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57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4-17 1
헤카톤 케일은 거대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직접 손톱으로 찔렀다. 그 안에 있는 한석봉을 잡아서 끄집어내 멀리 던졌다. 늑대개 팀은 한석봉이 날아간 방향을 보고 뒤따라갔고, 트레이너는 곧바로 사이킥 무브로 녀석의 머리에 구멍이 생긴 걸 봤다. 한석봉이 그런 무모한 짓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쾅!
헤카톤 케일의 주먹과 트레이너의 주먹이 격돌했다. 상대가 머리를 노릴 거라는 걸 알고 방어하기 위해 헤카톤 케일도 즉각 반응했다. 두 주먹이 충돌하면서 강한 풍압이 발생했지만, 트레이너가 아닌 헤카톤 케일의 몸이 오히려 밀려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쿵!
요란한 진동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트레이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상력을 실은 주먹으로 녀석의 머리를 연타했다. 한석봉이 목숨걸고 만들어준 기회였다. 이걸 놓치지 않고, 숨쉴 틈 없이 공격했다.
* * *
삑- 삑- 삑-
기계음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여기는 병원인가?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헤카톤 케일에게 돌격해서 입 안으로 들어가 녀석의 뇌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거까지 기억했다. 고통스러웠지만 계속 참아내면서까지 뇌를 향해 난사했었다. 눈을 떠보니 링거 주사바늘이 내 온 몸에 각각 박혀있는 게 보였다.
"정신이 드냐? 겨우 살아난 게 기적이야."
최재성 팀장님이셨다. 확실히 나는 겨우 살아났는지 모르겠다. 그 때 온 몸이 썩어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겨우 살았으니까. 가만, 뭔가 허전했다. 양쪽 팔이 안 느껴졌고, 다리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혹시나 놀라서 확인해보니 눈이 절로 크게 떠졌다.
"이...... 이건......"
두 팔이 없었다. 두 다리도 없이 오직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 뭐...... 뭐야? 이게 정말 내 몸이야? 팔과 다리 둘 다 없는 게 내 몸이라고? 숨이 멎을 거 같은 충격이었지만, 이내 진정했다. 그렇다. 이건 내가 무모하게 나서서 생긴 결과였다. 게임처럼 생각한 끝에 내게 벌어진 재앙이었다. 최재성 팀장님은 나를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녀석, 그렇게 무모하게 나서는 사람이 어디있어? 클로저가 해야하는 일을 왜 굳이 나서서 위험에 처한 거야? 네가 한 짓 때문에 네 부모가 얼마나 울고 그랬는지 몰라?"
헤카톤 케일 안으로 들어갔을 때 몸 안에서 나온 액체가 내 피부에 닿아서 녹아내린 모양이었다. 그 뒤에 기억이 없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여기까지 온 거 같았다.
"그건 그렇고, 뭔가 이상했어. 원래라면 죽는 게 당연한 건데, 어째서인지 너는 살아있어. 발견 당시에 네 몸에서 출혈이 없었다고 하더군."
"네? 출혈이 없었다고요?"
"네? 출혈이 없었다고요?"
"그래. 양쪽 팔과 다리에 구멍이 크게 나서 과다출혈로 단시간에 죽는 게 정상이야.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너 말이야. 대체 몸이 어떻게 된 거냐? 많은 의료진들이 와서 검사했는데 신체적으로는 정상인이 틀림없었어. 그런데 출혈이 멈췄다는 게 말이 되냐?"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대로 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였다. 혹시 꿈에서 봤던 그림자가 날 살려주기라도 했던 걸까? 의료진도 밝혀내지 못했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거 하나였다.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건 인정했다. 그래도 조직의 방식을 따르기만 하다가 사원들이나 다를바 없는 존재가 되기 싫었던 거였다. 클로저를 돕기 위해 시작한 초심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헤카톤 케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석봉이 네가 틈을 만들어준 덕에 트레이너 씨가 무사히 처리했다. 네 덕분이라고 그러더라."
"이제 저는, 앞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겠군요."
"아니, 사장님께서 네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계신다. 이번에 헤카톤 케일을 쓰러뜨린 공적 때문에 너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면서 내게 지시하셨지."
최재성 팀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뭔가를 싣고 왔다. 기계로 되어있는 인공 팔과 인공 다리였다. 설마 저걸 내 몸에 쑤셔넣으려고 그러시는 걸까?
"저, 사이보그가 되는 건가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겠네. 다만, 이번 일로 우리 조직은 피해를 너무 많이 봤어. 헤카톤 케일이 대중에게 알려져서 유니온에서 내정 간섭을 시작했거든. 아마 너는 유니온의 통제를 받게 될 거야."
벌쳐스 사장이 할 수 있는 권한을 축소하고 유니온이 관여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거였다. 홍시영 감시관님이나 사장님의 심기가 불편할 거 같았다. 설마 이런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아, 그러고 보니, 사장님 따님이 널 엄청 많이 걱정하셨다. 물론 늑대개 팀도 마찬가지고.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여러 사람을 걱정하게 만드는 거냐? 네가 죽어버리면 나도 네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어지잖아."
내 아버지는 지금 행방불명이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계시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내 몸이 기계로 덮어지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잃어버린 팔과 다리를 보충할 시간이야. 넌 앞으로 벌쳐스에서 최고로 높은 대우를 받게 될 거다. 너 처럼 강적을 상대로 두려움 없이 나서는 전사는 본 적이 없어. 사장님은 물론, 유니온의 높은 사람도 너를 주목하고 있다."
"그런가요?"
"그런가요?"
"그래. 한 가지만 묻자. 넌 정말로, 여자애 한 명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 거냐?"
"네."
숨길 필요가 있나? 어차피 다 알려질 일이었다. 다시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이유였지만, 이것 만으로 수많은 클로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게 뿌듯했다.
"너처럼 멍청한 자식은 일하면서 처음 본다. 겨우 그런 이유로 몸이 이지경이 되도록 싸우는 거냐?"
"인정할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한 번 반해버린 상대에게 다가가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원래 민간인과 클로저가 이어지는 건 어려웠다. 최재성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무거운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그는 진정제 주사를 꺼내 그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수술에 들어갈거야. 깨어나면 네 두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알았지?"
"네."
헤카톤 케일을 쓰러뜨렸지만, 내 몸은 엉망징창이 되었다. 그림자가 날 살려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헤카톤 케일로 인해 유니온에서 벌쳐스를 내정간섭하게 되었고, 사장님은 예전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유지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 * *
긴 잠에서 깨어난 나는 내 몸에 박힌 기계팔과 다리를 보고 놀랐다. 말로만 듣던 내가 사이보그가 된 거였다. 솔직히 이 정도라면 가능한 일일까? 직접 두드려보면 통증이 안 느껴졌다. 팔과 다리가 잘려도 신경이 없어서 아픔을 못 느끼겠지만, 몸뚱이를 가격당하면 아프게 될 일이었다.
손을 쥐었다가 펴본다. 이대로 생활할 수 있을까? 최재성 팀장님은 3일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다고 했다. 기계 성분이 살에 녹아들면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석봉 씨."
병실에 누워있던 나를 찾아온 건 바이올렛 아가씨였다. 내가 불구가 되어서 지금쯤 많이 실망했을 지도 모르겠다. 일단 안심하게 하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아가씨는 내 뺨에 손찌검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사람 속을 썩여야 직성이 풀리겠어요? 그렇게 말했는데 듣지 않으시고, 몸을 만신창이로 만드시다니......"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걱정을 많이 하셨구나. 화내시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다. 아가씨는 날 은근 챙겨주셨으니까. 물론, 인재로 써먹기 위해서겠지.
"한석봉 씨를 벌쳐스에서 내보내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헤카톤 케일을 쓰러뜨린 공으로 능력을 인정하셨어요. 앞으로 당신은 벌쳐스의 전폭지지를 받을 거에요."
"뭐라고요?"
"뭐라고요?"
"유니온의 내정간섭이 들어와 한석봉 씨를 그렇게 대우하라고 지시가 내려졌어요. VIP로 대우받을 수준의 영향력이 된 거죠. 지금 아버지도 당신을 함부로 어떻게 하지 못해요."
이게 무슨 소리야? 사장님도 지금 날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유니온이 그만큼이나 나를 챙겨준다는 말이야? 이거 엄청난 일이었다. 내가 과연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걸까? 위상력도 없고, 팔과 다리를 잃어서 기계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걸까?
"유니온 총장님께서 당신의 활약을 듣고 관심을 가졌다고 했어요."
"총장님이요?"
유니온 총본부의 총장을 의미했다. 헤카톤 케일은 S급 차원종이었고, 트레이너는 자신의 공적이 아닌 내 공적으로 돌렸기에 이렇게 된 거라고 했다. 트레이너 씨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었다. 난 그런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없었는데 괜히 일을 크게 해서 별거 아닌 일로 주목받게 했다. 앞으로 유니온에서 더 큰 일을 시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벌쳐스가 시킨 일보다 더 커다란 일을.
"그래도 당신 덕분에 헤카톤 케일을 쓰러뜨린 건 사실이에요. 머리에 구멍이 나지 않았으면 트레이너 씨라도 이기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헤카톤 케일이 자기 머리를 뚫어서 나를 끄집어 내 힘껏 던져버린 게 떠올랐다. 그 때는 정말로 죽는 줄 알고 의식을 잃었었는데 이렇게 살아있다는 게 놀라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