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그 날 잃어버린 별
새츄와오렌지 2020-07-24 9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클로저스 스토리와 무관하니 참고해주세요-
"...제발 살려줘...! 나중에라도 돈은 꼭 갚을테니까...!"
이제는 지긋지긋해져버린 말,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다. 자신에게 필요한것이 있을때에는 비굴해지고, 원하는 걸 얻고 나서는 그런 적 없다는 듯, 뒤돌아서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같잖은 이유들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갚을 수 없으면 애초에 빚을 지지 말았어야지."
예전부터 말해오던 이 지긋지긋한 말도 어느새 습관이 되어 익숙하게 되어버린걸까,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는걸.
"하..한번만 기회를 줘..! 제발.."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그런 건 상식이잖아..?"
-돈을 받는것이 나의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째서인지, 나의 안에서는 이유 모를 혐오감이 피어났다.
X X X
어려서부터였다. 아빠라는 사람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나에게 있어 집이란 곳은 숨이 막힐듯 불안한 공간이였다.
그 공간에선 발을 뻗고 누울 공간이라고는 없었고, 밤만 되면 항상 들이닥치던 사채업자들에게 엄마는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며 항상 빌던 기억밖에 있지않았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공간 속에서도, 엄마라는 존재가 나를 버티게 하고, 또 행복하게 했다.
"엄마!! 이거봐봐!!!"
"..우리 은하가 대단한걸 만들어왔네? 정말 예쁘다."
조약돌을 겹겹이 엮어 만든 목걸이. 넓찍한 나뭇잎에는 "은하가" 라고 작게 적혀있었다.
항상 그랬었다. 별거 아닌것에도 웃어주고, 칭찬해주던 우리 엄마.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일은 뭐든지 좋아해주던 엄마였다.
"..그냥 엄마가 좋아할거 같아서!"
"진짜 예쁘게 잘 만들었네~ 아빠가 보셨으면 좋아하겠다."
"헤헤..그치? 아빠도 보여드리고 싶다.."
"..아빠도 분명 은하가 만든 목걸이 좋아할거야.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렇게 늦게 들어오면 안돼요. 알겠지??"
"응! 알겠어."
비록 가난했어도 작은 일에 행복했고, 엄마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즐거웠었다. 나를 위해 항상 늦게까지 고생하던 엄마.
나에게 있어선 엄마란 존경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다.
"많이 배고프겠다..엄마가 돈 많이 벌어와서 우리 은하 맛있는거 많이 사줄테니까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진짜??? 아싸!!!! 말 잘듣고 있을게!!"
"그래 우리 은하 말 잘 듣네~ 착하지..금방올게."
"헤헤...그럼..다녀오세요!!! 맞다 엄마! 내가 만든 목걸이 가져가구!!"
"...응 알겠어. 다녀올게."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저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버티고, 또 버텼다.
아무리 긴 시간의 기다림이라도 좋았다. 아니, 사실은 기다리기 싫어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것 이겠지.
내 삶의 이유가 엄마라는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까. 갈 것 같지 않던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엄마와의 약속했던 시간이 가까웠다.
"헤..곧 있으면 엄마 올 시간이다..말 잘 들었다고 칭찬해주시겠지..???"
"..맛있는걸 사달라고할까?아니면 같이 놀이공원에 가자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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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행복한 고민에 잠겼던 난 약속이란건 무조건 지켜지는거라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일은 없다고. 그럴 일은 없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내가 틀렸던 걸까.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엄마를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부정했다. 아니라고, 아닐거라고, 그저 늦는것 뿐 일거라고. 그렇게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당연히 잠에 들수 없었다. 잘 때 옆에서 손을 잡아주던 엄마가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저 눈물이 흘렀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은 채,나는 그 긴 밤을 홀로 보냈다.
X X X
그로 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혹시라도 돌아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며 밥도 먹지 않은 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것, 그것뿐이였다.
기다림과 배고픔에 지쳐,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본 나는 여태껏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내가 엄마한테 만들어 주었던 목걸이를 발견했다.
겨우겨우 몸을 옮겨 손을 가져다 댄 목걸이의 나뭇잎 뒷편에는, 하얀색의 접혀진 종이 한장이 붙어있었다. 나는 곧 바로 종이를 떼어내 펴보았다.
확인한 종이 안에는 낯 익은 글씨체로 써진 편지가있었다, 나는 서둘러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은하에게-
안녕. 사랑스러운 내 딸 은하야.
엄마가 딸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네. 도저히 우리 딸한테 말로는 전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글로 남길게.
엄마는 우리 은하에게 좋은것만 주고싶고 행복한 일들만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걸 은하는 알고있을까???
작은 일 에도 기뻐할줄알고, 행복해하는 은하를 보면서, 엄마는 정말 기뻤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널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고, 기쁘게 해주고 싶었단다.
그렇지만 엄마가 그런 일을 해주기엔 너무 능력이 부족한가봐.
단 한번도 우리 은하 배부르게 먹여준 적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다 가는 놀이공원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네.
아빠도 없이 자라서 마음고생도 심했을텐데. 우리 은하는 엄마한테 단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었어.
그래서 엄마는 생각했어. 우리 은하한테 만 이라도 빚은 떠 넘겨주지 말자고. 마음고생 시키지 말자고 다짐했거든.
이 편지를 보고 은하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를 죽도록 원망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은하는 나보다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거라고.
그래서 떠나기 전에 이렇게 편지 한 통을 남기게 됐네.
정말 너무 고맙고 미안. 더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 우리 딸 은하를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꼭 잘 지내야해. 사랑해 딸.
이미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알고 있었겠지. 엄마가 날 떠났다는 걸.
난 그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눈물이 흘렀다. 모르는 척 하려 애쓰고 애써봤지만 결국 눈물이 흘렀다.
나의 전부였던 엄마를 이제 다신 볼 수 없었고, 나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었는데. 그깟 빚이 뭐라고, 나를 이렇게 버리고 가야만 했던걸까.
엄마라는 빛으로 가득 차있던 내 마음은, 어느 순간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혐오로 바뀌어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느끼는 격한 감정에 손에 쥐고있던 편지를 구겨버렸다.
배고픔과 괴로움에 지쳐버린 나는, 곧 아무런 생각도 할수 없게 되었다.
"난 당신이 너무 미워. 원망스럽고 미치도록 당신을 증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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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엄마가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만 안아줘."
"아직은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랑하는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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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잃어버린 별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