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시즌2] 은하에게 아버지란 사람은 (2)

Forgetter 2020-08-11 6

서두는 뜬금없었다.

 

비겁하잖아요. 당당하지 못하니까.”

 

은하의 고집스럽다 못해 다른 의미로 보자면 집착에 가까운 태도에 은하의 주변인들은 의구심을 품었다. 이에 대해 은하는 지금껏 이들에게 보여준 대로 짤막하게 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수현은 은하의 영 생뚱맞은 답변에 어이가 없어진 것 같았다. 다름과 틀림은 아예 다른 매개체이다. 은하는 자신의 다름을 틀림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대해 수현은,

 

그건 비겁하다, 당당하다로 단정 지을 게 아니에요. 사람마다 체질이나 성향이 다른 걸요? 그건 클로저도 마찬가지고요. 자신의 몸에 맞는 위상력 사용법을 익히는 게 얼마나 중요...”

이봐요, 형씨.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나는 그런 거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최선을 다해 조언을 하려는 수현의 말을 의도적으로 뚝 끊는 은하였다. 은하의 평상시와 다름없는 무표정에서 어쩐지 노()의 감정이 슬쩍 엿보인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은하는 감정 표현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앞의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은 같은 팀의 미래일 것이다. 은하는 못 한다기보다는 안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안하는 훈련은 나름대로 잘 되어있는지 은하는 겉으로 보면 매우 침착한 모습을 대체적으로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일순간 무너뜨리는 존재가 있었다니. 그것도 은하의 마음속에 아주 커다랗게 지금까지도 자리 잡고 있다니.

 

흑지수가 수현에게 몰래 귀띔을 해준 것의 진정한 의미를 수현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확실히 혜성의 결전기는 파괴력 하나만큼은 굉장하였다. 그런데 피지컬 적으로 뛰어났던 혜성도 결전기로 사용했던 그 기술을 결전기로 사용하였다. 은하에게 코팅을 온몸에 당겨 매 전투 때마다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순 싶었다.

 

흑지수가 말했었지. 전투 방식을 바꾼 건 은하에게 있어 잘한 일이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렇다면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인데. 무엇이 은하를 지독하게도 얽매고 있는 것인지, 수현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분명 은하와 은하의 아버지 혜성과의 어떠한 사건 좀 거창하지만 이 있었는지 수현은 듣지 못했으니까. 공항에서도 잠깐 이야기를 하다 만 탓이 더 컸던 걸까? 그렇다고 지금 그때 공항에서보다 더 침울한 이 분위기에서 먼저 혜성에 대한 이야기를 은하에게 부탁을 하는 것도 조금 억지스러워보였다.

 

수현 나름대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은하도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혜성이 은하에게 항상 자신 있게 말해주는 구호 같은 것. 혜성의 입버릇이라고 명명해도 되는 그런 것이었다.

 

-클로저 은혜성의 딸 은하! 어때? 멋지지 않아?

-하나도 안 멋져...

 

그리고 이에 대해 은하는 언제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당시에는 많이 독특한 자신의 이름에 대해 불만 지금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지어낸 겉과 속이 다른 반응이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로만 정의를 할 수 없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은하 본인의 이름에 대한 감정은 엇비슷했다. 다만 겉으로 어느 부분을 더 강조하게 되었는지가 그때랑 지금을 비교하자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은하는 독특한 제 이름에 불만은 있었으나 혜성만큼이나 본인의 그러한 이름을 퍽 마음에 들어 했다. 독특한 만큼 한 번 상대에게 각인시키면 웬만해서 그 상대는 은하를 잊지 못하였다. 아카데미 시절에도 그러했고, 수금원 활동을 할 때에도 동일하였다.

 

그것이 현재의 은하를 붙잡는 족쇄 형태로 다가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카데미 시절 뛰어난 우등생이었던 은하의 존재는 일찍부터 유니온에 속해 있는 현직 요원들에게까지도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어쩌면 혜성이 동료 클로저들에게 알리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혜성은 빠르게 은퇴를 한 편이긴 하였으나, 그 이전에는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클로저였으니까. 그것도 여타의 클로저들과 달리 독특한 복장과 행동 등으로.

 

밝고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혜성은 언제나 주변 공기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수현의 말대로 은퇴가 빨랐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피치 못할 상황이었다고 해도 은하 또한 그 부분은 인정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다. 단순히 아버지의 빈자리만은 아니었다. 은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했고, 클로저 은혜성 요원을 동경하고 있었다. 전자와 후자의 상대가 똑같을 경우, 그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힘들기도 하다. 언젠가 뛰어넘는 건 무리더라도 동등한 위치, 클로저와 클로저의 관계에서 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다. 그것은 은하뿐 아니라 혜성의 염원이기도 했다. 그러한 맥락으로 혜성은 으레 클로저 은혜성의 딸 은하라는 수식어를 강조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혜성은 저 말의 무게를 그렇게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쉬이 가볍게 여기지만도 않았다. 낙천적이고 건강하기까지 했던 그는 자신의 딸이 클로저로서 인정을 받을 날까지 분명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고는 갑작스러웠고 절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하로 말할 거 같으면, 혜성이 별도로 증정해주는 의무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으레 그런 줄 알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클로저. 또한 자신은 위상능력자. 자연스레 클로저가 되는 길을 택했다. 불만은 없었다. 때때로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는 했다만 버텨낼 수 있었다. 은혜성이라는 사람이 천진하였기에. 딸에게 무턱대고 과도한 부담을 줄 의향은 일절 없었다.

 

그런데 누가 그랬던가. 말의 의미가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을. 아버지의 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은하는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분명 지상에 있는 데도 심해 저 깊숙한 곳에 빠져버린 듯이, 숨을 쉬기가 가파졌다.

 

그 순간 은하는 인지하고 말았다. 자신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빈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그렇기에 어쩌면 죽을 만큼 힘이 들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신에게 남겨져 있는 아버지의 흔적이라고 하는 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졌다. 아버지와 수도 없이 보냈던 그 즐거운 시간들이 점점 흐려지는 것은, 참으로 원통한 일이었다.

 

원망을 하지 않는다. 상당히 담백하고 은근한 어조로 읊조렸는데, 정말 사실이었다. 그냥 지금 상황에서 한탄스러운 건 자신은 아버지만큼 강인하지 못하고, 세상을 아름답게만 볼 수 없다는 것? , 하나 더 있다. 아버지를 영원히 잊지는 않겠지만, 전부 다, 오롯하게 기억도 하고 기록도 남기는 걸 할 수 없다는 것? 시간은 점차적으로 흐려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아버지를 유일하게 기억하고, 추억도 할 수 있는 일종의 물건은 일명 혜성의 일격밖에 없는데. 그걸 포기하라니. 은하에게 있어 아버지를, 혜성을 배반하는 일이었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말은 쉽게 한다. 조금 화도 나고 불만 잔뜩인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은하도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다.

 

그건 결코 혜성에 대한 배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머리로는 아나, 마음은 절대로 해내지 못할 그런 감각.

 

그런 감각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은하를 숨 막히게 했다.

 

“...직접 물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은하가 문득 중얼거린 말이다. 누구한테 그러겠는가. 뻔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 조금 복잡하게 꼬인 거다. 꿈에서라도 만나서 물어보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혜성은 그 이후로 은하의 꿈에 절대 나타나주지 않았다.

 

“....”

 

은하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속이 영 답답해서 한 번 내쉬어본 것이다.

 

종국엔 마음먹기, 라는 건가. 그렇다는 건데...그런데 그게 쉽게 될 리가 있을까. 몇 년 동안 붙잡은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극복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

 

은하는 슬금슬금 작전 구역 쪽으로 향했다. 또 하필 타이밍 좋게 차원종이 나타나서. 차원종 처치를 하면서 복잡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어 보였다.

 

 

 

 

 

[작가의 말]

개인적으로 은하 사냥꾼의 밤 스토리를 보면서 전투방식을 바꾸기까지의 서사가 간략된 듯 하여 그 부분을 중점으로 써보았습니다.

2024-10-24 23:35:4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