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42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24 1
유니온에 도착했을 때, 탐사팀은 이미 출동대기 중이었다. 택시타고 도착한 나를 맞이한 건 신서울 지부장님이신 데이비드 씨였다.
"빈 좌석에 앉아주시고, 안전벨트를 메주세요."
"어서 오게. 자네가 벌쳐스 감시요원 한석봉이군. 반갑네."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시며 악수를 청했다. 두손으로 악수를 받은 나는 데이비드 씨를 바라보았다. 첫인상이 좋은 이미지였다. 그리고 지부장님 곁에는 출동할 클로저들이 차렷자세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위상력 기운이 강력한 거로 봐서 정예 클로저인 듯 했다.
"소개하지. 이쪽은 벌꿀오소리팀이다. 용감한 녀석들로 이루어진 정예 클로저들이지. 이쪽은 리더인 한영수."
"A급 클로저인 한영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석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눈빛이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사나이였다. 다른 여성들이 쉽게 반할만한 멋있는 이미지였다. 악수를 할 때도 그의 손이 묵직한 게 느껴졌다. 운동을 많이 했던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 상당히 많은 수련을 쌓은 거처럼 느껴졌다.
"벌쳐스 처리부대는 사정상 오지 못했지만 여기 있는 한석봉은 노다지 군단이 인천에 상륙했을 때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아무쪼록 잘 대해주도록. 이번 임무를 무사히 마쳐서 생환하기를 바란다. 이상이다."
데이비드의 말에 클로저들과 함께 거수 경례했다. 유니온 지부장이라면 높은 계급이니 내가 이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벌꿀오소리 팀이라, 그 동물이 뭐였더라...... 공부 좀 할 걸 그랬다. 나중에 물어보면 알겠지.
부웅-
UNION 마크가 써진 대형 트레일러가 들어왔다. 이곳에 탑승해서 옮겨가는 건가? 클로저들이 먼저 뒤에 들어가자 나도 따라서 들어갔다. 안쪽에는 각 좌석이 서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되어있다. 게임 내에서 볼 수 있는 수송선 내부와 비슷했다. 와,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빈 좌석에 앉아주시고, 안전벨트를 메주세요."
빈 자리에 아무데나 앉은 뒤에 벨트를 맸다. 이런 대형 트레일러가 수송차로 이용될 줄은 몰랐다. 다 앉은 뒤에 차는 출발했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한영수 요원에게 물었다.
"저, 실례지만, 벌꿀오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 그 동물을 모르시나보군요. 벌꿀오소리는 겁이 없는 동물로 수달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입니다. 저희는 어떠한 임무라도 절대로 겁을 먹지 않는다는 팀의 목표입니다."
어떠한 일에도 절대로 겁을 먹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사상을 가져서 놀라웠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면 이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했기에 겁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이 벌꿀오소리팀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았다.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권총으로 서포트를 좀 해주면 되겠지. 저들에게 최대한 걸리적거리지 않게 하고.
"요원님께서는 아직 나이가 어려보이시는데, 실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열 여덟입니다."
"그렇군요. 벌쳐스는 상위 1%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들어가게 되셨죠?"
"운이 좋아서 들어갔습니다."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저분들을 오늘 처음 만났는데 내 편을 들어줄지 아닐지 모르는 일이었다. 팀명은 마음에 들었지만 클로저 요원들이 대부분 내게 색안경끼고 보는 듯 했다. 일본에서 만났던 유키코 씨처럼 민간인이 짐이 될까봐 불안해하는 걸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느라 클로저가 희생된 일이 많았으니까.
"인천에서 노다지 군단을 상대하셨다고 하셨죠? 당시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네. 릭스마이너라는 지휘관이 이끄는 부대였어요. 병사들은 클로저만으로 상대가능했지만, 릭스마이너는 정예 클로저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강적이었고요."
"그렇군요. 인천에 사는 클로저 친구도 그런 말을 했었답니다. 정예 클로저들이 다 덤벼도 릭스마이너라는 녀석은 이기지 못했다는 군요."
"저희 벌쳐스 처리부대 중에 레비아 요원이 활약해줘서 녀석은 후퇴했어요."
레비아의 본래 힘과 맞부딪쳐서 비빌만 했었다. 서서히 압도하는 수준이라고 봤는데, 녀석은 결국 도망가버렸다. 한영수 요원님은 엄지손가락을 물면서 고개를 숙였다.
"일본에 가서도 임무 수행하셨죠?"
"네. 거기서 CKT부대와 릭스마이너가 협력관계라는 걸 알았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유니온 클로저에게도 알릴 필요가 있었다. 미스터 블랙이라는 인물이 릭스마이너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물이라 판단했다. 전에 만난 배원형 요원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였다.
"SNS에 아주 좋은 사진이 올라왔더군요. 이 사진 주인, 한석봉 요원님 맞으십니까?"
"으악! 그 사진이 유니온에도 퍼진 거에요?"
어라, 클로저들 시선이 다들 무서웠다. 유키코씨가 멋대로 행동한 사진이 그들에게까지 퍼졌을 줄이야. 따가운 시선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설마 여기 있는 클로저들, 전부 유키코 성우님 팬이셨던 건가? 상당히 인기가 많으신 분이셨군요. 같은 클로저라서 그런가?
* * *
따가운 시선을 받은 채로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우리는 트레일러에서 내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유니온 과학자들과 각종 장비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벌꿀오소리 팀과 벌쳐스 감시요원 맞으시죠?"
"네!"
"감시 요원님께서는 이 장비를 입으십시오. 차원압력을 견딜 수 있는 장비입니다."
마치 우주복처럼 생겼다. 차원압력이라면 벌쳐스에서 배웠다. 이곳을 내부차원이라 하고, 차원종 세계를 외부차원이라고 했다. 그곳에 들어간 민간인은 차원압력으로 몸이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내 장비는 신발밖에 못쓰는 건가? 이거라도 상관없겠지.
"감시 요원님. 준비되었습니까?"
"네. 준비되었습니다."
한영수 요원님은 이미 준비가 된 모양이었다. 팀원들이 전부 무기를 꺼냈다. 검과 창, 쌍절곤, 톤파까지 다양했다. 리더는 산탄총을 들고 있었다. 게임에서도 멋져보였는데 여기서도 멋져 보였다. 나도 권총을 꺼내 비장한 각오를 가졌다.
"우선 선발대와 후발대는 이렇게 나누고, 감시 요원님은 중앙에 대기해주세요."
민간인을 보호하려는 포지션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고, 한영수 요원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 앞에 섰다.
"출발한다!"
클로저는 리더까지 합해서 10명, 대부분 A급 클로저였다. 그 중 가장 강한 게 바로 한영수 요원님이겠지. 긴장된 마음으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새하얀 빛이 잠시 내 눈을 가리다가 장소가 바뀌었다. 하늘이 붉은색이었고, 사방에는 나무가 말라죽은 황야가 펼쳐졌다. 여기가 바로 외부차원, 장비를 향해 뭔가가 부딪치는 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차원압력인가?
"차원종이다! 선발대 앞으로 후발대는 요원님을 보호하도록."
후발대가 나를 지켰고, 선발대가 나서서 차원종들을 상대했다. 가만, 저 차원종들은 분명히 트룹 계열 차원종들이었지? 갈색 피부를 하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선발대가 나서서 금방 처리했다. 역시 A급 클로저들이야. 저들을 상대로 쉽게 쓰러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겠지?
"뭔가 이상하군."
"왜 그러세요?"
한영수 요원의 말에 트룹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칼에 베인 트룹의 몸에서 새싹이 피어나오고 있었다. 뭐야? 트룹은 새싹이 드러나는 차원종이 아닐텐데? 마치 식물족으로 강제로 변이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혹시 기생식물아닐까요? 차원종의 몸에 식물이 자라난다는 건 대부분 기생 식물밖에 생각할 수 없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대체 뭘까요?"
"혹시 모르니까 떨어지는 게 어떨까요?"
"혹시 모르니까 떨어지는 게 어떨까요?"
새싹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뒤로 좀 물러나자고 말했지만 한영수 요원님은 그 모습을 관찰할 뿐이었다. 일단 저분들에게 신세를 안 지기 위해 나라도 거리를 두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새싹이 자라면서 트룹도 일어났다.
탕!
트룹이 일어나자마자 한영수 요원이 녀석의 머리통에 총알을 하나 박았다. 머리통이 완벽하게 나가떨어졌고, 새싹은 금방 말라죽었다. 다른 트룹들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고개를 아래로 숙인채 좀비처럼 비틀거렸다. 기생 식물이 죽은 차원종을 조종하기라도 하는 건가?
"아무래도 조종당하는 거 같군요."
"기생식물 차원종은 들어** 못했습니다만, 플레인 게이트는 우리가 아는 거 이상으로 많이 있군요. 사진 촬영해."
트룹의 몸에서 난 새싹으로 인해 트룹들이 움직였다. 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고, 동영상으로 촬영하기까지 했다. 그런 뒤에 클로저들이 트룹들을 해치웠다. 전투력은 변한 게 없어 보였지만 녀석들이 죽고 나서 새싹이 말라 죽는다는 건 알았다. 도대체 뭘까?
"리더, 아무래도 이 식물들은 우리 몸에도 침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 몸에 침투하는 녀석이라면 무서울 수준이지."
트룹의 몸에 어떻게 새싹이 들어오게 되었을까? 식물의 종자가 몸을 침투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나온다는 건 뭔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기생식물, 종자, 이곳에는 자라나는 식물이 없다. 그렇다면 공중에 뜬 종자들이 날아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게임에서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얀 종자가 있었지. 거기에 닿으면 플레이어가 죽게 되어있었다.
"저기, 하늘에 날아다니는 하얀 종자를 조심하세요. 저게 아마 기생식물일 겁니다."
내가 가리킨 방향에는 하얀 종자들이 낙하산타듯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괜찮지만, 클로저들이 걱정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