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 나비잠
Forgetter 2020-05-01 9
미래의 주변에는 항상 나비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 즉 환상을 본다.
* * *
미래의 주변에는 항상 나비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적게는 한두 마리, 많을 때는 열 마리는 넘는 듯 보였다. 정확한 수는 직접 세어본 적은 없어서 오차가 있을 수는 있으나, 눈대중으로 보면 대략 그 정도의 나비가 미래의 주변을 빙글 빙글 맴돌았다.
“미래.”
“응?”
“요즘 나비 같은 것을 자주 본 적이 없나?”
“아니, 나비는 본 적 없어.”
그리고 그러한 풍경을 당연하게도 미래 자신은 볼 수 없는 거 같았다.
“...”
처음 이것을 보았을 때는 철수 본인만의 착각으로 치부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자신만 보이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제일 먼저 생각해보는 가능성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미래 본인에게는 직접 이것에 대해 말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미래에게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 그 나비라고 하는 것이 자주 보인다면 신경이 무척이나 쓰일 텐데 어쩌다가 한 번 보이는 빈도를 보였기에 철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계절에 맞지 않는 하이얀 나비의 등장은 순간 내가 제대로 된 계절 감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부터 품게 만들었다. 그 나비를 잡으려고 해도 손에 잡힐 듯, 아닌 듯하다. 그렇기에 철수는 이것이 단순한 자신의 피로로 인해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인지했다. 그래서 나비의 수가 확연히 늘어나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철수는 그제야 심각성을 퍽이나 인식하게 되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눈앞에 있는 나비들의 무리가 보았다. 철수가 미래의 주변에서 흔하게 보곤 했던 하얀 나비도 있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검붉은 색의 나비도 같이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심각한지는 아닌지는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그 검붉은 무리가 훨씬 하얀 나비들을 수로써 압도하고 있었다.
철수는 급히 문을 열고 미래부터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감찰관, 민수현 등등을 포함해서도 단 한 명을 빼고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단 한 명을 빼낸 이유는 미래는 철수가 찾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철수는 그런 미래를 다급하게 깨웠다.
“미래.”
“...”
“미래!”
처음에 깨울 때는 일어나지 않다가 세 번은 부르고 나서야 미래의 눈꺼풀이 겨우 뜨여졌다. 철수의 급박해 보이는 얼굴을 눈앞에서 보고도 미래는 침착했다. 아니, 아직 잠이 덜 깼던 건지도 모른다. 그야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크게 하품을 한 번 한 다음, 미래 나름대로 잔뜩 놀란 얼굴로 철수에게 물어본 것이 이거였기 때문이다.
“...김철수.”
“뭐지.”
“...저것들은 뭐야?”
미래가 정확히 가리킨 방향에는 철수가 보았던 나비 무리들이 있었다. 철수는 깜짝 놀라워하며 미래에게 재차 물었다.
“...미래, 저것들이 보이는 건가?”
“응...그런데 왜 저렇게 숫자가 많아?”
“보인다면 그럼 왜 이때까지 나한테 그 이야기를 안 해준 거지?”
“김철수가 저것들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잖아.”
미래와의 대화 초점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건 미래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둘 다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나비들에게 압사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오기 직전, 가까스로 미래 쪽에서 먼저 해답을 찾았다.
“...아, 저것들이 ‘나비’ 라고 하는 거야?”
“...”
미래는 ‘나비’ 라고 하는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 * *
압도당할 것만 같았던 나비 무리에서 도망치고 한숨을 돌릴 즈음에 미래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쓰레기섬에서도 저 ‘나비’ 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살지 않았고, 미래의 눈에만 보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미래는 저들의 존재에 대해 알려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된 고로, 미래도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어째서 김철수의 눈에도 나비가 보이기 시작한 걸까?”
첫째로 가능한 추론은 철수도 미래와 같은 위상능력자라고 하는 점. 하지만 벌써부터 기각이 되는 사항이다. 만약 그랬다면 감찰관도 같은 위상능력자일 터인데, 미래는 물론 철수에게조차 나비와 같은 언질을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둘째로 가능한 추론은 누군가가 미래와 철수의 정신을 동시에 조작하고 있다. 정신감응계 능력자인 감찰관도 모르도록 아주 세세하게, 그것도 꾸준히.
만약 그런 것이라면 미래와 철수가 접촉을 시작한 이후로, 그런 것들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철수가 물어보았다.
“나비들을 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이지?”
미래는 조금 풀이 죽은 채로 대답했다.
“옆집 아저씨가 죽었을 때.”
“...”
“그 때가 내가 기억하기로 첫 번째로 맞닥뜨린 죽음이었어.”
아. 미래의 주변에 돌던 나비들은 그런 것을 의미했나. 철수는 관자놀이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는 나비 한 마리는 어떤 사람의 영혼 자체로 생각한다고.
미래에게 보이는 나비들은 아마 미래가 그들에게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죄책감일 것이다. 그것이 형상이 되어서 제3자인 철수에게까지 보이게 된 건...아마 다른 이의 개입이 적지 않았을 것만은 사실이었다.
철수는 풀이 죽어있는 미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의 손길에 미래는 살짝 반응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철수는 죄스러워했다.
“미래.”
“응.”
“...너는 참 대견한 아이구나.”
“그런 칭찬 김철수한테 받으니까 기분이 이상해.”
미래가 쓰게 웃었다. 지금 철수가 미래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미래는 그 모든 걸 짊어지고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이때까지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행하던 전투들...그것도 그 죄책감의 연장선이라고 하겠다. 철수는 미래가 가지고 있을 어떤 의무감을 이렇게라도 접하고 나서야 미래가 무척 대단한 아이임을 또 다시 깨달았다.
“사실이다. 부담스러워하지 마라.”
“...결국 나 혼자만 살아남아있어.”
“그건 네가 위상능력자이기 때문이다. 네 탓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원망을 퍼부을 상대가 없다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원망을 퍼부어야 할 대상에 자기 자신을 넣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걸 미래는 알고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둘 다 말주변이 무척이나 서투른 탓이다.
눈앞의 수많은 나비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걸 빤히 구경하던 미래가 한참 후에야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이거 꿈이었으면 좋겠다.”
응?
그러고서 정말 꿈처럼 눈을 떠버린 철수였다. 주변을 보니 카딤, 감찰관, 민수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철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 펼쳐진 사막 풍경을 보고 철수는 이제야 모든 기억이 퍼즐처럼 맞추어졌다.
여기는 고룡 유적지. 자신은 여기에 감찰관 등과 함께 지원 차 온 것이다. 여기에 살고 있는 고룡이라고 불리는 자는 꿈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주로 악몽을 통해 구현되고, 나타난다고 했다.
철수는 아파오는 머리를 매만지며 옆에서 자신과 비슷한 행동을 취하며 일어서고 있는 미래와 눈이 마주쳤다. 미래의 살짝 놀라워하는 눈빛을 읽은 철수는 직감했다.
...우리 둘은 꿈속에서 분명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었던 것이다.
* * *
휴식 도중에 미래가 살짝 민수현과 감찰관에게 흘리듯이 질문을 하는 것들이 보였다. 철수는 그걸 잠자코 기다렸다. 잠시 후, 미래는 당연하게 철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철수는 그걸 확인 하고나서야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것이 이 둘의 대화를 시작하는 자세이다. 미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감찰관이 그러더라. 티어매트는 꿈을 조종하니까, 아마 우리 둘이 동시에 꿈에 걸려들었을 때, 약간의 이음새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그래서 그걸 통해 너와 내가 꿈을 같이 꾼 것이군.”
“...응.”
본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꿈의 공유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인식 차이가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예를 들자면 철수는 미래의 주변에 나비가 돌아다니는 걸 현실에서 본 적이 없다. 미래의 무의식과 접촉하면서 그러했었다고 인식이 도중에 생겨나버린 것이다. 미래 또한 자신의 주변을 집요하리만큼 돌아다니는 나비 무리를 현실에서 본 적이 없다. 다만, 꿈속에서는 자주 접한 건 사실이었다.
미래가 씁쓸하게 푸념을 하나 내뱉었다.
“...결국 꿈은 꿈일 뿐이네.”
“그렇긴 하지만 그 때 내가 너에게 한 말은 틀림없는 진심이다.”
“대견하다고 한 거?”
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이번의 미래는 상당히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희미하지만.
“고마워. 당신에게 그 말을 들으니 힘이 나는 것 같아.”
“그래...우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지.”
“응...그러니까 힘 많이 내야 해.”
이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부자연스럽게 끊어지고 말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전하고 싶었던 건 꿈속에서 다 말해주었으니까. 그 희끄무레한 감각이라도 자신들에게 남아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꽤 희망찬 결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근황 : 바쁩니다. 덤으로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해서 더 바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