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58화(完)

검은코트의사내 2020-04-18 2

 기계 팔과 다리에 익숙해질 때까지 최재성 팀장님이 도와주셨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멀쩡해졌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했던 짓을 했는데 역시나 그건 자살행위였다. 그것보다 왜 내가 살아날 수 있었지? 그 그림자가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런데 그걸 벌쳐스 연구원이 발견하지 못한 것도 이상했다. 위상력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다른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자, 주먹을 쥐었다가 펴봐."
"네."

 시키는 대로 따랐다. 약간 묵직한 느낌이었지만, 제대로 신경이 전달되어 기계 팔이 움직였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 일로 많은 클로저들이 나를 인정했다고 했다. 민간인인데도 목숨걸고 나선 내 활약에 대부분 감탄했다는 거였다.

"좋아. 이제 다리를 움직여 봐라."

 한 발자국 씩 움직였다. 걷는 것도 조금 익숙해졌다. 다시 한 번 총을 잡아서 활동할 수 있겠지만, 이대로 괜찮을지 의문이었다. 엄마는 매번 찾아와서 나를 보고 엄청 우셨다. 정말로 죽을 줄 알았으니까. 벌쳐스 사장은 이제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위치에 있다고 했지만, 우쭐 댈 생각은 없었다. 굳이 요청하자면, 늑대개 팀을 구속한 초커를 떼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팀장님. 늑대개 팀의 목에 달린 초커를 뗄 수 없을까요? 아무리 범죄자 출신이라고 하지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요."
"상대가 범죄자라면 더욱 그래야 해.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데,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수단이거든."

 냉정하게 답하셨다. 확실히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늑대개 팀이 전과가 있다고 하지만, 바이올렛 아가씨도 초커를 차고 있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헤카톤 케일을 위한 제물로 삼으려고 한 것도 CKT부대 때문에 초조해서 저지른 거였다. 

"네가 말한 CKT부대는 아마 이 상황까지 읽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어. CKT부대에게 헤카톤 케일 존재를 들키니까 사장이 초조한 나머지 계획을 급히 앞당겨버린거지. 조만간 녀석들이 헤카톤 케일을 파괴하러 올 거라는 불안감을 가졌을 테니까."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건가요?"
"그래. 너에게 일부로 연락한 이유가 있었어. 미스터 블랙이라는 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야."

 동감이었다. 그 사람이 여기까지 읽고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유니온 신뢰에 이어서 벌쳐스도 예전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클로저들이 전부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유니온 총장님 오셨습니다." 

 총장이 왔다는 얘기에 두 사람은 차렷 자세로 대기했다. 지금은 벌쳐스에 내정간섭을 지시한 유니온의 총본부 총장이 뒷짐을 지며 경호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자네가 한석봉인가?"
"네! 총장님. 한석봉이라고..... 합니다!"

 뻣뻣한 자세로 90도로 인사했다. 최재성 팀장님도 높은 분 앞에서는 긴장했다. 유니온 현 총장 미하엘 폰 키스크, 60대는 넘어보이는 노장 이미지였고, 주변 사람을 긴장하게 할 정도로 무서운 위압감을 주변에 퍼트리고 계셨다.

"자네의 활약은 잘 듣고 있었네. 특히 이번에 한국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에 수많은 클로저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어. 민간인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하는데, 차원종을 상대로 앞으로 겁먹을 수 없다고 난리더군."

 클로저들이 차원종과 싸우고자하는 의욕을 보인다는 얘기였다. 위상력 각성하지 않은 데다가 아직 20대도 아닌 미성년자가 해낸 일이었으니 그들에게 충분히 동기부여가 될 만도 했었다. 내가 한 짓은 바보같았지만. 총장님은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으며 미소를 지으셨다. 꼭 감시관님이 보이는 표정 같았다.

"자네처럼 재미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 차원종을 상대로 긴장하던 전 세계 클로저들을 전부 일어나게 만들었어. 마치 빠르게 번지는 바이러스처럼 말이야."
"아닙니다. 총장님. 전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거 뿐입니다."
"맞아.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자네 능력을 믿고 부탁할 게 있네."
"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습니다."
"CKT는 우리 유니온에게 엄청난 타격을 줬어. 그리고 강력한 대원들을 보유하고 있지. 우리도 새로운 클로저 팀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다음 주 부터 그 새로운 팀의 관리요원을 맡아줬으면 하네."

 새로운 클로저 팀의 관리요원이라고? 나는 늑대개 팀 감시 요원이었다. 늑대개 팀도 아직 문제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들을 떠나라는 뜻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고 싶었지만, 총장의 영향력은 그만큼 컸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새로운 클로저 팀이라는 게 조금 맘에 걸렸다.

"어떤 팀인가요?"
"사냥터지기 팀이다. 다음 주부터 독일로 가게 될 걸세. 그럼 그 때 다시 뵙도록 하지. 한석봉 요원."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경호원과 함께 돌아갔다. 다음주 부터 독일로 가게 되었다. 늑대개 팀은 이걸로 해결인 걸까? 전세계 클로저들이 대부분 희망을 가진 게 바이러스같다고 총장님이 말씀하셨다. 다른 의미로 나를 바이러스 맨이라고 부르시는 듯 했다. 

"독일인가? 한석봉, 너 정말 출세했구나. 총장님이 직접 찾아올 정도면 말 다했어. 저분은 우수한 인재 외에는 직접 찾아오지 않으시거든."

 최재성 팀장님의 말씀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내게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클로저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나도 이제 세하와 그 애에게 조금 다가갈 자격이 생긴 거겠지? 다시 만날 때 같은 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지도 모르겠다. 주먹이 쥐어졌다. 독일에서 하는 임무를 마치면 곧바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으니까.

*  *  *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헤카톤 케일 사건은 전세계 방송사로 송출되었다. 테이블에 앉은 채 차를 마시고 있던 검은색 코트를 입은 사내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마침 보고서를 들고 들어온 메리는 그에게 거수경례했다.

"헤카톤 케일은 한국 클로저의 손에 파괴되었습니다. 수많은 클로저들이 한석봉이라는 소년 때문에 사기가 오른 상황입니다. 미스터 블랙님의 생각대로 돌아갔습니다."

 메리의 말에 미스터 블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위로 한 번 끌어올린 뒤에 근엄하게 말했다.

"세상에서는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바이러스가 두 종류 존재하지. 하나는 절망이 퍼지는 바이러스, 또 하나는, 희망이 퍼지는 바이러스야. 전세계 클로저들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일어선 거겠지."
"한석봉은 생각보다 위험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미스터 블랙님의 계획에 방해가 될 존재인데, 처리해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급할 거 없어. 아직까지는 내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어. 유니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에 우리에 대한 증오심으로 선을 넘은 상황이야. 저들이 이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오히려 이익을 얻는 건 바로 우리다. 그리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바이러스는 뜨거운 열기에 약한 법이야. 인간은 누구나 뜨거운 증오에 빠지게 되지. 그 바이러스는 금방 사멸하게 될 거야."

 아무리 희망을 받았다해도 그 행복을 자극하는 일을 지속한다면 또 다시 증오에 휩싸일 수 있었다. 미스터 블랙은 차를 한 잔 더 들이키며 메리에게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메리, 인간의 본질은, 어둠이다."

-The End-

안녕하세요. 검은코트의 사내입니다. 영웅의 아들 시리즈 2부가 끝났습니다. 봐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당분간 휴재를 하다가 3부작인 인플루엔자 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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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35:2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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