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49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4-03 1
주변인, 청소년인 내가 현재 위치하는 곳이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중간 위치, 그리고 지금 나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나약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소녀 옆에 있고 싶어서 벌쳐스에 들어와 열심히 일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길을 포기하고, 자진해서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게 엄청 바보같은 짓이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야. 넌 자진해서 그 길에 뛰어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뚜렷한 목표를 잃어갔어. 내 말이 틀리나? 결과적으로 네가 한 일은, 남들에게만 좋고, 자기 자신에게는 손해만 되는 추악한 인생이야."
혼란스러웠다. 그림자가 나를 이렇게까지 압박했다. 추악하다. 어쩌면 맞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나더러 착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정말로 착한 마음을 가진 건 아니었다. 내가 한 건, 조직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늑대개 팀이 초커를 착용하며 괴로워할 때 충분한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그저 변명에 불과했다.
"부정하지 않는 거냐? 네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부정할 생각 없습니다. 전부 다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왜 당당한 거지? 충격을 받지 않은 거냐?"
"충격 받았어요. 가슴이 찢어져 내릴 거 같아요. 그래도, 처음부터 잘못을 안한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죄가 없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충격 받았어요. 가슴이 찢어져 내릴 거 같아요. 그래도, 처음부터 잘못을 안한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죄가 없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누구나 다 잘못을 하나씩 저지르고 다닐 수 있었다. 죄를 지었으면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하면 되는 일이었다. 두 번다시 재발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한 일이었다.
"죄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용서할까? 쉽게 용서할 사람은 없어. 누구나 증오의 어둠에 빠지게 되지. 그리고 그곳에서 쉽게 벗어나기라는 건 어려운 일이야."
"용서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제 자신이 지은 죄를 인정하고, 행동을 조심하면 되니까요. 용서를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역시 내가 눈여겨본 보람이 있었군. 한석봉."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요? 저 자신인가요?"
"아니, 네가 아니야. 너처럼 희귀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존재라고 해두지."
"아니, 네가 아니야. 너처럼 희귀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존재라고 해두지."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혹시 그들이 말한 카오스라는 거와 관련 있을까? 갑자기 눈 앞이 눈부시게 빛났다.
* * *
호텔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그건 단순히 꿈이었을까? 나처럼 희귀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존재라는 게 무슨 뜻일까? 그 사람이 내게 한 건 나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 거 밖에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다는 걸 느꼈지만,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실례하겠습니다."
하이드 씨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가씨와 함께 관광하기로 했었다. 어제 일에 대해 좀 말해야 할까? 아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CKT부대와는 관련 없는 거처럼 느껴졌으니까. 세하의 아버지가 조사했다는 카오스라는 존재, 그게 혹시 미스터 블랙과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좀 더 단서를 모을 필요가 느껴졌다.
"한석봉 씨. 아직 준비 안 되셨나요?"
"네. 지금 나가겠습니다."
"네. 지금 나가겠습니다."
재빨리 준비를 했다. 지금은 아가씨 상대를 해줘야 할 거 같았으니까.
* * *
CKT부대 사령선으로 쓰이는 거대 잠수함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영토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메리는 미국 국방부 서버에 접속하여 보안을 뚫었다. 세계적으로 강력한 보안을 자랑하는 펜타곤을 뚫으며 UN에 경비작전계획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S급 클로저들이 상당히 모였다. 차원종 군단장이 수많은 군단을 이끌고 와도 충분히 막아낼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이번 작전을 결행한 이유가 있었다. 메리는 노트북 전원을 키며 자판기를 두드렸다. 화면에는 Black 이라는 검은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작전은 잘 진행되고 있나?
"네. 미스터 블랙, 외람된 말씀이지만, UN에 침략한 이유를 알 수있습니까?"
-신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다. 제 아무리 뛰어난 클로저가 있다해도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 마련이야.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변조된 목소리다. 그의 정체는 오직 메리만이 알고 있었다. 지금은 사정상 미스터 블랙은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신뢰를 무너뜨린다면 그 때부터 저희 혁명은 시작되는 겁니까?"
-아직 우리에게는 부족한 게 많이 있다. 그들에게 뒤지지 않은 세력이 되려면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도 한 국가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가지게 된다.
CKT부대는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말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UN에 공격을 지시한 건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세계 각국에서 정예 클로저들이 모였는데 테러 조직 하나 못 막는다고 하면 전세계인의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정상을 죽이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군단을 우선 선봉에 세워라. 그런 뒤에 본대를 투입하여 최대한 많은 클로저를 사살해라.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민간 건물들을 전부 파괴하면 된다.
대부분 정부 건물 밖에 없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민간인이 사는 고층 빌딩같은 걸 폭파시켜 인명피해를 내라는 거였다. 메리는 그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명령이었기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아참, 그러고 보니, 한국 벌쳐스에 근무하는 한석봉이라는 소년을 감시해라. 그 녀석에게 뭔가 묘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만약 위험인물이라 판단되면 즉시 제거하도록 해라.
"그 소년은 위상력이 각성하지 않은 평범한 민간인인데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 힘이 없는 거처럼 보인다고 해서 방심하지 마라.
미스터 블랙은 그렇게 말하고 끊었다. 한석봉에 대해서는 이미 그녀도 조사를 마쳤다. 전직 클로저를 아버지로 두고 있으며, 집안도 대단한 게 없었고, 학업 성적도 좋지 않은 게임 페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벌쳐스 감시 요원으로 몇 가지 공적을 세웠지만, 겨우 그것 만으로 위협이 된다고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벌쳐스 회사를 해킹에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지 확인했다. 누구나 공적을 세울 수 있는 활약을 하나씩 클릭하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1급 기밀 자료에 있는 레비아라는 차원종, 그녀의 폭주를 봉인한 사람이 바로 한석봉이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믿을 수가 없어."
폭주하는 힘을 다스릴 줄 모르는 차원종을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한석봉의 활약으로 그녀는 본인의 의지만으로 힘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전세계 정예 클로저들의 기록만 살펴봤는데도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스터 블랙이 그를 경계하라고 말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무전기를 들어 누군가를 불렀다.
"나다. 벌쳐스 감시 요원 한석봉을 철저히 감시하라는 명령이다. 아직까지는 조사해야 알겠지만, 위험인물이라면 즉시 사살하도록 해라."
* * *
아가씨와 관광을 즐겼다. 사람들이 추천했던 관광명소로 가보기도 하고, 미국이 자랑하는 유명한 음식도 맛보았다. 오늘 하루는 그나마 복잡한 머리를 날려버린 기분이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에 도착하여 기념촬영하니, 어느 새 날이 저물었다. 우리는 나란히 벤치에 앉아 해가 떨어지는 노을을 감상했다.
"오늘 어떠셨나요?"
"네. 좋았어요. 뉴욕은 정말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게 느껴지네요."
"그렇죠.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수도를 뉴욕이라고 착각할 정도라니까요."
미국이 수도보다 더 부유한 도시라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역사공부를 할 때도 중국의 수도가 상하이라고 착각할 수 있듯이. 그래도 기본 상식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어디가서 망신 당하니까.
"프레인 게이트에서 CKT부대 요원을 만났다면서요?"
"네. 만났어요. 그 안에서 재생하는 차원종을 만났어요. 벌꿀오소리 팀이 결국 해치우긴 했지만, 앞으로 저런 녀석들이 더 나올까봐 두려웠거든요."
A급 클로저가 상대하기 어려웠던 녀석이었다. 조만간 또 다른 생명공학괴물이 나타나 우리를 위협할 거라 확신했다.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보스를 쓰러뜨리면 더 강력한 보스가 주인공들을 기다렸다. 게임에서 흔히 있는 설정이었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벌꿀오소리 팀도 당신의 활약을 인정했어요. 무슨 뜻인지는 당신이 잘 이해할 거라고 믿어요."
이해하고 있지만, 난 절대로 타인의 칭찬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 일은 벌꿀오소리 팀이 다했지, 내가 한 건 거의 없었으니까.
"벌쳐스 현 사장은 저에게도 숨긴 거대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어요. 당연하겠죠. 저는 사장님의 친딸이 아니니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에요. 제 진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양녀가 되었다는 얘기인데 마치 친딸처럼 대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뭔가 수상해보여도 딸을 아끼는 마음은 부모와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가씨가 내뱉는 한 마디에 나는 또 다시 충격에 빠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