다. 아까 벤치에서 설핏 잠이 들었을 때조차 꾸었던 그런 류의 꿈을 말이다.
“그런 일이...있으셨군요.”
이야기를 다 들은 남자는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파이는 조금 슬프게 미소 지었다. 남자도 솔직한 편이었다.
“사실...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힙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저는 그저 아무런 면식도 없는 낯선 이의 속내를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요.”
진짜였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도 되고 후련해진 감이 있었다. 모든 짐을 내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이 가벼워졌다.
“...이따금씩 선배 생각이 납니다.”
“...”
“그러면서 가끔씩 지독한 후회에 몸서리치고는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합니다. 선배는 열심히 살아가는 제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으니까요.”
강한 사람이다, 라고 남자는 파이를 평가했다.
남자는 그러한 파이의 옆모습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랬다. 아마 그 남자도 이런 모습이 참으로 반짝거렸을 것이다.
남자가 말했다.
“응원할게요.”
진심이었다.
* * *
파이가 떠나간 벤치에서 남자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치가 떨린다는 듯이 몇 번이고 무거운 한숨도 내쉬고 있었다. 그런 남자의 옆으로 어느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벤치에 아직도 앉아 있는 남자를 이런 이름으로 불렀다.
“볼프...”
“재리?”
“괜찮아요?”
괜찮냐는 재리의 물음에 남자...아니 볼프강은 힘없이 웃었다. 기운 없는 목소리에 비해 내미는 문장들은 참 날카로웠다.
“무슨 질문을 그렇게 하는 거야. 독창성이 없어, 독창성이.”
“하지만...안 괜찮아 보이는 걸요.”
“괜찮아...이미 지독하게 마음먹은 일이니까.”
볼프강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이미, 병원에서 몇 번이고 본 상황이잖아, 볼프강 슈나이더. 뭘 매번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냐...볼프강은 자기 자신을 책망했다. 아직도 그 때 입은 상처 부위가 쓰라려, 복부 부근을 움켜잡았다.
그 날, 두 사람이 커다란 부상을 입은 건 맞았다. 파이보다는 볼프강이 더 큰 부상을 입은 것도 맞았다. 파이가 볼프강보다 먼저 의식을 차린 것도 맞았다. 먼저 정신을 차린 파이의 앞에서 볼프강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건 파이가 괜한 걱정을 할까봐...라는 주변인들의 배려였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게 늦고 말았다. 파이는 그 날 이후로 볼프강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잊어버린 기간이 길었던 탓일까. 후에 다시 병원에서 맞닥뜨리게 된 파이는 볼프강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마냥 굴었다. 눈앞의 볼프강과 자기 자신이 기억하는 볼프강을 동일한 인물이라고 일치시키지 못하였다. 이 사태를 두고 볼프강은 추측했다. 파이는 파이 자신도 모르게 시간 능력을 많이 써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아마도 볼프강을 구하기 위해서. 그 결과가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재리가 머뭇거리며 물어본다.
“볼프, 앞으로 어쩔 생각이에요?”
“어쩔 생각이긴. 계속 파이 옆에 있어주기는 해야지.”
볼프의 대답은 상식을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애인이 자신을 기억해내지 못한다...이것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마음고생이 심할 일일 터인데, 계속 옆에 있어주겠다니...오히려 볼프강은 간단한 미래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단순한 말벗이어도 좋고...운이 좋으면 새로운 애인이 될 수도 있겠지.”
“볼프, 그건 그렇게 쉽게 말할 만한 것이 아니에요...”
볼프강은 지금 웃으며 말하고는 있지만 이미 진즉에 가슴에 눈에 보이지 않을 비수 여러 개가 꽂혀있을 것이었다. 그 몇 개의 비수는 볼프강이 직접 꽂아 넣었을 것이다.
볼프강은 피식 웃었다. 그 모양새가 좀 전의 파이와 겹쳐보였다.
“그래. 미쳤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지. 그런데 그렇게라도 안하면 내가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볼프...”
“그냥 많이 뒤돌아 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원점으로 돌아간 것뿐이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뿐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보기보다는 강한 사람이라서. 가뿐하게 해낼지도 모르지. 볼프강은 비교적 희망차게 자신의 앞날을 그려갔다. 볼프강이 이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야 첫인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었고, 그렇다면 처음 첫인사 때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마냥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옆에 있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예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로 가버리는 것보다는 이것이 훨씬 더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