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er-1화. 차원종과 만나다.
pixi 2020-07-19 2
“벌써 깨어난 지 1년이구나. 이제 이쪽 생활은 익숙해졌니?”
“네. 덕분에 잘 적응했어요. 감사합니다. 세나 누나”
“감사는 내가 아니라 그분에게 하렴. 그러면 이제 만들어 놨던 너의 가짜신분을 등록시켜 놓을게. 가고 싶은 학교는 정했니?”
“네. 그냥 이 주변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요. 신강고등학교….? 이 학교로 부탁드려요.”
“그래.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또 연락하렴.”
“넵.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강남역으로 향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허리 춤에 항상 차고 있었던 검은 이젠 없었다. 나도 이제 평범한 삶으로, 그냥 1명의 인간으로써 살 수 있었다.
“이 생활이 쭉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지막 총력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 오피스룸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침대 옆에는 레이 형이 남긴 편지가 있었는데, 읽어보니 난 거의 17년이란 시간동안 냉동상태로 있었던 모양이다. 카운터를 그만두고 싶다는 내 마지막 말 때문인지, 레이형은 냉동상태인 날 대리고 현차원으로 넘어온 뒤 즉시 날 유니온의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관리국에는 행방불명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카운터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편지와 함께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한 여성분이 전화를 받았었다. 자신을 ‘세나’라고 소개한 그분은 내가 이쪽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덕분에 나는 빠르게 이쪽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차원종이 출몰하지 않는 안전지역이었고, 그 덕에 카운터였을 때의 기억에서도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차원종과 얽매이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위이잉ㅡㅡ!!!!]
-현재 차원문이 열려 차원종이 출몰하였습니다. 강남역 인근의 주민들은 즉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현재 차원문이 열려 차원종이 출몰하였습니다.-
“이런 **….”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핸드폰이 웅웅거리며 차원종이 출몰했다는 경고음을 냈다. 하지만 굳이 경고음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차원종은 이미 내 눈 앞에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니까. 집에 빨리 가려고 골목길을 통해 가는 도중이었어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타난 것은 D급 차원종인 스케빈저무리, 덤벼든다면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녀석들은 아무 죄가 없는 차원종이 아니다. 엄연히 이 세계를 침략하기 위해 넘어온 차원종들, 손은 떨리지 않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준비를 했지만…..이 녀석들, 뭔가 이상했다.
-키이익? 여기는 대체 어디냐?-
-키이익!! 이…인간이다!! 도망가라아!-
날 보고 덤벼들기는커녕 오히려 도망가는 스케빈저들. 이 세계에 친입한 차원종들이라면 분명 인간만 보면 죽이려고 덤벼드는 녀석들 뿐일텐데, 이 녀석들은 달랐다. 대체 뭐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일 필요는 없는건가”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서있기만 했는데도 놀라가지고 혼비백산 도망치고 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쥐었던 손을 펴며 나는 가던 길을 가려고 했던 그때
“유성검!!!!”
콰아앙!!!!
푸른 불꽃을 머금은 검이 지면을 강타했고, 도망치던 스케빈저들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검을 들고 있던 클로저는 검에 뭍은 차원종의 피를 뿌리며 내게로 돌아섰다.
“순찰 도중 발견해서 다행이야. 어디 다친 곳은 없어??”
검은 양이 그려진 유니폼…..클로저인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물론 난 17년동안 냉동상태여서 엄연히 내가 훨씬 나이가 많겠지만) 클로저는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덕분에……다친 곳은 없어.”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 이곳은 원래 안전지대인데 어째서 차원종이 출몰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만 차원종이 출몰한 게 아닌 것 같으니까 빨리 집으로 들어가 보는 게 좋을거야. 조심해!”
클로저는 내게 말한 뒤 다시 뛰어올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클로저가 사라질 때 까지 기다린 다음, 가로등 뒤편을 향해 걸어갔다. 가로등 뒤편으로 가자 가로등 틈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는 스케빈저 1마리가 보였다. 스케빈저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깜짝 놀라 울부짖으려는 순간 나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끄으윽…..끄으으윽-
“조용히 해. 니 괴성을 들으면 다시 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스케빈저의 입을 틀어막은 뒤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클로저는 다시 오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틀어막았던 스케빈저의 입을 풀어줬고, 스케빈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인간이 차원종의 말을 하는거냐…?-
“뭐 그런 능력이 있어. 그나저나 넌, 대체 뭐냐? ‘전사’ 차원종이 아닌 거야?”
-나…나는 ‘전사’가 아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갑자기 이 곳에 와있었다.-
내 질문에 스케빈저가 히끅거리며 대답했다. 이 녀석….설마 했는데 강제로 소환된 개채인 것 같았다. 대체 어째서?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그것은 뒤로 하고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가 문제였다.
“후우……”
나는 히끅거리는 녀석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 두고가면 100% 죽는다. ‘전사’ 개체인 D급 차원종도 사실 총알받이나 다름 없는 개체지만, 이 녀석은 ‘전사’도 아니다. 이리 저리 숨어다니다가 결국 클로저에게 발각되어 죽을 것이다.
-히끅…….대체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거냐….히끅-
더 이상 차원종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 카운터를 그만뒀고, 안전지대에서 사는 걸 선택했다. 그래도 결국 차원종을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죽여야만 했던 전과는 다르다. 그냥 지나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못 본 척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너, 나랑 같이 갈래?”
-히끅….? 뭐라고 했냐아..?-
“따라와. 일단 내가 널 숨겨줄 테니까”
나는 장바구니 안에 있던 내용물을 꺼낸 뒤, 녀석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녀석은 히끅거리면서도 순순히 장바구니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이 녀석은 스케빈저 중에서도 덩치가 작은 편이라 장바구니 안에 쏙 들어갔다.
-대체 왜….?-
“입 다물고 조용히 하고 있어. 금방 집에 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