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41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24 1

 조용한 발라드 음악이 나오는 분위기를 가진 레스토랑에는 한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이 유일했다. 벌쳐스 사장이 전세낸 곳이었다. 그의 딸인 바이올렛과 함께 제천 그룹 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응해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해 이렇게 투자를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헤카톤케일 무기화 계획 투자자였다. 그 연구하는 데 투자한 비용도 조 단위가 넘어갔었다. 막대한 금액은 벌쳐스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제천 그룹 회장의 투자를 받아 진행 중이었다. 사장에게 있어서 그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 무기가 대한민국에 유일하다면 전세계는 우리를 부러워하겠죠? 초강대국인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도 깜짝 놀랄 겁니다."
"차원종 다수를 쓰러뜨릴 거대한 병기, 차원종을 차원종으로 쓰러뜨린다는 건 정말 멋진 생각입니다."

 사장의 말에 회장은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포도주를 마시던 회장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는지 그에게 질문했다.

"그 헤카톤 케일 병기는 정말로 안전한 겁니까?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면 오히려 재앙으로 변할 수 있을텐데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S급 클로저도 함부로 부술 수 없는 막강한 장갑으로 만들어졌고, 화이트 해커를 동원해서 보안에 빈틈이 없는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적, 녀석은 완벽하게 우리 통제하에 들어와 있습니다."

 사장이 가장 신경 썼던 게 바로 통제였다. 강한 병기라도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회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이올렛을 물끄러미 보았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온 그녀는 회장을 보며 묵례로 인사할 뿐이었다. 계속 쳐다보니 불쾌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님께서 참 아름다우시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 아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떠십니까?"
"오, 그러고 보니 아드님께서는 유니온 A급 클로저셨죠?"
"네. 어떠신가요? 사장님."

 상대방이 A급 클로저라면 나름대로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사장은 바이올렛 눈치를 살폈다. 고개를 숙인 채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자 씩 웃으며 회장을 보고 답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죠. 서로 대면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제가 실례했군요.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이런 요청해서 죄송합니다. 이런, 바빠서 이만 일어나야겠군요. 실례하겠습니다."

 회장은 정중히 인사하고 나갔다. 사장과 바이올렛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 회장이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한 사장은 자리에 앉으며 바이올렛을 물끄러미 보았다.

"안색이 어둡군. 회장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너도 위상력 각성해서 클로저로 활동하고 있으면 A급 클로저가 어울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만나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내가 보기에 너는 처음부터 거절할 사람처럼 보이는데?"

 포도주 한 잔 마시고, 도끼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걸었다. 평소라면 관심없어했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이올렛은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설마 그 녀석에게 마음 있는 건 아니겠지? 위상력도 없는 나약한 민간인 소년 말이야. 그 차원종을 제어시키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약해빠진 민간인일 뿐이야. 그런 녀석이 클로저와 어울릴 수는 없어. 민간인은 민간인 끼리, 클로저에게 어울리는 상대는 클로저 뿐이야. 내 말 알아들었니?"
"네. 아버지."

 바이올렛은 그의 말에 대답하긴 했지만, 자꾸 가슴이 아픈 게 느껴졌다. 정략 결혼, 본인이 원하는 상대가 아닌 가족이 결정하는 상대와 결혼하는 거였다. 재벌가에서 흔히 일어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날이 찾아오니 좋지만은 않았다.

*  *  *

 거울 앞에 서서 옷차림을 단정하게 했다. 휴가를 보내지 않은 기분이었다. 결국 행사 상품은 얻지도 못했고, 거기서 일만 하다 왔다. 그래도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알았다. CKT부대 소속 조재현이 타임머신 계획을 벌였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도 위상력 각성이 될 수 있었을까? 물론 클로저의 길은 험난하기만 할 뿐이지만, 좋아하는 여자애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무서울 게 없었다. 

오늘도 출근해야지.

 힘내야지. 내가 그 직장에 출근한 탓에 우리 집도 전보다 형편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엄마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섰다.

"어?"

 하이드 씨가 또 마중나와 계셨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말씀드렸는데 호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뒷좌석에 탔는데 오늘은 아가씨가 계시지 않았다. 

"출발하겠습니다."
"네."

 차 안에서 수첩을 꺼내 생각에 잠겼다. 조재현이 벌였던 일은 유니온 측에서 자세히 알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세하도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CKT, 조재현, 이세하, 타임머신 등의 단어를 기록했고, 마지막에 미스터 블랙이라는 이름을 적어보았다. 미스터 블랙은 일본 첩보기관도 알아내지 못한 거물이었다. 한국 정부도 정체를 모르고 있다고 되어있었다. 단순한 테러단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일본 항공**대가 출동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지만, 정부에서 공개하지 않아서 나도 잘 몰랐다. 일부로 출동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지만, 전투기를 출격시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썼으리라 확신했다.

단서가 모자라네.

 전투기 출격하지 않은 문제보다 미스터 블랙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조직을 무너뜨리려면 우두머리부터 치라는 말이 있었다.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낸다면 CKT부대를 무너뜨릴 계획을 짤 수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벌써요? 감사합니다."

 생각하고 있을 때 회사에 도착했다. 하이드 씨는 예의바른 모습으로 내게 인사했고, 나도 이에 답해주었다.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간 나는 마침 감시관 님이 직원들과 함께 서류 내용을 확인하는 걸 보았다. 

"감시관님. 안녕하세요."
"어머, 빨리 오셨네요. 일본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저렇게 태평한 얼굴로 잘 다녀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잘 다녀오지 못했는데. 하피 씨를 보내 감시하게 하고, CKT부대와 교전을 벌였는데 이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따지고 싶지만, 표정관리 했다.

"잘 다녀왔습니다. 오늘 부로 정상 업무 들어가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한석봉 씨. 사장실로 한 번 가보세요. 사장님께서 직접 임무를 부여하시겠다고 하시네요."
"네? 네. 알겠습니다."

 사장이 내게 직접 지시를 내린다고? 조금 놀라웠다. 그 분이 이번에는 어떤 일을 주실지 기대가 되었다. 이번에도 어려운 일이겠지. 어떠한 일이라도 지금은 참고 견딜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에, 사장실로 와서 노크했다.

"한석봉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근엄한 목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 사장에게 인사했다.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알지도 못하는 기밀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불쾌한 듯이 보였다. 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본에 잘 다녀왔나?"
"네.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이번에 너에게 임무를 하나 주려고 했다. 유니온에서 탐사팀을 편성해 플레인 게이트 내부를 탐사한다고 했다. 마침 우리 벌쳐스도 그 게이트 내부를 조사해야 하는데 처리부대 실력이 영 아니어서 말이야. 그래서 감시 요원인 자네가 우리 벌쳐스를 대표해서 다녀와줬으면 하네."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게 더 현명한데 굳이 나를 보내려 하다니, 누가 봐도 속 보이는 행동이었다. 나보다 더 경험 많은 선배가 있거나 처리부대 클로저도 있는데도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건, 아직도 나를 못 마땅하게 여긴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조직 내에서는 우두머리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알겠습니다. 플레인 게이트 탐사, 다녀오겠습니다."
"유니온 요원들이 자네를 호위할 걸세. 그럼 잘 다녀오게나."
"네!"

 플레인 게이트는 차원종 세계로 가는 입구라고 들었다. 새로 나온 차원종과는 관계없는 녀석들과 함께하는 거였다. 유니온 정예 클로저도 함께하는 거겠지?

*  *  *

 회사를 나와 곧바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입구에는 바이올렛 아가씨가 무서운 눈으로 쳐다봤다. 언제봐도 진짜 소름 끼칠 정도로 두려울 수준이었다. 정중하게 인사했지만, 아가씨는 도끼눈으로 나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일본에서 즐겁게 지내셨다면서요?"
"네? 아, 아니에요. 그렇게 좋은 일은 없었어요."
"어머, 그런가요?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헉, 유키코 씨가 내 볼에 뽀뽀한 사진이 왜 아가씨 휴대폰에 있는 거지? 설마 SNS로 퍼진 건가? 일본에 일하다 왔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클로저면서 성우이기도 한 그녀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으니까. 그것보다 아가씨 눈초리가 너무 무서워서 함부로 마주치지 못할 거 같았다.

"참 재미 좋았겠어요. 일본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들었는데, 여성을 꼬시러 갔다고 봐도 되는 부분인가요?"
"저... 전, 그런 짓은 하지 않았어요."

 장미꽃을 입에 물고, 꽃미남 행세를 하는 사람처럼 여성에게 작업을 거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 얼굴부터가 첫인상이 안 좋게 생겼다. 늑대개 팀은 오래봤으니까 아는 거지만, 유키코 씨는 성품이 좋아서 내게 그렇게 행동한 걸 수도 있었다. 단지 그것 뿐이겠지. 암. 외국에서도 볼키스 문화가 있다고 했는데.

"뭐, 됐어요. 당신이 일본에 가서 뭐하든 상관없죠. 아무튼 임무 수행에 충실히 해주시기 바랄게요."

 그렇게 말하고 아가씨는 들어가셨다. 어우, 무서워.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여자가 화나면 무섭다더니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게임 내에서도 여성이 가장 무서운 캐릭터로 드러나는 일이 많았지. 왜 사람들이 여캐라 하는지 알 거 같았다. 헛기침 한 번 한 뒤에 곧바로 유니온으로 향했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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