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의 우리는 아직 기억되고 있나요? ]
블루핍 2020-07-24 4
※ 왕따, 괴물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미리 주의해주세요!
※ 읽기 전, 트리거 요소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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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우리는 아직 기억되고 있나요? ]
그래, 아직도 기억나. 유난히 소낙비가 쏟아지던 날. 나는 그 때의 너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내 이름을 불러주던 너의 고운 목소리와, 나를 붙잡아주었던 너를.
* * *
그 날은 유난히 소낙비가 오던 날이었어. 아이들은 전부 집에 간 뒤였고, 난 우산을 쓴 체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지.토톡거리면서 우박마냥 쏟아지던 그 빗줄기는 마치 나를 삼켜버릴 것마냥 내리고 있었어. 차라리 그렇게 되었다면 그게 더 좋았을지도 모를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걸었던 것 같아.
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가야하는 건, 정말로 싫었지만, 어머니의 부탁으로 인해 억지로 가고 있던 참이었지. 분명 그곳에 도착하게 된다면, 나는 그 사이에서 겉돌 것이 뻔한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야.
걷다 보니, 높은 건물과 하얀 외관으로 이뤄진 건물이 보였어. 그곳의 유리창엔 굵은 빗줄기와 얇은 빗줄기가 이어져 흐르고 있었고, 그 너머로 학생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것이 보였었어.
건물 안에 들어가기 전. 나는 망설이며 입구에 멈춰서있었어. 가기 싫은데... . 하는 한 구석의 마음이 있었거든.
결국엔 유니온 훈련생 텍을 찍고는, 그 안에 들어섰지만. 그들의 눈초리는 피할 수 없었었어. 순식간에 불편함으로 물드는 이 상황에 나는 입을 다물고 빠르게 지나가려고 했어. 그들 중 대장이 나를 붙잡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야, 괴물! 너 오늘도 잘도 왔구나?"
"…괴물 아니야."
"하? 괴물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넌 우리랑 다른 존재잖아? 게다가 이능력도 있고."
"이능력이 있다해도, 너희한테 그렇게 차별받을 정도로 잘못한 건 없잖아?"
"뭐? 진짜 건방지네!"
그 대장은 그때에도 별 의미 없는 일을 가지고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나는 당당하게 답했었어. 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랬더니 그 대장이 나를 밀쳐서, 넘어질 뻔하는 순간이었어.
"너희, 이게 뭐하는 짓이야?"
네가 내 앞으로 나타나 가로막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밀쳐져버릴 뻔했었어. 너는 화가 난 목소리로, 그 얘들을 향해 소리쳤었지.
"뭐야, 이슬비잖아. 그야, 저 괴물이 우리 구역에 들어와서 있으려고 하잖아? 그러니까…."
"괴물이라니? 설마 지금 이 얘한테 하는 말이야?"
"그럼 누구겠어?"
너는 뒤에 있던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그 애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었던 거 같아. 마치 그 애가 한 말이 마음에 안 든 것마냥.
"너야말로, 어떻게 알파퀸님의 아드님한테 그런 말을 해? 그분이 이 세상을 어떻게 지켜내신 분이 신데. 그분의 자식분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너는 또박또박 정갈한 목소리로 그 아이들에게 들리도록 말해주었었지. 마치 너희들의 행동은 잘못된 거다, 그래선 안된다. 라고 말하는 듯이.
"그래도 이 녀석이 괴물이란 건 변하지 않잖아?"
"이 얘가 너희한테 피해를 끼치기라도 했어? 아니면 불쾌하게 만든 적이 있는거야? 만약 있었다고 치면 서로 대화나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지. 이렇게 괴롭힘이나 다수가 소수를 괴롭히거나 방관하는 건 옳지 않는 일이야."
너는 그들의 보복이 무섭지도 않은건지, 네 의견을 확실히 하면서도 내 편을 들어주었었어. 그들의 대장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자, 두 팔을 양쪽으로 뻗으면서 막아주면서까지 말이야.
"뭐야, 이슬비. 네가 무슨 이 녀석의 보호자라도 돼? 왜 그렇게 그 녀석 편을 드는건데?"
"아무런 잘못된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행동을 받는 걸 보는 건 방관이고, 옳지 않은 일이니까."
그 대장 녀석도 기분이 상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면서 너를 째려보았었지.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나머지 녀석들도 너를 적대시하려고 했고.
"그래서, 우리가 옳지 않고, 넌 옳다 그거냐?"
"…그만해."
그 대장 녀석이 화가 났는지, 너에게 무어라 하려는 것을 내가 말더미를 잘랐었지. 그러자 너와 그 대장 녀석들과 나머지 녀석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었고.
"너…."
"얘 건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건들지 마."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면서 말하니, 그 녀석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었지. 그야 본인들이 괴롭히던 그 꼬마 같았던 애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 봤었을테니까 그랬겠지만.
"…딱히 무서워서 가는 게 아니야. 너네들이 하도…."
"야, 야. 그냥 가자…."
겁을 먹은 것인지, 대장 녀석을 이끌고 나가는 나머지 녀석들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던 거 같아.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하면서 생각을 했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네.
"…저기."
"…아, 미안. 방금… 전에 도와준 건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아마 곤란했을지도."
너는 그 얘들이 멀리 사라지는 걸 지켜보다, 내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나를 불렀었지. 넌 또래보다 몸 집도 훨씬 작고, 여려보였었어. 그런 네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앳된 목소리여서, 방금 전에 있던 그 때의 이미지가 달라서 놀랐었었지.
"아니, 나는 해야할 일을 했을뿐이야. 그것보다, 넌…. 괜찮아?"
"어…. 으응. 나야 뭐 항상 있던 일이니까."
뒷머리카락을 살짝 긁적이며 긍정을 하니. 너는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건지. 성큼 내게로 가까이 와서 이리저리 살펴보았었지.
"뭐, 뭐야? 뭐하는거야?"
"…혹시 다친 덴 없나 확인하는거야. 네가 다치면 곤란해지니까."
그렇게 말하며 내 주변을 맴돌면서 확인하는 네 모습에, 나는 당혹해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 끼어들어선, 자신보다 내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나한테는 꽤 놀라운 일이었거든.
"…그럼 난 이만."
"잠깐만, 너…. 알파퀸님의 아들인 이세하 맞지?"
내 안위를 살핀 것인지, 너는 멈춰섰고 나는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어서 자리에서 벗어날려고 했었지. 네가 그 단어를 언급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움찔. 알파퀸 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듯 내 몸이 살짝 떨렸어. 설마 이 녀석도 그 소문을 듣고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건가? 싶었지. 그래도 아까전 그 녀석들과는 좀 다른 분위기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었고.
"…알파퀸의 아들, 인 건 맞지만. 그건 왜 묻는거야?"
"그야, 네가 우리 검은양 팀의 멤버로 영입 된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
내 이름을 아는 건 아까전 그 녀석들을 통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 프로필이 이 녀석, 그러니까, 이슬비라는 이 여자애한테 넘어간 모양이었다. 아아, 도대체 귀찮은 일들만 많아지고 있잖아 라고 생각했었다, 그 땐.
"…설마, 날 그 팀의 클로저로 영입할 생각인거야?"
"맞아, 넌 알파퀸님의 아들이니까. 위상력도 잘 다룰거고. 실력도 뛰어날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거라면 거절할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과대평가하는 너의 모습에, 예전의 과학자들이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었다. 나는 당신들의 체스말이 아니야, 나는 이세하라는 사람일뿐이지. 울컥, 하고 차오르는 울분과 아픔이 다시 금 마음속에 아로새겨지는 느낌이었었다.
"…뭐? 그 이유가 뭔데?"
"그걸 너한테 설명할 이유는, 딱히 없지 않을까 싶은데."
날 도와준 너에게 날카로운 언어가 나갔어. 마치 방어기제가 본능적으로 튀어나가듯.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 너는 그런 내 모습에 살짝 인상을 썼었지.
"적어도 이유를 알아야 납득이라도 하지."
"…우리가 그 정도론 친하진 않잖아?
아니, 사실은 아까전 그 녀석들처럼. 네가 나를 그런 식으로 취급할까봐 무서웠던 것도 있었을거야. 그리고, 차원전쟁을 종결시킨 영웅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지녔다고. 그에 걸맞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내 자신을 옭아매는 일에도 상당히 지쳐있었던 상태였으니까. 그러니까, 현실 도피라고 해야하나? 그랬었었지.
"…너 말이야."
"아무튼, 난 거절했어. 도와준 건 고맙지만, 그 클로저 팀 건은 거절할게."
네가 내게 말을 걸기 전, 나는 뒤돌아 그곳을 빠져나왔고. 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 같았어.
* * *
To. 이슬비.
있잖아, 이슬비. 처음엔 솔직하게 말 못했는데. 사실 나 G타워까진 클로저의 소명이라던가, 임무라 던가. 그런 거에 별 관심은 없었었어.
그저 친구들이랑 더 어울리고 싶고, 더 놀고 싶은 그런 남학생이었지.
그러다가 너희, 검은양 팀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
이 힘을 얻으면서, 분명 상처받았던 나날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검은양 팀이라는 너와 멤버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무엇을 지키고, 소중히 해야하고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됐어.
그 사이에 배신과 배반도 있었지만, 결국 그 일들도 소중한 것들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나를 다시
한 번 일으켜서 클로저라는 소명과 이 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
나는 지금껏, 이 힘을 가진 것에 대해서 비관적으로만 생각해왔었어. 내게 이 힘이 없었다면, 나는 좀 더 평범한 아이가 될 수도 있었을까. 더 평범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얄팍한 생각들을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클로저란 걸 하지 않았다면, 검은양 팀이라는 너희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져버린 단 거잖아?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기둥이 되어주고 있는 너희가 말이야.
물론, 너희말고도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건. 역시 검은양 팀인 너희들과 유정이 누나야. 그만큼 오랜 세월을 함께해오기도 했고, 이겨내온 고난들도 많았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너희들은 나에게 있어서 소중하단거야. 이슬비, 서유리, 테인이, 제이 아저씨, 그리고 유정이 누나까지. 전부 다. 항상 게임 중독자였던 나를 이끌어주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너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스트라이커인 이세하는 없었을지도 몰라. 지금도 이 힘에 대해서 비관 적으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도…. 너희들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아! 진짜. 나 오글거리는 말 못 쓰는데. 네가 그런 편지를 줘서 이렇게 써버렸잖아, 이슬비.
…아무튼.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잘 지내자는 뜻이야, 리더.
…항상 고마워.
From. 이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