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수 생일(2020.07.02.)이라기에 간단히 써보는 짤막한 글
“어젯밤 쓸데없는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어느 때의 아침과 다름없이 자료 정리를 하고 있는 수현의 옆에서 무기 손질을 하고 있던 철수가 문득 꺼낸 말이었다. 수현은 일단 그것이 어떤 기억이었냐는 둥의 질문을 하기에 앞서서 이것 하나만은 핀잔을 해주고 가기로 했다.
“철수 형, 형이 아무리 과거의 형을 용서할 수 없어도 쓸데없는 기억이라는 건 없는 거예요.”
“...”
“그렇게 자기 자신을 너무 비약하지 말아...”
“...정말이다. 정말 쓸데없는 기억이어서 그런 거다.”
수현에게서 잔소리를 듣는 것이 싫었는지, 아니면 자신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어떻게서든 증명하고 싶었는지 철수가 평소와 다르게 수현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중간에 끊으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수현은 또한 평소와 다른 철수의 고집을 이겨낼 역량이 아직까지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합의점을 하나 찾았다.
“뭐...형이 그렇다고 하면 들어보고 마저 말할게요. 도대체 어떤 기억이 떠오른 건대요?”
“...”
수현은 일단 자세한 이야기부터 듣고 조언을 해주어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철수의 떠올랐다는 기억에 대한 내용을 듣기로 했다. 철수는 언제나처럼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나는 아마 이맘때쯤에 태어난 거 같더군.”
“아, 그렇구나...형?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말 그대로의 의미다.”
“...잠깐 정리를 좀 해볼게요...그러니까 형의 생일이 이맘때쯤이라는 소리인가요?”
수현식의 해석에 철수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런데 그 축하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현재의 철수의 입장에서는 영 좋지 않았는지 얼굴을 조금 구기며 말을 마저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그에 대한 축하를 받은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왜 그렇게 비관적이에요, 형...”
“지금의 나에게는 별로 유쾌한 기억이 아니라서 그렇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뱉는 철수의 말투로 보아 어째 그 ‘누군가’ 가 누구인지 조금 추론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우선 수현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니었다. 수현이 물었다.
“형이 보기에는 그럼 왜 그런 기억이 떠오른 거 같아요?”
이렇게, 갑작스럽고 당혹할 때라고 한다면야. 그에 대해 철수는 잠깐 고민을 하다 대꾸했다.
“글쎄...어젯밤이 무척 더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군.”
아마 주기적으로 축하를 받던...그 날도 그때와 같이 무더웠기 때문에 같이 떠올린 건지도 모르겠군. 철수의 말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의 입장에서는 웬만한 답은 해준 거 같은데 아직도 수현에게는 궁금한 점이 좀 남아있던 모양이다. 철수가 생각하기에는 영 생뚱맞은 것도 다 물어본다.
“희미하게 기억이 날 뿐, 정확한 날짜는 같이 기억이 안 난다는 건가요, 형?”
“...그렇다.”
“흐음, 알았어요. 아무튼 형, 기억을 되찾아 간다는 걸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그랬듯, 대화의 마무리는 항상 수현의 핀잔 같은 것으로 끝난다. 물론 이와 같은 대화가 단순히 여기서 그칠 사안은 아니었다. 그 이유를 굳이 꼽자면, 맨 먼저 철수의 생일 –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확실히 요즘과 같은 한여름이라는 건 알 수 있다 – 이라는 존재를 알아낸 게 수현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 * *
“김철수 아저씨의 생일?”
“응.”
수현은 철수와 헤어진 직후, 곧장 저수지에게로 향했다. 저수지는 언제나의 아침 풍경처럼 오늘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하는 의뢰를 정리 중이었다. 철수의 생일의 존재를 들은 저수지의 풍경이 필요 이상으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아마 철수의 생일, 이라는 점을 계산 안에 두지 못했거나 어쩌면 쓰레기 섬에서 살았던 경험이 일반적인 생일이라고 할 때의 반응과 전혀 다르게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수현이 이상한 질문 하나를 저수지에게 해댔다.
“철수 형은?”
아까 분명 자신보다도 더 빨리 저수지 쪽으로 가고 있는 걸 보았기에 으레 물어볼 수 있는 적당한 질문이었다. 그 말에 저수지는 ‘아저씨는 의뢰하러 갔어.’ 라는 지극히 저수지의 입장에서 정상적인 대답을 하였다. 이 말에 수현의 표정이 조금 심상치 않았다.
“너는 어떻게 오늘 생일인 사람한테 일을 시키냐...”
“내가 그걸 알았냐? 아저씨는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해주었다고. 그리고 오늘 생일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아저씨도 정확한 날짜 기억하는 거 아니라며.”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쩐지 최대한 빨리 생일을 챙겨줘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 오늘에 말이었다. 이러한 수현과 저수지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 제3자가 있었다.
“무슨 이야기 해?”
“미래 씨?!”
미래였다. 철수와 마찬가지인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미래기에 아침마다 저수지에게서 의뢰 목록을 받아가는 건 흔한 일상이었다. 저수지는 가볍게 미래에게 아침 인사를 친근하게 건넸다.
“아, 미래야. 어서 와. 의뢰 받으러 왔어?”
“응...그런데, 김철수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목소리가 제법 컸었나? 아니면 둘 다 미래가 꽤 가까이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어차피 이건 막 기필코 숨겨야 하는 사안은 아니라는 생각에 수현 대신 저수지가 대신 말해주었다.
“아저씨 생일 이야기였어.”
“김철수 생일? 오늘이야?”
갸웃거리는 미래에게 수현은 잠깐 전, 저수지에게 지적받은 부분을 격렬히 반문하는 중이었다.
“아뇨, 막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들으니 축하해주고 싶어서...”
“생일...김철수 생일이면 축하해줘야지.”
미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대결 같은 거 딱히 하지 않았는데 2 대 1의 승부가 된 거 같아서 수현은 저수지에게로 참여 의사의 눈빛을 보냈다. 저수지는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아예 마음을 안 쓸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세 사람이서 철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뭉쳤다.
미래는 어찌 보면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축하해줄 거야?”
“일단 선물을 준비해야겠죠?”
“선물...선물은 무엇이 좋을까?”
“그야 철수 형이 좋아하는 걸로 준비해야겠죠?”
곰곰이 생각하던 미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시무룩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철수는...무엇을 좋아해?”
“아...?”
“나는 김철수가 좋아하는 거 잘 몰라.”
두 사람은 알아? 미래의 SOS 신호가 담긴 눈빛을 보고도 수현은 물론 저수지조차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것...철수 본인이 좋아하는 것. 딱히 철수 본인이 그걸 스스로 표현하는 성격인 것도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을 지냈어도 아직 정확한 것을 가늠할 수 없는 걸 깨닫고 나버리면, 솔직히 말해 앞길이 조금 난감해졌다.
시작부터 봉착이었다.
* * *
철수는 연신 산탄총을 장전 중이었다. 오늘 철수가 받은 의뢰 전부는, 차원종이 요 근래 심부름센터 거점을 잡은 곳을 중심으로 빈번하게 나타나자 그에 대한 토벌을 요청하는 것들뿐이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고 싶어졌다. 그래서 무리해서 미래의 몫의 의뢰서도 다 철수가 가지고 가서 한창 절찬리에 활약하는 중이었다.
점심 무렵, 조금 소강상태를 보이는 차원종의 행색으로 인해 철수도 아주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위상력도 결국은 체력과 일맥 상 통하는 까닭에 적절한 휴식을 필수였다. 철수는 가지고 온 물통을 우악스럽게 따 마셨다. 7월 초일 뿐인데도 벌써부터 더웠다. 마시는 것만으로는 땀이 전혀 식혀지지 않아 남아있는 물을 아예 머리 위에 부어버렸다. 이러고 나니 훨씬 더 나은 거 같았다.
땀을 식히고 나니 거칠었던 호흡도 원상 복귀되었다. 몸이 안정이 되어가자, 또 쓸데없는 기억이 떠올라 이건 이것대로 난감했다. 왜 자신이 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을 격렬히 움직이려고 했는지에 대한 고찰을 여기에서 하게 될 줄이야...
철수는 피식- 자조한다. 누구를? 자기 자신을.
아침에 수현에게도 언급한 것이기도 했다. 그...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보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얼굴로 듣기 싫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식으로...
“...”
...아니다, 더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굳이 일일이 자세하게 회상하여, 좀 더 기분만 짜증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철수는 옆에 비상으로 더 들고 온 물통을 꺼내, 마저 머리에 뿌렸다. 그제야 조금 머리가 식어가는 기분이다.
수현에게 오늘 아침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굳이 따지자면 우연이었다. 이건 솔직히 다른 이들에게는 말해서는 안 된다고 철수 스스로 가늠한 것이었다. 그래서 수현에게도 사실은 별 말 없이 지나가려고 했으나, 철수도 모르는 철수의 어느 부분은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는지 끝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그 말을 꺼낸 것이 미래나 저수지의 앞이 아닌, 수현이라는 점이었다. 자신이 속해있던 교단에 의해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아버린 아이들에게 태연하게 생일 운운할 거리는 아니라는 자의정도는 든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수현뿐만 아니라 저수지와 미래의 앞에서 입이 제멋대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몸을 무리해서 움직여서, 피로에 몸을 맡겨 기절을 한다면...아예 그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건덕지조차 만들지 않는다면 입이 혼자 스스로 움직이는 사안에 대해서는 안전할 것이다.
철수는 움직이는 데 여러모로 불편하고 – 지금 같은 여름 날씨에 한정 지어 – 덥기만 한 외투를 벗어 던졌다. 몸이 홀가분하니 좀 더 싸울 맛이 났다.
평소보다 더 열중을 했던 탓일까. 평소보다도 더 많은 의뢰를 받아왔는데도, 평상시에 의뢰를 끝내는 시간에 모든 일을 마쳤다. 일이 끝났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몸이 끝내 무너졌다. 숙소로 돌아갈 조금의 체력만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철수는 지금 막 고개를 넘어가는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에 대한 철수의 태연자약한 감상평은 가히 걸작이었다.
“...이제야 저녁이군.”
드디어 하루가 지나갈 수 있었다. 오늘 하루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세한 것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쁘고 격정적인 하루. 그래도...후회스럽지는 않다. 철수는 그렇게 치부했다.
몸의 긴장이 풀리니 주저앉아버린 것은 물론, 차원종들에게 쓸렸던 상처들 또한 같이 욱신거렸다. 위상능력자에게 있어 이깟 상처는 경상이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그 상처들이 유난히 도드라지고 아파보였다. 실제로 살짝 스쳐 만지기만 해도 무척이나 얼얼하기까지 했다.
...이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할 수 없는 소망을 조금 푸념해본 것이다. 철수 본인이 이 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않는 건, 자신의 삶이 끝났을 때뿐이다. 그 전까지는 자신은 그 아이들을 먼저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노을이 좀 더 고개 너머로 숨자 철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도저히 일어나고 싶지 않아 억지로 몸을 일으키기 위해 총대를 버팀목 삼아 일어섰다. 제 몸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사용하는 철수의 앞에, 뜻밖의 손님이 나타났다. 손님은 오늘 하루 종일 흙바닥에 구른 거 같은 철수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흡사 숨바꼭질에서 숨은 아이를 찾아 기쁜 술래의 느낌마냥으로.
미래였다. 미래는 철수를 가리키기까지 했다. 정말, 술래에게 들킨 아이의 기분이 들었다.
“찾았다, 김철수.”
“...미래?”
“마중 나왔어.”
“여긴 어떻게...”
미래는 대답 대신 제 아래에 펼쳐져 있는 그림자를 조금 움직여보였다. 미래는 그림자를 통해 추적 능력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거리가 먼 곳에서까지 잘 찾아낼 줄은 몰랐는데. 철수의 이 꺼내지도 않은 감탄을 미래는 재주 좋게 어찌 들었는지 철수에게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김철수는 눈 감고도 잘 찾을 수 있어.”
“...”
“그건 내가 참 잘해.”
아주 자신있어하는 목소리였다. 평소답지 않게 말을 쫑알거리는 미래가 낯선지 철수는 굳어 있는 상태였다. 낯선 것보단 자신이 아침에서의 수현에게처럼 입이 자기 멋대로 움직일까봐 경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 철수에게로 미래는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잡아.”
자기 손을 잡으라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잡으라는 말에도 꼼짝도 안 하는 철수에게, 종국에는 미래가 먼저 그 손을 잡아주었다. 여름날에 딱 알맞게 두 사람의 손은 후텁지근했다.
미래가 말했다.
“저수지랑 민수현이 기다리고 있어.”
“...”
“돌아가자.”
그 돌아가자, 는 말이 참으로 푸근해서 철수는 오늘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얼핏 미소 같은 것이 지어진 거 같았다.
“그래, 돌아가자.”
“다들 김철수 생일 축하 파티 준비하고 있어.”
“괜히...”
철수는 잠깐 말문을 멈췄다. 괜한 일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하려던 걸 의식적으로 끊었다. 그야, 지금은 그때의 기억과는 달리 그 자식이 아니라 조금 더 애정이 담겨져 있는 이들과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당연하지만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진다. 철수는 미래에게 다시 말을 고쳐 말해주었다.
“...그거, 참으로 기대되는군.”
미래도 철수를 향해 따라 웃어주었다. 한여름 낮을 뒤덮었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진다. 하루의 마무리는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이들과 함께 지샌다.
이것이 행복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