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50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4-04 1

 정상 회담 당일, 세계 각국 유니온 본부장과 국가원수가 한 자리에 모였다. 유니온과 협력하는 민간 기업 사장들도 이 회담에 참석하는 대규모 회담이었다. 경비는 엄청 삼엄했고, 곳곳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CKT부대가 쳐들어 올 거라고 생각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아가씨도 그 회담 관계자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이어피스를 낀 채 각 요원의 연락을 주고 받았다.

"한석봉 씨. 위험한 일 있으면 곧바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비를 서는 자들은 대부분 클로저라 너무 부담스러웠다. 물론 나처럼 위상력이 없는 요원도 있지만, 하나같이 정예 훈련을 받은 자들이라 저절로 위축 되었다. 하이드 씨는 금방 어디로 가셨고,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하나씩 확인했다. 오늘 드디어 이곳 건물 설계도를 받았다. 녀석들이 침입할 만한 곳은 지하일 가능성이 컸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지하쪽에도 정예 클로저들이 경비를 섰다. 

"야, 쟤 뭐냐? 척 봐도 비실비실해보이는데?"
"훈련도 제대로 안 받은 거 같은데 제대로 경비를 설 수 있나?"

 한국 클로저들의 험담이 들렸다. 다른 나라 클로저도 내가 전투력이 없다는 걸 알고 저렇게 나오는 모양이었다. 혹시 벌쳐스 사장은 일부로 나를 이곳에 오게 만든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라도 해서 날 괴롭히려고 그런 거라고 확신했다. 바이올렛 아가씨가 내게 관심을 보이니까 그걸 좋지 않게 생각해서 심술을 부린 거라 할 수 있겠지. 하이드 씨에게 조만간 엄명이 내려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회담하는 동안, 하늘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요원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어피스를 한손으로 잡으며 하이드에게 말했다.

"녀석들이 오는 거 같아요."
-네. 저도 봤습니다.

 하늘에서 검은색 차원문이 대량으로 생성되었고, 그곳에서 노다지 군단이 물밀듯이 나와 지상으로 착지했다. 그들에게 검은색 기운이 전신에 물들었다. 지금까지 봤던 거와 다른 모습이었다. 

"공격!"

 누군가의 외침으로 클로저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들과 싸웠다. 대규모 공수부대를 보는 듯 했다. 선봉에 나선 클로저들이 노다지 군단을 상대했다. 레일 캐논이 UN 건물을 노리지만 건물 주변에 푸른색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거겠지.

 나는 착지한 녀석들의 머리만 조준하면서 사격했다. 노다지 군단의 몸이 검은 기운이 둘러싸서 더 강해진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능력치는 다를 게 없었다. 뭔가 다른 기능이라도 있는 걸까? 

-검은색 차원문 누가 닫아봐!
-녀석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잖아. 어떻게 해봐!

 차원문에서 녀석들이 계속 떨어지는 게 마치 폭포수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되는 숫자야? 정예 클로저가 있다해도 수가 너무 많은데? 선봉에 나선 클로저 한명이 레일 캐논을 맞고 전사했지만 노다지 군단도 계속 무너뜨리고 있었다. 설마 무한히 나오는 군단은 아니겠지? 

"하이드 씨. 저 차원문을 부술 수 없을까요? 저기서 차원종이 수없이 나오는데요."

 안전한 곳에서 하이드 씨에게 말했지만, 싸우고 있었는지 답이 없었다. 차원종보다 차원문을 먼저 닫아야 할 거 같은데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차원문을 닫기 위해서는 위상력 억제기가 작동해야 했다.

"위상 억제기는 뭐하는 겁니까?"
-최고 레벨로 작동중입니다만 차원종이 조금도 부식되지 않았습니다.

 본부에 연락했다. 위상 억제기는 원래 차원문 생성을 차단하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차원종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한 건데 이상하게도 조금도 오므라들지 않았고, 안으로 들어온 차원종 역시 차원 압력에 잘 버티고 있었다. 그렇군, 저 검은 기운은 차원 압력을 견디는 데 사용된 거였어.

"위상 억제기 레벨을 평소처럼 중간으로 맞춰주세요. 녀석들은 차워 압력을 견디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클로저라면 한 눈에 봐도 저들이 멀쩡하게 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들을 막기 위해서는 그냥 싸우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었으니까. 

"오!"

 검은색 차원문에서 더는 노다지 군단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예 클로저들이 힘을 합해 녀석들을 없애버렸지만, 대부분 지쳐보였다. 수많은 차원종과 상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한석봉 님. 괜찮으십니까?
"네. 전 괜찮습니다. 이번 차원종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규모가 많았어요."

 대군을 보는 듯 했었다. 우리측도 피해는 있었다. 정예 클로저들도 전부 진심을 다해 싸웠기에 우선 녀석들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여기는 본부, CKT부대 소속으로 보이는 군용헬기 다수 출현!

 차원문이 닫혔을 때 이번에는 군용헬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공군은 뭐한거야? 일본처럼 해킹당한 건가? 지금 다들 지쳐있는 듯 보이는데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콰콰쾅!

 서쪽에서 폭발 소리가 났다. 저쪽은 분명 민간인이 있는 곳이다. 설마 녀석들은 죄없는 사람을 공격한 건가? 거기로 가고 싶었지만, 검은 제복을 입은 CKT부대 요원들이 클로저를 향해 정면공격을 시작했다. 눈에 익은 사람도 보였다. 신해랑과 배원형, 그리고 조재현까지.

캉! 캉! 퍼펑!

 아수라장이다. 충격파 때문에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일일이 어려웠다. 이런 권총 가지고는 전부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사격했다. 정예 클로저들이 조금씩 밀리는 게 보였다. 앞서 싸운 군단과 싸워서 지친 거였다. 게임에서 말하는 기력이 다했다고 봐야겠지? 그래도 정신적으로 일어나서 CKT부대와 싸우는 클로저들이 다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작전에는 벌꿀오소리팀도 있었지? 경비 구역이 달라서 몰랐지만.

파앙!

"으악!"

 익숙한 샷건 소리와 함께 CKT 요원의 비명이 터졌다. 한영수 요원이 이끄는 벌꿀오소리 팀, 숨을 헐떡이고 있지만,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한영수 요원이 나를 보고 씩 한 번 웃으며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여, 이게 누구야? 반가운 얼굴이네."

 등 뒤에서 나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창을 든 클로저, 배원형이었다. 쓰레기 섬과 플레인 게이트에서 만난 적 있었다. 적만 아니었다면 조금은 이야기가 통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한석봉, 네가 여기 올 줄은 몰랐는데? 마음 같아서는 너를 살리고 싶은데, 입장이 이런걸 어쩌겠어?"

 창을 겨누며 말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권총을 겨누었다. 전에는 임시적으로 아군처럼 행동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으니까.

탕! 탕!

 배원형은 내 총알을 가볍게 피한 뒤에 달려와서 내 배를 걷어찼다.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클로저와 민간인은 원래 신체적으로 차이가 났으니까.

"으으......"
"너 정도는 그냥 발차기 한 번으로 만족해. 그럼 이제 끝장내볼까? 널 제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으니까."
"뭐라고?"

 이유를 물으려고 했지만 녀석의 창이 내 쪽으로 찔러오고 있었다. 이대로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누군가가 창을 걷어내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

"응? 이게 누구야? 고귀하신 아가씨 아니신가? 그런 차림으로 싸울 수 있겠어?"

 아가씨가 대검을 들고 내 앞에 서 있다. 배원형은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깔보듯이 말하지만, 바이올렛 아가씨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셨는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괜찮아요?"
"네."
"그럼 어서 피하세요."

 아가씨는 그렇게 말하고 배원형에게 덤벼들었다. 칼과 창의 합이 벌어졌다. 아가씨는 드레스 차림인데도 잘 싸우시는 구나. 하체가 불편해서 제대로 못 싸울 거 같은데 말이다.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하는데 맞은 부위가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쿠우우우우!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큰 기술을 발동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트레이너 씨는 어디있지? 지하에서 싸우고 계신 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지금은 안전한 곳으로 가서 아가씨가 싸움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하니까.

*  *  *

 트레이너는 지하에 나타난 릭스마이너와 마주했다. 보고에 있었던 노다지 군단을 이끄는 간부, 그 실력은 정예 클로저들도 쓰러뜨리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릭스마이너는 삼단봉을 꺼냈고, 트레이너는 주먹을 쥐며 위상력을 분출했다.

"네가 바로 차원종 군단을 이끄는 간부인가? 너 정도 되는 녀석이 왜 테러단체에 협조하고 있는 거지?"
"인간 주제에 그런 건 알아서 뭐하려는 거냐? 우리는 전쟁을 벌이려 왔다. 불필요한 대화는 필요없다."
"훗. 그런가? 그럼 사양하지 않도록 하지."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트레이너는 주먹과 발차기를 사용하지만, 릭스마이너는 오로지 삼단봉을 휘두르며 합을 이루었다. 합이 길어질수록 트레이너 쪽이 조금 더 우세했다. 놈이 입고 있는 갑옷이 트레이너 위상력으로 분쇄되었으니까. 

콰장창!

"큭! 인간, 조금 하는 구나. 강하다는 클로저와 수없이 싸워봤는데 인간처럼 뛰어난 클로저는 처음이다."
"경험의 차이지. 난 18년 전부터 이런 일을 해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차원종."

퍽!

 말 끝나기가 무섭게 트레이너의 주먹이 릭스마이너의 복부에 정확히 박혔다. 입 밖으로 녹색 액체를 토해내면서 뒤로 날아갔다. 뒤에서 구경하던 정예 클로저들은 넋나간 얼굴로 조용히 박수쳤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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