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파이] 얼음에 잠긴 초신성[上]

PlaylMaker 2020-03-20 3

※자극적인 설정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보실 때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프롤로그


누군가 그랬다.

때로는 근처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숨겨야 할 중대한 일이 있는 법이라고.


어른이 되기 전에는 순진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그저 허울 좋은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 않고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려는 욕심.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난 그렇게 무너진 사람을 바로 곁에서 확인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검은양. 아니 내 주변에 있는 클로저팀들에 의존하고 또, 지탱해가면서 나아가겠다고. 모든 동료 앞에서 선언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절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의 피를 가진 아이에게 나와 같은 길을 걷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 연인이었던 동료에게 등을 돌리면서까지 내린 결단은 왕래도 거의 없던 그녀와 연을 맺는 것이었다.


나를 속이고 그녀를 속일지라도... 아이를 위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설령 그 길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징후


"세별이구나! 어서 와."


신서울 유니온 지부 제1 회의실.
본래라면 외부인이 드나들 수 없는 장소지만 극비리에 특별한 손님을 모시게 되었다.


바로 검은양 팀, 클로저 세하의 아이.
이세별.


아직 5세밖에 안된 아이가 면담 요청을 해왔을 때는 정말 놀랐다. 그것도 자신의 부모에게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면서까지 알려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게 아닌가.


"안녕하세요."


절도있게 예의 바른 태도로 인사해온다. 세별이의 엄마인 그녀의 평소 모습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부분이지만 반대로 엄한 교육이 어린아이에게 약간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는 않을지 걱정이 든다.


"으음... 일단 앉아. 마실 게 많이 없는데... 우유에 꿀이라도 타서 줄까?"


"네......"


온화하면서도 부드러운 금색의 눈동자를 보니 세하의 아이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얼굴은 세하보다는 엄마 쪽을 더 많이 닮은 것 같다. 그녀의 처음 인상과 거의 비슷하달까... 그녀가 만약 비슷한 또래로 어려진다면 자매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


"......"


어깨에 약간의 떨림과 함께 불안으로 가득한 안색을 하고 있다. 세별이가 여기까지 어떤 마음을 하고 왔을지 짐작하게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일까? 그 당사자는 왜 나였을까?


세별이와 접점이 많았던 사람은 유리, 세트, 소마 정도였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이었을 터, 적어도 먼 장소에서 클로저들을 관리하는 유니온 국장은 아닐 것이다.


설마 그것까지 감안하고 나를 선택한 건 아닐까? 그렇게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어쨌거나 세하나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왔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결혼했을 당시부터 알파퀸 서지수 씨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려했던 상황이기도 하고 당사자 간의 불협화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 따뜻하게 데워왔어. 조금 식히고 마시렴."


"고맙습니다..."


검은양이 그려진 컵을 앞에 두었지만 세별이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는 건가.

그래도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속 시원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뿐. 만약 가정 문제라면 함부로 개입하기가 다소 조심스럽다. 나도 아직 가져** 못한 것이니까.


그때, 세별이가 품속에서 하늘색 편지봉투를 꺼내 내 쪽으로 건넸다.


"이건? 나에게 주는 거니?"


끄덕끄덕


소심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보통 편지는 품속에 넣어두지 않는다. 그렇게 두다간 쉽게 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숨겨서 가져왔다는 건 자신의 부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뜻.


세하가 육아휴직으로 쉰 지 1달이 넘었다. 한창 가정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을 시기겠지.
설령 불화가 있더라도 내가 함부로 알아도 될 내용일까?
나도 아직 가정을 가져** 못했다.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우...."


세별이가 양쪽 어깨를 교차로 쥐어 잡으며 덜덜 떨고 있다. 실내가 24도임에도 오한을 느낄 만큼 부담을 느끼고 있는듯하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어찌 됐든 지금 이 어린아이는 나를 향해 손길을 뻗었다.


내가 도움될지, 도움을 줄지 알 수 없는 상태고, 오히려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렵게 믿음을 줬다면 이에 답해주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도리다.

편지봉투를 뜯어 내용을 읽어본다.


......


......?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전해졌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녀는 소중한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설마 성적 취향이 이쪽이라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내용에 따르면 둘은 집안에서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아마 결혼 직후에도 마찬가지였겠지. 독방도 쓰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세별이가 바라본 기이한 광경이 설명되지 않는다.


`역시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해 볼 수밖에...`


똑똑똑.


"유정언니. 여기 계세요?"


"어... 슬비구나. 지금 조금 일이있어서... 끝나면 연락해줄 테니까-"


"세별이? 여긴 무슨 일로..." 


쾅!

오랜만에 방문한 검은양의 일원이 회의실 문을 강제로 박차고 들어온다.

초췌하게 그늘진 다크서클, 헝클어진 머릿결, 피폐해진 눈동자.

내가 알던 세하의 모습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야! 이세하! 이게 무슨 짓이야!"


"세별이... 세별이 어디있어?"


세별이는 불쌍한 동물을 바라보는 듯 자신의 아버지를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하하.. 여기 있었구나. 자, 어서 집에 가자. 걱정... 했었다고?


꿀꺽...

편지의 내용을 증명해주는 단서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남의 일이라고 묵인할 수 없을 영역까지 사태가 흘렀음을 짐작했다.

여기선 용기를 내어야겠지.


세별이에게 다가서는 세하의 앞길을 막아선다.


"세하야. 하나만 알려주겠니? 너 목에 붕대 두른 이유를 누나가 알아야 할 것 같아."


"....?!"


역시... 정답인가. 꼭 빗나갔으면 하는 예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닌가 보네.

줄곧 세별이만을 응시하고 있던 세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렵게 입을 연다.


"튀...튀김 요리를 하다가 기름이 튀어서요."


"그래? 한번 나에게 보여줄 수 있겠니? 만약 그게 목이 졸려서 남은 자국이 아니라면 말이야."


세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동공이 커지고 호흡은 점차 가빠졌으며 어깨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분위기가 어두워지자, 세별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그동안 많이 괴로웠다는 걸 반증하는 것처럼.
울음소리가 점차 커지자, 세하는 더는 견디기가 어렵다는 듯 등을 돌리고 돌아가기 시작한다.


"세별아. 아빠, 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 가봐야 해. 누나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꼭... 데리러 올 테니까."


"이세하! 잠깐만-"


나는 세하에게 이야기하려던 슬비를 만류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세별이에게 이야기를 한다.


"잠깐 어른들끼리 할 말이 있어서 휴게실에서 쉬고 있어 주겠니? 전에 와봤으니 어디 있는지는 알지?"


대답할 여력도 없이 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회의실에서 나갔다.

이후 불현듯 가슴이 죄여오면서 어린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난 왜 이리 성급했을까.
하지만 엉성하게 대처하려 했다가는 상황이 더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 이것조차 자기합리화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건너뛰어야 할 분기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슬비야. 만약 지금 내리는 임무가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일단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수 있겠니?"


"유정언니? 혹시 조금 전 상황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나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태블릿을 꺼내 자주 열람하던 연락처에 연결한다.
앨리스씨와 트레이너씨. 임무를 위해 반드시 협조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네! 그게 검은양을 위한 길이라면 기꺼이. 세하는 우리의 소중한 동료니까요."


"여기는 트레이너. 무슨 일인가?"


"김유정 국장님? 앨리스 와이즈맨입니다."


 통신 양호.
 세별이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어제까지 차원종, 내부의 적을 소탕하기 위해 싸워왔다면 오늘은 소중한 동료를 위해 힘써야 할 때다.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가정을 위해, 아이를 위해서.


"지금부터 검은양팀, 늑대개팀, 사냥터지기팀에 긴급임무를 하달합니다. 임무내용은-"


기다려줘. 너를 예전에 그 생기있던 모습으로 되돌려 놀 테니까.


"파이씨 아니 사냥터지기팀의 클로저, 파이 윈체스터의 구속입니다.."




글쓴이의 말: 특별히 생각한 거 없이 즉흥적으로 써 봤습니다. 다음 화가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나온다면 재미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10-24 23:35:2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